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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기연:대법제자는 션윈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글/미국대법제자

[밍후이왕]

션윈(神韻)항목은 2006년 성탄기관(聖誕奇觀 Holiday Wonders)부터 시작해 사존(師尊)께서 친히 여러분을 이끌고 계신다. 션윈을 널리 보급하게 된 이래 매년 여러분들은 모두 바쁜 와중에 수년간 진정으로 냉정하게 생각하고 진정으로 법(法)에서 깨달을 기회가 아주 적었을 것이다.

최근 션윈을 알리는데 대한 동수들의 각종 교류를 보고 나 역시 자신의 현재 견해를 말해보고자 한다.

아주 많은 동수들은 사실 모두 진정으로 션윈의 의의를 인식하지 못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거나, 과정 중에서 적당히 대처하거나, 자아에 집착하거나, 수련을 느슨히 하며,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아예 참여하지 않거나 또는 각종 회의적인 견해를 품는 등등이다.

대법제자는 스스로 조사정법(助師正法)을 위해 왔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사부님께서 공개적인 장소이건 아니면 사적인 장소에서 하신 설법이건 마땅히 에누리하지 말고 철저히 따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필경 신(神)의 모습으로 세상에 행하시진 않지만 인간세상의 일체는 마땅히 대법제자를 미혹시킬 수 없어야 한다.

중국 국내의 대법제자들은 비록 사존을 뵐 수 없지만 사존께서 하신 매 한 구절의 말씀, 매 한 구절의 법을 그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사존의 말씀을 자신의 목숨과 같이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해외대법제자들은 아주 큰 정도 여전히 그리 중시하지 못한다. 사실 사존을 뵐 수 있다면 사존을 뵌 그 시각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속세의 일체를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법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모두 대법을 위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사존께서는 모종의 특정한 방식으로 션윈을 꾸리시려 하는데 여러분도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만약 매 대법제자가 모두 마음속으로부터 이 기본적인 문제에 대답할 수 있다면 매표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대법제자는 조사정법(助師正法)을 발원(發願)했기 때문에 오늘날 비로소 이 세상에 태어날 자격을 얻은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하는 일체는 또 마땅히 무엇을 중심으로 해야 하는가? 역사적으로 우리는 법을 얻기 위해 목을 잘린 적도 있고 또 아주 많은 고생을 겪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우리가 천만년을 기다려온 기연(機緣)이 도래한 것으로 대법이 널리 전해지고 중생을 구도하며 마침내 우리가 자신의 서약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대법제자가 오늘 또 무엇을 기다린단 말인가? 무엇을 주저하는가? 무엇에 집착하는가? 만약 우리가 사전의 서약에 따라 중생을 구도하지 못한다면 그럼 서약을 위반한 후과(後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필경 수련 중의 사람이라 사람마음이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필경 우리는 법을 얻은 대법제자가 아닌가, 어찌 속인과 마찬가지로 세간의 무엇에 집착하고 미혹되어 자신의 홍대한 서원과 본분을 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정법이 오늘에 이르러 우리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다행히 사부님의 최근 설법을 들을 수 있었는데 개인적인 깨달음은 매 공연장에서 만약 하나라도 빈 좌석이 있다면 그럼 대법제자는 구도 받지 못한 그 중생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대법제자로서 자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구도 받을 수 없게 된 중생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또 만약 세인들이 매표하는 돈을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표값을 할인하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 중생이 극장에 오기도 전에 대법에 빚을 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하자면 오직 공연을 개최하기만 한다면 요구는 바로 원래 가격대로 만석을 채우는 것이다.

전에 한 수련생이 매 좌석마다 관객이 정해져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는 잘 깨달은 것으로 지금에 와서야 진실로 이와 같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사부님께서는 왜 우리가 극장을 계약한 후 매 하나의 좌석에 구도 받을 한 생명을 배치하시는 것일까? 개인적인 인식으로는 이는 그 속에 중생에 대한 사부님의 자비가 체현된 것이자 대법제자에 대한 신임을 체현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제자는 진정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거나 혹은 그것은 실현하기 어려운 바람이라고만 여기고 실천 중에서 정말로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다. 더욱 심한 사람은 매표상황이 좋지 않을 때 자신은 이미 마음을 써서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한다. 만약 정말 마음을 써서 최선을 다했다면 마땅히 만석을 채우고 단 자리로 빈 좌석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우리의 표현이 사존의 바람과 중생의 기대에 떳떳하단 말인가?

정법 중에서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를 구도하기 위해, 중생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셨는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 법을 얻은 대법제자는 대궁(大穹)을 구하시려는 사존의 바람을 실현시키기 위해, 서약을 실현하기 위해 마땅히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중생의 생명을 구도하기 위해 일체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우리가 하는 과정 중에 많은 때 피동적으로 대처하거나 혹은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서 했다. 혹은 션윈이 시작된 후 긴장된 매표 속에 황망히 들어가느라 무엇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실 많은 동수들은 어떻게 표를 팔며 어떻게 협찬을 얻을 수 있는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중생을 구도하려는 순정한 심태를 지니고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교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일을 하는 심태가 바르지 않으니 이 역시 매표가 이상적으로 되지 못한 중요한 원인의 하나이다. 어떤 수련생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션윈이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도 하고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수련생은 모두 ‘진선인(眞善忍)’을 알고 있지만 그럼 왜 또 과위의 높고 낮음이 있고 또 수련성취하고 못하는 것이 있는가? 션윈이 사람을 구하는 것을 알고 나 역시 참여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가 어떻게 션윈을 인식할 것인가는 어떻게 근본적으로 대법, 정법, 수련, 구인(救人)을 인식할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절대로 기만하거나 흐리멍덩하게 하여 속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정 중에서 매 하나 대법제자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을 신은 모두 볼 수 있고 또한 장차 우주의 역사 중에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주 중생에게 어떤 역사를 남겨주려 하는가?

정법이 오늘에 이르러 대법제자는 단지 걸어 나와 한 사람 혹은 몇 사람만을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잘해야 한다. 미래 대궁의 주위(主位)를 성취할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중생을 구도할 능력이 있으며 우리는 또 궁체(穹體)의 일체를 위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역사상 사부님과 연을 맺는 과정 중에서 사부님을 위해 우리는 분신쇄골(粉身碎骨)하는 것조차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늘에 이르러 사존께 대한 서약과 중생의 생명을 실현시키기 위해 우리가 또 집착하고 남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2012년 순회공연 매표가 곧 시작될 것이다. 우리 매 대법제자는 모두 사부님께 만족스러운 답안을 제출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수련을 느슨히 하여 중생이 구도 받을 기회를 잃게 했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부님께 떳떳하고 우리에게 생명의 희망을 기탁하고 인간 세상에 내려온 중생들에게 떳떳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자신이 세상에 내려올 때의 서원에 대해 떳떳할 수 있겠는가?

(English Translation: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11/6/10/125933p.html )
문장발표 : 2011년 6월 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7/24206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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