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1년 7월 8일 밍후이왕에 발표된 《무엇이 진정한 선인가》라는 문장에 사부님께서 평어를 달아 주셨다. 문장에서는 차에 부딪힌 사건을 법 중에서 정확히 인식해서 자신과 세인의 관념을 바른 길로 돌려세워 오해와 분쟁을 제거한 실례를 열거하였다. 또한 “우리의 일언일행은 중생, 사회, 모든 바른 요소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심각하게 인식하였다. 우리의 잘못으로 그들의 생명에 업력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미래의 인류 사회에는 이런 변이된 사상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선은 어떠한 사적인 생각도 지니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고, 이 생명의 영원을 위해 중생과 우주를 영원에 이르기까지 배려해야 한다. 이런 선의 역량으로저항과 나쁜 의도는 모두 녹아 없어질 것이고, 어떠한 변이든지 모두 귀정될 것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구세력이 구원될 사람을 빼앗아가는 이 관건적인 시각에 우리 지역의 일부 노인 수련생에게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 일부 손해를 발생시켰다. 이런 손해를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선인가에 대하여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수련생 A는 이미 퇴직하였고,남편이 세상을 뜬 후 무슨 방식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을 아들에게 주었다. 퇴직금은 매 달 1200여 위안인데,8백 위안은 딸의 주택구입 융자금으로 나가고 나머지 4백 위안을 자기 생활에 썼다. 자식들이 대법에 정확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집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수련을 하지 못하고 일정한 거처도 없이 유랑 생활을하면서 자식들의 통제를 받았다. 이 수련생은 무척 정진하였고 세 가지 일도 아주 잘 했다. 시골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였고, 거센 비바람에도 대면진상으로 삼퇴를 권했다. 하지만 금년 4월 초순에 그녀는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수련생 B와 남편은 아껴 먹고, 아껴 쓰며, 자신들에게는 무척 각박하면서도 작은 아들과 함께 살면서 모든 생활비와 가사일을 자신들이 감당하였다. 큰 아들의 아이가 대학을 다닌 4년 동안 학비를 그녀가 부담해서 모두 7,8만 위안을 썼고, 졸업 후 출국한다고 또 4만 위안을 가져갔다. 큰 손자가 연속 두 노인의 돈을 십만 위안 넘게 썼고 그들의 저금을 거의 모두 써 버렸다. B 수련생은 몇 년 전에 시골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사악에게 잡혀 3년 징역을 살았고 감옥에서 박해로 두 눈이 실명되었다. 집에 돌아온 후 아들과 남편의 통제로 수련생과 접촉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고 몸에는 때때로 병업상태가 나타나 몹시 불편하였다.
수련생 C와 남편은 둘 다 수련을 하고, 사부님과 법을 확고히 믿었으며, 대법에 많은 것을 지불하였다. 두 사람은 70이 넘었지만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은 늘 그들 집에 와서 먹고 마셨고 밥은 늘 늙은이가 하였다. 지난 해 C는 아랫배에 혹이 자라 수술을 하였고, 남편은 금년 초에 엘리베이터에서 넘어져 계단 아래까지 뒹굴어 떨어졌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결과가 어떠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중국 고대 문화에 따르면 자식은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현재 중국 사람들은 중공사당의 무신론 영향을 받아 중국 전통의 도덕윤리를 모두 잊었고 사상이 모두 변이되었다. 노인이 거꾸로 자손에게 ‘효도’해야 하는 것이 현재 중국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되었다. 이상의 몇 수련생은 모두 70세 전후의 노인들인데 자신들이 아껴 모은 돈 대부분을 자손들이 써 버렸다. 이렇게 하면 자식들은 좋은 것만 먹으려 하고, 게을러지며, 놀음만 탐내는 나쁜 버릇이 생기게 되고, 이것은 사람 이 층에서의 이치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속담에서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면 아이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지나친 사랑은 아이를 해치는 게 아닌가?
사실 수련인은 사람에게 각자의 운명이 있으며, 자신의 복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이에게 잘 대해주라는 것은 돈을 주어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대각자들이 보건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되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든지 그는 겪는 고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며 빚을 다그쳐 갚는다고 여기는데, 그는 바로 이런 생각이다.”(『전법륜』) 속인들도 “자식이 잘 되게 하려면 고생을 좀 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사람이 고생을 좀 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의 돈은 대법자원에 속하는데, 당신이 자식에게 주어 써 버릴 때 당신은 생각해 보았는가? 당신이 준 것이 좋은 물건인가? 수련생 B는 생생한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녀는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였는데 집에는 계단이 두 개 있었고 계단 위에는 석탄이 있었다. 그녀는 큰 덩이를 골라 한 곳에 모아두었다가 자신이 쓰고, 작은 부스러기는 광주리에 담아 큰 아들에게 보내주려 하였다. 후에 동수와 교류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원래 아이에게 준 돈은 좋은 물건인 게 아니라 모두 흑색 물질로서 아이에게 업력을 증가시켜 준 것이었다.
수련인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착하고, 인내(忍)해야 하며, 쟁투해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수련생이 있다. 그래서 자식과 수련하지 않는 가족에게 백방으로 타협하고 이것을 선이라고 여긴다. 결국 자식과 가족의 통제를 받게 되고 신체의 자유가 없어지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수련할 환경조차 없어지게 만든다. “참는다(忍)는 것은 연약한 것이 아니고, 거스르는 것을 그저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이 더욱 아니다”(『정진요지2』「더는 참을 수 없다」) 대법제자의 몸에서는 마땅히 대법의 위엄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이런 변이된 사상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가족이 업을 짓게 되고, 이것은 가족을 책임지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며 조사정법의 위대한 사명을 짊어졌으므로 수련 가운데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럼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무엇이 진정한 선인가? “가족은, 당신이 그더러 수련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가장 좋으며, 그가 수련할 수 없더라도 당신 또한 그가 구도 받을 생명이 되게 해야 하며, 최저한 하나의 좋은 사람으로 되게 해야만, 그가 비로소 복을 받을 수 있다.(『맨하턴 설법』) 동수들께서는 여러 해 동안의 수련 중에서 대법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이 법은 우리의 생명을 승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수련을 통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여 가족들을 수련으로 들어서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만약 가족이 수련으로 들어올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이 장차 수련에 들어설 수 있는 기초를 다져 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족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고 진정으로 선을 책임지는 것이다.
신변의 동수들에게 이런 저런 번거로움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몹시 조급하다. 지금 개인 인식을 동수들과 교류하려는 것이니 옳지 않는 곳이 있다면 동수들께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발표 : 2011년 4월 2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4/27/2396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