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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안을 향해 찾기’는 진정한 법보

글/ 허베이(河北)대법제자

[밍후이왕] 어느 저녁, 단체 법공부에 참가해 막 법공부를 시작했을 때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았고 억누르려 했지만 억누를 수 없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법 중에 용해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그렇다. 나의 마음을 법속에 완전히 용해시키자, 이런 잡념들을 인위적이고 의식적으로 억누를 필요 없이 나의 신심을 무조건 법에 용해시켜 버리자고 생각했다. 마음이 점차 법에 용해되면 좋지 않은 사심은 대법에 의해 깨끗이 제거되고 조금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ㅡ 본문 작자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법회에 즈음하여 저와 제 법학습팀이 안을 향해 찾는 과정에서 어떻게 자신의 부족한 점과 집착을 발견하고,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집착을 제거하면서, 금강부동한 정념으로 신사신법하여 심성을 승화시킨 것에 대해 교류하고자 합니다. 개인의 인식이므로 부족한 면은 수련생 여러분들께서 자비로 시정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1. 법공부를 잘해 모든 일에서 안을 향해 찾는 튼튼한 기초를 닦다

사부님께서는많은 설법 중에서늘문제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보지 말고 반드시 안을 향해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진지하게 가르치셨다. 또 우리들에게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안으로 찾는 이것은 하나의 법보(法寶)이다.”(‘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 그러나 실제로 고비를 넘는 과정 중에서, 모순이 자신의 마음을 건드릴 때, 흔히 우리 많은 수련생들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자신을 찾지 못해, 모순 혹은 표면 현상에 의해 마음이 움직이며 심지어는 좌우지 된다. 어떤 집착이 불러 온 것인지 자신으로부터 찾지 않고 상대의 부족한 면에서 찾으려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수련생들이 안을 향해 찾으라고 알려 주어도 도리어 사람 마음이 충격을 받자 화를 내며, 잘못된 것은 그인데 왜 나에게 찾으라고 하느냐며 해명하기에 급급하다. 무릇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우리가 법공부를 잘하지 못해 발생된 현상이다. 나 역시 이러했다. 법공부할 때는 심태가 매우 좋았지만 일단 속인 사회와 접촉해 일에 부딪히기만 하면 잘하지 못해 후회했다. 잘하려고 생각하면서도 잘하지 못해 후회하기를 반복하며 몸부림쳐 왔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중에서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교란을 배제하자’) 법공부의 중요성을 알게 된 후 우리는 신속히 단체 법공부팀을 재가동했고 시간을 지켜 법공부했다. 당시 법공부에 참가한 수련생 모두는 비약적으로 제고됨을 느꼈다. 법을 잘 배우고 안을 향해 찾는 것을 잘 배워 일에 부딪혀 더는 조급해 하지 않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주시하지 않게 되었다. 또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통해 자신을 찾게 될 때의 미묘한 경지도 체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나를 포함한 많은 수련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단체 법공부를 일종 형식으로 여기게 되었고, 더는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되어 우리는 다시 교류를 통해 안을 향해 찾고 대법과 대조하며 매우 많은 근본 집착을 찾았다. 예를 들면 정법시간에 대한 집착이다. 정법시간이 연장됨에 따라, 정법 십몇 년 간 표면상 자신이 예상했던 변화를 뚜렷이 볼 수 없다고 여겨, 먼저 속인의 생활을 잘하자는 생각으로 대법 실증을 느슨히 하며 정진하지 못했다. 따라서 일부 대법제자들의 이익에 대한 마음이 가중되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본격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겉으로는 수련생들이 순리롭게 세 가지 일을 견정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오히려 세 가지 일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고 표면에 머무르고 있었다. 우리는 안을 향해 찾는 과정 중에 이 집착을 발견했고, 이제는 이 집착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하는 것이 수련생들에게 있어 또 하나의 고험이자 진수제자의 과제가 됐다.

과거 우리 법공부팀의 한 수련생은 매우 장기간 느슨하게 수련하여 사악의 직접적인 교란을 받았다. 사악의 교란은 마치 정수리에 일침을 가한 것과 같았는데, 수련생 자신도 문제의 엄중함을 인식은 했지만 법리에서 깨닫지 못하고 노력하지 않아 관을 넘지 못했다. 그는 법공부를 참답게 하지 못했고, 진상을 알리려 하지도 않았으며, 매일 아침 연공 시간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수련생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조급해 했고, 본인도 조급해 했지만 정진하지 못했다. 이 역시 그의 법공부 상태에 대한 반영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정념은 법에서 오는 것”(‘더 정진하자’)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정진하려는 정념이 없다는 것은, 당신이 법공부를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더 깊이 안을 향해 찾음으로써 법공부의 기점을 바로 잡았다. 법공부는 형식을 수호하며, 공부를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법공부는 자신의 부족한 면을 부단히 대법과 대조해 찾아 가는 과정이자, 자신의 사상을 깨끗이 씻어 승화시키고 정념을 충실하게 하여 결국 법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관계를 명확히 한 후 우리는 다시 법을 대하는 자세를 조정했다. 과거 수량을 추구해 법공부하는 마음을 제거하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법공부에 공력을 들이고 심혈을 기울였다. 사부님께서 법공부에 심혈을 기울이라고 하신 이상 우리는 단지 입으로만 읽고 배워서는 안 된다고 인식했다. 우리는 다소 천천히 읽으며 “법이 입에 닿고, 눈에 닿고, 마음에 닿게” 하려 노력했다. 단지 법을 마음에 놓고 읽으며 기억하려는 것이 아닌, 진정 마음이 법에 용해되어 사회 속에서 형성된 각종 순수하지 못한 관념이 깨끗이 씻겨 자신의 신심이 남김없이 법에 동화되게 했다.

어느 저녁, 단체 법공부에 참가해 막 법공부를 시작했을 때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았고 억누르려 했지만 억누를 수 없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법 중에 용해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그렇다. 나의 마음을 법속에 완전히 용해시키자. 시간을 들여 이런 잡념들을 인위적이고 의식적으로 억누를 필요 없이 나의 신심을 무조건 법에 용해시켜 버리자고 생각했다. 마음이 점차 법에 용해되면 좋지 않은 사심은 대법에 의해 깨끗이 제거되고 조금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2. 안을 향해 찾으며 협조하는 중에서 점차 자신을 승화시키다

‘720’ 이후 나 역시 정법의 요구에 따라 많은 수련생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정법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악의 박해가 무척 엄중했던 초기에는 나의 두려워하는 마음 역시 엄중했다. 그러나 정법수련의 길을 걷게 되면서부터 나는 자신에 대한 요구가 한 층 높아졌다는 것을 느끼게 됐고, 협조인이 잘하지 못할 경우 문제가 더욱 엄중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책임자로서 우선 반드시 법공부에서 앞장 서야 했다. 그러므로 초기에 내가 잘하지 못해 기타 수련생들이 영향을 받게 될까 근심이 많았고 압력도 매우 크게 느껴졌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나는 법공부를 하며 안을 향해 찾는 과정 중에서 점차 승화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두려운 마음은 사람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막다른 고비이다.”(‘막다른 고비[死關]에서 벗어나라’)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2’ 중에서 또 말씀하셨다. “두려움이 없다면 당신을 두렵게 하는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 사부님의 설법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안으로 찾아보았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사심이었다. 자신에 대해 집착함으로써 신체, 이익, 명예 상에서 손해를 볼까 이런 저런 두려운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속인의 ‘명, 이, 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수호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는 우리 수련과 반대가 아닌가? 나는 이 층의 법리를 명백히 깨달은 후 머리 속으로 늘 법을 외우며 정념을 유지하자 두려워하는 마음이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담담해졌다. 그러나 때로는 관건적일 때 두려워하는 마음이 다시 올라왔다. 다시 법공부를 하며 안을 향해 찾으면서 또 하나 수련의 기점 상의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신사신법의 문제였다. 두려운 마음이 생겼을 때, 사악의 교란과 박해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사악의 교란과 박해의 가상을 진실로 착각하고, 그것을 사람에 대한 사람의 박해로 간주하며,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데, 이는 신사신법하지 못하고, 기점을 법에 두지 못함으로써인위적으로사악의 박해를 표면상 더욱 가중시켰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홍음2’ 중에서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다.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 수련하는 사람은 법을 간직하고 있다네 / 정념을 발하면 썩은 귀신 터져버릴지니 /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두려울 것 뭐냐’) 이처럼 끊임없이 법공부하며 안을 향해 찾고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히 믿자 점차 두려워하는 마음이 제거됐고 담담해졌다.

몇 년 간 정법수련 과정에서 가장 쉽게 생기는 집착은 자신을 실증하려 하는 과시심이었다. 법공부와 부단히 안을 향해 찾음으로써 내게는 자연스레 안을 향해 찾는 기제가 형성됐다. 어떤 때 갑 동수가 내 앞에서 을 동수의 흉을 보면 나는 바로 나 자신을 보게 됐다. 어떤 수련생이 박해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의 첫 일념이 법으로 가늠하는지를 꿰뚫어 봤고, 어떤 수련생이 저속한 물건을 보고 문제가 생긴 수련생 이야기를 할 때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라 생각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안을 향해 찾는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수련의 법보이다. 이 법보를 잘 운용하면 조사정법의 길에서 굽은 길을 적게 걷거나 굽은 길을 걷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수련생들이 모두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찾는다면, 우리는 맥이 없고 혈도 없는 금강부동의 정체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대법제자의 정체는 어떤 곤란도 이겨낼 수 있고, 어떤 견고함도 부술 수 있으며 사악은 자멸할 것이다.

3. 안을 향해 찾고 신사신법 하는 중에서 승화

지난 십몇 년 간의 간고한 수련과정 중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마난을 극복하는 과정 중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지 간에, 수련의 첫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고험하고 있는 하나의 문제가 있다. 바로 진정 신사신법하는가이다.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집착이 있고, 얼마나 큰 정념이 있는지를 막론하고, 오직 당신이 100% 신사신법할 수 있다면 일체 모순과 어려움은 모두 풀릴 것이고 어떤 장애도 길을 비킬 것이며 일체 순수하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것들은 모두 대법에 의해 바로 잡히고 선해될 것이다. 사람의 집착과 관념을끊임없이내려놓는 과정은 곧 신사신법의 정념을 확고히 하는 과정이다.

과거 나는 오토바이 사고로 손목이 탈구되고 흉부에 타박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손목이 몹시 부어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가족들은 내게 접골병원에 가보라고 간청했다. 그 당시 내게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마음이 매우 커 가족들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했고 결국 병원을 찾아 갔다. 그러나 병원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본 후 나는 단번에 깨닫게 됐다. ‘나는 대법제자다. 어찌 속인에게 치료받을 수 있단 말인가? 내게 나타난 문제는 반드시 대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대법은 하지 못할 것이 없지 않는가?’ 나는 즉시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을 향해 찾기 시작했다. 뚜렷하게 존재하는 자신의 집착을 제외하고 내가 찾아낸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 확고함이 아직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문제에 부딪히고, 관건적일 때가 되면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사람의 사상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대했던 것이다. 여기까지 깨닫게 되어 나는 마음을 확고히 하고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은 병이 없다고 하셨다. 고로 내게는 병이 없으며 나는 마땅히 내 할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즉시 연공을 시작했다. 하지만 뼛속까지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모든 동작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개의치 않고 계속 연공했다. 위아래로 충관할 때, 탈구됐던 손목뼈가 비틀어지는 것을 명확하게 느꼈고 뿌드득 소리가 나면서 몹시 고통스러워 손을 아래로 내릴 때 속도를 늦추게 됐다. 이 또한 문제를 대함에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세 번째 충관할 때, 이런 인식을 내려 놓았다.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순간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손목에서 통증이 사라졌고 연공을 마치자 탈구됐던 손목도 정상이 되었다.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감사의 눈물이 온 얼굴을 적셨다. 나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울었다. 스스로가 마치 금으로 된 밥그릇을 가지고서도 동냥을 다닌 처지와 같다고 생각되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금빛 찬란한 대법을 받쳐 들고서도 진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도리어 세간의 명리정과 증오를 놓지 않는 자신을 생각하며 부끄러움에 진땀을 흘렸다.

이런 깨달음이 있고, 나는 나의 수련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의 전반 수련과정은 끊임없는 신사신법의 과정이다. 우리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런 동요 없이 100% 신사신법할 수 있다면 바로 부동한 층차의 각자인 것이다.

4. 언제 어디서든 안을 향해 찾으며 용맹 정진

안을 향해 찾는 것은 수련의 모든 것에서 체현된다.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오직 자신의 마음을 건드렸다면, 심지어 스쳐지나가는 일념조차 놓치지 말고 안을 향해 찾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당신의 마음이 불편하거나 기쁘다면 모두 자신을 찾아야 하는바. 이 일체는 모두 자신에게 집착이 있음으로 인해 세간의 일부 모순에 의해 건드려진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사람의 집착과 관념이 없다면 속인사회의 그 어떤 일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며, 조사정법과 중생구도의 정념을 교란하지 못한다. 물론 우리는 사람이 수련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집착과 관념이 조금도 없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집착이 있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진정 두려운 것은 모순 중에서, 문제에 부딪히는 과정 중에서, 자신의 집착이 건드려졌을 때, 자신을 찾지 않고, 자신을 수련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우리의 수련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스스로 진정한 수련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대법제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대법의 요구에 따라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 말로 대법제자들이 박해받고 교란 받는 근본 원인이다.

‘9평 공산당’이 발표된 후 3퇴를 권하기 시작 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수련생들은 ‘9평’을 전하고 3퇴를 권할 때, 똑똑히 인식하지 못한 마음속 매듭이 늘 있었다. 그로 인해 각종각양의 일과 교란에 부딪혔다. 예를 들면 우리를 반당이라 말하고, 정치를 한다고 말하며, 듣지도 보지도 않겠다고 말하고, 신고하겠다고 말하는 사람 등이 있었다. 평소 대법에 대한 인식이 좋던 마을 간부 한 명은 수련생들이 ‘9평’을 권하자 정치를 한다며 태도가 돌변해 대법 진상마저 승인하지 않고 수련생들을 쫓아내려 했다.

이 일에 대해 중점 교류하면서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았다. 찾기 전에는 몰랐었지만 찾고 난 후 우리는 정말 크게 놀랐다. 매우 많은 수련생들이 속인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것은 모두 옳은 것이다. 그러나 일부 수련생들은 ‘9평’을 알리는 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아닌지, 수련과 관계있는 일인지를 생각하며 마음을 조용히 하지 못했다. 이런 수련생들이 속인의 반당, 정치참여 운운하는 것을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는가. 속인의 각종 마음은 모두 수련생들의 마음에 의해 촉성된 것이 아닌가. 수련생들은 자신의 사람마음과 관념이 중생구도에 장애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단번에 깨닫게 됐고 즉시 명백해졌다. 이 일에 있어 매 대법제자는 모두 책임이 있다. 이 일의 주요 원인은 확고하게 신사신법하지 못하고, 사람마음과 관념을 가지고 법공부하며, 법공부도 적게 하며, 오히려 법을 가늠하려 했다. 부족했던 인식상의 문제를 찾으니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구세력은 대법제자들의 사람마음을 이용해 일을 만들고 교란하고 있다. 곧 해체될 공산사령조차 스스로 소멸됨을 달가워하지 않아 속인들이 품은 자신에 대한 약간의 환상을 이용해 통제하고 마성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도리에서 명백해진 우리는 발정념으로 중생구도를 교란하고 속인을 통제하는 공산사령을 철저히 해체했다. 얼마 후 자신의 차의 짐을 내리고 있는 간부를 다시 만났다. 그를 도와주며 3퇴를 권하자 사령의 통제가 없어진 그는 유쾌하게 즉시 사당을 탈퇴했다.

“안을 향해 찾다”에 대한 총체적인 나의 체험은, 그것은 진정한 법보라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용맹 전진하라고 배치해주신 수련의 길에서 참요제마(斩妖除魔-요괴를 베고 마를 제압한다)할 수 있는 법보라는 것이다. 이 법보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모두 존재한다. 당신이 오직 “안을 향해 찾기”를 배워,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이 법보를 운용하기만 하면 모두 작용을 일으킨다. 모든 박해와 교란을 해체하고, 모순과 난관을 해결하며, 속인의 마성을 통제하여 조용하게 만들고, 진상을 받아들이게 해 구도되게 할 수 있다. 신체의 병업 증상도 나아지게하며, 잠긴 문도 기적적으로 열리게 하는 등의 기적을 만들 수 있다. 수련생이 산중수부(山重水复-첩첩의 산과 겹겹의 물)에 처해 길이 막혀도 법에 입각해 안을 향해 찾을 수만 있다면 막다른 곳에서도 길이 열리는 미묘한 경지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밍후이왕 제 8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 완성: 2011년 12월 11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11/2491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