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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제거한 경험

글/ 허난(河南)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신의 상태가 마치 ‘밍후이주간’에서 한 수련생이 쓴 것과 마찬가지로 줄곧 일종 좋지 않는 상태에 처해 있었는데, 다른 수련생에 대한 일종 경계심이 있었다. ‘누구는 일하는 것이 이지적이지 못하다, 누구는 비정상적이다, 누구는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다.’는 등등의 생각으로 수련생을 만나거나 찾아가게 되면, 늘 이상야릇한 긴장감이 돌면서 머릿속에서는 일종 좋지 않는 염두가 나타나고, 심지어는 사악과 마주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을 생각했다. 그리하여 정정당당하고 거리낌 없이 대법 일을 하지 못했다. 여하튼 대법과 관련되는 일에 부딪히면 머릿속의 그러한 나쁜 것들이 술수를 부리기 시작해 마치 자신의 일언일행이 모두 사악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 것 같았고, 사악이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줄곧 이런 상태를근본적으로 돌파하지 못하게 되자 나는 매우 괴로웠다. 며칠 전 나는 갑자기 한 가지 일에 부딪히게 됐다. 퇴근 후 길을 가다가 자전거를 타는 한 여성에게 길을 비켜 주었는데, 그녀는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추적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자전거 속도를 늦추었는데, 내 앞까지 와서도 속도를 내지 않았다. 큰 길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멈춰 섰고 나도 멈췄다. 그녀가 머리를 돌려 나를 볼 때 나도 마주 보았더니 그녀는 이리저리 오가더니 결국 가버렸다. 나도 길을 에돌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일은 나를 따끔하게 경고했는바, 나는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나는 한편으로 사부님께 보호를 청하면서 내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다른 수련생 집에 다시 가야하는가, 가지 말아야 하는가?’ 나는 우선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 주에는 다른 수련생 집에 가지 않겠다. 만약 길에서 수련생을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나를 도와 발정념하라고 말해야겠다.’ 나중에 이런 염두는 옳지 않다고 생각됐다. ‘이것은 구세력의 안배를 승인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인위적으로 자신을 다른 수련생과 갈라놓는 것이 아닌가? 이 관을 넘지 못하는 것은 구세력의 올가미에 걸려드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이후에 이 난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나는 어떻게 이 일을 바로 깨달아 그 중에서 진정으로 제고할 것인가?’ 나는 사부님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사부님의 설법을 회억해 보았다.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마난(魔難)중에서 바르게 걷기는 더욱 어렵다. 특히 중국 대륙의 대법제자는, 마난의 박해 중에서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아주 관건적이다. 당신이 잘하고 못하고, 당신이 박해를 받고 안 받고, 당신이 바르게 하고 못 하고, 박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두 당신자신이 걷는 길, 당신의 사상이 생각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이때 나는 마음속으로 확신을 갖게 됐는데 사악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고 나의 사상을 박해함을 승인하지 않았다.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홍음2-슬퍼하지 말라) 나는 일체가 모두 연기나 구름처럼 사라져 없어짐을 느꼈다. 나는 바른 법리로 문제를 가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법리가 명백해지자 나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수련생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전에 나는 늘 나의 일언일행이 모두 사악에게 감시된다고 생각했다. 안을 향해 찾고 나서 나는 그 생각이 일종 악당이 강요하여 넣은 사유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해체 당(黨)문화’ 책을 펼쳐 결론 ‘정상적인 사유로 돌아오다’를 찾아보았다. 이 일을 통해 안을 향해 찾으면서 그것은 일종 중공에 의해 왜곡된 사유 방식이자 조건반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반드시 이러한 당 문화의 사유 방식을 깨끗이 제거하고, 당 문화의 깊은 함정에서 걸어 나와 이런 변이된 관념을 제거하고 정상적인 사유로 돌아와 자신의 마음과 사상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우리가 하는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은 우리들의 사상이 문제를 생각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우리가 하는 대법과 관계 되는 모든 일은 모두 가장 바른 것이다.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홍음2-두려울 것 뭐냐) 한 가지 바른 것이 백 가지 사악을 누를 수 있다! 어찌 사악에게 이끌려 일마다 곳곳에서 모두 감시 통제당한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이때 나의 정념은 매우 많이 강화됐다. 나는 자신이 정정당당하게 수련생 집으로 갈 수 있다고 느꼈는데 정말 정정당당하게 수련생 집으로 갔다.

수련생 집에서 사이트의 문장 한 편을 보게 됐다. 거기에는 이런 한 마디 말이 있었다. “진상을 명백히 안 서기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말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파룬궁을 말하고 CD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몹시 놀랐어요.’” 여기까지 보고 나서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가 몹시 놀랐는가? 만약 나라면 마음속으로 놀랐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마음속으로 놀라는가? 아! 다른 사람들이 내가 파룬궁을 이야기 한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무서워하는가?’ 나는 이 두려워하는 마음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나는 그것을 똑똑히 가릴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어떤 대법제자들은 감옥에서 혹은 기타 장소에서 정정당당하고 담담하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다)!”를 높이 외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어떻게 이지적으로 대답하든지, 아랑곳하지 않았던지를 막론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관건은 그런 물음을 진정 태연하게 대해야 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 후 이틀간 마음속에는 아직도 묵직한 보따리 하나가 없어지지 않고 있었는데, 마치 ‘감시통제(監控)’라는 명사가 자주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 묵직한 보따리는 박해가 시작했을 때부터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한편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안을 향해 찾으라고 하신 사부님의 설법을 회억해 보았다. ‘기시(歧視-역주 : 경시, 냉대, 푸대접)’ 두 글자가 나의 마음속에서 이틀간 반복해 나타나더니 결국 마음속 매듭이 풀어지게 됐다. 원래 이 보따리와 감시통제의 뿌리가 ‘기시’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때서야 갑자기 깜작 놀라게 됐다. 이 악당은 얼마나 사악한가! 악당운동의 영향-기시-전반 사회의 기시-으로 피동적으로 감당했던 것이 오히려 능동적으로 변이됐던 것이다. 마음속 매듭이 풀렸다.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마음이 매우 후련했다.

전에 발생한 그 자전거 가상은 오히려 내 마음속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나는 자신이 자각적으로 혹은 비자각적으로 늘 다른 사람의 자전거 타는 속도에 주의했던 것이다. 나는 안을 향해 찾았는데 이것은 일종 경계심으로 이 경계심이 나쁜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었다. 나는 ‘해체 당문화’ 책을 펼쳤다. “경계심은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고 곧 자신 스스로 경계심이 생기는 것으로 곧 상대가 좋지 않은 의도가 있다고 가정한다. 사람마다 만나면 경계심이 생기고 시시각각으로 타인에 대해 대비하는데, 이는 사람의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중국인이 사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확실히 그렇다.” 나는 단번에 명백해졌다. 그러나 어떻게 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마음을 중생에게 열어 놓고 더는 봉폐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삽시간에 탁 트였다. 원래 이 일체는 모두 가상으로서 모두 상유심생(相由心生)이었다. “대법제자의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면 당신 주위의 환경 역시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당신이 두려워할 때, 당신은 중생들이 모두 불편함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심정적으로 맑을 때, 마음이 넓고 낙관적일 때, 당신은 주위환경 역시 같지 않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하는 일에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좀 조정하고 정념으로 문제를 사고한다면 상당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에서의 설법)

나 역시 사부님의 노 제자이지만 나는 늘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린다. “나는 사부님 속을 태우게 하는 제자입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비록 나는 매우 많은 방면에서 모두 잘하지 못하여 정진하는 수련생들과 비하면 십만팔천리도 더 떨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의연히 마음으로 사부님께 이야기한다. “저는 여전히 사부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제자가 법리를 명백히 하여 이 관을 넘도록 점화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근본적으로 박해를 부정하면서 마음을 열고 우리들이 구도해야 할 중생을 구도하자!

문장발표 : 2011년 10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0/13/2476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