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담담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그런 것들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내지 못한다. 『전법륜(轉法輪)』이 법리는 우리의 수련과 생활의 여러 방면에 시시각각 체현되지 않을 때가 없는데 최근에 나에게 이에 대해 깊은 인식이 있었다.
금년에 딸이 중학교 시험을 치게 되는데 그녀는 성 중점 중학에 응시하였다. 중국에서는 학생이 시험 치기 전에 점쟁이를 찾아가 학생의 성적을 예상해 보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도 이렇게 하였다. 수련하지 않는 가족이 딸도 점을 쳐보라고 권했다. 나는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수련인은 모두 사부님이 관할하고 계신데 어찌 점을 쳐 본단 말인가, 더구나 점을 치는 사람과 대법제자가 어찌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으며, 대법제자가 어찌 그런 도움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즉시 거절하였다.
시험 치기 약 한달 전, 딸의 반주임한테서 또 전화가 와서 나에게 똑같은 건의를 제의했으나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시험을 닷새 앞둔 날, 나의 동창생한테서 또 전화가 왔는데 그녀의 딸과 내 딸이 한 반이라면서 그녀와 같이 가서 점을 쳐 보자고 하였지만 나는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거절하였다. 그야말로 법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였다. 『전법륜(轉法輪)』시험을 치기 사흘 전 딸의 반주임한테서 또 전화가 왔는데 다른 학부모들은 모두 학생에게 해 주었다면서 나더러 꼭 딸에게 해 주라며 아울러 수험표를 앞당겨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학부모들은 모두 복사한 수험표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과의안면 때문에 학교에수험표를 찾으려 갔다. 선생님이 한 뭉치의 수험표를 꺼내 놓았는데딸의 수험표가 제일 위에 놓여 있었다. 선생님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하늘의 뜻인가 봐요. 다른 학부모들은 와서 반나절 뒤져서야 겨우 찾아냈는데 당신은 찾을 필요도 없이 맨 위에 놓여 있네요. 두말 말고 얼른 가서 하세요.” 또 열정적으로 전화번호 여러 개를 알려 주면서 나더러 꼭 가라는 것이었다.
이 때 나의 마음은 대번에 동요되었다. ‘정말 하늘의 뜻일까, 왜 이렇게 묘하게도 맨 위에 놓여 있을까, 그래 내가 정말 가야 한단 말인가?’ 나는 언니(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에게 내가 정념을 확고히 하도록 도와달라고 하였지만 실은 그녀와 토의해 보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것이 바로 내가 신사신법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험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법으로 말한다면 가는 것은 틀림없이 옳지 않은 것이다.그래도 자신의 심태를 보아야 한다. 심태가 아주 바르다면 사부님을 굳게 믿고 법을 굳게 믿으며 일체를 내려놓을 수 있으므로 자연적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지만, 입으로는 내려놓았다고하나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한다면 무슨 결과가 있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자신의 마음이 바른가 바르지 않은가를 보아야 한다. 나는 이것이 나에 대한 일종의 고험임을 알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 관건적 시각, 수험표가 맨 위에 놓이게 한 가상을 연화해 냈다. 또 선생님더러 나를 자극하는 그런 말을 하게 함으로써 나의 마음을 끊임없이 들뜨게 하여 내가 도대체 마음을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를 보려는 것이었는데 나는 절대로 그것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확고히 신사신법 하고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겨야지 이 조그마한 고비마저 넘어가지 못해서는 안 된다.
나는 홀연 자신이 아주 가소롭다고 여겨졌다. 이런 작은 일에도 마음을 움직인단 말인가, 이건 그야말로 고비라고 할 수 없는 고비인 것이다. 이튿날 언니를 만났는데 언니는, “네가 이 한 점을 해 낼 수 있은 것은 아이가 최근 몇 차례의 모의시험에서 모두 성적이 괜찮아서 꼭 시험에 합격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이렇게 확고할 수 있었겠어?”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애매하게 웃어줄 뿐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이 일을 어머니(수련생)께 말했더니 어머니는 듣고 나서 말하였다. “ 다른 말은 더 하지 마라. 네가 법 공부 팀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에 부닥치면 아주 정념이 있고 수련도 아주 착실하게 하였다.” 나는 마음속에 한 줄기 환희심이 생겼고, 자신이 이 고비를 그래도 괜찮게 넘었고, 몇 차례의 계속되는 유혹도 모두 넘었다고 여겼다.
애가 시험 치는 전 날 오후는 휴식이어서 나는 출근하지 않고 애를 데리고 법 공부 한 강의를 하였다. 저녁에 잠자기 전에 나는 딸더러 사부님께 중점학교에 순조롭게 시험 치도록 지혜를 열어 달라고 빌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나도 사부님께 꼬마제자가 내일 작용을 잘 발휘하도록 보우해 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난 후 자신마저도 못마땅한 감을 느꼈다. 이건 집착이 아닌가, 또 내가 딸을 위하여 사부님께 빈 것 역시 정의표현이 아닌가,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긴 했으면서도별로 생각하지 않고 속으로 이 관건적 시각에 사부님은 꼭 도와주실 것으로만 생각하였다. 사실 이는 이미 법에 있지 않은 것이었지만 당시는 중시하지 않았고, 온 마음은 모두 딸아이 시험에만 집중되었다.
시험을 치르고 난 이튿날 딸은 점수를 예측해 보니 이상적이 못 되었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사부님이 계시니 괜찮을 거라는 한 가닥 희망을 품었다. 이 때 안으로 찾아보기도 하였다. 직장 동료의 애와 동창의 애가 모두 딸과 한 반에 있기 때문에 허세를 부리는 마음이 나타났고 동시에 또 과시심, 허영심, 또 재물에 대한 집착심도 있었다. 합격이 못되면 돈을 쓰고서라도 공부를 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또 수련인은 사부님의 관할이 있다고 하면서 내가 딸을 위하여 사부님께 빈 이것은 얼마나 중한 정인가! 가장 근본적인 것은 중점 중학에 가는 이 일에 대하여 강렬한 집착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따라야 함을 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말씀 하셨다. “속인사회 중에서 그가 출생한 후, 이 집에 그가 있고, 학교에 그가 있으며, 또는 성장하여 직장에 그가 있어, 그의 일을 통해 사회와 다방면으로 연계를 맺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전반 사회의 구성은 모두 이렇게 배치가 잘 된 것이다.”『전법륜(轉法輪)』 그런데 나는 아직도 무엇에 집착하는가? 비록 이렇게 찾긴 하였지만 속으로는 진정으로 내려놓은 것이 아니었고 다만 찾기 위하여 찾은 것에 불과하였을 뿐 심태는 개변되지 않았다. 이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심란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께서 꼭 꼬마제자를 위해 안배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시험 치기 전의 몇 차례 모의시험에서 수 백 명 중 그녀는 25등, 36등, 30등이었고 영어는 전 학년에서 일등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66등이었고, 영어 성적은 전교 우수생 중에서 꼴찌에서 두 번 째였다. 나와 함께 점치러 가자던 그 동창의 아들은 몇 차례의 모의시험에서는 모두 67등이었는데 이번에는 28등이었고, 그가 가장 부족했던 과목인 영어가 이번에는 전 학년에서 2등이었다. 이 차이는 나의 마음을 향해 온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 하에서 내가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는가를 보려는 것이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나더러 다시 선택하라면 내가 그 동창을 따라가지 않겠는가? 답은 아니라고 했다. 다시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정말로 여전히 가지 않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신사신법을 선택할 것이다.
중점 중학 입시는 세 개 단락으로 나누는데 우선 우수한 자를 뽑고 다음에 매 학교에 모두 배당된 수가 있으며, 이것을 다 뽑은 다음 또 2차로 우수한 학생을 뽑는다. 딸의 성적은 우수한 자로 뽑히기에는 불가능한 것이므로 나는 희망을 배당된 수에 두었다. 이 때 나는 또 안으로 찾아보았다. 나는 줄곧 희망을 사부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데 기탁하였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현재 부처에게 절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정과(正果)를 얻겠다는 생각을 갖고서 부처에게 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이런 사람은 너무나도 적다. 대다수 사람들이 부처에게 절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재난을 없애고, 난(難)을 해결하며, 돈을 버는 이런 것을 구한다. 이것이 불교 경전의 것인가? 전혀 이 층의 것이 없다.”『전법륜(轉法輪)』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 하셨다 “육친(親人)에게 재난을 없애고 병을 없애달라고 비는 것도 모두 육친정(親情)에 대한 집착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려 하는데, 사람은 제각기 운명이 있다!”『전법륜(轉法輪)』이건 내가 모두 법에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나는 딸더러 역시 안으로 찾아보라고 하였더니 그녀 역시 많은 마음을 찾아내었다. 이튿날 1.25점 차이로 배당한 액수에도 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선생님은 이번 문제는 해답이 간단한 것이어서 2차 선발에도 어렵겠다고 하였다. 이 때 나에게는 원망이 생겼다. ‘사부님께서 왜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실까, 우리는 이미 안을 향해 찾았고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었는데도 왜 여전히 이런가.’ 이 때 나는 갑자기 내가 안으로 찾은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찾은 것이며, 집착심을 찾아내면 일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마음을 품었지 진정으로 자신을 찾고 그로부터 집착심을 버리고 제고돼 올라오지 않았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또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다. “부처는 당연히 상관하지 않는다. 그 난(難)은 바로 그가 설치한 것으로서, 목적은 당신이 心性(씬씽)을 제고해, 모순 중에서 당신이 제고해 올라오게 하는 데 있다. 그가 당신에게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전혀 당신에게 해결해 주지 않을 것이다. 해결해 준다면 당신은 또 어떻게 공이 자라며 어떻게 心性(씬씽)과 층차를 제고하겠는가? 당신의 공을 자라게 하는 것이야말로 관건이다.”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집에 돌아와서 딸과 나의 생각을 교류하면서 수련인이 부닥친 어떠한 일도 우연한 것이 없다, 이렇게 큰 일이 생겼는데 우리는 반드시 뿌리로부터 깊이 자신을 파 헤쳐 봐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평소에도 그다지 정진하지 못했고, 일에 봉착하면 사부님을 찾아 도움을 바랐는데 사부님께서 우리의 집착심을 조장해 주실 수 있겠는가?
잠재의식 가운데 대법을 수련하면 복을 얻을 것이며, 모든 일이 다 순조로울 것이라는 마음을 내내 갖고 있었는데 이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 책을 손에 들고 큰 거리를 걸어가면서 이 선생님의 보호가 있으니 자동차에 부딪혀도 두렵지 않다고 하는 그 사람과 같은 게 아닌가? 우리는 자세히 자신을 찾았는데 한 무더기나 되는 집착심을 찾아냈다. 명리심, 쟁투심, 미워하는 마음, 환희심, 과시심, 남을 말 못하게 하는 마음, 안일심 등등이었고, 또 사심이 중했다. 타인에 대해 자비심이 부족했으며, 일에 부딪히면 우선 자신의 감수를 첫 자리에 놓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남을 먼저 배려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더러운 마음을 지녔으니 어찌 사부님더러 관할해 달라고 할 자격이 있겠는가. 우리는 줄곧 중점중학에 합격될 생각만 하였는데 전 과정에 이 생각만 하고 자연스럽게 따라야 한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나한 그 층차에 도달하면 무엇이던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데 대법제자인 우리는 도리어 이런 일에 그렇듯 집착하였으니 이는 얼마나 강대한 집착인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배한 수련의 길은 필연코 제일 좋은 것일 것이고, 우리의 수련에 가장 유리한 것일 것인데 우리는 아직도 집착할게 무엇인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할게 무엇인가? 나는 비로소 철저히 내려놓게 되었고, 마음도 깨끗해 졌으며, 진정으로 일신이 가벼운 상태에 도달하였으며 마음은 더없이 가뿐해 졌다.
나의 마음을 내려놓자 일이 즉시 변화를 일으켰다. 이튿날 이른 아침 다른 한 학교에서 부교장 직을 맡고 있는 친척이 나에게 전화로 딸의 이 성적이면 2차 선발에 들 수 있다고 하였다. 저녁에 또 전화로 그녀가 통계를 내 봤는데 꼭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사흘 째 날 학교 반주임도 전화로 합격되었다고 확정하였다. 이 일로 나는 수련은 엄숙하며, 추호의 흐리멍덩함이 있어서는 안 되며, 모든 것은 모두 나의 마음을 행해 왔다는 것을 정말로 느꼈다. 처음에 어머니가 나를 칭찬할 때 나에게서는 환희심이 생겼지만 나는 도리어 그것을 틀어잡고 제때에 없애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시험 치기 전에 사부님께 빌고 나서 틀렸다고 느끼고서도 제때에 안으로 자신의 집착심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고 그로부터 즉시 철저히 버린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되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 안으로 찾는 것 역시 모두 표면상으로 건성건성 찾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찾았으며, 집착심을 지니고 찾았으며, 찾았다 해도 참다운 수련을 하지 않았고, 철저히 수련해 버리지 못하였다.
자신의 일사일념이 법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반드시 즉각 닦아 버려 일각도 더 남겨 두어서는 안 되며, 집착만 찾아내서는 안 되고 닦아 버리는 것이 목적이며 관건적인 것임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집착심을 내려놓고 법으로부터 제고해 올라 왔을 때엔 그야말로 “버드나무 우거지고 꽃이 만발한 곳에 또 마을이 하나 있었다.” 여기에서 사부님에 대한 감격을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대법제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고, 동시에 이 과정에 우리들더러 진정으로 제고하여 올라오게 하셨다.
여기까지 와서 나는 또 깨달았다. 비록 내가 몇 번이나 거듭되는 유혹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긴 했지만 신사신법의 정도에서는 그래도 많이 부족하였다. 우선 수험표가 맨 위에 놓인 것을 보고 마음이 그렇게도 온당하지 못하였고, 다음으로는 언니가 말한 것처럼 딸이 최근 몇 차례의 모의시험에서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비로소 마음속에 이렇듯 확고함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며, 또 한 가지는 나는 줄곧 딸이 합격되면 나는 곧 남편 및 동창에게 딸은 대법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합격된 것이니 그 따위 난잡한 사람을 찾아가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해줄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즉각 이렇게 말하지 못하고 하필이면 합격된 후에 다시 설명하려 했는가, 이런 것은 모두 잠재의식 가운데 대법에 대한 반석 같은 바른 믿음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수련인은 어떤 일을 하던 기점을 모두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데 놓아야지 자신의 이익을 만족시키는데 놓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는 도리어 이 한 점을 해내지 못하여, 일 전체는 모두 자신의 집착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는바, 이는 그야말로 대법제자인 나로 하여금 부끄럽기 그지없게 하였다.
이 일을 통하여 나는, 수련인이 봉착한 어떠한 일이던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며, 모두 우리의 심성을 제고하기 위해서임을 진정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수련과정에 반드시 제때에 자신의 일사일념을 틀어쥐어야지 약간의 가짜, 경솔함과 지체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수련인이 봉착한 어떤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정법 진행이 전면적으로 중생구도에로 있는 오늘, 나의 인식은 도리어 개인수련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이렇듯 작은 문제에서도 넘어졌으니 그야말로 수치스럽다. 바라건대 대법제자들은 나를 거울로 삼고 수련의 길에서 굽은 길을 적게 걸으며, 용맹 정진하여 공성원만(功成圆满)하길 희망한다.
문장발표 : 2011년 8월 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3/2448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