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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갖고 있던 관념과 습관을 타파하자

글/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한 수련생 집에서 법공부를 하기로 했다. 초행길이어서 소재지를 물었더니 내게는 익숙한 지역이었다. 과거 그 지방에서 살아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련생은 나에게 상세한 주소를 적어주고 또 안내도를 그려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적어주고 그려준 노선대로 가지 않고 내가 과거에 알고 있던 습관대로 길을 잡았다. 그 지방은 매우 익숙하니 어떻게 가도 찾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한참을 가다가 보니 마치 미궁에 빠져든 것처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익숙한 지방에서 뜻밖에 길을 잃은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다가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야 수련생이 그려준 안내도가 생각났다. 나는 수련생이 그린 노선을 따라 처음부터 다시 가기로 했다. 안내도를 보자 단 번에 확 눈에 들어와 쉽게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법공부를 마치고나는 전철로 귀가하려고 표를 샀다. 전철역 입구는 두 개가 있다. 나는 매번 다른 입구로 가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앞에 입구가 있었지만 맘속으로 ‘내가 익숙한 입구로 가자.’ 하고 바로 앞에 입구를 두고 멀리 있는 내가 평소에 자주 갔던 입구로 돌아서 갔다. 그러나 그 입구에 도착해 보니에스컬레이터가 멈추어 서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긴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한발 한발 걸어올라 갔다. 힘들게 걸어서 올라선 후 무의식 중에 내가 지나쳐 왔던 입구를 보니 그 곳 에스컬레이터는 작동이 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움칫하며 ‘이것은 사부님이 나를 점화해 주신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겪은두 번의 일은 자신의 관념과 습관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수련 중에서는 자연스럽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원래부터 갖고 있던 생각대로 하려고 했으며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는 모두 빗나가 반대로 된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많은 일들이 우리의 관념으로 인해 그 길을 가로 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휴대폰 요금 문제를 놓고 말해 보자. 나는 톈위(天語) 형식의 기능이 간단한 휴대폰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근간 한 수련생으로부터 지능(智能)형 휴대폰을 사용하라는 권유를 받고 마지못해 그에게 사용방법을 배웠다. 이런 지능형 휴대폰은 사용범위가 넓고 멀티 메일이나 음성메시지를 보낼 때 톈위 형식보다 성능이 좋다. 더구나 지능형 휴대폰은 톈위형 휴대폰을 업그레이드를 시켜 그 성능을 향상 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톈위형 휴대폰만을 사용하다보니 습관이 되어 심리적으로 톈위 휴대폰을 계속해서 사용하게 된다. 정법노정에 따라 일체 모두가 추진돼야 하는데 이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세상의 만물은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다. 지능형 휴대폰은 결번을 측정할 수 있어 멀티 메일을 보낼 때 요금을 줄일 수 있고, 자동으로 음성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 사용상 효율이 높다. 그러므로 지능형 휴대폰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법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것이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관념과 습관만을 고수한 것이다. 길은 이미 자신 발밑에 있는데 가까운 데를 버리고 먼 곳에 있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당연히 시간도 낭비되고 근력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끊임없이 자신의 원래 관념과 습관을 타파해야 하며, 부동한 경지에서 법이 대법제자에게 요구하는 것에 부합되어야 한다.

대법 일을 하면서 다른 항목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매 한가지 관념과 습관은 모두 우리가 정진하는 하나의 벽이다. 예를 들면 대면하여 알리는 진상을잘하지 못할 때, 자신은 평소에 언변이 좋지 않아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하는 이런 관념이, 자신을 가로 막아, 다른 항목을 한다는 핑계를 댄다. 사부님은 사람을 구하는 양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대법제자는 마땅히 열심히 해야 하고 일체 관념을 타파하고 끊임없이 대법에 동화해야 하고 진정으로 사부님이 원하시는 것을 원용해야 하며 결코 자기가 선택하여 해서는 안 된다. 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부님은 우주의 중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셨고 일체를 감당하셨다. 대법제자로서 자신이 있는 경지에서 자신의 일체를 버릴 수 있는가? 전심전력으로 중생을 구도하고 법을 실증할 수 있는가?’ 대답은 아직은 조마조마하다. 지금까지 나는 여전히 자신의 많은 관념을 붙잡고 있다. 여기까지 말하니, ‘과연 관념과 습관을 포기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대법수련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이다. 곤경에 처하면 자신의 관념이 가로막고 있는가를 찾아야 한다. 사부님은 ‘홍음 2-가로막지 못 하리’에서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눈앞에 길은 스스로 열리리라” 말씀 하셨다. 법리가 이렇게 명확한데 자신의 관념을 붙잡고 놓지 않는지? 사부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면 우리는 무엇을 한다. 대법으로 자신의 관념을 바로 잡고 사부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을 원용하는 것이 진정한 대법제자이다.

문장발표 : 2011년 12월 1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14/2505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