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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순수한 선(善)으로 수련생을 대하자

– 모 수련생에게 쓴 한 통의 편지

[밍후이왕] 필자주: 이것은 모 지방 한 협조인 수련생에게 쓴 편지이다. 본 후 반응이 매우 좋아 수련생들을 일깨워 주는 일정한 작용을 일으켰다. 편지에서 언급한 A수련생은 법에 대조하고 안으로 찾은 후 이미 자신을 귀정했다고 한다. 편지에서 언급한 문제가 확실히 일부 지역에 진실하게 존재하는 것을 고려했기에, 정체를 원용하기 위해 우리는 편지를 첨삭한 후 밍후이왕에 보냈다. 희망하건데 수련생에게 계발과 참고가 있기를 바라며 부족한 곳은 자비로 시정해주길 바란다.

모모수련생에게

재삼 사색하고 수련생을 책임지기 위해 그래도 당신에게 이 편지를 썼다.

이 며칠간의 접촉으로 나는 단지 내가 본 당신들의 정황을 말했고, 약간의 심성상 문제를 당신과 교류했는데, 문제를 보면 반드시 말해야겠다. 이것은 대법제자 사이의 책임이다. 목적은 여러분들이 정법의 길에서 서로 돕고 서로 이끌어 공동으로 안정되게 잘 걷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이것도 사부님께서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개인인식을 참고로 제공하니 부당한 곳은 자비롭게 양해를 구한다.

1. ‘점오상태’에 처한 수련생을 정확히 대하자

이 며칠간 당신과 함께 있는 A수련생은 비교적 여러 번 자신이 ‘점오상태’에 처해 있고 쉽게 앞당겨 일부 다른 공간에서 발생한 일을 ‘본다’고 언급했다. 이 문제에서 나는 사부님과 대법이 우리에게 열어준 이 방면의 능력을 바르게 쓰면 당연히 좋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잘 파악하는가는 수련생 자신이 법으로 대조해 가늠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이 방면에 능력 있는 수련생 및 그 표현을 대하든지 우리가 수련해야 할 요소가 그 중에 꼭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한 수련생을 가늠하는 것은 더욱 마땅히 심성상에서, 법이 우리에 대한 요구에서 보아야 하며 그 공능이거나 혹은 어떤 점오상태에 처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 사람이 많은 경우 이것으로 자신이 행하고 말한 것이 정확하다고 증명한다면 다른 공간의 사악은 교란의 이유를 찾게 되고 사악은 이 방면에 집착하는 수련인 앞에서 마음에 드는 각종 가상을 매우 쉽게 연화할 수 있다.

그러면 수련인은 ‘본’ 일체의 진위를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 습관적으로 무엇을 ‘본’ 것으로 일체를 가늠할 때, 항상 닦아야 하는 것을 쉽게 잊고 잘난 체하기 매우 쉬운데 법을 벗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매우 쉽게 자심생마의 기로로 걸어갈 수 있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그렇게 많은 소위 ‘무엇이나 다 볼 수 있다’란 사람 중에 지금은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적지 않은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들이 매우 큰 굽은 길을 걷지 않았는가?

나는 수련생에게 주의를 주고 싶다. 무엇 때문에 늘 이러한 사람이 우리 앞에 나타나고 이러한 표현이 있는가? 우리 내심에 ‘열려서 수련’하는 것과 ‘볼 수 있다’에 대해, 혹은 모종 능력이 특별한 수련생에 대해 자신이 감지하기 어려운 추구와 숭배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우리는 이지적이고 냉정하게 이 방면 상태 수련생을 대해야 하고, 숭배하지 말고 추구하지 않으며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진정으로 수련생에게 좋은 것으로, 수련생의 집착을 일으키지 않고 불필요한 마난을 조성하지 않으며 사악에게 수련생을 교란 혹은 박해를 할 구실을 주지 않게 된다.

2. ‘큰 방향’에 관한 문제

우리가 떠나기 전, B수련생은 A수련생에게 매우 많은 심성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 지적하려고 했는데 아마 당신은 수련생이 상처를 입을까 봐 A수련생의 ‘큰 방향’은 문제가 없다고 말해 B수련생이 계속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큰 방향’ 문제에 관해 나는 아래 인식을 제공해 당신이 참고하기를 바란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대법제자로 말하면, 당신들의 수련이 제일위인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이 잘 수련하지 못하면,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완성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만약 당신이 잘 수련하지 못한다면, 그럼 사람을 구도하는 힘도 그처럼 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수련한 것이 좀 더 부족하다면, 그럼 문제를 보고 문제를 생각하는 방식마저도 모두 속인의 사상, 속인의 생각을 사용할 텐데, 그럼 더욱 엉망이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이 몇 년 동안, 우리는 일부 표현이 ‘확고’하고 ‘온 몸과 마음으로 일을 하는’ 수련생들이 매우 큰 마난과 장기간의 박해를 당한 것을 보았다. 이것도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적지 않은 수련생에게 매우 큰 곤혹을 주었고 확고할수록 박해를 당하고 일을 많이 할수록 박해를 당한다는 착각을 조성했는데 정말 이러한가?

자세히 생각해 보라. 우리는 일을 하는 것을 수련이라고 간주하거나 일을 많이 하는 것을 정진으로 간주하지 않았는지? 법을 실증하는 일에서 우리는 일을 배우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는가? 우리는 시시각각 법으로 대조해 자신을 착실히 수련했는가? 모순 중에서 심성관을 넘을 때, 우리는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면에서 ‘큰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귀한 수련 기연을 넘겨버리고 낭비하지 않았는가? 만약 우리가 중요한 일에서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으로 덮어버리거나, 그 본질적인 물건이 줄곧 충돌하거나 촉동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말하기만 하면 폭발하거나, 수련생 의견을 듣지 않는 이것은 근본적으로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며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위험한 것이다. 사실 이것이 바로 사악이 패물(敗物)로 필사적으로 우리 수련생의 본성과 진아(眞我)를 단절하고 그를 이지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다. 때문에 반드시 이 방면에서 싫증내지 않고 수련생을 일깨워주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그를 위한 것이다.

내가 기억하건대 우리가 이전에 보았던 문제가 생겼던 대부분 수련생은 박해를 당하기 전 모두 이런 종류와 같은 상태가 있었고, 당시 표현이 어떻든지 어떻게 말하든지 막론하고 당신이 기억해보라. 이러하지 않았는가? 적지 않은 수련생이 매우 많은 일을 했지만 오히려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며 심성이 제고되지 않았고 결국 난관이 쌓여 얼마나 가슴 아픈 유감과 손실을 조성했는가.

여러 해 동안 우리는 강렬한 쟁투심, 원망심, 세인과 수련생을 대할 때 선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많은 수련생들이 장기적으로 박해에 처해있는 마난 중의 주요 원인은 수련생 사이에 선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또 사악이 틈을 타 모순을 조성하고 우리 정체를 단절하는 하나의 매우 큰 구실이고 이 때문에 조성된 엄중한 박해와 막대한 손실을 여러 해 우리는 각지에서 보지 않았던가?

이렇게 여러 해 간고한 세월을 지나오면서 나는 많은 수련생들이 이미 일찍이 수련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러 사람들이 확실히 이 방면에서 성숙했고 우리는 법을 실증하는 각종 일을 하는 중에 수련과 심성의 제고를 홀시할 수 없다. 나는 만약 우리가 이 각종 일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매우 많은 강렬한 사람 마음을 품고 하면, 첫째는 위덕이 없고, 두 번째는 오히려 주관 염원과 상반되는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교훈은 이미 매우 많고 매우 많다. 무엇이 비로소 우리의 ‘큰 방향’인가? 나는 바로 수련이고, 바로 우주 특성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 전부 정법수련 과정을 관통하는데 이 방면에서 우리는 정말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되며 홀시해서는 안 된다.

3. 수련생의 잘못을 정확히 대하고 가장 순수한 선으로 수련생을 도와주자

C수련생을 대하는 문제에서 당신이 정체를 책임지는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었고, 당신들이 수련생 앞에서 종종 그의 불량행위를 폭로하는 것이 여러 사람들이 정념으로 그녀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 주관상 좋은 염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구체적인 방법에서 적당했는가? 나는 A수련생이 말한 C수련생의 일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지만 우리는 정말 법을 얻은 한 생명을 사악으로 대해서는 안 되며, 만약 우리가 이렇게 대면적으로 그를 ‘폭로’하고 그를 ‘잡아당겨’ 끄집어내면 여러 사람들이 그를 경계하게 된다. 주관상에서 우리는 그가 더욱 많은 잘못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생각했지만 객관상에서는 우리는 아마도 이 생명이 되돌아오려는 길을 가로막고, 심지어 무의식 간에 정체에 간격을 조성했다. 많은 수련생들이 A수련생의 논조를 반대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또 적지 않은 수련생은 승인했고 그러면 이 승인과 승인하지 않은 두 종류의 수련생이 무의식 간에 두 파(派)를 형성하지 않겠는가? 2007년 모 지방의 교훈(前車之鑒)을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는가? (2007년 모 지방에서 표현이 좋지 않은 한 수련생을 특무로 간주해, 어떻게 이 수련생을 대해야 하는 문제에서 수련생들이 두 가지 의견을 견지해 결국 수련생들은 무의식 간에 두 패로 나뉘어 거대한 간격을 형성했다. 결국 사악이 빈틈을 타 엄중한 박해가 발생했고 손실이 막대했다) 뿐만 아니라 만약 이 법을 얻은 생명이 이로 인해서 밀려나가고 수련생의 방해로 다시 돌아올 힘이 없어 천만년의 기대와 그녀가 대표한 무량한 중생이 한 순간에 훼손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한 것인가?

구세력은 무엇 때문에 대법제자를 감히 박해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일부 대법제자가 잘하지 못하고 각종 옳지 않은 일을 했으며 수련인과 같지 않자 그것들은 용서할 수 없다고 간주한다. 이러한 대법제자를 대립면으로 밀어내고 그들을 이지적이지 못하고 많은 나쁜 일을 하게 하는데, 결국 구세력은 더욱 약점을 찾아 이러한 대법제자를 파멸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법제자의 이지적이지 못한 표현은 어쩌면 바로 구세력 자체가 오래된 역사에서 알맞게 배치한 것이 아닌가? 단지 오늘 그들이 무력하게 부정할 따름이다. 우리는 절대로 사악이 우리 수련생을 파멸시키는 일체 배치를 승인해서는 안 된다. 그런 소위 번지르르한 이유를 찾아 대법제자를 망가뜨리는 구세력의 결말은 무엇인가? 우리는 매우 똑똑하지 않은가?

나는 법공부를 할 때 인식했다. 사부님께서는 어떤 한 대법제자를 떨어뜨리려고 하지 않으며, 오직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있으면 그에게 기회를 주려하고 심지어 그런 박해에 참여한 악인이라도 모두 다시 그에게 기회를 주려하는데 하물며 법을 얻은 생명임에랴?

나는 자비롭게 수련생을 대하는 면에서 우리의 인식이 일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비는 결코 사악을 방임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반드시 수련생과 사악을 구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수련생에 대해 자비할 수 없으며 사람의 각도에서 보아도 그런 좋지 않은 일은 모두 그녀가 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을 용서하기 쉽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집착에 집착하는 것은 사람마음이며 사람마음은 영원히 신의 관용과 자비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지금 가장 마땅한 것은 C수련생이 본인을 찾는 것으로, 그것이야말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무량한 대궁의 왕을 도와주는데 입각해, 주의 자비와 책임으로 그녀를 각성시키고 청성하게 해야 한다. 당신이 이전에 ‘6.10’의 악인도 모두 그렇게 자비롭게 구한 것이 생각난다. 나는 잘못을 한 수련생을 우리가 그렇게 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강철을 녹이는 것 같은 자비’처럼, 그녀가 표면적으로 당신에 대해 태도가 어떠하든지 간에 진정한 자비 앞에서 일체 그녀를 박해하는 사악은 모두 해체될 것이다.

당신은 해낼 수 있다. 우리 여러 사람들이 무조건 당신들과 C수련생을 가지할 것이며, 나는 이 며칠 동안 줄곧 이렇게 발정념을 했고 수련생을 단절하는 모든 사악을 깨끗이 제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와준다는 것을 잊지 말라.

가장 순수한 선으로 수련생을 대하고 정면적으로 정체를 원용하고 도와주며 수련생을 잘 이끌고 사부님께서 당신을 여러 해 동안 배치한 이 배역에서 단련한 능력을 발휘하라. 미래의 무량한 위덕은 당신이 오늘날 실현한 당초 수련생과 중생을 각성시키겠다는 서약에서 오며, 수련생 간에는 정이 없고 존재하는 것은 오직 각 대궁의 왕과 주가 대법 중에서 맺은 위대한 성연(聖緣)과 서로간의 자비와 책임일 뿐이다.

허스(合十)

문장발표: 2011년 1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21/2496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