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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ㅣ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자신의 방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조사정법 중생구도의 과정에서 우리는 늘 정체적인 협력에서 구체적인 방법상의 부동한 의견과 인식이 나타나게 되는데, 여기에는 곧바로 법을 실증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실증하는가 하는 방법의 문제가 존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매 사람에게는 모두 하나의 방법이 있고, 부동한 각도와 부동한 층차에는 모두 부동한 도리와 부족이 있는데, 여러 사람이 모두 자기의 의견만을 고집한다면 어떻게 협력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어떤 때는 어느 의견을 채용하겠는가를 논쟁하다 보면 정작해야 할 일을 지체하게 되는데, 이러면 어찌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협력할 때 내려놓아야 할 것은 스스로 자아를 고집하는 관념이다. 가령 참으로 한 수련생의 완미하지 못한 건의에 따라 한다고 하더라도 모두들 함께 협력하여 부족을 보완한다면 일을 성사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사부님 요구대로 자아를 내려놓았고, 심성이 제고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심성이 얼마 높으면 공이 얼마 높게 된다.” (轉法輪) 우리의 심태도 일정한 층차에서 법의 요구에 도달한 것이고, 우리가 하려는 일도 필히 성공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때 사부님 요구대로 안을 향해 찾아보고 사람의 관념을 내려놓으면 실증하게 되는 것은 법이다. 만약 반대로 우리 모두가 자기 의견을 고집하고 자신의 방법이 어떻게 무슨 일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 여기면서 타인과 협력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은 자신을 실증하는 방법이며 근본 상에서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성으로 해낸 일들은 사람의 층차 면에서이든 어느 방법으로 보든지를 막론하고 완미하지 못한 것이다. 심성이 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 하면 해낸 일은 자연히 법을 실증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방법 자체가 만약 완벽하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묵묵히 협력할 수 있고 묵묵히 보완할 수 있다면, 이 과정은 바로 우리가 사(私)를 포기하고 개인 관념을 포기하는 과정이며, 법의 기점에 선 것으로서, 위하고자 하는 것은 세인을 구하는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지, 자아에 집착하거나 사물의 표면에 빠져 문제를 보는 것은 아니다.우리가 신의 사유경지와 각도로 법을 인식하고 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중생이 구원될 희망은 클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지적해 주기를 삼가 바란다.

문장발표 : 2011년 6월 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23/2428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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