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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대한 확고함은 일체의 근본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6년 9월 8일] 최근 한 수련생이 말하기를, 어떤 노 수련생이 불교의 모모경 중에 있는 현재의 반면적 예언에 대해 몹시 의심스럽다는 언급을 했으나, 자신도 그에게 어떻게 말해 줘야할 지 몰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는 말을 듣고 난 몹시 놀라웠다. 오늘날까지 대법의 길을 걸어 온 노 수련생이 이런 문제에 대해 아직도 의심이 있다니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예전에 만났던 일부 상관된 일을 연상해 보면서 이에 대한 나의 견해를 말해 보고자 한다.

세심하게 분석해 보면 법에 대해 확고하지 못한 데는 두 개의 원인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수련에 정진하지 못하고 법에 대한 성스러움과 위대함이 인식 상으로 분명하지 못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사심으로, 한 방면으로는 대법이 좋다고 여기고는 있으나 박해 속에서 생각하기를, ‘만일 잘못 걸려들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걸 잃게 될 것이다.’ 하는 생각에 자신의 일체를 감히 깨끗이 버리지 못한 채 법에 동화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후자의 경우를 본적이 있다. 7.20 이전에는 수련을 괜찮게 하던 일부 수련생이 바로 자신의 집착을 버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해 앞에서 사오 하거나 법에 대해 의심이 생겼던 것이다. 전체 우주는 정법 중에 있으므로 원래 층차의 고저와는 상관없이 법에 대한 태도만이 비로소 제일 중요한 것이며, 구세력은 바로 자신의 사심을 한사코 버리려 하지 않는 것을 틀어잡고 정법을 좌우지 하려하고 도태되게 하려고 한다. 이처럼 대법을 순정한 심태로 대하지 못 한다면 모두 위험한 것이다.

나는 7.20 이전 수련할 때를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법에 용해되다’ 란 법리를 ‘스위스 법회에서의 설법’ 에서 말씀 하셨다. “사람이 이렇게 큰 법 중에서 용해되는데, 내가 예를 들자면 마치 하나의 용광로처럼 만약 하나의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져 들어가면 나무 부스러기 하나를 순식간에 당신은 그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당시 수련생과 교류할 때 어떤 수련생은 이런 방식으로 수련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즉 바다에서 물 한 통을 길어다 천천히 자신을 씻는데, 그는 바다에 뛰어들어 그 속에 잠기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수련이 늦을 뿐만 아니라 또 사심이 있게 되고 무조건적으로 법에 동화되지 못하는 것이다. 바다에 뛰어들어 바다와 일체가 된다면 몸의 때도 자연적으로 없어지기 마련이다. 오늘의 역사는 이미 신.구 우주가 교체되는 대목에 이르렀고, 모든 구우주의 불순한 요소를 모두 신우주로 지니고 갈 수 없다. 법에 대한 확고함이란, 내가 이해한 바로는 무조건적으로 대법에 동화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오직 이러해야만 정법 진행을 따라갈 수 있고, 끝까지 수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에 대법을 떠날 것이다. 예전에 잘 아는 한 수련생이 정법 노정을 따라서지 못한 까닭에 격차가 갈수록 멀어졌고, 계속해서 따라잡기 어렵게 되자 이제는 도저히 걸어 나가기 힘들다고 여기거나, 심지어 대법을 믿지 않게 되었다. 교훈은 매우 많으므로 우리는 이 방면에서 반드시 각성이 있어야 하겠다.

어떤 수련생은 늘 일부 반면적인 정보를 받게 되는데, 마음을 조용히 하고 이 방면에서 인식이 분명하지 못한 곳이 있지 않은 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 것들이 늘 당신의 의심이나 약점을 겨냥하고 오겠는가. 수련 가운데는 늘 각종 마난, 교란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가 걸어올 수 있은 것은 바로 사부님과 법에 대한 바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련의 이 길에서 바른 믿음이 확고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끝까지 걸어갈 수 있으며, 사부님의 정법 진행을 바짝 따를 수 있고, 걸을수록 청성해 질 것이며, 걸을수록 확고해 질 것이다.

나는 대법에 들어서기 전, 줄곧 우주와 인생의 참 뜻을 찾아 헤매며 십여 년 동안 각종 유파의 철학과 기공, 전통 문화에 대해 탐색하였다. 진법과 고명한 사부를 찾지 못 해 유감과 실망을 느끼다가 다행히도 대법을 만난 것이다. 나는 서점에서 ‘전법륜(轉法輪)’ 이 책을 보았던 것이다. 내가 첫 눈에 이 책을 보았을 때 그야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온 몸에 전율을 느꼈는데 아주 강렬하였고, 표면 사상 중의 반영은 엄청난 놀라움이었다. 이곳에 뜻밖에도 이같이 신기한 책이 있었던 것이다. 그 즉시 책을 구입한 후 단숨에 읽어 10여 시간 만에 모두 읽었다. 얼마나 많은 천고의 수수께끼, 수련계와 기공계에서 누구도 분명히 말할 수 없는 문제, 수련 중의 연루되는 모든 문제들을 책 속에서는 모두 분명이 말하였다. 수련을 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갖게 되었으니 모든 것을 다 구비한 것이다. 나머지 일이란 바로 용맹정진 하고 참답게 수련하는 문제이다.

나는 1998년 겨울방학을 거의 전부 수련생과 함께 홍법하였다. 이렇게 한 동안은 수련에 무척 정진 하였다. 어느 날 저녁 가부좌하고 정공을 연마할 때 본 것인데, 내가 천국세계에서 하세 할 준비를 하면서 법을 얻을 때의 정경을 절실하게 감수 하였다. 아마 그 때에 사부님께서 내가 있는 그 한 층의 세계로 오셨을 것이다. 진귀한 법이 탑 꼭대기에서 반짝반짝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때 마음속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얻으려면 무수한 고생을 겪어야 한다.” 나는 의연하게 머리위의 왕관을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는데 이는 인간 세상으로 하세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때 내 옆에 있던 여신이 놀라워하며 내게 말하였다. “당신 미쳤어요!” 그것은 미혹의 세간 속으로 내려가는 것이며, 만약 돌아오는데 성공하지 못 한다면 영원히 돌아올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전반 가부좌 과정에서 나의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흘렸다. 우리는 천만 년 전세를 지나오면서 온갖 고생과 위험을 다 겪으면서 겨우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대법을 전하시는 것을 기다려 낸 것이다. 이처럼 귀중한 법을 얻었는데 어찌 아직도 법에 대해 확고하지 못하며, 어찌 모두 다시는 있을 수 없는 그런 기연을 영원히 잃을 수 있겠는가.

한 수련생이 나에게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7.20이 막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대법에 갓 들어온 여자수련생이 있었는데, 근기가 아주 괜찮아 얼마 안 되어 많은 공능이 나왔고, 천목도 상당히 높은 층차로 열렸다. 하지만 각종 중공의 매체가 함부로 대법을 모독하는 날조를 믿게 되고, 사부님에 대해 의심이 생겨나서 수련을 그만 두었다. 그녀는 말하였다. “정말 신통하다, ‘수련하지 않겠다.’고 말 하자마자 ‘파룬’ 이 즉각 체내에서 날아 나가는 것이 보였다.” 수련이란 총명하게 해야지 얼떨떨하게 해서는 안 된다. 부처가 있으면 마가 있게 마련이고, 마가 천방백계(千方百計)로 파괴하려 드는데, 부처 수련하려는 수련자는 마음이 바로 이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당시 이 수련생을 보았을 때 아주 선량해 보이고 근기도 무척 좋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후에 줄곧 만나지 못하였다. 만약 이 때문에 기연을 잃는다면 그건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인가. 또 한 수련생은 몇 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위 환경의 교란으로 법공부를 하지 않았고 스스로 포기해 버리고는 다른 것을 수련하러 갔다. 원인이란 놀랍게도 박해 중에 굴복했던 수련생이 후에 다시 대법으로 들어간 것을 보고, 그들이 자기에게 준 상처를 늘 마음속에 두고 자신에 대해 불공평했다고 여기고는 수련을 포기하였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예전의 설법에서 재삼 말씀하셨는바, 법에 대한 확고함은 몹시 중요하다고 하셨다. 법에 대한 확고함은 총명한 지혜와 이성적인 인식에서 오며, 참다운 수련[實修] 가운데서 얻은 바른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다. 진수 제자는 참다운 수련 과정에서, 정진하는 과정에서, 층층의 법리는 진실하게 펼쳐질 것이며, 자신은 착실하게 제고되고 있으며, 수많은 집착들이 갈수록 자신과 멀어지고, 자신의 사상 경지는 갈수록 속인과 멀어진다는 것을 절실하게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닫혀서 수련하는 수련생에게도 마찬가지로 절실한 체험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법에 대한 자신의 확고함과 수련의 신심을 강화해 줄 것이다.

정법 수련시기의 대법제자가 직면한 것은 말세(末世)의 사악이 다 모아놓은 유혹과 기만, 구세력의 파괴적인 고험이다.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는 집착, 심성상의 누락은 모두 구세력에 의해 더 크게 확대될 것이며, 박해의 구실로 될 것이다. 만약 법에 대한 확고함의 문제에서 인식이 분명하지 못하다면 구세력은 끊임없이 가상을 만들어 낼 것이며, 자심생마(自心生魔)한 그것처럼 되게 하여 나중에는 벗어나지 못하고 기연을 잃고 말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한 노 수련생이 불교의 모모경 중의 현재의 반면적 예언에 대해 몹시 의심스러워했다고 한 이 자체가 이미 법에 대해 확고하지 못한 문제와 결부되므로 마땅히 자세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구우주 중에는 상생상극의 이치가 있고, 정면적인 예언이 있는데, 반면적인 것도 와서 교란을 하지 않을까. 만약 이것에 집착한다면 하는 말이 마치 보다 좀 더 정확한 것 같고, 집착심을 지닌 자들이 보건대 더 ‘정확한’ 것 같은 반면적 예언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그래, 이것 때문에 자신이 줄곧 걸어왔던 수련실천을 부정하고, 생명 본성의 부름을 무시한단 말인가? 일단 마음을 법으로 귀정하지 못하게 될 때면 아주 쉽게 마에게 이끌려 잘못된 길로 들어갈 것이다. 모든 것은 모두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나, 이 모든 것은 진정한 수련자 앞에서는 어떠한 작용도 발생하지 못한다. 이 방면에서의 집착이 없다면 당신을 교란하는 이 방면에서의 교란이 없을 것이며, 연화된 모든 가상도 멈추어 버릴 것이다.

문장발표 : 2006년 9월 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9/8/1373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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