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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용맹정진 조사정법(3)

글/ 광둥성 정련(淨蓮)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놀라움만 있고 위험은 없다

99년 ‘7.20’ 이후 장기간 베이징에 머물러 있었다. 매일 천안문에 가서 누가 연공하면 함께 참가했다. 사람이 많으면 마치 한 정체인 것 같았다.

12월에 나와 한 수련생이 천안문광장에 녹음기를 갖고 가서 연공했는데 매우 장엄했다.

베이징에서 10여 차례 붙잡혔는데 그 때마다 도망쳐 나왔다. 한번은 붙잡힐 때 많은 사람을 가두어 놓은 곳에 있었는데 문 앞에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나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경찰만 지켜보았다. 문은 안에서 열어야지 밖에서 열 수 없었다. 나는 몰래 문을 열고 도망쳐 나왔다. 어떤 대법제자는 잠을 자지 않았는데 나를 따라 나오다 경찰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한번은 경찰이 나를 붙잡아 경찰이 앞장섰다. 앞에 택시가 있어 택시를 타고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치려 하는데 빨리 가자고 했다. 때로는 붙잡혔을 때 다시 놔줄 때도 있었다. 한번은 경찰이 나를 선전으로 압송하려 했다. 그는 누에콩을 튀긴 것을 4근을 사서 나보고 들고 가라고 했다. 가는 길에 비행기장으로 가는 표시를 보자 사부님께서 나에게 도망치라고 알려주시는 것 같아 그 큰 보따리를 갖고 도망쳤다.

단식

2000년 내가 베이징에서 붙잡히자 그들은 딸에게 나를 데리러 가라고 했다. 하지만 딸은 오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단식을 하라고 점화하셨다. 그때 불법적으로 붙잡힌 대법제자가 100여명 되는데 모두 단식했다. 그때 도시락을 하나 받았는데 심성이 그다지 높지 않아 사부님께 “사부님, 밥을 먹지 않으면 아까워요. 먹고 단식할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일주일 간 단식했는데 물도 마시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는데 몸이 매우 가벼웠다. 나는 다른 수련생에게도 단식을 권했다.

마지막에 각 성(省)에서 자기 성 사람을 데려갔다. 경찰은 나를 광저우로 가라고 했다. 그는 내가 선전의 집을 몇 십만 위안에 팔고 베이징에 와서 지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경찰은 나를 압송해 비행기를 타고 광저우로 돌아갔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단식하지 말라고 점화해 주셨다. 나는 사부님께 “단식을 하면 얼마나 좋은지요. 이후에도 밥을 먹지 않으면 양식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그날 연공을 할 때 손이 힘들어 들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든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내려놓지 않았다. “사부님, 제가 심성방면에서 수련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단식문제를 깨달았다. “사부님, 저 단식을 하지 않을래요. 우리 파룬따파는 단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손은 금방 가벼워졌다. 나는 사부님께 언제 단식할 수 있느냐고 묻자 대답이 없으셨다. 생각해 보니 비행기에 밥이 있으니 단식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때 사부님께서 내 머리를 누르자 나는 깨달았다.

고생을 구하다

광저우에 오자 나는 석방됐다. 나는 도처로 다니며 수련생들과 교류했다. 2000년 초, 지난(暨南)대학 교수 가오센민(高獻民)이 박해당해 사망했다. 나는 놀랐다. 가오센민은 키가 180cm나 되어 웅장했다. 수련생은 그가 단식하다가 음식물 주입 박해를 당해 죽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은 그렇게 많은 고생을 했는데 나는 별로 고생을 하지 않았구나. 나는 이번에 꼭 고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감옥에 들어가 고생을 하면 대법을 수호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다른 공간에서 사부님께서도 고생을 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 나는 혼자서 소업을 해야지 사부님께 부담을 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는 법에 어긋난 것이다. 그 결과 스스로 마난을 불러왔다.

사부님께서 발표한 ‘심자명’

‘7.20’ 이후 1년 남짓 사부님의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가짜 경문이 떠돌아 다녔다. 2000년 5월 22일 사부님께서는 박해 후 처음으로 신경문 ‘심자명’을 발표하셨다. 나는 ‘심자명’을 보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한 수련생 집에 컴퓨터가 있어 밍후이왕에 들어가 보니 진짜였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사부님을 불경하게 대했습니다. 그러면 또 떨어져 내려가겠지요.”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한 폭의 그림을 보여주셨다.

사부님께서 크나큰 배에 계셨는데 우리 제자는 모두 한 사람마다 배 한 척이 있었다. 줄지어 멀리 멀리 있었다. 어떤 배가 뒤떨어져 있고 사람이 배에서 떨어졌다. 그 파도는 진짜 사부님 말씀처럼 ‘배산도해(排山搗海)’였다. 사부님께서 “꽉 붙잡아!”라고 말씀하셨다. 이후에 한 사람이 멀리 멀리 떨어졌다. “사부님, 그가 멀리 떨어졌습니다.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자비로워 끝에 갈고리가 있는 긴 끈으로 그를 끌어오셨다. 나는 그들을 보며 누가 떨어지려 하면 붙잡아 주었다. 바람은 매우 강했다.

납치를 당하다

2000년 여름, 기차표를 사서 베이징에 고생을 하러 가려다가 광저우 기차역에서 붙잡혔다. 그들은 내가 파룬궁을 하는 사람이라며 속인과 다르다고 했다.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가방을 뒤지더니 전화부를 보고 철도부 자녀임을 알았다. 그들은 철도 공안이기에 나를 붙잡기가 어렵고 파룬궁도 다 나쁜 사람이 아니며 위에서 잡으라고 했기에 나에게 그냥 가라고 했다. 나는 가지 않았다. 전화부에서 그들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데려가려 했는데 친구가 두려워 오지 않았다. 전화를 어머니에게 걸어 데려가라고 했다. 밤이 깊어서 어머니께서는 이튿날에 오셨다. 사부님께서 내가 고생을 하고 싶으니 방법이 없어 고생하게 내버려두셨다.

나는 광저우역에서 밤새 갇혔다. 다음 날 문을 열어 “가, 가라고!”해도 나는 가지 않았다. 철도 공안은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가지 않았다. 그들은 “선전 공안이 당신을 잡아가라고 하면 어때?” “좋아요.”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차마 당신이 가서 고생하는 것을 못 보겠어.” “어떻게 된 거야, 도처로 다니며 말썽을 피우니? 이번에 진짜로 고생을 한번 해봐.”

선전시 뤄후(羅湖) 간수소

나는 뤄후 간수소에 갇혔다. 나는 노역을 하지 않았다. 연공을 하려고 하면 못하게 하고 매달아 놓았다. 그들은 모래밭에서 끌어 내 엉덩이를 짓무르게 하려 했다. 하지만 10명이 끌려가 엉덩이가 모두 짓물렀는데 나는 바지가 좀 찢어지고 엉덩이는 괜찮았다. 감옥은 “당신처럼 짓무르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라고 말하며 좀 두려워했다.

연공하고 법공부하지 못하게 하면 나는 단식을 했다. 음식물을 주입 당해 이도 흔들거렸다. 그때는 때리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이후에 감옥두목이 당신은 왜 그렇게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며 파룬궁을 하는 사람은 신기하다고 했다. 이후에 “연공해, 모두 다 연공해”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이 국면을 열어 놓았다.

나는 단식을 멈췄다. 다른 사람이 고구마칩을 먹기에 사부님께 “저도 먹을래요.”하자 사부님께서는 “음”하고 대답하셨다. 나는 그에게 “고구마칩을 주면 안 돼요?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에게 고구마칩을 주었으며 먹으니 참 맛있었다. “사부님, 제 이가 흔들거리지 않아요.”

겁난

뤄후 간수소에 있는 기간에 다른 공간의 더욱 큰 겁난을 겪었다. 집착심을 버리지 못해 수련이 매우 힘들었다. 혼자서 고생을 구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그때 나에게 이 관을 지나면 더욱 큰 관을 넘어야 한다고 점화해 주셨다. 자신도 이 난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다.

매우 큰 고급생명이 나를 통제하고 내 기억력을 다 지워버리고 나를 압박해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이 말해도 듣지 못하고 그 고급생명이 난잡한 물건을 나에게 밀어 넣었다. 내가 ‘견정(堅定)’ 두 글자를 가장 크게 확대하자 그는 단번에 지워버렸다. 내가 법을 외우고 무엇을 외워도 다 지워버렸다. 내가 윗 단락을 외우면 아래 단락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큰소리로 ‘홍음’을 읽고 수련생에게 큰소리로 법을 읽게 하자 그 고급생명은 그렇게 심하게 나를 교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아 그가 말하는 것을 들었고 그가 법에 있지 않는 것은 법으로 반박했다. 그러자 나는 그리 흐리멍덩하지 않게 됐다. 3일째 그는 말을 하지 않고 그의 공으로 나를 압박했는데 검은 물질로 나를 점점 억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층층의 검은 물질을 내가 어떻게 타파하는지 지켜보았다. 나는 꼭 지나가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사부님께 꼭 지나가고 싶다고 해서 끝내 이 관을 넘었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데 내가 ‘전법륜’이라고 말하자 그 생명은 “아!”소리를 지르며 두려워 도망갔다. 그리하여 나는 끊임없이 ‘전법륜’을 하루 종일 읽었다. 그리하여 많은 파룬이 돌며 그 검은 것을 지워버렸다. 그 생명도 사라졌다.

제1차 불법 노동교양

나는 단독 감금됐다. 본래 나를 불법교양을 시키지 않고 놔주려 했다. 하지만 감옥에 많은 대법제자가 있다고 듣자 나는 노동교양을 하기로 했다. 오전에 그렇게 말하자 오후에 나는 불법교양 2년을 받았다.

2000년 여름, 나는 포산(佛山)시 싼수이(三水) 광둥성 여성교양소에 납치당했다. 나는 ‘전법륜’ 책 한 권을 주머니에 넣고 들어갔다. 혼자 독방에 감금됐다. 나는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이후에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어 내 손목은 수갑에 채워졌으며 책은 빼앗겼다.

당시 사오(邪悟)한 자가 와서 이것저것 말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많이 담당하시는데 당신이 수련해서 뭐하나요? 이렇게 수련하면 우리는 사부님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요?” 이렇게 말하자 나는 즉시 눈물을 흘렸다. ‘그렇구나! 사부님께서 모두 담당하신다. 때려도 아프지 않고 악인이 전기봉으로 내 머리를 때려도 아프지 않으며 때려서 소리가 크게 나도 아프지 않고 붓지도 않는데 사부님께서 아프지 않으신가?’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사부님 저는 진짜로 수련하지 않겠습니다. 자신이 이 생의 업을 다 갚겠습니다. 이렇게 수련해야만 나의 위덕이 있습니다.”

내가 수련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사부님께서는 매우 슬퍼하셨다. 나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사부님, 저는 정말로 사부님께서 그렇게 많이 담당하지 않게 할게요.” 나의 명백한 일면이 그냥 울고 또 울었다. 누구를 보아도 눈물을 흘려 그들은 귀찮아했다. 경찰은 “당신 수련해. 이렇게 어떻게 살 수 있어. 24시간 울기만 하고 잠도 자지 않고 누구를 보아도 말을 하지 않고 울고…..”

이후에 나는 사부님께 “사부님, 나는 아직 수련 할래요.” 사부님께서는 그렇게 슬퍼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도 나에게 수련하라고 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아무런 표정도 없으셨다.

내가 수련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정말로 사부님 마음에 상처를 드린 것 같았다. 사부님 마음은 내가 상처를 입혀 찢어졌다.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다. 1999년 박해 후 많은 수련생이 수련을 하지 않았을 때 사부님께서 피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계속) (밍후이왕 제8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1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11/-3–2488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