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부터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10여년이 된다. 이 10여 년 동안 대법이 내 몸에서 펼쳐 보인 신기한 변화를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만일 대법이 없었다면 나와 나의 어린 딸들은 이미 황천길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내 몸은 마치 구름 위에서 걷는 듯 가벼웠으며 내 신체에서 일어난 변화와 미묘한 체험을 한 마디로 다 말할 수 없다. 나는 법공부를 열심히 함에 따라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절실히 느끼면서 자신이 몸소 겪은 신기한 일들을 쓰려고 생각했지만 지식이 짧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1. 절망 속에서 새 희망을 보다
1996년 파룬궁 수련을 하기 전, 나는 요추디스크, 허리근육 손상,골질증식 등 질병에 시달렸다. 또 시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전에 나는 대뇌에 충격을 받아 두피가 마비되는 병을 얻었는데 사고를 잘 할 수 없어 바보 같았다. 이후에는 또 방광염과 만성 맹장염에 걸렸다. 원래 명랑하던 내 성격은 과묵해 졌으며 신체상 고통은 이미 절망의 변두리에 달했고 정신적 고통을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편까지 세상을 뜨자 가정의 모든 짐이 큰 산처럼 나를 짓눌러 나는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나는 살아갈 용기마저 잃었다. 나는 두 딸을 데리고 이 인간세상을 떠나 철저히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린 두 딸의 앳된 얼굴을 바라볼 때면 나는 남몰래 피눈물을 삼켰다. “하늘이여, 왜 나에게 이처럼 큰 고통을 주었나요? 나는 어떻게 저 아이들을 키우고 학교에 보낼까요? 우리들 살길은 어디에 있나요?”
내 그 기구한 지난 인생,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 지난날의 갖가지 일들을 생각하면 슬프고 처량하기만 하다.
1996년, 나는 대법을 만났다. 파룬궁의 수련지침서 ‘전법륜(轉法輪)’을 펼쳐 첫 페이지의 ‘논어’를 읽는 순간 나는 감격해 눈물을 삼켰다.
그날 저녁 잠이 들까 말까 하는 몽롱한 상태에서 나는 큰손이 내 허리를 움켜쥐는 것을 느꼈다. 나는 놀라 눈을 번쩍 떴는데 머리맡에 크고 웅장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 두 눈을 꼭 감았다. 그 때 나는 법을 배우는 초창기였기에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청리해 주고 계신다는 것을 몰랐다.
하루는 내가 ‘전법륜’을 공부하는데 책속에서 사부님 법신이 나타났다. 그리고 파란색 파룬이 내 몸과 머리 위에서 재빨리 돌고 있었으며 집안에는 오색영롱한 채색 띠가 파도처럼 너울거렸다.
그날 저녁, 나는 배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살면서그렇게 아파 본적이 없었다. 나는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나는 고통을 참으면서 옷을 챙겨 입었다. 곤히 잠자고 있는 딸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찌릿했다. 불쌍한 것들, 엄마마저 너희들을 버리고 가야할 것 같구나. 나는 딸들의 옷을 차곡차곡 개어 딸들 머리맡에 놓았다.
날이 밝자 배가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등에 큰 산을 짊어진 것처럼 무거워 몸을 어디에 기댈지 몰랐다. 온 하루를 이렇게 시달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법공부를 계속했다.
하루가 지나자 나는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했다. 천근 되는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몸이 가벼워 길을 걸어도 날 것 같았다. 이후에 나는 법공부를 하면서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정화해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여러 해 되는 병 뿌리를 이틀 동안에 다 뽑아 주셨다. 사부님의 홍은을 그 무엇으로 다 갚으랴!
나는 법을 학습하면서 많은 법리를 깨달았다. 꿈속에서 특별한 꽃 정자와 누각을 보았는데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실속 있게 수련하라고 점화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년의 윤회와 만년의 기다림 속에서 무수한 풍파를 겪으며 끝내 오늘 이 법을 만났다. 나는 나의 사명을 똑똑히 알고 있다. 나는 꼭 조사정법(助師正法)과 구도중생(救度衆生)의 사명을 완성하겠다.
꿈속에서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누구에게도 지나친 기대를 하지 말고 자기 상처를 스스로 처치하라고 하셨다. 깨어난 후 나는 사부님의 점화에 감사를 드렸다. 나는 내 힘으로 두 딸을 키웠다. 지금 딸들은 모두 대학을 다니고 있다.
나의 매 걸음마다 사부님의 점화와 보우가 있었다. 만일 사부님의 구도가 없었다면 나는 이10여년을 어떻게 지나왔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2.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다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시작했다. 질병에 시달리는 그처럼 많은 사람을 고통에서 구해 주었고, 그처럼 많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 이 사회에 많은 이로움을 주었을 뿐 추호의 해로움을 주지 않은 파룬궁을 왜 수련하게 못하는지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박해가 시작됐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수련생 친구들이 자신들의 신변 위험을 무릅쓰고 나에게 진상전단지와 소책자, 그리고 포스터를 갖다 주었다. 나는 저녁마다 두 딸을 데리고 집집마다 전단지를 붙였다. 그때 우리는 도시에 살았다. 큰길가의 가로등은 아주 밝았는데 길 양쪽의 전봇대에는 내 두 딸이 붙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다)’란 포스터가 유난히 빛을 뿜고 있었다. 내가 전봇대 앞에 가서 사람들의 시선을 막으면 두 딸이 곧 포스터를 붙였다. 이후에 나는 시골로 이사하고 딸들이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자 나는 수련생 친구들과 함께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나는 내가 어디에 가든 그곳에는 꼭 내가 진상을 알려줘야 할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는 나와 인연 있는 사람들을 나에게 보내주셨고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누구를 만나든 권했는데 상황을 잘 파악했기에 특수 상황 외에는 한사람도 놓치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2월 14일, 나의 모친이 세상을 뜬 그날 저녁, 바람이 아주 세차게 불었는데 7~8급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내일은 좋은 날씨이기를 간절히 바랬다. 파룬궁 진상을 듣지 못하고 삼퇴를 하지 못한 내 친척들이 이 기회에 모두 모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튿날 아침, 밖에 나가 보니 날씨가 유난히 좋았다.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따스한 햇살이 살결을 어루만져 주었다. 절기로 보면 2월 날씨가 그렇게 포근할 수 없었는데 내 눈에는 저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고였다. 그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친척들까지 모두 왔다. 밥상을 차리고 식사를 할 때 나는 상마다 찾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모두 기꺼이 삼퇴를 했는데 70명이 넘었다.
3. 새 광명을 보다
수년 동안 내가 펜을 들어 이 글을 쓰지 못한 원인은 한 가지 염원을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료점은 기본적으로 모두 가정식에 속하며 도처에 꽃이 피는 식으로 다시 말하면 매 사람이 모두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라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우리 이 지역에서는 모든 진상자료를 외지 수련생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다른 수련생들에게 이처럼 큰 부담을 주는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또 자신에게는 이런 것을 완성할 능력이 없어 마음속으로 부끄럽기만 했다. 오늘에야 나는 만발한 백화 중에서 한 떨기 작은 꽃으로 피어났다. 비록 아직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수련생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발적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나는 이 몇 년 동안 모든 위험한 상황을 돌파하면서 우리에게 제때에 모든 진상자료를 공급해 준 외지 수련생들에게 우리 지역 수련생들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당신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안정적으로 오늘 이 정도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시간을 틀어쥐고 열심히 법공부하고 착실히 수련해 사부님 따라 원만하자!
부족한 점을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6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14/2424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