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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대법수련으로 박해 당해도 지금껏 후회하지 않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가 대법을 수련해 효과를 본 것을 현지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비록 내가 한 번만 박해당한 것은 아니고, 핍박으로 이혼 당했으며,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도 잃고, 좋은 사업 및 대우를 잃었으며, 진상을 알지 못하는 친구를 잃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대법 수련을 한 것이 내 금생의 가장 정확한 선택이었음을 갈수록 느끼게 됐다.

– 본문 작자

1. 병약한 생명이 다 할 무렵, 법을 얻어 구원되고 안색이 좋아지다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었다. 수많은 질병에 20여년을 시달려 내 전반생은 고생이 막심했다. 가장 엄중한 것은 간 기능이 나쁜 것인데 어떤 때는 간이 부었다. 나중에는 더욱 통증이 심해져 주먹으로 가슴을 받쳐야만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또 임파선 결핵 후유증이 있어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기침이 그치지 않는데 해마다 두 번씩 발작하고, 한 번 기침하면 두 달씩이나 한다. 또 류머티즘으로 1년 내내 몸을 차게 하면 안 됐고 생것과 찬 것을 먹지 못했으며 약을 많이 먹으니 위장이 전부 못쓰게 됐다. 몇 년간 질병의 시달림, 정신이상, 부부 사이의 파탄은 나에게 보통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맛보게 했다. 서서히 나는 비관하고 실망했고 살아갈 자신감을 잃었다. 여러 번 자살하려다 요행히 살아남은 1997년 초, 나는 행운스럽게 파룬따파를 만나게 됐다. 이때부터 나는 구원됐다.

법을 얻은 후, 나는 사부님 요구대로 참답게 법공부를 하고 심성을 제고했으며 연공까지 하니 수련한지 한 달 남짓 되자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예전에는 마르다 못해 뼈만 앙상해 체중이 겨우 55kg 정도여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넘어질 것 같았다. 안색은 누리끼리 한데다가 주름투성이였고 움푹 패어 들어간 눈은 잿빛이었다. 입 주변은 아래로 휘어져 지팡이 모양 같았다. 사람들은 내가 죽음의 변두리에 이르렀다고 했다. 수련 후 얼굴색이 갈수록 좋아지고 말하거나 웃기를 즐겼으며 주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람마다 모두 내가 젊어지고 예뻐졌으며 체질이 좋아졌다고 했다. 내 변화에 이웃, 동료, 친구들이 모두 놀라워하면서 파룬궁은 정말 신기하다고 했다. 어떤 친구들은 이 때문에 대법으로 들어왔다.

2. 먹구름 내리 눌러도 머리 숙이지 않고 명리정(名利情) 버리니 정념이 일어서다

내가 대법을 수련해 효과를 본 것을 현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길지 않았다. 99년 7.20, 중공 장쩌민 깡패 집단은 대법에 죄를 날조해 들씌우고 대법과 사부님을 모욕하고 비방했으며 대법제자를 잔혹하게 박해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암흑과 공포에 직면해 직장과 가족의 압력은 나를 숨도 쉬지 못하게 했다. 그 때 나는 머리가 아주 청성했는바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고 단지 사부님을 바짝 따라 수련을 확고히 끝까지 하는 것뿐이었다. 바로 이렇게 나는 비틀거리면서 사부님을 따라 오늘까지 걸어왔다. 비록 내가 한 번만 박해당한 것이 아니고, 핍박으로 이혼 당했으며,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도 잃고, 좋은 사업 및 대우를 잃었으며, 진상을 알지 못하는 친구를 잃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대법 수련을 한 것이 내 금생의 가장 정확한 선택이었음을 갈수록 느끼게 됐다.

대법과 사부님께서 재난을 당한 1999년 7.20 이후 한 동안은 중공 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가장 어두운 시기인 동시에 대법제자가 기세 높이 법을 수호하고 실증한 가장 성대하고 장중한 세월이었다. 나는 생사를 내려놓고, 명예, 이익, 정(名利情)의 집착을 내려놓았으며, 갖가지 곤란을 극복하면서 법을 실증할 수 있는 매 한 번의 기회도 놓치지 않으면서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했다. 천안문에 가서 현수막을 펼치던 그 날, 나는 혼자서 하늘을 향해, 수많은 중국 사람을 향해, 몇 십 명 외국인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파룬따파는 정법(正法)이다!” 경찰은 나를 막지 않았는데 보안 두 명이 내 현수막을 가로채 갔다. 19일 후 나는 또 천안문 광장에 가서 연공하고 청원했는데 그곳에 척 앉으니 그야말로 정천독존(頂天獨尊) 같았다! 경찰은 나를 현지 공안국으로 끌고 갔지만 나는 절대로 협력하지 않았으므로 그 날 밤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때 대법제자들은 정말로 필사적으로 했고 무엇이든 다 필사적이었다. 2000년 어느 날, 현지 각급 사당 조직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파룬궁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토론했다고 하는데 모두 “파룬궁은 너무 대단하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이혼당하며, 감옥에 갇히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산당은 끝장이다!……”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중공 사당에게 지금까지 머리를 숙인 적이 없었다. 한 경찰이 “처마 밑에서 사람은….”이라고 권했는데 그 뜻인 즉 나에게 사당에게 머리를 숙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알려주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정정당당하며 못할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어찌 머리를 숙일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사람들에게 준 인상은 내내 아주 낙관적이었다.

일련의 절실한 이익을 잃고 생이별을 당하는 고통 속에서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나의 어머니였는데, 내 절실한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나에게 한 시간 남짓 꿇어앉으셨던 일이 있었다. 일반적 도리에 따르면 어머니가 자식에게 꿇어앉으면 자식의 수명이 감소한다고 한다. 어머니를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어머니께 여쭈었다. “그럼 어머니는 꿇어앉으세요. 저의 사부님께 꿇어앉으세요. 예전에 내 몸이 좋지 않아 엄마는 하루 종일 나 때문에 걱정하시느라 잠도 잘 주무시지 못했지만 나를 조금도 구해주지 못하셨죠, 오늘 내가 대법을 수련해 신체가 좋아졌는데 엄마는 나를 지지하여 대법에 공정한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배은망덕한 소인이 되라고 하는군요. 엄마가 이렇게 기왕 꿇어앉으셨으니 사부님께 꿇어앉은 셈 칠게요.” 한 시간 후 어머니는 싱글벙글하면서 일어나셨는데 화를 내지 않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심리적 모순을 알고 있었으며 그녀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나를 탓하지 않으셨다.

이후에 내 결혼 생활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을 보고 어머니는 대성통곡하면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박해당하고 고립무원한 것을 보시고는 늘 묵묵히 눈물을 흘리셨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가슴에 맺혀 병으로 되더니 2004년 끝내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은 나에 대한 자극이 너무도 심해 나는 하루 종일 엎드려 있으면서 눈을 뜨기 싫었다. 그야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그는 그지없이 비통해 하는데, 그야말로 후반생에 마치 그것을 따라가려는 듯하다.”(전법륜) 하지만 끝내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나는 대법제자다! 사당이 나를 어쩌지 못했는데 나 스스로 자신을 훼멸한단 말인가? 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단번에 깨닫게 됐다. 나는 중대한 사명을 지녔다! 나는 분발했고 재빨리 또 다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물결 속으로 뛰어들었다.

3. 마음의 매듭을 겨냥해 진상을 알렸고, 은원(恩怨)을 내려놓고 사람구하기에 다급하다

중생구도 방면에서 많은 수련생에게는 나름의 방법이 있다. 나는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주로는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며 삼퇴 권고를 위주로 했다. 사업의 편리성 및 여가, 휴일, 명절을 이용해 친척과 친구를 방문하거나, 식사 후 공동장소에 가서 일을 처리하는 때거나, 친척, 친구의 경사, 연회 같은데 참가하는 등등 기회를 이용해 식탁에서, 역에서, 산책하면서, 야채를 사고 이발하는 등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다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1) 모든 기회를 틀어쥐고 사람을 구했다. 설을 쇠거나 친척, 친구 집에서 결혼 청첩장이 오면 첫 번째 의념이 나는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얼마를 구할 수 있으면 그만큼 구한다. 여관 종업원, 운전기사, 집을 방문한 가전 수리공, 집안 인테리어를 하러 온 사람 등등 어쨌든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몇 년 전,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자르면서 단번에 11명을 탈퇴시켰다. 특히 어떤 친척, 친구는 한 번에 말해 듣지 않으면 다시 한 번 말해 주었다. 또 손님을 청하는 방식을 채용했는데 연계를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또 사람을 구하기도 했다.

친구를 방문하면서도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에게 두 번 말해 주어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사위가 공안인데 자기에게 “파룬궁은 당을 반대하므로 절대로 파룬궁과 사귀지 말라”고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권해도 듣지 않으니 손님을 청하는 방식으로 청하고 또 다른 친구도 청했는데 곧바로 탈퇴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식탁에서 나는 중공의 사악한 본질 및 각종 운동에서 8천만 무고한 민중을 살해했다는 것과 핑탕(平塘)현의 장자석(藏字石)을 이야기 했고,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박해는 천인공노를 불러왔다는 등등을 이야기 했으며, 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를 성심으로 외우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진상을 알고 모두 탈퇴했다. 사실 나도 경제적 박해를 당했지만 사람을 구하는 일이기만 하면 아까운 게 없었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온 자매가 있었는데 과거에 나에 대해 오해가 있었던지라 10여 년간 나를 본체만체 했다. 나는 이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녀 딸이 출산했다는 말을 듣자 나는 3백 위안(5만 여 원)을 갖고 직접 가 보았는데 법을 실증했을 뿐만 아니라 또 사람을 구했다. 평소에 자신은 생활에서 아껴 쓰지만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할 때는 아주 성의를 다 했는데 가치가 있다고 본다!

2) 매듭을 즉시 찾아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내 사업은 주로 사람과 사귀는 것인데, 사업 가운데서 다양한 연령, 학력 수준에 따라 매듭을 정확히 찾아내 진상을 알려주었다. 하루는 30살이 채 안 된 여성을 만나 진상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런 응대도 없이 표정이 담담해서 듣기만 했다. 내가 그녀 집이 베이징 왕푸징(王府井) 근처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에게 89년 ‘6.4’ 천안문 학살 사건을 얘기해 주면서 중공이 수많은 대학생을 살해하고서도 시인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이러자 대뜸 그녀의 공명을 일으켰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그 때 나는 열 살이 채 안 됐지만 6.4 그날 밤 살인은 너무나 공포적이었어요.” 이 때 그녀는 내가 말한 진상을 믿게 됐고 아주 통쾌하게 삼퇴를 했을 뿐만 아니라 메일 주소를 알려 주면서 나에게 자기에게 자유문 웹사이트 주소를 보내달라고 했다. 둥타이왕(動態網)을 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늘 공원에 가서 거닐곤 한다. 어느 날 공원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는데 표정이 멍한 것이 온 얼굴에 근심과 비관이었다. 나는 다가가 먼저 할머니의 건강 상황과 연세를 물었다. 노인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여든 셋이네. 얼마를 살던 뭔 상관이야, 후유……” 노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곧 그녀와 한담을 하면서 진상을 알릴 매듭을 찾았다. 지금의 고부관계를 말하는데 이르자 노인이 말했다. “지금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뒤바뀌었어. 시어머니가 며느리로 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로 됐단 말일세.” 당시 노인은 며느리에게서 욕을 듣고 속이 울적해 여기에서 울분을 삭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노인은 말했다. “지금 며느리들은 왜 모두 이 모양이지?” 나는 “이 모두는 중공이 각종 운동을 일으키면서 중화민족의 전통 미덕을 말살했기 때문이에요.” 라고 말했다. 하늘엔 천리가 있고 사람에게는 인륜(人倫)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 중공은 각종 운동을 벌이면서 사람들이 무정하고 의롭지 못하게 만들었다. 중공은 무신론을 벌려 사람들이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천리를 믿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지금 젊은이들은 선악에 보응이 따른다는 것을 아예 믿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됐는데 죄는 중공 사당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룬궁은 사람에게 ‘진선인(眞善忍)’을 가르쳐 좋은 사람이 되게 하고 노인을 존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남을 선하게 대하는데 중공은 오히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할머니는 “그러게 말이지”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할머니의 며느리는 이런 도리를 모르고 있어요. 그녀가 할머니를 욕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이러면 그녀에게도 좋지 않아요. 할머니는 참으세요.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자 할머니는 정신을 차리면서 말했다. “그래?” 이어서 나는 노인에게 삼퇴를 권했는데 노인은 49년 전에 사당 공청단 조직에 가입했다면서 기쁘게 탈퇴했다. 나는 노인에게 진상 호신부를 드리면서 어려움과 억울함에 부딪혔을 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法輪大法好,眞善忍好-파룬따파는 좋다, 진선인은 좋다)’를 외우면 마음이 넓어지고, 며느리도 당신에 대한 태도를 고칠지도 모른다고 알려주었다. 노인은 몹시 기뻐하면서 내 마음이 좋다며 자꾸만 칭찬했다. 나는 나의 사부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셨다고 알려주었다.

하루는 저녁 식사 후 나가서 거닐면서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려주자고 생각했다. 과연 멀리 안 가서 작업복을 입은 20여살 어린 처녀가 길가 난간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다가가 물었다. “아가씨 뭘 하고 있나요?” 그녀가 머리를 드는 순간 주르륵 하고 눈물이 하얀 얼굴에 굴러 떨어졌다. 그녀에게 어려운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얼른 다가가 이유를 물으며 아울러 도와줄 의향을 밝혔다. 그녀는 원래 네이멍구(內蒙古) 사람인데 몇 백리 떨어진 곳에서 이곳으로 돈 벌러 온 것이었다. 그녀는 집 생각이 나고 어려운 일에 부딪혔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부닥친 어려움에 대해 더 깊이 묻지 않고 우선 그녀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진심으로 외우면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믿는 듯 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에게 간단히 진상을 알려주고 그녀를 권고해 단, 대에서 퇴출하게 한 후 호신부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 호신부를 지니고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 위 두 마디를 외우면 복을 받을 겁니다.” 호신부를 받아 쥔 처녀는 대번에 얼굴이 환해지더니 연신 고맙다고 했다. 작별할 때 보니 그녀 얼굴에는 눈물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3) 개인 은원(恩怨)을 버리고 사람을 구했다. 시부모님은 내가 불법 노동교양을 당하고 있을 때 여기 저기 다니면서 말했다. “돌아오면 이혼을 해야지. 그녀를 버려야지.” 과연 내가 박해로 고립무원이 된 상황에서 시부모님은 남편을 부추겨 나와 이혼하게 했다. 본래 우리는 화목한 부부였다. 나는 신체가 좋지 못해 사업에 대한 추구를 버리고 전력을 다해 그의 사업에 성과가 있도록 지지해 주었다. 아내는 남편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일생의 추구를 포기했던 것이다. 그 후 그의 사업에 몇 번이나 닥친 위기, 한 차례 큰 좌절,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나는 내 지혜로 다 기울어져 가는 형세를 끌어 올려 그에게 비로소 오늘과 같은 승진기회가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내가 박해 받아 그의 승진에 영향이 있다는 이유로 내가 가장 그를 필요로 할 때 나를 버렸다. 하지만 뜻밖에도 예전에 나를 버렸던 시어머니가 임종할 때 나를 몹시 보고 싶다고 할 줄이야. 듣고 난 나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법공부 가운데서 나는 자신의 억울해 하는 마음을 발견했다. 반년이나 질질 끌다가 노인이 임종할 즈음에야 겨우 보러 갔다. 그 때 시어머니는 이미 말을 못하고 눈도 크게 뜨지 못했으나 정신만은 맑았다. 노인이 내 손을 잡고 놓지 않는 가련한 모습을 보면서 나도 눈물을 흘렸다. 나는 반복적으로 노인에게 말했다. “속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진심으로 외우고, 대법 사부님께 어머님을 구해달라고 비세요.” 노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노인은 이틀간 정신이 맑더니 생명이 두 달 남짓 연장됐다.

그 날 병원에서 내 마음은 맑은 호수처럼 아무런 원망도 없었고 다만 사람을 구할 생각뿐이었다. 병원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기회를 보아 그의 가족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시누이와 동서는 우리 집을 해체할 때 ‘공헌’이 가장 컸다. 하지만 그 시각 내 머릿속에는 그 어떤 원망도 없었다. 내가 그녀 두 사람에게 삼퇴를 권할 때 그녀들은 모두 나를 아주 믿었다. 특히 그 동서는 내가 “예전의 원한은 다 지나갔어요. 나는 당신들에게 모두 무사하고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라요. 사당에서 탈퇴하세요”하고 말했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연거푸 머리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탈퇴하겠어요.” 그녀들의 무언의 감동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은 무척 평온했고 기뻤다.

십여 년 동안, 개인 수련도,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도 모두 비바람 속에서 넘어지고 부딪히면서 어렵게 지나 왔는데 그 속에는 기쁨도 있고 교훈도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 가호 속에서 나는 낙관적으로 걸어왔다. 쓰고 싶은 말은 많고 많지만 몇 가지만 골라 사부님께 보고할 뿐이다. 이 한 길을 걸어옴에 얼마나 어려운 일에 부딪혔다 할지라도 나는 후회한 적이 없다. 수많은 고난의 시련을 겪으면서 나는 갈수록 성숙됐으며 집착심은 갈수록 적어졌다. 사실 내가 감당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모두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해 감당하신 것인데 나는 사부님 구도 은혜에 감사드릴 방법이 없다.

자신은 법공부가 부족해 어떤 법리는 깨달음이 똑똑하지 못하다. 그래서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 아직도 유감이 있는데 구해야 할 사람을 제때에 구하지 못했다. 다행히 사존의 신경문 ‘무엇이 조사정법인가’,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가 제때에 나를 독촉해 법공부와 사람 구하기에 더더욱 중시하게 해서 일부 누락을 메웠다.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으로서 나로 하여금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전법륜)를 깨닫게 됐다. 법리는 비할 데 없이 신기하다. 사부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린다.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수련생께서 많이 지적해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허스(合十)하여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밍후이왕 제8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1년 11월 11일
문장분류: 대륙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11/2489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