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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목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것에 관하여 충칭 수련생과 교류

글/충칭대법제자

[밍후이왕]먼저 이 문장을 쓰는 것은 이 일에 대해 말함이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 일로 인해 사람 마음이 움직인 현상에 대해 나의 견해를 법리에서 교류하여 여러분과 법에서 공동제고 하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개변 후의 당신의 이 길은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다른 사람이 본 후에 당신의 어느 일보에 난이 있음을 당신에게 다 말해 준다면 당신은 또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그러므로 전혀 보지 못하게 한다. 다른 법문의 누구도 보지 못하게 하고, 동문(同門) 중의 제자도 모두 보지 못하게 하기에 누구도 맞게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일생은 개변된 것이며 수련의 일생이기 때문이다.”(『轉法輪(전법륜)』)

오랫동안 늘 갑 수련생으로부터 “수련생에게 일이 있으면 천목이 열린 수련생을 찾아 보여주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혹은 을수련생한테서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그녀가 처한 층차에서 보게 된 일부 일’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때론 여려 수련생이 모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할 때도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그 수련생의 공간마당이 깨끗이 청리되었는지, 구세력과 서약을 맺은 적이 있는지를 보도록 했다. 또 발정념할 때도 다른 수련생에게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처한 층차에서 본 것을 하도록 하게 한다. 법을 스승으로 모시지 못하고 있으며 법에서 바르게 깨닫지 않고 있고 법으로 우리의 수련을 지도하지 않고 있다.

나는 그런 것 때문에 갑 수련생과 교류한 적이 있다. 또 갑 수련생한테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보인 수련생과 법에서 교류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수련생이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보이는 현상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두 가지 일은 더욱 일부 수련생으로 하여금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게 했다. 이에 대해 한 대법입자의 책임감으로 펜을 들어 교류하게 됐다.

1가지 사례로, 한 수련생이 사악에게 붙잡혔는데 수련생이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보게 했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그녀가 처한 층차에서 박해당한 수련생이 세 명의 610에게 붙잡힌 것을 보았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그 세 명의 610의 원신을 불러내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3명의 610은 진상을 들은 후 수련생을 풀어주었다고 했다. 원래는 수련생들 모두 박해당한 수련생을 향해 발정념하려 했고 정념을 가지하여 그를 마난에서 걸어 나오게 하려 했다. 그런데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박해당한 수련생이 610에서 풀려났다고 함으로써 어떤 수련생은 그 수련생을 향한 발정념을 견지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정체적으로 배합하는 힘이 감소됐고 잇따라 그 수련생은 계속 박해 당하며 끊임없이 사악으로부터 이런 저런 요구를 듣게 됐다. 육신도 감당하기 힘들만큼 거대한 사악한 요소의 마당의 압력을 감당해야 했다. 어떤 때는 걸음걸이마저 거의 넘어질 듯 했다.

2번째 사례로는, 한 노년 수련생이 어느 날 단체 법공부할 때 갑자기 반신불수가 되는 가상을 보았다. 그러자 그 수련생이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그가 처한 층차에서 보도록 했는데 인간세상에서의 수명이 다 됐으며 정진하지 않는다고 했다. 잠깐 사이에 이 일이 수련생들한테 전해져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게 했다. 수련생 사이에 만나서 하는 말은 모모모가 인간세상의 나이가 다 되어 거의 갈 뻔했으나 그래도 그녀가 정념이 강하기에 … 어떤 노년 수련생은 이로써 자신들도 이곳저곳이 불편한 느낌이 들었고 사람의 마음이 불거져 나왔다.

수련생들이여!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지. 천목으로 본 것에 집착하는 것은 법에서 바르게 깨닫는 것이 아니며 완전히 법의 요구에 따라 법의 표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데 이것을 수련이라 할 수 있겠는가? 구세력 요소는 호시탐탐 매 대법제자를 노리고 있으며 한발만 헛디디면 구세력 요소는 곧 혹독하게 박해한다. 자신한테 마난을 초래하여 자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그 수련생한테 마난을 초래하여 수련생을 해치게 된다. 천목으로 보는 수련생도 아마 이로써 환희심, 과시심,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마음, 기치를 달리 세우려는 마음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처한 층차에서 보게 된 일을 들은 수련생은 이로써 숭배심, 추구하는 마음, 의뢰심, 호기심, 질투심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천목이 열린 수련생더러 다른 수련생을 보도록 하는 수련생은 어떤 마음으로 인한 것인지 잘 찾아야 한다. 구세력 요소는 우리 수련생한테 집착심이 있는 것을 보고 아마 수련생의 집착심에 따라 일부 가상을 연화하여 수련생한테 보여줄 수 있고 이로써 수련생을 사로에 들어서게 할 수 있다. 당신이 뭘 집착하면 구세력 요소는 곧 당신한테 어떤 가상을 연화하여 당신더러 보게 하며 당신더러 비뚤게 걸어가게 하여 끌어내리려는 것이다. 수련은 얼마나 엄숙한 것인가! 수련생이여, 반드시 법을 스승으로 모시자! 우리 함께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해보자.

사부님께서 《2003년 정월 대보름날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법제자인 당신은 법에서 깨달아야 한다. 당신은 정정당당한 대법제자이므로 이지적으로 법에 부합하는지 부합하지 않는지 사고해야 한다. 또 어떤 수련생은 늘 공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일부 수련생들에게 일부 부동한 공간의 정법 정황을 보게 했다. 목적은 수련생들이 법을 실증하는 신심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아직도 정확하게 대하지 못하며 법에서 수련하지 못하는데, 심지어 일이 있으면 공능이 있는 수련생을 찾아가 봐 달라 하고, 본 것으로 어떻게 대법 일을 하고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 하는 지도(指導)로 삼고 있다. 이것은 이미 매우 위험한 것이다. 누가 정법의 근본을 볼 수 있겠는가? 누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똑똑히 말할 수 있겠는가? 층차가 극히 낮은 표현은 진상의 근본이 아니다. 법에서 수련하지 않고 법에 따라 하지 않는데 그럼 당신은 그래도 대법제자인가? 일만 있으면 그더러 이런 일인가 아닌가를 봐 달라고 하는데 무엇을 본단 말인가? 누가 당신의 근본을 보아 낼 수 있는가? 당신의 아이도 안 된다. 나는 모두 말한 적이 있다. 대법제자의 내부라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만약 당신들의 진실한 수련 정황을 본다면 그럼 또 무엇을 더 수련하겠는가? 당신에게 알려준다면 무엇이든 다 풀려버린다.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부동한 층차 중에는 부동한 표현형식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층차의 표현이든지 그 층차 중의 생명을 놓고 말하면 모두 진리이다. 층층마다 모두 진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가지 일의 부동한 층차의 표현일 뿐이며 가장 근본적인 표현은 도리어 위에 있으며 최후에야 비로소 최종적인 근본이다. 당신이 어느 층차 중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대법제자의 근본적인 진상이고 정법의 진상이며 사부의 진상인가? 만일 당신이 오늘 대법제자와 사부의 근본적 진상, 대법의 진상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오늘 바로 이 무량한 우주의 주(主)이다! 당신이 모두 다 보았는가? 일체를 모두 한눈에 다 보았는가? 당신은 어찌 그렇게 얼떨떨할 수 있는가? 나는 여러 번 법에서 이야기했는데 당신들은 어찌하여 기어코 교란을 받으려고 하는가?”

사부님께서는 《2010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제자: 대륙대법제자는 현재 정법 노정에서 어떻게 더욱 잘 해야 합니까? 그들은 저에게 그들을 대표해 사부님께 문안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사부: 중생을 구도하고 진상을 알리며,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도록 하라. 새로운 것을 내세우며 특이하게 하지 말고, 소도(小道)의 그런 것을 하지 말며, 정정당당하게 세 가지 일을 잘 하도록 하라. 여러분 감사하다.(박수)”

문장발표: 2011년 3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15/2376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