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교류ㅣ 법공부 소조의 모순으로부터 참답게 수련해야함을 보다

글/ 화둥(华东)대법제자

〔밍후이왕〕며칠 전 우리 지역의 한 법공부 소조에서 독법(讀法)발음에 대한 논쟁으로 하여 몇 몇 동수들이 기분 나쁘게 헤어지면서 법공부 장소를 떠나는 일이 나타났다. 문제답지 않는 문제로 오히려 좋지 않은 결말이 나타났는데, 과정을 자세히 생각해보면 다시 한 번 우리들에게 참답게 수련해야함을 일깨워 준다.

一、수호한 것은 형식이고 참답게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법공부 소조를 조직하는 것은 본래 좋은 일이다. 초기 많은 동수들이 함께 법공부하기를 원했고 모두 좋다고 하여 매일 저녁 함께 법공부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표면적으로 법공부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이어서 시간이 되면 모두 와서 함께 이 법공부 형식을 수호했다. 마치도 사부님께 이야기하신 많은 종교인들처럼 “그들이 수호하는 것은 종교 형식이다.”(『각지 설법6』「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 어떤 동수들은 바로 이처럼 수호한 것은 법공부 소조라는 형식일 뿐 참답게 수련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을 들면 대법제자라는 것을 알지만 책을 놓으면 속인과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우며, 수련인들에 대한 명, 리, 정의 충돌도 잘 파악하지 못했다.

어떤 수련생들은 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법공부를 하며, 세 가지 일도 하지만 모순에 부딪치면 안을 향해 찾으려 하지 않고 모모 사람이 잘하면 곧 좋아진다고 하고 다른 사람을 질책하면서 서로 불복했다. 어떤 동수들은 정에 엉켜 넋이 나가 근본적으로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동수들은 가정에서 매우 긴장감을 조성했는데 부자 사이, 부녀 사이가 마치 적과 같아 속인들도 마땅치 않게 여긴다. 또 어떤 동수들은 자신의 체면을 아주 중히 여겨 다른 사람이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점차 어떤 동수들은 정념으로 대하지 못하게 되고, 소극적이고 싫증나 하면서도 체면 때문에 수련 층차가 떨어진다. 그리하여 법공부 소조의 법학습이 형식에 지나지 않고, 책만 읽을 뿐 참답게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다.

본래 법공부 소조는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나니”(『홍음』「착실하게 수련」)착실하게 수련하는 곳이다. 다만 형식에만 흐르면서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기에 비록 법을 매일 학습하고 연공도 매일 하지만 씬씽(心性)개변을 가져오지 못하고, 쟁투심, 과시심, 다른 사람이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불복하는 마음 등등은 오히려 근본적인 개변을 가져 오지 못하게 되어 좋은 일이지만 좋은 결과가 없다. 동수들의 씬싱이 제고되지 못 하였기에 반대로 어떤 동수들 사이에는 모순이 생기게 된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보면 착실하게 수련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二、법공부는 반드시 이성적인 승화가 있어야 하며, 수련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법공부 소조가 건립된 이래 책은 적지 않게 읽었다. 매일 저녁 한 강의식 읽었는데 책을 읽은 수량을 착실히 수련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자신을 법속에 용해시키지 않았다.

법공부는 당연히 중요하며 역시 제고의 관건이다. 하지만 법공부는 이성적 인식으로 승화하여 자신의 착실한 수련을 지도해야 한다. 어떤 동수들은 자신을 전정하게 법속에 용해되게 하고, 이성적 인식에까지 승화되어 법 중의 한 개 입자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방울의 기름이 물에 떨어져 물 표면에 떠 있으면서 물에 용해되지 않는 것처럼 표면에서는 법공부를 하나 반대로 법으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다. 문제에 부딪쳤을 때에는 나는 법을 공부하고 법을 암송하였는데 왜 이러지라고 하는데 마치 내가 법공부를 하고 법을 암송하면 응당 일체가 순리로워야하고, 응당 백만장자가 되어야 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구하려는 마을을 가지고 법공부를 하는 것은 사실상 법을 향하여 요구하며, 조건을 제기하는 것으로 내가 법공부를 하였고 법 암송을 하였으니 반드시 나를 보호해 주어야하고, 나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얼마나 좋지 않은 염두인가, 어찌 법리를 배울 수 있겠는가? 이성적인 인식이 승화되지 못하면 어떻게 자신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겠는가?

법공부는 절대 이론만 담론(空談)하는 것이 아니라 법리를 명백히 한 후 수련을 지도하는 것이다. 부동한 층차까지 승화하려면 곧 바로 내심 깊은 곳으로부터 부동한 층 차의 법리를 명백히 해야 하며, 또 이 층차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좋지 않는 사상, 행위, 각종 집착, 욕망을 수련해 버려야 한다. 법을 아무리 많이 읽었다 하더라도 모순이 올 때, 이익 앞에서, 정의 교란 앞에서, 자신을 본질상에서 속인과 구별할 수 있는가 없는가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개변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착실히 수련함이 제 귀도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하여 이익의 득실에서; 이웃 간의 관계 중에서 모든 것을 잘 파악하지 못하여 속인들마저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좋은 사람들로 여기지 않게 된다.

과거의 부족이 만약 수련을 통하여 새롭게 달라지고 잘 하여 하나의 큰 대조가 나타나게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수련이고, 그것은 법을 원용하는 것이며, 그것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조사 정법은 한마디 공담이 아니며, 법공부 소조는 다만 형식만이 아니라 반드시 법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하나의 정체, 한 뙈기의 정토여야 한다.

三、법공부는 법리를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대법은 끝없는 법리가 있는 것으로 매개 동수들은 모두 사부님의 안배한 길을 따라 가면서 부동한 것을 실 증명하고 깨닫고 부동한 과위를 성취한다. 그러나 당신이 어느 과위에서 수련하고, 그 무엇을 성취 하던지 막론하고, 당신은 모두 대법 중에서 수련하며, 모두 대법 중에서 성취하는데 이것은 우리들이 어떠하게 체험하고 깨닫던 지를 막론하고 모두 사부님의 설법을 바르게 깨닫고 자신의 집착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지 자신의 집착을 회피하며 혹은 법 중에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 마음에 유리한 말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모순 중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단장취의 하여 자신을 수호하는 것은 법에 대한 불경이며, 사부님에 대한 불경이다. 법공부는 반드시 겸손(謙遜)하고 예의 바른 마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 수승한 법리를 보아낼 수 있고, 비로소 자신을 지도하여 관념과 집착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수련하여 지금까지 왔기에 우리 모두가 성숙을 향해 걸어야 하며, 법도 동수들에게 더욱 엄격한 요구를 제기하고 있다. 오직 착실하게 수련해야만 비로소 정법노정을 따를 수 있다. 착실하지 못하고 법속에서 대강대강 하는 그러한 수련생들은 결국 모두 안 되는 것 이다.

문장 완성: 2011년 3월 16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문장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16/交流–从学法组的矛盾看实修-237603.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