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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시시각각 법리로 대조해 수련초기처럼 하자

글/ 후베이(湖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2년 초 나는 도시세뇌반에 납치당해 유혹을 받은 후 전향됐으나 며칠 지나 철저히 깨달아 나온 후 다시 베이징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실패 원인을 깊이 생각하니 장기간 쟁투심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다시 전면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종합했다. 그때부터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어떠한 비평 의견도 들을 수 있고 일에 부딪히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으며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자신이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지 찾고 교만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으며 유유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서 겸허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습관으로 양성했다.-본문 작자

1. 법을 얻어 심성을 수련하다

1996년 어느 날 오후, 퇴근 준비를 하면서 우연히 동료 책상 위에 놓인 ‘전법륜(권2)’를 펼쳐 보았다. 몇 줄 글자를 보았는데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이 짐작할 수 없는 이치를 이와 같이 투철하고 분명하며 간단히 말할 수 있을까?! 다 본 후 감히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너무 좋아서 차마 손에서 떼지 못했다. 이튿날 바로 ‘전법륜’을 사다가 당일 온 정신을 집중해 다 보았는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완전히 감동 속에 푹 젖었다.

나는 책 속 사례를 매우 많이 경험했으며 마치 구절구절 자신을 겨냥하는 것 같아 애타게 갈망하듯 보았고 이전의 고통과 위압감을 단번에 날려 보내 심신이 후련하고 경지가 승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한(漢)나라의 장량(張良)이 글자가 없는 천서(天書)를 얻은 것을 부러워했는데 오늘날 글자가 있는 천서를 보았으니 행운이 크고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기공 열조 중에서 나는 매우 많은 굽은 길을 걸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즉시 파룬궁을 배워 줄곧 오늘까지 처음처럼 지속하고 있다.

나는 닫혀져 수련하는 제자이며 박해가 시작하기 전에 기타 대륙 수련생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차분한 법공부 환경을 유지했다. 그 당시는 개인 법공부든지 단체 법공부든지 막론하고 참답게 틀어쥐면 됐고 책속 법리대로 하나하나씩 관을 넘었으며 법공부하여 고생을 겪어야함을 알았고 신체상 소업이거나 사람과의 심성 마찰을 막론하고 모두 사부님의 안배대로 걸었다. 막 법을 얻은 그 해 넘어져서 대퇴골에 금이 가서 아이들은 나를 강제로 병원에 보냈으나 나는 퇴원을 요구했으며 이빨을 악물고 연공을 견지해 1개월 후 정상이 됐다. 지난 날 연공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부인은 욕을 한바탕 퍼부었는데 실제적으로 소업이었다. 가부좌하면 심한 고통을 느꼈는데 날마다 견뎌냈으며 모순 중에서 부단히 명예, 이익, 정을 버리고 법공부 중에서 인식이 매우 이성적이 됐으며 천천히 담담해 지고 똑똑히 알게 됐다.

2.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하다

중공이 박해를 시작한 후 예전의 차분함은 사라지고 늘 공포에 떨게 됐다. 많은 사람은 우리를 다른 눈으로 보며 직장에서는 비방하고 감시하기 시작했다. 부인은 내가 옥살이하고 직장을 잃을까 봐 늘 나와 싸웠는데 칼을 쓰고 몽둥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한 밤중에 집에서 욕하는 소리와 증오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아 법공부 역시 쉽지 않았다. 우리집과 직장 기숙사는 벽 하나를 사이 두고 있어서 직원들도 매우 많은 피해를 받았다. 그들은 불의에 대해 자주 분노를 느껴 낮에 나를 보면 말한다. “어제도 당신 부인이 당신을 오랫동안 욕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도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이런 부인을 당신은 잘도 참네요.”

부인은 죽음으로 협박하면서 법공부를 제지했는데 한 번은 쇼크에 빠져 병원으로 응급조치를 하러 갔다. 나는 법공부 중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법리를 알았기에 의연히 법공부를 견지해 이 일은 아주 빨리 잠잠해 졌다. 그 때 사업은 그래도 느슨해 나로 하여금 대량의 법공부 시간을 주어 기초를 매우 착실하게 닦을 수 있었다. 당시 발표된 ‘원만으로 나가다’ 경문을 나는 연속 3번 본 후 어떠한 두려운 마음도 없어지고 잡념도 없어 즉시 베이징으로 법을 실증하러 갔다. 이튿날 ‘전법륜’과 3천 위안의 돈을 갖고 다른 수련생과 같이 가려 했지만 그 수련생이 오지 못해 나는 혼자 자신감을 갖고 천안문을 향해 법을 수호하러 갔다.

도중에 기차와 자동차에서 단속이 매우 엄해 매우 많은 수련생이 저지당했다. 기차에서 나는 예전대로 ‘전법륜’을 공부했으며 외부의 시끌벅적함도 상관하지 않았다. 경찰도 나를 상관하지 않았으며 마치 나를 못 본 것처럼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내 신변에 계신 것 같았는데 이로써 대법의 초상(超常)적임을 실증했다. 나는 내내 막힘없이 천안문 부근 여관까지 도달해 먼저 돈을 저축하고 숙박을 마련했으며 천안문 광장에 가서 고향 수련생이 누가 왔는지 찾아보고 그 다음날 광장에 가서 연공하려 준비했다. 나는 숙박업소로 돌아와 참답게 법공부를 했다. 나와 함께 숙박한 지린(吉林)성 출신 젊은이는 기계를 사러 온 속인이었는데 그는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나는 놀라서 온 밤 자지 못했습니다. 이 며칠 밤낮 없이 파룬궁을 엄밀히 조사하는데 당신은 담이 얼마나 커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앞에서 파룬궁 책을 읽죠?” 나는 듣고 매우 평온한 감을 느꼈으며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느꼈다.

이튿날 아침 일찍 계획대로 천안문 광장에서 연공하다 사복경찰에게 잡혀 천안문 파출소에 보내졌다. 경찰차에서 사복경찰은 겸손하게 나와 악수했다. 이름을 말하지 않는 수련생은 모두 큰 철제 난간에 가두었고 공안부 사람이 와서 사진을 찍을 때 전체 수련생들은 모두 ‘홍음’을 암기하고 단체로 두정포륜(頭頂抱輪)을 하며 서로 격려하면서 말했다. “걸어 나온 후 온몸이 가뿐한데 역시 걸어 나오는 것이 옳았습니다!” 날씨는 더워서 경찰을 견딜 수 없게 했으나 대법제자는 빼곡히 붙어있어도,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무더운 느낌도 없었는데 경찰은 줄곧 불가사의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어찌 알랴, 대법제자가 집거한 장은 강대한 에너지장인 것을!

1시간 후 경찰은 나와 다른 몇 수련생을 불러서 바깥에서 기다리게 했다. 출퇴근시 사람을 교대할 때 새로 온 경찰은 우리에게 가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나와 여러 수련생들은 법을 암기하느라고 한 사람도 가지 않아 이후에 나는 옌칭(延慶)현 구치소에 보내졌다. 나중에야 비로소 사부님께서는 노동교양소와 구치소에 들어가지 않는 법을 이야기하신 것을 알았다. 만약 일찍 이런 법리를 알았다면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함에 편리한 조건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이런 손실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베이징에서 불법적으로 11일 구속당했고 고향으로 데려온 후 또 현지에서 불법 형사구류 1개월을 당했다. 이후에 제2차 불법납치 당한 것은 몇 년 후인데 현지수련생이 나를 협조인이라고 고자질해 사악은 나의 각종 활동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갑자기 직장에 와서 자백하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구치소에 구금됐다. 그들은 내 거주지에서 많은 진상 CD를 수색해 갔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위해 많고 많은 것을 감당하셨다. 범인은 내 머리를 벽에 마구 찧었는데 정말 사나웠다.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를 묵념하니 머리는 아프지 않았다. 또 한 번 4, 5명 젊은 죄수가 구치소 소장의 부추김 하에 나를 땅바닥에 눌러놓고 마구 때리고 밟았다. 속인 같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거나 불구가 됐을 텐데 나는 의연히 대법을 묵념하여 두렵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았다. 이것 또한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였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구치소에서는 인명사고가 날까 두려워 즉시 감방을 바꾸었다.

아무리 바쁘다 하더라도 법공부를 해야 한다는 법리를 사부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아주 바쁜 특수한 정황에서도 법공부를 견지했다. 나는 명예퇴직하고 기타 고등학교에 가서 수업을 봐주기에 늘 아침 6시 반에 차를 타고 출발해 저녁에 돌아온다. 그래서 밤에 2시 넘어 법공부를 견지하여 그 다음 연공하고 발정념하고 바쁘게 차를 탄다. 점심휴식 시간에는 법공부를 하는데 바쁠수록 정력이 충만하다. 속인 일과 법공부는 서로 촉진하여 효과가 더욱 좋아 내가 부딪힌 교학 난제를 모두 사부님께서 바로잡아 주어 효과는 기적같이 좋아졌는데 이것은 모두 자비로운 사부님의 지혜였다.

3. 비학비수(比學比修)

제자를 위해 사부님께서 개척하신 비학비수 환경을 나는 소중히 여긴다. 1999년 7.20 이전, 현지에서는 공개적인 법회 교류가 비교적 많아 나는 참답게 다른 사람의 수련체득을 듣고 그의 장점으로 자신의 단점과 비겼다. 단체 연공할 때 다른 수련생이 다리가 아파도 내려놓지 않자 나도 쑥스러워 내려놓지 않으면서 비학비수를 날마다 견지해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 이렇게 계속 심한 고통이 몇 년 지나갔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을 배운 후 밍후이왕에 오른 수련 체득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보며 수련생이 쓴 좋은 문장을 볼 때 나와 비하니 늘 창피하여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는데 수련생의 장점을 마음속으로 기억한다. 자신이 비학비수할 뿐만 아니라 내용을 법공부 소조 수련생에게 알려줘 함께 공동 교류한다.

착실한 수련 중에서 나는 수시로 일마다 대조하는 것을 중시해 진상 자료를 놓을 때 장기간 정념의 상태에 처했다. 그러나 오직 한번, 자료를 다 나누어 준 후 나머지 몇 장을 임무 완성식으로 느슨히 나눠주는 사람마음을 품으니 즉시 구세력이 틈을 탔다. 나는 사람들에게 주시당해 도둑이라고 신고를 당했으며 경찰차까지 왔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즉시 사부님께 도움을 구하고 안을 향해 사람마음을 찾으니 당시 경찰차는 나를 직장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 나는 무사했다. 이 유일한 한 차례를 제외하고 나는 사람 마음을 갖고 일하지 않았다.

비학비수 중에서 다른 사람을 배우지 않고 그가 어떻게 법에 동화되고 어떻게 법을 실증하는가에 중점을 두었으며 법리로 대조했다. 어느 한번 몇 십 미터 현수막을 걸려고 장소를 선정할 때 우리는 먼저 단체 법공부하고 상태를 조정한 후 밤 1시가 넘어 현수막을 번화한 사거리 고층건물 아래에 걸었는데 유달리 돋보였다. 순리롭게 일이 되니 환희심이 일어나 곧 강풍이 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환희심을 버리니 바람은 즉시 멈추었다.

일마다 대조하니 법은 초상적으로 펼쳐졌지만 사람마음으로 실증하니 문제가 나타났다. 어느 한번은 진상 자료를 나누어줄 때 밤이 깊고 날이 어두워 묘지를 지나는데 무섭다는 사람 마음이 일어났다. 불시에 소름이 끼쳐 즉시 법으로 대조하고 사부님의 법신을 생각하고 천룡팔부 호법을 생각하니 즉시 담력이 충족해져 사람을 구하는 비장한 결심을 느꼈다. 심정이 기복을 이룰 때 어떠한 일, 내가 이미 양성된 습관도 모두 법으로 대조해야 한다. 사부님의 법리를 다만 참답게 배우고 되새기면 일에 부딪힐 때 즉시 집착심을 똑똑하게 비출 수 있으며 숨길 수 없다. 지금 모순이 있기만 하면 어떤 한 가지 일이 나타나는데 즉시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감각이 오며 즉시 법으로 대조해 자신이 틀리지 않는가,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는가, 감당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생각한다. 구세력이 안배한 일이 금방 폭로되고 나는 이를 의식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일마다 대조한 결과다.

4. 진상을 알리고 법리가 명백하니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다

2002년 초 나는 도시세뇌반에 납치당해 유혹을 받은 후 전향됐으나 며칠 지나 철저히 깨달아 나온 후 다시 베이징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실패 원인을 깊이 생각하니 장기간 쟁투심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다시 전면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종합했다. 그때부터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어떠한 비평 의견도 들을 수 있고 일에 부딪히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으며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자신이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지 찾고 교만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으며 유유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서 겸허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습관으로 양성했다.

세 가지 일은 시종 견지했으나 정진하는 수련생과 비하면 아직도 부끄럽다. 4번 정각 발정념은 견지하나 기타 정각은 정념하는 횟수가 적다. 나는 늘 진상 자료를 나눠 주고 스티커를 붙이며 진상을 알린다. 어느 한번 청명절에 고향집에 갔는데 버스에서 기사에게 션윈 CD를 주니 차안 사람은 모두 흥분해 그 중 한사람은 나에게 50위안을 주면서 CD를 사겠다고 했다. 나는 그냥 주고 팔지는 않는다고 하니 내 옆 사람이 낮은 소리로 자신은 외지 국가안전국 사람이며 전문 파룬궁을 관리하는 사복경찰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나에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했으며 나는 감사하다고 했다.

나의 친척은 공안 부문에서 일한다. 어떤 이는 파룬궁을 관리하고 그들 중 어떤 이는 아직 탈당하지 않았다. 나는 줄곧 그들에게 진상을 특별히 알렸는데 그들은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말을 믿고 절대 감히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힘쓰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일체 조건으로 대법제자를 보호하고 그들을 해치지 않으면 보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떤 때 진상자료를 큰 기관 사무실 책상 위에 놓고 어떤 때는 ‘9평공산당’을 상사 손에 쥐여 주며 진상을 지휘 기관까지 알렸는데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묘하게 가지(加持)하신 결과다. 고등학교에서 대리 수업한 몇 년간 무릇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모두 감화됐다. 나는 원리와 추리 분석식으로 점차 심도 있게 진상을 알린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착실하고도 깊이 접수하게 된다. 나는 진상 알리기에 기반을 닦는 매우 많은 일을 해서 어떤 공장과 마을은 나를 요청하기도 한다. 그들은 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나를 둘러싼다. 그러나 이 몇 년간 나에게서 삼퇴를 한 사람은 많지 않아 그러한 수천 명을 퇴당시킨 수련생과 비기면 매우 부끄럽다.

지금까지 나는 심성을 지키고 제멋대로 할 수 없다는 법리를 깊이 기억하고 있다. 마음을 닦고 욕망을 끊으며 똑똑하고 미혹되지 않는 법리를 깊이 기억하고, 평온하고 착실하게 층층 색욕의 마음을 버렸다. 세간의 이익과 속인의 흥미를 점차 담담히 하며, 사부님의 한 알의 먼지에 관한 법리를 단단히 기억하면 내심에서 교만이 나타나지 않고, 1년 365일 모두 법공부와 연공을 한다. 법공부와 연공, 심성을 수련하는 것은 내 생활의 자연스러운 습관이 됐고 내 마음은 늘 ‘사람을 구한다, 사람을 구한다’를 염하는데 이것은 은사님의 당부이며 사전의 대원이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홍음-실수)는 생활의 정상적이고 필수적인 상태가 됐는데 일체는 조리 있고 열정을 잃지 않으며 수련을 처음처럼 하고 있다.

(밍후이왕 제8회 중국 대륙 대법제자수련 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1년 11월 22일
문장발표: 2011년 11월 22일
문장분류:대륙인터넷법회원고>제8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22/2491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