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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배후의 관념을 해체하다

글/ 윈난(雲南) 대법제자

[밍후이망] 감옥을 나온 후 전법륜(轉法輪)을 한번 또 한 번 통독하고 한번 또 한 번 ‘논어’를 외웠다. 외우는 과정에서 나는 분명하게 매 한 구절 말씀이 모두 우리에게 관념을 바꾸라고 하시는 것임을 느꼈다. 관념을 바꾸어야 우리는 비로소 법의 요구에 따라 제고할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 이 낯선 세계에 접촉해야 한다. 낯선 부모 가족을 알고, 낯선 학교, 직업 환경에 들어선다. 이 일체에 대해 익숙해지면 또 이 낯선 세계를 떠나야 한다. 생생세세, 운명의 배치에서 각자 이 세계에 대한 인식, 이해, 평가가 형성되고 자신의 독특하고 명확한 시비, 선악표준이 생기며, 이 세계에 대한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자신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형성된다.

우리는 수련인으로서 낡은 우주가 일체 관념을 일찍이 우리에게 배치했으며 일사일념도 포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고정된 관념은 반대로 반복적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지시한다. 오래되면 또 자신의 고정된 집착이 형성된다. 집착의 부추김에 의해 일생을 보내게 되고 선천적인 원시 본능이 무엇인지 망각한다. 이렇게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위해 일생을 살고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

사람이 어떠한 일과 물건에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집착의 부추김, 관념의 지시에 따라 하고 있다. 움직이기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깨끗이 제거하려면, 집착을 제거하려면 배후의 관념을 제거해야 한다. 수련인은 낡은 관념을 제거하고 법으로 충실하게 하며 사상에서 대법에 동화해, 원래의 관념을 대체하는 정념을 형성해 자신을 지도해야 한다. 후천 관념을 정념으로 대체하고 인념(人念)에서 신념(神念)으로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이 돈에 대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돈에 대해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집착은 또한 배후에 돈에 대한 관념 때문이다. 돈은 좋은 물건이고 사람에게 행복과 아름다움과 원만함을 준다고 인식한다. 만약 당신이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려면, 금전을 담담하게 생각하려면 돈에 대한 인식관념을 바꾸어야 한다. 돈은 몸 밖의 물건이고 태어나서 갖고 오지 못하며 죽어서 갖고 가지 못하고 명(命)에 갖고 있는 것이며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속세의 재앙은 많게는 돈과 연관이 있고 고민 중 많은 것은 돈 때문에 일어난다. 이러한 관념의 지시 하에 당신은 천천히 집착을 내려놓고 재물을 담담하게 여기며 돈에 이끌리지 않음에 도달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여러 차례 정치운동에서 공산사당에 대한 관념이 형성됐다. 극단, 공포, 건드릴 수 없다 등이다. 이런 관념이 ‘두려움’이라는 집착을 초래했다. 이런 집착은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것을 엄중히 교란하고 우리의 정념이 부족하고 심태가 순정하지 못하며 구세력에게 빈틈을 타게 해 박해를 당하게 한다. 박해를 통해, 체험 중에 또 원래의 관념이 강화되고 두렵다는 집착심이 증가된다. 일부 수련생은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 일부러 사오(邪悟)하든지, 구실을 찾든지, 자신을 느슨히 하고 당초보다 정진하지 않는데 바로 이 관념의 장애 때문이다. 법 공부, 발 정념을 통해 천천히 인식을 개변하고 두렵다는 집착을 포기해 다시 새롭게 법에서 정진하고 정법 노정을 따라잡아야 한다. 만약 박해 중에서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해 곧바로 두려운 집착을 찾아내고 시기적절하게 배후의 집착을 개변해, 눈앞의 공포를 가상으로 간주하면 당신은 정념으로 걸어 나올 수 있다. 당승(삼장법사)이 서천에서 경을 얻을 때 겪은 81난(難) 전부는 환상이다. 오직 서행(西行)의 정념을 확고히 하면 눈앞의 가상은 아무 것도 아니다. 만약 사람의 눈을 사용하고 시신경으로 보면 가짜를 진짜처럼 여기게 된다. 피와 살로 이뤄진 사람이 어떻게 걸어 나올 수 있겠는가. 상유심생(相由心生), 눈앞의 일체는 아무것도 아니며 정념으로 걸어 나올 수 있다. 오직 사악에 대한 인식 관념이 개변되면 일체는 모두 따라서 변하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살 길을 만날 수 있다.

경찰이 나를 감금실에 가둔 후 나는 그제야 알았다. 뜻밖에 나타난 모순에 직면해 나는 즉시 자신의 신분이 명백해졌고 수련인의 입장을 확고히 하며 심태를 조절했다. 두려워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조급해하지 않고 가상에 미혹되지 않으며 7,8명 경찰과 이치를 말했다. 그들이 두 명의 죄수를 시켜 나에게 강제로 황색 죄수복으로 갈아입도록 명령할 때 나는 정념으로 거절하고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했다. 20여 분 후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입지 않겠으면 됐다. 감방으로 돌아가라.” ‘두려운’ 일막(一幕)이 지나갔다.

내가 사진을 찍고 피를 뽑는 것을 거절하자 7,8명 남자 경찰들이 손에 전기봉을 쥐었다. 또 죄수 여러 명이 손으로 나를 억눌렀다. 나는 사람이 신에게 감히 이러는 것은 다른 공간의 사악이 조종해 통제하는 것이고 또 사람의 가상으로 고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고험할 자격이 없고 가상이라고 생각하니 두려운 마음이 없어졌다. 나는 눈을 감고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고 마음속으로 발정념을 하면서 사부님께 청했다. 나는 갑자기 왼쪽 팔이 저려서 눈을 뜨고 보니 한 경찰이 전기봉으로 나를 때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반응이 없었기에 그들은 놀라서 한마디도 못하고 전부 멍하니 나를 보고 전기봉도 멈추었다. 나는 차분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전기봉으로 나를 때리는 것은 파쇼 행위이고 당신들은 보응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멍하니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죄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걸어나왔고 좀 있다가 그들도 따라왔다.

우리 오늘날의 성숙은 박해 자체가 우리에게 조성한 것이 아니며 박해 자체가 우리를 성숙하게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으로 우리를 지도하며, 바른 사유방식을 형성하고 과거 사람의 인식을 개변하며 더 이상 사람이 사람에 대해 박해라고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의 집착이 사라지면 더 이상 두려움의 장애가 없고 난관을 뛰쳐나가 법의 존재를 실증하고, 법에서 법을 인식해 법에서 성숙되게 된다. 사람의 성숙이 아니라 한 수련인의 성숙이다.

모든 박해수단에 직면해 나는 자각, 비자각적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로 자신을 지도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또 한 가지 상태가 있어 앉아있다 보면 다리도 없어진 것을 발견하는데, 다리가 어디로 갔는지 분명하게 생각나지 않으며, 신체도 없어지고 팔도 없어지며 손도 없어져 머리만 남아있다. 더 연마(煉)해 나가면 머리도 없어지고 오로지 자신의 사유만 있음을 발견하며, 약간의 의념(意念)이 자신이 여기에서 연공하고 있음을 안다. 우리가 만약 이런 정도에 도달하면 족하다.”(전법륜)

나도 자신에게 명예, 이익, 정,생(生), 죽음, 일체 사람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했다. 경찰, 직장, 현지 정부, 610, 전문가팀 등 그들이 나에게 사색하라는 일체, 요구한 일체를 나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후천관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단지 일념만 남았다. 신사신법, 매일 하는 일은 법을 외우고 발 정념을 하고 기회가 있으면 진상을 말했다. 몇 달 동안 각종 박해수단은 쓸모가 없었으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이 있게 됐다. 그들은 말했다. “내 귀가 깨끗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큰 모순 앞에서, 큰 관념에서 재빨리 안으로 찾아 우연히 정념이 있어 뛰쳐나온 것이다. 우리는 생생세세, 구세력이 우리에게 배치한 일사일념은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이를 묵인하거나 받아들였다. 비록 나는 시종 구세력이 설치한 틀에서, 박해를 당하는 중에서 반(反)박해했지만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납치를 당했을 때 나는 사악에게 잡힌 약점을 묵인하고, 결연히 수련생을 팔아먹지 않고 나 한 사람이 담당하겠다는 형제간의 의협심이 있었다. 사람의 영웅 감정이 있어 자신의 신분과 사명을 잊어버렸다. 완전히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간주해 재판에 직면해도 속수무책이었다. 대법의 위치를 바로잡지 못하고 법에 대한 정념이 부족하며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 때문에 우리가 구도 중생에서 한 일체 행위를 신성한 위치에 놓지 못했다. 떳떳하게 ‘약점’, ‘증거’를 부정하지 못했다. 단지 표면에서 재판, 보고에 협조하지 않고 서명하지 않으며 지장을 찍지 않고 노동을 하지 않으며 사악의 심문 등에 협조하지 않았을 뿐이다. 감옥에 온 후 세 번이나 “당신은 언제 나갈 겁니까?”라는 질문에 나의 대답은 “당신들이 나를 납치했는데 당신들이 언제 풀어주면 나는 그때 나가겠다!” “순리에 따르겠다.” “50세(6년이면 만기가 된다)에 나가겠다.” 마지막 대답에 상대방은 매우 화를 내면서 말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자신에 대해 이렇게 확신이 없소?” 지금 생각해보니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이용해 나를 점화해 주신 것이었는데 그때는 의식하지 못했다.

때문에 자신이 관념이 있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자신의 관념을 의식하지 못해 구세력에 묵인하고 협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두렵다. 어떤 생각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사상과 행위에 영향을 준다. 겉으로 보기에는 박해를 승인하지 않으나 내심 깊은 곳에서는 묵인하고 협조한다. 이런 관념이 끊이지 않기에 시종 사악을 끌어 들인다.

솥의 물이 끓어 넘치게 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찬물을 보태도 그것은 여전히 넘친다. 오직 솥 밑에 장작을 꺼내야만 그것은 다시는 넘치지 않는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이 장작불이 배후의 관념인데 그것이 늘 물에 온도를 높이면 물이 넘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한번 한 번 끝없이, 박해 속에서 반(反)박해만 하거나, 솥에 물을 붓는 것처럼 한번 한 번 끝없이 찬물만 부으면 박해가 중지될 수 있겠는가? 오직 장기적으로 마난 중에 처해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솥 밑에 타고 있는 장작을 꺼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철저히 사람의 관념을 빼내 법으로 관념을 갱신하고 일체 집착을 타파하며 원천에서 일체 박해를 제거해야만 철저히 사악을 해체하고 구세력의 참여를 종결해 박해를 중단시킬 수 있다.

우리는 대법제자이고 미래의 신이며 우주의 수호자이다. 사람은 신을 박해할 능력이 없고 낡은 우주의 신이 사람을 조종해 통제한다. 그러나 낡은 우주의 신이 아무리 큰 지혜가 있더라도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보다 크지 않다. 그도 법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로 잡으려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우주 중에서 가장 큰 천상(天象)이다. 일체 천상은 모두 사부님의 장악 하에 있다. 역사는 우리가 조사정법하는 것을 선택했고 대법제자로 되는 것을 선택했는데 우리는 하지 못할 것이 없다. 공산사당의 공포는 전부 가상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신사신법, 정념은 바로 신념(神念)이고 일체 사악을 해체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11년 10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0/23/2481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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