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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관을 넘길 것인가에 대한 교류

글 /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1년 12월 13일 밍후이왕에 발표된 ‘악당의 전향를 배척하는 경력과 체험에 대한 깨달음’이란 문장을 보았다. 글쓴이는 당시 사악의 잔혹한 박해 속에서 관을 잘 넘지 못하거나 못 넘는 수련생들에게 어떻게 관을 넘었는지에 대한 경험을 제공해 참고로 삼게 했다. 읽고 난 후 수확이 꽤 많았다. 이전과 현재 관을 넘는 일을 대조해 보니 견정함에 있어서 많은 계발과 참고가 됐다. 하지만 어떻게 관을 넘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한 것 같았다. 비록 밍후이에서 다소 편집을 했음에도 아직 보충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잘못된 인식은 시정해 주기 바란다. 우리가 관을 넘는다 함은 특히 잔혹한 박해만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평소에도 관을 넘을 수 있는지, 혹은 관을 잘 넘어 갔는지의 문제가 있다.

사실 ‘확고하다’의 내포는 매우 넓다. 대법제자에 대한 ‘확고하다’란 당연히 법에 대해 확신을 말한다. 그것은 마음 속에 법을 담고, 관을 넘는 과정에서 마음을 법에 두고 법의 요구에 따를 수 있음을 포함한다. 다시 말하면 관을 넘을 때 사부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며 확고하게 사부님과 법을 믿는 것을 말한다.

2001년 나의 경험을 말해 보자. 외지 출장 중이었던 나는 지역 국가안전국에 붙잡힌 적이 있다. 월요일에 도착한 나는 금요일에 붙잡혔다. 나중에 안전국 요원과 대화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은 내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나를 목표로 했다는 것이다.(그들은 내가 비행기 표를 사자 마자 알았다) 내가 머문 호텔 주변에 안전국 요원을 배치했고, 내가 1주일 간 업무를 보는 내내 감시했다. 나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들은 왕복 항공권을 끊었기에 내가 토요일 오전에 돌아간다는 것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금요일 저녁 고객, 동료 한 명과 함께 숙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십여 명이 숙소에 들어와 소환장을 보이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 한 순간에 나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게 됐다. 나의 수련과정에서 늘 느슨하고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음이 생각났다. 그러나 재빨리 마음을 차분히 하고 안전국 요원에게 이 분은 지방 친구이고 이 분은 직장동료일 뿐이니 그들을 난처하게 하지 말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마음속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나는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사부님 안심하십시오.’라고 생각했다. 안전국 요원들은 나의 물건을 자세히 검사했다. 가방에는 대법자료 십 몇 장과 CD가 들어 있었다. 일이 바빴기에 출장 전에 빼놓지 못했다. 그리고 ‘전법륜’과 신경문이 있었고 컴퓨터에는 밍후이왕에서 다운받은 파일이 있었다. 기록을 담당한 안전국 요원은 기록할 것이 많다며 투덜거렸다. 그들은 모든 내용을 기록한 후 침대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물증은 확실하다. 이를 본 안전국처장은 정상적으로 2년 반이며, 보고서에 몇 마디 더 첨가하면 3년 이상의 판결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저녁이 되어 나는 나를 감시하는 3명의 안전국 요원과 한 방에 남게 됐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호텔 밖에는 국가안전국 차량이 대기 중이었고 호텔 문 앞에도 대기 중이었다. 당시 나는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두려움도 없었고 마음은 평온했다.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어떤 대가를 치룬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부국장이 왔을 때도 나는 태연했다. 나는 그를 방으로 청해 대화를 나누었다. 열 몇 시간 째 감금되어 있는 동안 나는 안전국 직원들에게 천안문 분신자살사건 영상을 보여주고 진상을 알렸다.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나는 강요하지 않았고, 인내를 가지고 차분히 설명했다. 그들이 들으면 설명하고 듣지 않으면 화제를 전환했다. 사당의 거짓에 심하게 독해된 그들은 진상을 들으면서 태연한척 했지만 매우 신기해했다. 그들이 나에게 어디 살며 몇 살인지, 도망칠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나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왜 도망갈 생각을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들은 그 말은 맞다며 “도망가면 또 붙잡으면 되고 놓아줘도 별일 없겠군.”하면서 토요일 오후라 자신들이 바쁘고 신경쓰고 싶지 않다고 하며 나를 풀어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감금 20여 시간만의 일이었다.

회사로 돌아간 후 직장동료는 다른 동료들에게 그 일을 영웅담처럼 이야기했다. 어떤 동료는 안전국 요원이 그렇게 일을 처리할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이유가 있어 체포했으니 풀어주지 않았어야 정상이라는 논리였다. 내가 이런 일들을 말하는 이유는 어떤 일에 부딪히더라도 오직 우리가 법에 있을 수 있다면 사부님께서 모두 관여하고 계시고 모두 처리해 주시기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사실 사부님께서 감당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나중에 ‘북미순회설법법회’이 발표된 후 나는 “두 가지 정황 하에서 그것들은 대법제자를 건드릴 수 없다. 하나는 확고하기가 반석(磐石)과 같으면 그것들이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럴 때면, 구세력이든 구 이치든, 이 제자가 바르게 걷고 잘 하는데 누가 가서 박해한다면 내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들은 알고 있다. 나의 신변에는 또 무수한 정신(正神)들이 있다! 나는 또 무수한 법신(法身)이 있으며 모두 정법을 할 수 있다. 염려되는 것은 제자 자신의 마음이 불안정한 것인데, 이러한 집착이나 그러한 두려워하는 마음을 구세력이 보면 그 누락이 있는 마음을 틀어잡고 박해할 수 있다. 또 박해 중에 정념(正念)이 부족하면 당하는 박해는 더욱 커지는데, 전부가 다 이 상황이다.”를 읽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당시 나는 오직 사부님만을 생각했기에 사부님께서 해결해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이미 안배해 주신 수련의 길은 누구도 함부로 개변시킬 수 없다. 모든 관은 자신이 넘어야 한다. 어떻게 넘을 것인가? 마음이 모두 법에 있는가를 본다. 생사를 내려 놓았는가를 본다. 관건 시기에 사부님을 믿는지를 본다. 상황은 발생했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한번은 전향한 수련생과 교류하는 할때다. 그는 타협한 후 수련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문(悔過書)을 썼다. 그는 수련생들에게 자신의 사오를 퍼뜨렸다. 평소에 말을 잘했던 이 사람은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만을 말하며 다른 사람이 말 끊는 것을 싫어했다.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려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전향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들리는 말에는 그는 많은 박해를 받고 타협했다고 했다. 그는 나를 한 동안 쳐다본 후 자신이 수련을 포기하지 않으면 거기서 죽어야 했고 영원히 출세할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사부님보다, 법보다 당신 앞의 고난을 크게 봤다고 말해 주었고, 당시에 당신이 만약 법을 먼저 생각하고 사부님을 믿었다면 그 난은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그는 자신은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는 것으로 간주했고, 사악한 환경 아래에서 사악한 정권이 한 사람을 박해하고 한 계층을 박해하고 한 단체를 박해한다면 버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타협했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의 환경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수련하는 것이고 속인의 이치로 생각해선 안된다. 오직 수련의 이치로 판단하고 마음을 법에 두어야만 관을 잘 넘을 수 있다. 반대로 사람의 이치로 사람의 도리로 생각하면 감당하기 힘들며 걸어오기가 힘들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사악의 잔혹한 박해뿐만 아니라 모든 관은 동일하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경험을 했다. 예를 들면 평소 생활에서 정진하지 못하는 문제, 감정을 깔금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문제, 가족의 반대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자신을 연공인으로 엄격히 요구하지 못하고 마음을 법에 두지 못한 것이다. 평소 환경, 일상생활에서의 압력이 적었기에 오히려 무시하고 방임했으며 자신을 느슨하게 했기에 큰 난처럼, 큰 관처럼 청성하고 견정하게 대하지 못했다. 나는 이 방면에 많은 교훈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면의 제한으로 하나하나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일은 박해처럼, 큰 관을 넘는 것처럼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라도 본질은 같은 것이다. 관을 넘는 심리 상태 또한 매우 비슷하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함에 있어 우리가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잘 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모두 신사신법의 문제다. 사부님의 법, 사부님의 요구는 명확하다. 우리의 사명은 현재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법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부님의 법의 요구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수련은 안으로 찾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찾는가?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는 것이다.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법과 대조하여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찾는 것이다. 자신이 법의 요구대로 했는가를 보는 것이고 잘 했는가를 보는 것이다. 진상을 알리지 않고 사람을 구하지 않으며 잔혹한 박해로 관을 넘지 못하고 평소 자신을 엄격히 연공인으로 요구하지 못하면 모두 신사신법하지 못한 것이다. 법의 요구대로 하지 않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찾지 못한 것이고 수련하지도 않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3가지 일을 하는 것이 곧 수련이며 제고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많은 수련생들은 모두 자신이 신사신법하여 일을 잘한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잘하지 못한 사례일 것이다. 이 문장을 적은 이유는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잘 하지 못한 것은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매우 부끄럽다. 여러분과 공동으로 정진하기 위해 비교적 잘한 일만 적었다. 모두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2011년 12월 21일
문장분류: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21/2508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