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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로부터 생각한 것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주간》의 《우리 자신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란 문장을 읽고 나서 상당히 감촉이 있었다. 나 자신이 겪었던 한 가지 일을 생각하고, 또 우리가 수련생을 도와 병마를 제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연상해 보면서 글로 적어 동수와 교류하고자 한다.

몇 년 전, 가족이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당했을 뿐만 아니라 전문 감시하는 사람을 세워놓았다. 나는 즉시 동수들에게 우리 집에 오지 말며 모두들 가족에게 발정념 하라고 통지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때 나는 병업 마난에 있던 중이라서 집에서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면 없는 번호이거나 틀린 번호라서 모두 연결되지 않았다. 전화가 통하지 않을수록 나의 마음은 더 조급해졌고, 거의 하루 반을 걸어도 동수 한 사람도 연결할 수 없었다. 절망할 즈음에 홀연 머리속에 사부님의 말씀이 나타났다. “한 부처가 손을 한 번 휘저으면, 전 인류의 병이 모두 없어지는데” (『전법륜(转法轮)』) 나는 생각하였다. 난 아직 부처로 수련성취 하지 못하였으니 전 인류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지만 조그마한 하나의 세뇌반 문제, 가족 동수 한 사람의 문제만은 나 자신이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동수들에게 의지할 생각만 하는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의 마음은 조용해졌고 전화를 걸지 않고 앉아서 가족 수련생을 박해하는 일체 사악을 해체한다는 발정념을 하였다.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발정념하는 그 시각, 초인종이 울렸다. 우리 집에 자주 오지 않으며, 미행하는 사람이 전혀 모르는 외지 수련생이 뜻밖에 찾아온 것이었다. 우리 집 문 앞을 지나다 나를 보고 싶어 들렀다는 것이다. 그녀는 즉시 소식을 다른 수련생에게 전해 주었다. 이리하여 수련생들의 안전 문제가 해결되었고, 정체적인 발정념으로 가족 수련생을 구출하는 행동이 시작 되었다. 가족 동수도 재빨리 구출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과정은 그 당시에 보기는 아주 자연스럽고 아주 우연한 것 같았지만, 되돌아 자세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다 우연한 것이 아니었고, 사부님께서 줄곧 나를 도와주셨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확실히 시시각각 모두 나의 곁에 계셨던 것이다. 내 마음이 불타는 듯 조급하여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밖으로 구하면서 자신은 연공인이며, 공능도 있고 신통도 있다는 것을 잊었을 때, 사부님께서는 보시고 조급하시어 법을 나의 머리 속에 넣어주시고 나 스스로 깨닫게 하셨던 것이다. 내가 깨달으니 정념이 나왔다. 비록 그 일념이 아직 그다지 강대하고 순정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법 속으로 돌아온 셈이다. 사부님께서는 즉각 교묘한 안배를 하시어 보기에 도무지 해결이 안될 것 같은 문제를 즉각 해결되게 하셨다. 일체 모두는 사부님께서 하셨지만, 위덕을 건립할 기회와 위덕을 사부님께서는 모두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우리 자신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 스스로 위험을 해제할 수 있는가?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무엇에 의거하는가? 정념에 의거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간곡히 알려 주셨다. “정념 중에서 대법과 당신들이 같이 있는데, 이는 거대한 보장이다. 정념이 부족해 법에 부합되지 않을 때는 법의 힘에서 이탈할 것인데, 고립되어 도움을 받지 못할 것 같이 보인다. 설령 대법의 일을 하더라도, 법에 부합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법의 힘이 없게 된다.”(『맨해튼설법』)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 자신의 정념이 부족한 탓으로 자그마한 한 가지 일에 사부님께서 심혈을 얼마나 소모하셨는가!

이로부터 또 수련생을 도와 병마를 제거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 문제에서 나는 우리에게 그릇된 구역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보통 모두 발정념으로 동수에게 병업 박해를 진행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 주는 것을 무척 중시한다.(물론 이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도리어 수련생을 도와 안에서 찾아보고 집착을 버리며, 정념을 수립하는 것은 홀시한다. 여러 사람이 도와주어 발정념 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난 중의 수련생을 도와 정념을 수립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요구하는 것이면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전법륜(转法轮)』)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보통 병업 가상의 마난이 큰 수련생은 많이는 심성 상에서 비교적 큰 누락이 있거나 비자각적으로 병이라고 승인하면서 정확히 대하지 못한 탓으로 사악이 틈을 탄 것이다. 본인이 병이라고 승인하고 정념이 부족하여 다른 동수의 발정념 도움에만 의거하려 해서는 효과가 이상적이 못되고 효과가 이상적이라 해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정념은 어디에서 오는가? 법에서 온다. 때문에 마난 중의 동수와 함께 법공부를 견지해야 하고 수련생을 도와 심성을 제고해 주며, 일사일념 모두를 법 속으로 귀정시키는 것은 수련생을 도와 병업 가상의 마난에서 벗어나는 가장 중요한 방면이고 또한 가장 유효한 방법이기도 하다. 어떤 수련생은 병마에 시달려 극도에 도달했을 때 신사신법에 의거하고 마음을 끝까지 내려놓는 정념에 의거해 자기 혼자 이겨내지 않았는가!

나 자신에게도 깊은 체험이 있다. 몇 년 전 나에게 갑자기 아주 엄중한 병업 가상의 마난이 나타났는데, 동수들은 나를 도와 발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여, 당시 신체 회복이 비교적 빨랐다. 하지만 후에 줄곧 자주 반복되면서 진전이 느렸다. 나 자신은 부단히 안으로 찾고 부단히 집착을 버렸지만 그래도 완전히 정상으로 될 수 없었다.

안으로 원인을 찾아보았다. 수련생이 나를 위해 발정념할 때엔 나의 심성이 그래도 당시에 처한 층차 요구에 부합되고 아직 정념이 있었으므로 사부님께서 관할하시어 회복이 빨랐다. 더 계속하여 초상적으로 회복되려면 더 강대한 정념, 더 높은 심성이 요구되는데, 다시 말해서 끊임없는 층차 제고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어떠했는가. 법 공부가 따라가지 못하고 마음에 닿지 못했으며, 심성은 제때에 제고되지 못하고 여전히 수련생이 자신을 정념이 강하다고 칭찬하는 그 기쁨 속에 묻혀있어 병업 가상의 상태가 부단히 반복되게 하여 자신으로 하여금 부지불식간에 적지 않은 속인의 병에 관한 관념을 인정하고, 박해를 승인하는 전제 하에서 박해를 반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병마의 박해에서 철저히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가령 당시 법 공부가 마음에 닿게 하는 것을 견지하고 일마다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며, 자신의 일사일념을 귀정하는데 주의하고, 부단히 법에서 제고하여 정념정행 했었더라면 틀림없이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한 노인 수련생이 구세력의 박해로 병이 위급하게 되었다. 그때 사람은 아직 청성하였다. 적지 않은 동수들이 둘러서서 발정념 하였는데 발정념 하기만 하면 호전되었으나 이튿날이면 또 중해졌다가 또 발정념 하면 또 나아지고 이튿날이면 또 엄중해졌다. 이 노인 수련생은 장기적으로 병업 가상의 박해 속에 처해 있었고, 신사신법도 하였다. 하지만 동수들은 모두 이 수련생이 줄곧 그의 병을 놓지 못하고 내심 깊은 곳은 자각적이 아니게 병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모두들 또한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병업 마난이 지나간 후 반드시 그녀를 잘 도와주어 내심 깊은 곳으로부터 귀정하게 해야겠다, 그러나 가슴 아픈 것은 이 수련생이 떠나간 것이다. 더는 다시 ‘이후’라는 기회가 없게 되었다! 주변의 그다지 정진하지 않는 수련생들과 잘 아는 세인에게 아주 좋지 않은 부면 영향을 조성했다.

가령 이 수련생이 병이 위급한 5,6일 사이에 모두가 그녀와 함께 법공부를 견지하고 그를 도와 안에서 찾아보며 끊임없이 그녀에게 병이 있다는 관념을 층층으로 심입되게 제거해 주고 그녀의 정념을 불러 일으켰더라면, 동시에 그를 둘러싸고 발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했었더라면, 병마에 박해당하는 나쁜 일이 다시 한 번 대법의 위력을 인간에 펼쳐 보이고 주위의 사람을 구도하는 크게 좋은 일로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난 중에 처한 수련생의 정념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정념에 동수들의 정념의 협력을 가한다면 신적이 나타날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사부님 정법은 이미 마무리에 다가섰으므로 우리는 더더욱 정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최후일수록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도 더 높고, 더 엄격하기 때문이다. 가령 예전에는 병업 가상의 박해를 부정하는데 3몫, 5몫의 정념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8몫, 10몫 심지어 12몫의 정념이 있어야 될 수 있다. 대법제자는 수련 중에서 부단히 층차를 제고하고 부단히 정념을 강화, 강화, 또 강화해야지 장기적으로 한 층차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법 형세는 끊임없이 앞으로 추진되고 있으므로, 대법제자의 심성도 끊임없이 제고돼야 하고 정념도 끊임없이 제고돼야만 정법 진행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수련 또한 물을 거슬러서 배를 몰 듯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하기 마련이다!

조그마한 체험이니 부당한 곳은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1년 3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26/由《我们自己能不能保护自己》所想到的-238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