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을 질책하면 질책을 받는 동수에게 마난을 가져다주고 정체에 교란을 가져오는 문제에 관하여 많은 동수들이 이미 명확한 교류를 하였다. 하지만 나는 주위에서 기타방면의 일을 아주 잘한 동수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중시를 하지 않고 여전히 질책하고 배후에서 동수의 부족을 의논하기 즐기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나는 질책하기 좋아하고 배후에서 수련생을 의논하기 좋아하는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약간의 개인인식을 말하려 한다. 합당하지 않은 점에 대해 동수들의 자비한 시정이 있기를 희망 한다.
사람의 층차에서 말하면 이런 동수들은 흔히 성격이 시원시원하여 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하고, 내키는 대로 하며, 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혹은 교육받은 정도가 비교적 낮아 쉽사리 표면적 문명과 표면수양을 소홀히 한다. 물론 이런 특징은 정법시기에 역시 그것의 좋은 점이 있다. 예를 들어 관념이 적고, 장애가 적은 등등이다. 낡은 우주의 상생상극의 법리의 제약으로 한 가지 일에는 좋은 일면과 동시에 좋지 않은 일면도 존재한다. 여기에서 나는 질책하고 배후에서 수련생을 의논하는 것에서 오는 부면적인 영향을 말하고자 한다. 이 부분의 동수들은 내심에서 오직 사람을 구하는 일만 잘하면 되고 기타의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중시하지 않고 다른 수련생을 질책하고 배후에서 의논하는 것이 이미 자연적인 것으로 되어 자신도 느끼지 못한다.
사실상 이런 행위의 배후에는 수련생을 업신여기는 마음, 분별심, 책임지지 않는 마음, 대법의 요구에 따라 수구하지 않는 마음 등의 사람마음이 숨겨져 있다. 대륙에서 성장한 동수들은 장기간 악당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사령독소가 충만된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여 사령의 독소가 매 사람의 세포에 스며들어 있다. 이런 행위는 실제적으로 악당의 기만, 선동, 깡패행위, 투쟁 등에서 기인한다. 나는 깨달았다. 우주의 뭇신들이 대법을 파괴하고 대법 제자를 박해하는 악당 사령을 소멸하려고 결정을 내린 그 순간부터 사존께서는 우리 신체속의 사령의 독소를 제거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일사일념 중 무의식적으로 사령의 독소를 승인하고 있다. 반드시 법에서 인식하고 사존께서 우리들에게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사령의 독소는 많거나 적거나 간에 여전히 대법제자를 교란하고 있다. 수련생을 질책하고, 배후에서 수련생을 의논하면 수련생이 수련해 버리지 못한 사람마음이 악당사령 요소에 의해 통제, 가강된다. 이로서 미세한 곳에서부터 흔적도 없이 대법 제자를 박해하고, 대법제자들이 정체를 형성하는 것을 교란하며, 이로부터 사부님의 정법을 교란한다.
질책하고 배후에서 수련생을 의논하면 싸우는 양측 모두 손실을 입는다. 상대 동수에게 교란을 줄 뿐만 아니라, 질책은 마치 동수들이 예전에 지적한 것처럼 동수 몸을 찌르는 예리한 검과 같다. 질책하고 배후에서 수련생을 의논하는 동수 본인에게도 백가지 해로움만 있을 뿐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 이런 행위는 법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은 이 면에서 승화할 수 없게 되어, 장기간 한 층차에서 배회하게 되며, 심지어 이로 인하여 층차가 떨어질 수도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 하셨다. “그가 다른 사람을 욕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힐 때 그는 德(더)를 상대방에게 던져줄 것이며” “사람이 좋지 않은 일을 할 때면 德(더)를 잃을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비록 질책하고 배후에서 다른 수련생을 의논하는 수련생은 표면에서는 사람을 욕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정도에서 말한다면 확실히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 간극을 두고 상대를 질책하고 의논하기 때문에 상대를 고립시킨다. 심지어 말을 전하여 많은 동수들이 의논하게 되는데, 질책의 초점은 실제로 수련생을 밖으로 밀어 버리는 것이므로 이 죄는 정말 작지 않다. 동시에 질책하고 의논하는 동수 본인도 사부님의 정법으로 조성되는 정체에 용입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것은 구세력이 교란하는 것보다 더 엄중한 파괴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 각도에서 보면 이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는 법에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서 곧바로 구세력의 원망에 부합되어 사부님의 정법을 교란하는 부면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청성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사존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 하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있어 당신은 좋다, 그는 나쁘다, 당신은 수련을 잘 했다, 그는 수련을 잘 못했다 하는, 이런 자체가 바로 모순이다. 우리 일반적인 것을 말해 보자. 내가 무엇을 하려면 바로 그것을 하고, 현재 이 일을 어떻게 해야겠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한다면, 무의식중에 누구를 해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은 모두 매우 복잡한 것으로서, 무의식중에 업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의 설법에서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배후에서 아주 흥미롭게 동수의 부족을 말하면서 동수의 옳고 그름을 전하는데 열중하는 것은 부단히 업을 만드는 것이고, 주동적으로 흑색물질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련생을 책망하고 배후에서 의논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식중에 덕을 잃고 업을 짓는 것으로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련 중의 장애를 조성하여 수련중의 난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수련은 최후에 이를수록 법의 우리에 대한 요구는 더욱 엄격하다. 우리가 수련생을 질책하고, 배후에서 의논할 때 구세력은 다른 공간에서 똑똑히 보다가 기회를 잡고 우리를 교란하여 수련에 마난을 가져다준다. 이렇게 되면 질책하고 배후에서 수련생을 의논한 본인은 장기적으로 마난에 빠져 사부님께서 안배한 수련의 길을 정확하게 걸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문장완성 : 2011년 2월 1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16/交流–与爱指责、背后议论同修的学员切磋-2362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