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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작품ㅣ 사악이 본래 나를 불법판결 하려 했다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7년 정월부터 대법수련을 한 후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정념정행 중, 매우 많은 크고 작은 신기한 일을 겪었다. 오늘은 몇가지 예를 써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만일 바르지 않은 곳이 있으면 자비롭게 시정해 주시길 바란다.

1. 단식 중의 기적

2001년 9월, 나는 현에서 꾸린 세뇌반에서 단식을 했는데 열사흘날(이 기간 강제적으로 음식을 한번 주입당한 적이 있다) 근무하는 사람들이 나를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했다. 초음파 검사를 할 때 의사가 말했다. “그녀의 위는 아주 작은데 호두 크기만 합니다. 위 속에는 한 덩어리의 공기가 있습니다.” 그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신기해했다. 열흘 넘어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는데 위장이 괜찮다니. 수련하지 않는 내 남편은 매우 격동해 했다. 그는 내가 이 공을 헛되게 연마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알려주었다. “위 속의 그 흰 공기는 바로 에너지예요. 때문에 나는 걸을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어요. 사실 나는 그리 괴롭지 않아요. 모두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해 감당하셨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단식해 120근이었던 나의 체중은 70여근으로 여위였고 살이 전부 빠졌다. 어느날 밤, 나는 6~7번 크게 검고 찐득거리는 것을 토해냈다. 마침 당직을 서던 관리원이 보고 놀라서 말했다. “당신은 정말 살지 않을 작정입니까. 밥도 먹지 않아 피를 다 토하고, 빨리 병원으로 가세요.” 병원에 도착 후 의사는 아주 심각하니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의 적극적인 요구 하에 나는 아주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 내 몸을 보고 어떤 사람은 내가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소문을 냈다. 나는 내가 대법제자이고 사부님께서 일찌기 내 몸을 청리해주셨기에 전혀 병이 없다는 것을 안다. 이 모든 것은 가상이다. 사부님이 있고 법이 있어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고 마음이 아주 안정됐다.

마음씨 좋은 일부 사람들이 가족들에게 알려주기를 꼭 유동식 음식을 먹여야 하며 먼저 국을 먹여야 하는데 쌀알이 있으면 안 되며 꼭 몸을 잘 보양해야 된다고 알려주었다. 나의 한 직장 동료는 말했다. “위장도 이미 못쓰게 됐고 사람도 이 모양이 됐으니 2~3년이 지나도 회복되기 힘들어요.” 나는 “괜찮습니다. 오직 내가 밥을 먹고 연공을 하면 아주 빨리 좋아질겁니다. 당신들은 기다려 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로 자신을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더러 가족에게 나를 병자 취급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무엇을 먹고 싶으면 무엇을 먹었는데 전혀 자신의 위장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몸이 빨리 회복돼 대법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된다고 생각했다. 교자, 귀밀국수, 절인 채소, 빨간 무 등 무엇이나 다 먹었다. 분유, 국류는 전혀 먹지 않았다. 그때 우리 가족들은 좀 걱정을 했는데 내 몸이 하루하루 달라지고 회복이 아주 빠른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 나는 바닥에 내려와 동공을 했고 삼일 째 되던 날 딸을 따라 전단지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였다. 이어서 나는 정상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면 무엇을 했다. 몸은 회복이 빨라 나를 본 모든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 했다. 특히 우리 가족들은 진정으로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그때부터 나의 가족 세 명은 법을 얻고 수련을 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본래 대법이 이렇게 큰 위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지금은 병이 있는 사람만 보면 그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할뿐만 아니라 본인도 수련을 했다.

2002년 2월, 나는 법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일하는 마음이 강해 또 불법적으로 현 간수소에 감금돼 불법 형사 구류를 당했다. 들어가자마자 나는 밥을 먹지 않았는데 그 기간에 두 번이나 음식을 주입당했다. 음식을 주입당할 때 나는 협조하지 않았다. 교도소 의사와 경찰 6~7명이 나를 누르고 코에서부터 위장까지 호스를 삽입했는데 여덟번만에 삽입했다. 나는 그들이 손을 느슨히 할 때 단번에 호스를 당겼는데 보니 호스에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두 번의 음식물 주입으로 내 얼굴, 코는 부어서 높이가 거의 비슷했다.

이 일을 겪은 후 나는 놀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확고해졌다. 음식물 삽입은 다수 동수들로 말하면 두려운 것인데 나는 괴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더욱 깊이 사부님께서 또 한 번 나를 대신하여 감당하신 것을 알았다. 나는 잘해서 구세력이 배치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사존께서 배치한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단식 9일째날 교도소 의사가 나에게 링거를 놓겠다고 제기했는데 나를 보더니 얼굴색이 아주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그녀는 내 팔을 잡고 혈압을 측정하더니 아연실색 했다. 내 혈압은 60/40이였다. 그녀는 재빨리 감옥장에게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제기했다. 내가 병원에 끌려온 후 의사는 즉시 응급조치를 했다. 사실 나는 정신이 매우 또렷했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다. 그러나 의사는 내가 이미 쇼크를 했고 생명이 위험하다고 말했다. 나는 매우 똑똑히 들었는데 한 무리 의사가 나를 에워싸고 끊임없이 혈압을 보고 말했다. “0, 5, 10, 5, 0…”

그때 나는 모든 것이 이상했다. 나 여기는 아무렇지도 않는데 그들이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혈압이 어떻게 없을 수 있지? 나는 정신이 매우 맑은데 단지 내 몸을 움직일 수가 없고 눈을 뜰 수 없었다. 갑자기 나는 명백해졌다. 이것은 사부님이 배치하신 것이구나.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들이 어떻게 들볶으면 어떻게 들볶으라지,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발정념만 했다. 모든 것은 사부님의 배치에 따르겠다! 의사가 검사를 끝내더니 말하기를 나의 오장육부, 온몸 아래 위가 모두 병이고 몹시 위험하다고 했다. 이후에 남편이 병원으로 오더니 즉시 관련 책임자를 찾아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감옥장도 조급해서 ‘610’ 사람을 찾아 말했다. “당신들은 이 사람을 감금시켜서 무엇을 하겠소.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병을 치료하고 감옥에 돌아가도 계속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데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시오.” 한 늙은 의사는 눈물을 훔치면서 말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왜 감금하는가?” 이후에 ‘610’에서는 두 사람을 파견했는데 그들은 내 병세를 검증하고 아주 엄중하다고 보고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아주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휴식한지 20여일 후, 직장에서는 나에게 출근하라고 했다. 몸은 아주 빨리 회복됐는데 또 파룬궁의 신기함을 실증했다. 본래 사악은 나를 불법 판결하려 했으나 끝끝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2. 자료를 배달하던 중의 기적

2002년 7월의 어느날 저녁, 큰 비가 한바탕 내렸다. 나는 8리 되는 한 농촌에 가서 동수에게 자료를 보내주어야 했다. 그때 내 수련 환경은 아주 좋지 않았으며 또 대부분 동수들이 나와 자료를 배포할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단지 우리 몇 사람만이 했다. 나는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나에게 일이 생길까 봐 나를 매우 주시했다.

나는 매번 일을 할 때면 사부님께 나의 정념을 가지해 무엇을 하고 싶으면 무엇을 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처음에 할 땐 그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그가 알겠으면 알고 나도 두렵지 않다고 정념을 유지하며 대했다. 그날 저녁 7시, 그는 방안에서 한창 신문을 보고 있었다. 나는 모터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길에 올랐다. 날은 몹시 컴컴했다. 나는 길에서 발정념을 하면서 빨리 달렸다. 가려던 마을과 대략 1리가 남았을 때 자전거가 갑자기 흔들거리면서 넘어지려 했다. 나는 급히 사부님을 불렀다. 자전거는 비뚤비뚤 하면서 한 동안 길을 갔는데 넘어지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았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이 모두 물에 잠겨 지나갈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어 자전거를 큰길에 세워 놓고 흐르는 물에 들어섰는데 흙탕물은 매우 깊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바지, 신, 자전거가 모두 흙투성이였다. 나는 모두 깨끗이 씻은 후 법공부를 했는데 텔레비전을 보는 남편은 아무것도 몰랐다.

이튿날 내가 학교로 출근했을 때 어제 내가 갔다 온 마을의 학생이 말하기를 그들이 사는 마을에 어제 큰비가 내렸는데 마을 옆 산비탈이 빗물에 쓸려 도로에 많은 큰돌, 풀, 진흙이 있었는데 아주 긴 도로까지 차가 다니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걷는 것도 매우 미끄러워 아침부터 농민들이 길을 수리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들은 후 매우 감동됐다. 나는 자전거를 잘 타지도 못하는데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그렇게 걷기 힘들 길을 다닐 수 없었을 뿐더러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정말 모두 사부님께서 다 하시고 우리는 단지 입을 놀리고 뛰어다닐 뿐이다.

3. 기점을 바로잡고 급여를 돌려받다

나는 몇 년 수련 중에서 매우 깊이 체험했다. 오직 진정으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고 법에서 일을 하고 기점이 바르면 넘지 못할 관이 없다는 걸을.

연말, 나는 현 정부에 가서 내가 불법 김금된 기간의 전 급여(8000여 위안)를 돌려받았다. 학교와 가족들은 전혀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당시, 향정부에는 빚이 너무 많아 몇년 묵은 빚과 교사들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나는 대법이 초상적인 것을 깊이 안다. 오직 기점이 바르면 모든 것이 개변될 수 있다.

나는 먼저 정념이 충분히 하고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책임자에게 진상을 알리고 또 그들에게 현지 사악을 폭로하는 진상 자료를 주었다. 향서기는 처음에 매우 거칠었다. 나와 수련생은 그와 2시간반 동안 진상을 알렸다. 마지막에 정념의 마당에서 사악은 자멸됐다.

2004년, 2005년, 2년 동안에 우리 학교에서는 임금에서 당비를 공제했다. 나는 이 일은 안후 책임자에게 진일보 진상을 알려 공제한 당비를 돌려받았고 그들에게 말했다. 이후에 이 방면에 대한 활동으로 다시는 저를 찾지 마세요. 나는 이미 이 사악한 당에서 탈퇴했습니다. 그후부터 그들은 위쪽의 어떤 활동에도 나를 참여하라고 하지 않았다.

4. 정념정행하면 사악은 자멸

2008년 6월 올림픽 전야 어느 날, 현 정법위 부서기가 우리 향에 와서 치안을 검사했다. 몇 년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것이 비교적 순리로웠기에 나를 실증하는 마음이 부풀어 사악이 빈틈을 타게 했다.

그날, 향정부 직원 3명이 현 정법위 부서기를 동반해 우리 집에 왔다. 그 현 정법위 부서기는 나에게 신분증을 제출하고 진상VCD를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이 기회를 빌어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 국보대대 당번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납치하려 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나는 그들 몇 사람 눈앞에서 도주했다.

내가 안전한 곳에 도착하자마자 마을의 각 길목이 모두 계엄됐다. 동수 집에서 나는 처음에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집에 물건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정신이 맑아졌다. 정념은 어디로 갔는가? 사부님을 믿지 않는가? 나는 떠날 때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전화로 나에게 알려주었다. “사당(邪黨)인원이 책 몇 권을 갖고 가고 나머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일체 찾아내지 못했어요.” 남편이 집에 돌아온 후 기지를 발휘해 물건을 하나하나 모두 감추었다. 마지막에 공안 인원들이 기계를 넣은 나무 상자를 요구하자 그는 지혜롭게 주지 않았다. 사실 모두 사존의 자비로운 점화로 보호된 것을 나는 안다. 평소 남편은 많은 기계를 어디에 놓았는지 전혀 모른다.

사당 인원들은 그들이 요구하는 물건을 얻지 못하고 또 마침 ‘올림픽안보’ 기간에 다른 사람이 베이징에 가서 청원해 자신들의 관직을 읽을까 봐 가장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몇몇 책임자들은 우리 집에 와서 재차 나를 집으로 돌아와 출근하게 하고 다시는 붙잡지 않겠다고 보증한다고 말했다. 현 공안국에서는 사람을 파견해 이 일을 처리하면서 말했다. “향에 1만 위안 보증금을 내고 현에서 온 책임자에게 올림픽 기간에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보증하면 올림픽이 지나간 후 돈을 액수대로 돌려주고 나에게 출근하게 하겠소.”

나는 소식을 들은 후 엄숙하게 가족들에게 말했다. “돈은 한 푼도 내지 않고 ‘보증’은 한글자도 쓰지 않는다.” 나는 또 직장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당신들은 현의 책임자를 찾아 그들이 이후에 나를 붙잡지 않는다는 보증을 받으세요. 뿐만 아니라 돈은 한 푼도 내지 않겠어요. 만일 들어주면 나는 바로 돌아가서 출근하겠어요.”

이 며칠간 처음 이틀간은 마음이 조용하지 않았다. 법공부를 할 때도 마음을 가다듬지 못했다. 이후에 나는 법공부를 하면서 안으로 찾았다. 나는 나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교란을 받았는가? 정말로 사부님께 죄송하다. 수련 10년 동안 나는 책을 손실보지 않았는데.’ 나는 마음을 깊숙이 파보았다. 정말 많은 마음을 파냈다. 과시심, 환희심, 질투심, 쟁투심, 두려운 마음, 가장 엄중한 것은 그래도 ’나를 실증하는 마음‘이었다. 한바탕 고통 속에서 안을 찾은 후 마음은 아주 빨리 조용해졌다. 법공부도 정신이 집중됐고 정념도 아주 빨리 강화됐다.

그리하여 집으로 떠난 지 나흘째 되던 날 나는 가족들에게 집으로 돌아가 직장에 출근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매우 걱정되어 말했다. “그래도 되겠소? 당신은 돈도 바치지 않고 보증도 쓰지 않았으니 그들의 속임수에 들어서는 안되오.” 딸도 말했다. “어머니, 돌아와도 괜찮을까요?” 몇몇 동수들도 미심쩍어 말했다. “법공부를 더 많이 하고 정념이 충족하면 돌아가세요.” 나는 말했다. “나는 지금 정념이 아주 충족해요, 사부님이 계시니까요!”

그리하여 나와 딸은 전동차를 타고 길에서 발정념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고 이튿날 나는 출근했다. 직장 책임자와 동료들은 나를 많이 관심했다. 그들은 분개하면서 말했다. “집에서 일요일을 보내는 것도 잘못한 것인가요? 백주대낮에 사람을 붙잡으려 하다니 너무 이치에 맞지 않아요.” 오후 퇴근 후, 향의 정, 부서기가 함께 우리 집에 와서 말했다. “당신은 마음을 놓고 출근하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돈은 내지 않아도 되고 보증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보증할께요.” 직장 책임자도 나에게 말했다. “현의 그 책임자도 보증하건대 다시는 당신을 붙잡지 않을 테니까 마음을 놓고 일하세요.” 이후 현의 그 정법위 부서기는 때맞게 그를 폭로하는 자료를 보았다. 그를 아는 수련생이 그의 면전에서 진상을 알린 후 그는 다시는 대법제자들께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사부님의 경문 ‘2008년 뉴욕법회 설법’ 중에서 말씀하신 “현재 대법제자가 오직 정념이 아주 족한 상황 하에서는, 사악한 생명은 이미 맞설 능력이 없어졌다”에 대해 깊은 체득이 있게 됐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뭇 신들은 내가 정법하는 초기에 이런 한 가지 조목을 정했다. 이 사당이 어떤 목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모두 나와 대법제자를 돕도록 했다. 그러므로 중공사당이 어떤 나쁜 일을 하려하고, 그것이 오직 하기만 한다면 곧바로 실패한 일이 되고 추악한 일이 된다.” (『2008년 뉴욕법회 설법』)

5. 최후의 수련의 길을 잘 걷자

2002년 4월부터 나는 현 간수소에서 정념으로 뛰어나온 후, 비록 사당 인원이 소란을 피웠지만 기본상에서 비교적 안정되게 걸었다. 몇 년 동안 친척 친구들은 모두 삼퇴를 했다. 직장 상사, 동료도 한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새로 전입해 오면 또 탈퇴시켰다. 또 우리 학교 학생, 내가 가르치는 반이든, 다른 반이든 해마다 나는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되도록 한사람이라도 빼놓으려 하지 않았다. 해마다 진상 달력이 얼마나 있든 지 간에 학교에서는 부족하여 주지 못하고 호신부도 마찬가지이며 학생, 가장 등이 고발하는 일이 없었다. 집에서는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지지하고 또 자주 나를 도와주고 일깨워 준다. 집은 큰 법공부 장소이고 또한 작은 법공부 장소다.

출근을 제외하고 자주 명절을 이용해 각 마을에 가 VCD를 배포하고 대면 진상을 알리며 삼퇴를 권하고 저녁에는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 전 현의 크고 작은 촌에는 모두 우리의 발자취를 남겼다. 또 감금된 동수의 노동교양소, 감옥, 세뇌반에 가서 수련생을 보고 발정념을 하고 그곳에 가서 접촉한 업무자에게 진상을 알렸다. 무릇 우리 현의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감금된 곳이면 길이 얼마나 멀든지, 얼마나 큰 교란이 있든지 모두 갔는데 어떤 곳은 한번만 간 것이 아니다.

수련 10여년,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사부님과 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오른쪽으로 넘어지고 왼쪽으로 넘어지고 곤두박질하면서 오늘까지 걸어왔다. 이 정법 수련의 최후 단계에서 나는 매 일보를 잘 걷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느꼈다.

2010년의 몇 편 경문이 발표된 후 나에 대한 촉동이 아주 컸다. 한편으로 열심히 삼가 읽고 한편으로 자신을 대조했는데 아직도 많은 것이 수련이 잘 되지 않았고 사존의 요구와 거리가 너무나 큰 것을 느꼈으며 더욱 느낀 것은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고 사전의 큰 소원을 완성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수련 잘하고 일이 생기면 진정으로 안으로 찾고 안으로 수련하고 자신의 일사일념을 귀정하고 자신을 내려놓고 정체 협조해서 사부님을 따라 원만하겠다.

(밍후이왕 ‘신은 인간세상에’ 응모작품)

문장발표: 2011년 3월9일
문장분류: 응모작품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9/2369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