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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가정 마난 속에 있는 수련생들과 교류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제자는 오랜 역사 시기에 이미 오늘날 법을 얻을 생명이라고 정해 졌다(사부님의 요구한 것). 동시에 구세력 역시 그가 세간에 태어나서 법을 얻는 일을 안배했다(사부님께서 인정하지 않음). 생생세세에 은혜와 원망의 윤보 중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우리는 금생에 많은 친인, 처자, 아들딸, 부모형제가 만났다. 이것은 거대한 원망과 은혜와 증오로 끝없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겹겹의 장애를 돌파하고 법을 얻은 우리의 인생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개변된 수련의 일생이고, 구세력과 이미 어떠한 관계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수련과정에서 어떻게 전반적으로 구세력을 부정하고 사부님이 안배하신 길을 걷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가 세간에 온 최종목적은 조사정법하여 일체 중생을 구도하는 것으로, 물론 친인을 포함해서이다. 우리는 그들과 아주 연분이 있는데 선연이거나 혹은 악연일 수도 있다. 어떤 수련생들은 늘 가정의 마난 속에서 걸어 나오지 못하고, 도피하고, 소극적으로 감당하고, 거대한 압력속에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힘들게 수련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관건적 원인은 정법수련과 개인수련, 중생간의 관계를 바로 잡지 못하고, 구세력을 전반적으로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악한 환경에서 가족들은 우리를 위해 많은 압력을 감당하고, 가정생활에서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지불하고, 많은 고생을 했다. 우리는 마땅히 이런 것을 마음속으로 명심해야 하지만 그들이 만든 마난을 끝없이 감당할 수는 없다. 이것은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고 사악을 인정하고 종용하는 것이다. 한 생명이 정법 속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가는 그의 대법에 대한 태도와 대법제자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다. 이것은 장래에 그의 위치를 정하는 관건이다. 그가 감당해도 좋고 지불해도 좋다. 그것은 그가 자신을 위해 선택한 것이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기초를 닦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그들이 이런 기연이 있는 것을 정법의 각도에서 보고 기뻐해야 하고, 인정의 각도에서 그들이 한 모든 것에 감사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안고 있을 때, 사악은 그들을 이용하여 부단히 우리의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것에 시끄러움을 조성하고 교란하는 동시에, 가족들을 서서히 깊은 골짜기로 밀어 넣는다. 이 일체는 바로 우리의 마음이 촉성한 것이다. 당신은 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소란을 피워도 그가 지불했다고 양보하는가? 사악은 이점을 이용하여 그가 점점 당신을 힘들게 한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眞․善․忍’이다. 이것은 원용한 것이며 자비와 위엄이 동시에 존재한다. 한 수련생은 검은 소굴에서 악인이 그를 때릴 때마다 조용히 참는다. 악인은 늘 이유 없이 그를 때린다. 하지만 다른 수련생은 악인이 때리려 하면 미리 경찰이 사람을 때린다고 소리친다. 결국 그를 때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마난이 올 때 우리가 개인 수련의 각도에 서는가, 아니면 정법의 각도에 서서 이 문제를 보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당신이 참았다면 중생을 훼멸하려는 사악의 최종 목적을 돕는 것이고, 당신이 교란과 박해를 정중하게 제지하면 그것은 중생에 대한 가장 큰 자비가 아닌가?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모든 생명은 법을 위해 왔다. 우리는 다행히 이 신성한 기연을 이미 얻었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미래의 아름다운 생명을 개창하셨다. 우리도 마땅히 중생을 위해 복과 덕을 세우고, 미래로 걸어가며, 수련의 기회를 얻게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가정생활에서 가족을 어떻게 구하겠는가 하는 일사일념과 일언일행을 맨 앞에 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매일 사부님께 향을 올린다. 집에 과일과 향이 없으면 모친더러 부친에게 돈을 받아 사오라고 한다. 부친은 수련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 복과 덕을 그에게 남겨 주려고 한다. 이전에 그리 지지하지 않던 부친은 내가 그를 위하는 일념이 있은 후부터 아주 기쁘게 돈을 내놓으며 비싸고 좋은 것을 사라고 당부한다. 부친은 원래 향 태우는 것을 제일 싫어했고, 집이 검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법을 지지하면 복을 가져다준다고 알려 준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할 때 가족을 만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것은 사(私)를 위하는 것이다. 우선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정도를 고려해 그들이 이러한 작은 일에서 위치를 정하고, 서서히 복과 덕을 쌓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이렇게 그를 생각할 때 그의 명백한 일면은 당신의 순정하고 선량한 정보를 받아들인다. 생명의 본성은 구도되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일은 우리들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가족들은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이 접수하게 된다. 모르는 사이에 가정환경은 갈수록 느슨해지며, 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얻게 된다. 만약 우리가 가족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들을 새로운 우주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고, 그들의 명백한 일면은 우리를 증오하고 마난을 조성한다. 이것은 사악의 수단에 걸려드는 것이 아닌가? 무의식중에 사악을 도와 가족들이 우리를 교란하게 한다. 장법이 결속될 때 그들은 어디로 가겠는가?

전면적으로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고, 선연을 맺고 중생을 구도해야만 비로소 우리들이 세상에 온 대원을 이룰 수 있다. 우리들이 잘하지 못해 중생이 이 만고의 기연을 잃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보완할 수 없다.

얕은 인식이니 그릇된 부분은 수련생들이 자비로 시정하기를 바란다. 허스.

문장발표: 2011년 3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7/交流–與仍處於家庭魔難中的同修交流-2371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