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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를 엄중히 받은 지역에서는 다시는 사람 마음으로 박해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근 2, 3년 동안 우리 현 수련생들은 줄곧 박해를 아주 엄중하게 받았다. 2007년도부터 지금까지 20여 명의 수련생이 불법 판결을 받고 노동교양을 했다. 근 20여명이 납치당해 세뇌반에서 강제로 ‘전향’됐다. 10여명이 넘는 사람이 감금되고 대다수가 협박으로 만여 위안의 돈을 내서야 사람을 풀어줬다. 매번 사당(사악한 중국 공산당)의 민감일에는 ‘610’이 또 수련생들에게 소란을 피웠다. 2010년, ‘610’은 여러 명 수련생을 납치해 세뇌반에서 전향시켰으며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직접 노동교양을 시켰다. 듣는 말에 의하면 새로 부임한 현 ‘610’두목은 2012년이 되기 전까지 우리 현 파룬궁 수련생들을 전부 ‘전향’시키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사악이 이 지역에 의지해 생존하고 기세가 들끊는 것은 이곳이 그것들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 많은 수련생들은 장기간 진지하게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장기간 법에 있지 않고 게다가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과 두려운 마음으로 그것들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조장해 그것들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주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지역 상당한 일부 수련생들의 가장 돌출한 표현은 바로 사악이 약간의 변화가 있기만 하면 바로 마치 강한 적과 마주친 것처럼 법도 감히 배우지 못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하지 못하며 ‘밍후지주간’도 요구하지 못한다. 매일매일 두려워하며 사악의 동향을 관찰한다. 동수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사악의 존재를 승인하고 박해를 묵인하고 세인들에게 박해를 폭로하지 못하고 무의식간에 사악을 조장해 그것들로 하여금 이유를 갖고 한번 또 한번 박해가 뜻대로 되게 했다. 어떤 동수들은 사악을 감히 폭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악을 폭로하는 것을 저촉하고 세간의 악인이 불쾌하게 여겨 자신에게 연루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오히려 사악의 박해를 피하지 못했으며 어떤 이는 또한 매우 엄중하게 박해를 받았다. 고통스러운 옛일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몇 년 동안, 매번 수련생이 박해를 받았을 때, 아주 많이는 모두 자신의 바르지 못한 심태가 박해를 불러왔다. 사악을 폭로하는 것은 사악을 해체하는 것이고 박해를 부정하는 것이다. 사악을 감히 폭로하지 못하는 것은 사악을 조장하는 것이고 박해를 격화시키는 것이다.

몇몇 수련생들은 평소에 심성(心性)상에서 노력해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 제고라고 여겨 우쭐거리면서 자신이 어떠어떠하다고 여겨 비평과 의견을 듣지 않았다. 일단 박해를 당했을 때 생사와 이익의 고험 앞에서 자신을 법 중에 놓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부득이 다른 동수들의 이름을 자백했다. 수련생들 속에서 어울리던 한 사람은 듣기로는 현지와 외지 수련생을 몇십 명의 정보를 자백해 적지 않은 동수들이 사악의 검은 명단에 들었고, 매번 시간이 좀 지나면 동수들이 박해를 받아 우리 환경이 아주 좋지 않게 변하게 되어서, 우리가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지극히 큰 어려움을 가져왔다. 동시에 법공부가 깊지 못한 수련생들에게 엄중한 영향을 주어 그들의 두려운 마음을 가중시켰다.

오늘까지 이르러 감옥, 혹은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그들, 세뇌반에 납치돼 ‘전향’한 이들, 불법 감금되고 돈을 협박당한 동수들, 극히 적은 사람들만이 세인들에게 사악이 자신에 대한 박해를 폭로했다. 동수들의 가장 큰 장애는 박해를 폭로하기만 하면 그들이 또 자신을 박해할 것이라는 것이다., 작년 8월말 9월초, ‘610’은 많은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해 일주일간 세뇌반을 꾸렸다. 납치된 수련생은 나온 후 모두 입을 다물고 누구도 이 일을 기타 동수에게 말하지도 않거나 혹은 사악을 폭로하지 않았다. 대략 두 달이라는 시간을 거쳐 우리는 약간의 소식을 알아보고 밍후이왕에 보냈다.

생각해보니 이 지역 많은 수련생들은 박해를 받은 후 모두 사악을 폭로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사악이 또한 무엇을 주저하겠는가? 다른 공간의 사악은 이후에 수련생의 두려운 마음과 집착을 움켜잡고 필사적으로 박해를 할 것이며 세간의 악경, 악인들은 이익을 위해 수련생을 박해하는데 더욱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어떤 동수들은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세뇌반으로 보내졌는가? 무엇 때문에 어떤 수련생은 번번이 박해를 받으며 사악이 줄곧 그들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가? 아마 그것은 그들이 사악을 폭로하지 않고 사상 중에서 소극적으로 박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사악이 이유가 있어 한번 또 한번 그들을 박해한 것이다. 터놓고 말하면 바로 어떤 동수들은 일이 생기면 안으로 찾지 않고 자신의 수련 중의 부족함을 깊이 파지 않으며 진정으로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제고하지 못하고 관건적인 시각에 자신을 수련인의 위치에 놓지 않으며 진정으로 자신의 수련을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 수련생은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 교훈을 섭취하지 않으며 박해받은 원인을 찾지 않고 자신이 그렇게 큰 손실을 받았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또 허영심을 갖고 수련생 중에서 자신이 얼마만한 일을 하고 얼마나 대단한 것을 실증했으며 자신이 그때 박해를 받았을 당시 정체와 자신에게 얼마만한 손실을 조성했는지는 생각지도 않는다. 그들은 나온 후 법공부와 안을 닦는데 등한시하고 강한 질투심, 쟁투심,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사실은 모두 아주 위험한 것이다.

사존께서는 ‘2010년 뉴욕법회설법’중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희망하건대 여러분은 곤두박질한 후에 바른 면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늘 반면 교훈을 받아들이지 말라. 반면 교훈을 받아들이면 바로 사람의 마음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자신을 교활하고 원용하게 변화시키는 것인데, 그것은 나쁘게 변한 것이다. 무엇이 나쁜 사람인지, 내가 당신들과 말했을 것이다. 그 교활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심지(心地)가 선량하고, 그리 복잡한 사상이 없는, 그것이 좋은 사람이다. 바른 면으로 문제를 생각해야 하고, 곤두박질했다면 수련인의 각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내가 어떤 것을 잘못했는가? 법으로 가늠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바른 면의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정말로 이처럼 할 수 있다면 반드시 좋아질 것이다.”

한 지역에 이렇게 엄중한 박해가 나타났는데 이 지역 수련생들은 모두 자신부터 진지하게 안으로 찾고 자신의 수련 상태가 어떠한지, 일을 하는데 법의 표준에 부합됐는지, 늘 정체를 생각하는지, 법을 제1위에 놓았는지? 어떻게 자신의 일부분 노력으로 현재의 이런 불리한 국면을 만회하려고 했는지 보아야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정체를 생각하고 진정으로 법을 책임지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어떤 수련생은 단지 상징적으로 박해를 당한 원인을 찾고 다른 사람을 보고 자신을 보지 않으며 심지어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극력 자신을 회피하고 어떻게 교훈 중에서 제고해야 하는지 모른다. 또 어떤 수련생은 사악이 어떤 동향이 있으면 자신이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근본적으로 정체를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데 이때의 사상 행위는 이미 대법을 멀리 떨어졌으며 더욱이는 법을 책임진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위사위아한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어떻게 정법시기 대법제자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박해가 10년이 지나고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무엇이든 우리에게 다 가르쳐주셨고 무엇이나 다 우리에게 주셨다. 오늘날 대법제자는 관건적인 시각일수록 더욱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고 정념으로 대법을 수호하고, 하늘을 떠받치고 땅에 우뚝 선 대법제자로 됐으며 험악한 환경 중에서 구세력의 요소에게서 사람을 빼앗아 온다. 어떻게 다른 대법제자들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중생의 생사를 고려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관하지 않는 사람처럼 구경만 할 수 있겠는가? 만일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이런 자아보호 상태에 처해있으면 우리는 환경을 사악에게 내주었는데 그것들이 또한 거리낌 없이 나쁜짓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들은 수련생의 집착과 두려운 마음을 틀어쥐고 박해를 할 것이며 최종에는 수련생과 중생을 훼멸하는 목적에 달성할 것이다.

사악이 우리를 박해하면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폭로하고 그것을 해체하고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 사악을 폭로하는 것은 바로 조사정법이고 중생을 구도하는 동시에 자신의 수련 중의 부족과 손실을 보완하는 것이다. 특히 박해를 당했을 때 사악에게 타협한 동수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한다. 자신이 검은 소굴에서 무엇을 했으며 ‘삼서(三書-수련 포기각서 따위)’를 쓰고 사부님을 배반하며 대법을 배반하고, 또 어떤 이는 수련생을 팔아먹는다. 설령 진심이 아니어도 그것은 작은 일인가? 당연하다는듯 적당히 얼버무리는 마음을 품고 시간이 흘러가면 다 끝인가? 지금부터 자신이 대법에 가져다 준 손실을 배로 보충하지 못하고 자신의 치욕을 씻지 못한다면 과연 하나의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몇 년 간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한 지불과 수고는 사람과 신이 모두 상상하기조차 어렵고, 사부님의 정법이 없으면 우리도 벌써 없을 것이며 우리의 세간의 일체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양심에 미안하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자비가 무량해 어느 수련생의 일시적인 표현을 보지 않고 또 기다리시고 기회를 주신다. 우리가 잠시 굽은 길을 걸었거나 혹은 잘못한 것은 두렵지 않다. 지나간 후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고 법의 표준대로 노력한다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법에서 자신의 생명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따를 것인가를 고려하고, 오늘날 수련을 애들 장난으로 여겨 재차 잘못하지 말며,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사악이 자신을 박해한 것을 폭로하는 것은 사존께 사죄하는 것이고 바로 자신의 치욕과 오점을 세척하는 것이다.

10여년의 비바람 속에서 지금 우리는 마땅히 명백해야 한다. 두려운 마음은 우리들이 원만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고비다.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우리는 법공부를 해서 노력해 그것을 닦아 버리고 오직 노력만 하면 정념을 닦을 수 있다. 보잘 것 없는 사악은 우리가 신의 길을 걷는 걸림돌이다, 그것들이 뛰쳐나오려 하면 우리는 한발로 차버리면 되는데 그것이 우리가 천국으로 통하는 길을 가로막게 해서 되겠는가?

문장발표 : 2011년 3월 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12/2374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