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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태도로 법을 실증하고 서로 협조를 잘하자

글/ 브라질 대법제자

[밍후이왕] 여러분, 나는 여러분들과 대법수련 중에서 체험한 아름다움을 교류하려 합니다.

처음부터 나는 자신이 적극적, 자발적으로 수련함이 필요했는데 이것은 내가 대법을 배우는데 견실한 기초를 닦아 놓았다. 나는 2005년에 브라질의 큰 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법을 얻었다. 도시에는 그 당시2명의 수련생이 있었다. 씬탕런, 따지웬, 션윈 이런 대법항목은 없었다.우리가 매 한가지 일을 모두 직접 협조할 것이 필요했고 협조를 잘하지 않으면 안 됐다.

나는 마음속으로 늘 생각했다. ‘이 몇 사람이 어떻게 몇 백만 사람을 구도할 수 있고, 우리의 서약을 완성할 수 있겠는가?’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주위 도시와 브라질의 기타 도시에도 수련생이 없었다. 전체 브라질에 20여 명의 수련생이 있었다. 나는 자신도 마땅히 기타 지역을 위해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문제를 고려할 때 늘 방법을 생각해 더욱 많은 사람을 구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부근에 연공장 하나를 세웠는데 시작만 하면 안 되고 유지해야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반드시 연공장에 가는 것을 견지해야 했는데 설사 소업하거나 혹은 가정모임, 사회활동 시간과 충돌이 될지라도 가야 했다. 매우 많을 때 나는 일이 있어 연공장에 가기 매우 어려웠는데 그럴 때마다 공교롭게도 어떤 사람이 공법을 배우려 했다.

매일 공법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단지 연공장에서 보도원 역할만 하면 부족했다. 나는 사회활동에 참가하기 시작했고 집회, 문화논단, 대학활동 등인데 한 번에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연공을 가르쳐줄 수 있었다. 이런 활동에는 늘 인연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한번에 몇십 명을 가르칠 수 있었고 수백 수천에 달하는 사람에게 자료를 배포할 수 있었으며 파룬궁이 중국에서 박해받는 진상을 말할 수 있었다.

이후에 우리는 중국 영사관 앞에서 매주 진상을 알리기로 결정하고 중문자료를 제작했다. 중국인을 제도하는 것이 제1위이기 때문에 길가 중국 사람을 보면 쫓아가 그들에게 자료 혹은 신문을 주었다.

그러나 얼마나 했든지 간에 여전히 매우 한계가 있었고 몇 백만 명에 도달하지 못했다. 나는 대법제자가 꾸리는 매체는 마땅히 각 국가에 만들어야 하고 브라질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마음은 홀가분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이 현지 사람은 구도될 수 있었다.

갑자기 나는 또 느꼈다. 만약 여기에서 따지웬과 씬탕런을 만들려면 마땅히 누가 해야 하는가? 내가 아닌가? 나는 기뻐하던 데부터 또 걱정이 됐다. 방법을 생각해 현지 대법제자가 운영하는 매체를 만들어야 했다.

나는 상파울로에서 회의를 조직해 진상을 알리는 일을 토론했다. 브라질 수련생은 상파울로에 많이 있었으며 기타 지역 수련생도 초청했다. 나는 매 사람에게 전화를걸어 그들이 회의에 참가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어떤 사람은 설득하기 매우 어려워 나는 다시 회의 세부 사항을 배정해 그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보증했다. 어떤 사람은 통쾌하게 대답해 협조하려면 쉬웠다. 나는 회의에서 브라질에서 씬탕런과 따지웬을운영할 계획을 제기했는데 그들도 이렇게 하는 것에 모두 동의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두 몰랐다. 사람이 이렇게 적은데 매우 많은 노력과 매우 효과적인 협조가 필요했다.

나는 그때 뉴욕 따지웬에 원고를 제공했고 다른 수련생도 동원해 원고를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기타 국가 항목에 참가하고 경험이 생기니 쉽게 그 항목을 우리나라에 들여올 수 있었다. 브라질의 한 수련생이 뉴욕으로 이사 와서 따지웬에서 일했다. 나는 점점 이 일이 성사될 수 있다고 느꼈다. 신문에 원고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만약 기타 국가의 수련생과 협조하면 그들의 뉴스를 번역해 신문을 만들면 됐다. 우리는 남미 따지웬 단체와 연계를 했다. 나는 브라질의 따지웬 신문이 곧 형태를 이룰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신문은 진행 중에 있고 텔레비전 방송국을 만드는 것을 나는 여전히 두려워 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또 비디오 카메라, 조명, 스튜디오 이런 것이 있어야 했다. 나는 신문만 있으면 됐다고 자신을 설득하고 싶었다. 어느날, 나는 뉴욕 씬탕런 총부에서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받았다. 이 기회는 괜찮으니 나는 마땅히 가야겠다. 업무 요구를 보니 나는 하나도 부합되지 않았지만 신청을 결정했다. 가장 간단한 신청은 초급 편집원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원정 훈련을 제공해 주었다. 나는 다른 수련생에게도 알려주어 신청하게 했다. 마지막에 어떤 사람은 포기하고, 어떤 사람은 거절당했다. 나는 유일하게 접수됐다. 나는 일상생활의 일체를 마치고 뉴욕으로 가려고 준비했다.

나는 다른 수련생을 청해 연공장 협조인과 따지웬을 꾸리는 일을 하게 했고 그에게 비록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마지막에는 씬탕런을 브라질로 데려와야겠다고 알려주었다. 나도 뉴욕 다국어 협조인에게 알려 주었는데 그들도 이렇게 동의했고 나와 한 아르헨티나 브라질 수련생과 포르투갈어 산당인의 협조인을 하게 했다. 우리는 독불장군이었는데 이 항목은 우리 두 사람뿐이었고 일체는 영(0)으로부터 시작했다.

뉴욕으로 가게 되어 나는 매우 기뻤다. 나는 씬탕런이 얼마나 위대한지 상상했다. 나는 기자팀에 참가해 매우 많은 경험이 있는 노수련생을 알아 촬영하는 것을 배워 대단한 기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도착한 후 완전히 이런 일이 아닌 것을 발견했다. 다국어뉴스 편집부는 단지 몇 사람이고 매우 노력해 항목 운행을 유지하고 있었다.내 단체에는 또 기타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중 두 사람은 씬탕런에 온지 1년이 되지 않았고 세 번째 사람은 2주 전에 갓 왔다.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성숙된 단체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도우려고 왔다는 것을 인식했다.

처음에 나는 영어 신문부에 매일 8시간 일했고 이후에 즉시 포르투갈어 항목을 했다. 가장 처음 신문을 포르투갈어 사이트에 올리는 것에나는 하룻밤을 걸렸고 각종 교란을 타파한 후에야 쉬워졌다. 나는 다른 사람을 기다려서는 안 되며 스스로 마땅히 이 항목을 추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브라질 수련생에게 보게 했는데 지금 우리는 포르투갈어 씬탕런 싸이트가 있게 됐다. 내가 도움이 필요하면 그들은 한사람 또 한사람씩 참여했다. 많은 밤에 나는 단지 몇 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뉴욕의 업무를 완성해야 했으며 다음 포르투갈어 항목을 했고 또 브라질의 신인을 배양했다. 나는 매 사람에게 매우 인내심이 필요했다. 가끔 그들의 실수로 하루 업무를 헛되게 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깨달았다. 나는 협조인이니 반드시 매우 참을성 있게 그들이 전부 배울 때까지 견지해야 한다. 내가 이 협조인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을 실증하기 위해, 대법제자가 이 항목에서 조건을 창조해 법을 실증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뉴욕에서 수련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는데 각종 고험이 있었고, 내가 여기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는지를 보았다. 뉴욕단체에서 각종 모순이 있었는데 또 브라질의 다른 협조인과의 모순까지 추가된 상태에서 나는 정진을 해야 했고, 단체에서 떨어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더욱 많은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는 것임을 느꼈다. 두 가지 선택이 있는데 수련에서 정진하는 것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계속 걸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씬탕런 브라질 협조인은 이 항목을 떠나게 됐는데 나는 내 잘못인 것 같았지만 조금은 기뻤다. 이렇게 되면 다시는 다투지 않게 되어 그렇게 많은 여러 의견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생각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고 그를 청해 돌아오게 하려고 결정했다. 몇 개월이 지나서야 나는 내 잘못을 의식하고 다시는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사죄를 했고 내가 인식한 자신의 착오를 그에게 알려 주었고, 항목으로 돌아오라고 그를 청했는데 그가 매우 중요해서이다. 그는 매우 감동했다면서 돌아오는데 동의했다. 지금 그는 항목에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발휘하고 있다.

나는 뉴욕단체에서도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 나는 취재업무를 협조하는데 한 수련생에게 방문하라고 했다. 이것은 그녀가 양성해야 할 일부분이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가라고 했다. 이것은 내가 그녀에게 주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논쟁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되어 이런 사람이 나의 단체에 있게 했는지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게 하라고 한 기본업무마저 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논의하자고 했다. 나는 동의했다. 나는 그녀가 조금도 이지적이지 못하고 완전히 이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 때문에 화나고 그녀도 나 때문에 화가 났다. 갑자기 나는 사부님의 설법이 생각나 자신에게 말했다. “누가 옳고 틀린 문제가 아니고, 누가 내려놓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니 한발 물러서자.” 나는 자신 사람 일면과 말했다. “만약 그녀가 옳고 내가 틀렸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모순은 아주 빨리 지나갔다. 우리는 모두 차분했다. 나는 방안에 아름다운 광환이 뒤덮은 것을 보았다. 나는 내 앞의 수련생이 미래 고층차의 위대한 바른 신인 것을 보았다. 나는 어떻게 바른 신에게 그렇게 좋지 않은 생각이 있을 수 있는가, 비록 그녀가 이 공간에서 사람의 몸과사유를 가진 수련생이라도 말이다. 나는 그녀가 나에 대한 불평을 들었는데 그녀가 한 말은 맞다. 그녀도 내가 제기한 문제를 접수했다. 원래 나를 비평하던 데로부터 그녀는 말했다. 나를 도와 이 항목을 하고 싶다고.

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나는 씬탕런이 있는 뉴욕 브루클린 구역의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 그곳에는 매우 많은 중국인들이 있다. 나는 일생에 이렇게 많은 중국인을 보지 못했다. 브라질 길가에는 중국인을 보기 매우 힘들어 만나면 나는 따라가 그에게 진상 자료를 준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렇게 많으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자료를 다 갖고 나가도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는 같은 기숙사의 한 수련생과 말했다. 그는 이 지역의 주요 큰길에 탈당센터를 하나 세우라고 건의했다. 이 아이디어는 너무 좋았다. 다른 두 수련생도 참가했다. 플러싱 탈당센터에서 우리에게 자료를 주었다. 우리 4명의 서방인은 길에서 중국인에게 탈당을 권했다. 그들은 자료만 갖고 가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듣지 않았다. 매우 많은 사람이 영어를 모른다. 유감스럽게 그 세 사람은 견지하지 못했다. 나는 계속 남으려고 결심했다. 누가 주말에 시간이 있으면 그에게 도와달라고 청했다. 씬탕런의 한 중국인 수련생이 나를 도와주었다. 내 기숙사의 다른 서양 수련생도 참여했다. 기타 수련생도 와서 도와주었다. 우리는 몇 달 견지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루에 20여 명의 중국인을 탈당시킬 수 있었고 또 몇 백 명의 중국인과 서양인들이 자료를 갖고 갔다.

나는 교류할 것이 매우 많았지만 매우 많은 시간이 걸려야 쓸 수 있다. 지금 브라질에는 이미 대법제자의 매체를 건립했다. 12명이 매우 노력해 씬탕런 포르투갈어 항목을 한다. 따지웬도 브라질에서 등록했고 사이트도 개설했다. 나는 동시에 뉴욕 기자점을 설립하는 것을 도와준다. 당연히 이것은 모두 아무 것도 아니고 또 매우 긴 길을 걸어야 한다. 나는 우리 매체를 도와 새로운 방법으로 더욱 많은 사람에게 영향주는 것을 찾을 것을 필요로 한다. 이 점을 하려면 나도 더욱 많은 고생을 해야 하고 많은 집착심을 버리고 협조를 더욱 잘해야 한다.

전체 수련과정에서 오늘 이 층차에 이르기까지 나는 깨달았다.

만약 우리가 구도중생의 진념(眞念)으로 항목을 하면 설령 처음에 가능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성사되게 하신다.

우리는 마땅히 견지해야 하고 항목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곤란을 만나면, 혹은 다른 사람과 논쟁이 있을 때 자신의 집착과 관념을 포기해야지 항목을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평하는 것은 아니다.

협조인을 하는 것은 어렵다. 나에 대해 도움이 가장 큰 수련생은 항목을 위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고, 협조인을 도와주는 사람이며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협조인에게 압력을 가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방면으로 말하면 협조인은 마땅히 힘껏 다른 수련생의 건의를 실시하고 그들에게 항목에서 법을 실증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다른 수련생과 논쟁이 있을 때 그들은 위대한 대법제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사람마음으로 그들을 보지 말아야 하는데 설령 표면적으로 그들이 사람과 같이 보여도 말이다.

이상 체험은 모두 내가 파룬따파 수련에서 온 것이고, 당연히 내 수련 층차의 제약을 받는다. 여러 사람들은 나의 집착, 관념을 보고 고쳐야 할 곳이 있으면 자비롭게 나에게 알려주기를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1년 뉴욕 법회 발언 원고)

문장발표: 2011년 8월 3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31/2460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