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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글/ 후이후이(慧慧)

[밍후이왕] 나는 자신이 수련을 괜찮게 했다고 여겼다. 게으르기는 하지만 오성이 좋고 기타 면에서는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에 발생한 일로 잘못된 관념을 개변하고 즐거운 제고를 얻었다.

문제는 A동수로 인해 발생했다. A수련생을 아는 수련생은 모두 그를 못마땅해 한다. 그는 고집이 세면서도 아주 소심해 말 한 마디에 자극을 받는다. 동수에게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수련생을 배척했다. 수련생이 찾아와 일에 대해서 상의하자고 하면 방에 숨어서 나오지 않거나, 교류할 때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몇 년간 A수련생은 기타 수련생과 접촉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어머니와 그를 돕고 싶어 몇 번 권고한 적이 있다. A수련생은 싫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선한 마음이 부족한 것도 이유이겠지만 그와 수차례 모순이 발생했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A동수와의 교류가 갈수록 표면으로 올라와 속인식의 친구 관계와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이런 상태를 보고 우리는 그가 그래도 좀 인정하는 B수련생을 찾아가 A동수의 상황을 간단하게 말했다. B동수도 A수련생이 다른 수련생에게 실례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불쾌해 했다. 우리는 어떻게 A수련생이 우리의 말을 거부하지 않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할까 상의했으나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 후 나는 A동수에게 볼일이 있어서 갔다. A수련생은 B수련생이 와서 “당신은 왜 동수들과 접촉하기 싫어하는가?”라고 질문했다고 했다. A수련생은 “당신은 그 동수들에게 가서 물어보고, 왜 내가 그들과 접촉하기 싫어하는지 그들더러 안으로 찾아보라고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은 들은 나와 어머니는 서로 말없이 쳐다보았다. A수련생은 한 마디 더 했다. “나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하면서 수련생을 원망했다. 나와 어머니는 화가 치밀었다. 나는 성격이 직선적이라 모순을 격화시키지 않으려고 입을 열지 않았다. 뜻밖에도 어머니와 A동수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비록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목소리가 아주 높고 분위기가 긴장되었다. 결과 좋지 않게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나와 어머니는 화가 가시지 않아, 걸으면서 A동수의 사소한 일까지 모두 들추어냈는데 말할수록 더 화가 치밀었다. 어머니는 냉정하게 물었다. “우리가 남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니?” “안 그런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어떡해요? 우리는 진정 그를 위한 것이에요. ‘예, 예, 예’ ‘좋아요, 좋아요’는 누가 못해요? 그를 책임 지려니까 그렇게 말한 거잖아요.” 어머니는 웃기만 하고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며칠동안 A수련생을 찾아가지 않았다. 마음속에 감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일 때문에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나는 이번 달에 야간업무를 하여 취침 시간이 바뀌었다. 그날 저녁은 휴무인데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교류문장 ‘사람 마음에서 나오자’를 보았다. 보다가 눈물을 흘릴 뻔 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교류문장을 보지 않았고, 형식적으로 법공부를 했으며, 몇 달간 연공을 하지 않았고, 전 세계 동시 발정념을 1번 밖에 하지 못하여 수련상태가 아주 부족했다. 이 교류문장들은 오랫동안 먼지에 덮여 있던 나의 본성을 자극했다. 나는 자신의 행위와 상태가 좋지 않아 속인의 번거로움을 가져온 것을 반성했다. 나는 사부님의 기대와 가르침을 저버렸다. ‘다시는 이렇게 의기소침해서는 안 된다.’ 나는 똑바로 앉아서 법공부하기 시작했다. 4시경에 또 일어나서 연공을 했다. 어머니도 깨어났다. 동공을 마치고 어머니와 나의 새로운 체험을 교류했다. “그날 우리가 A수련생을 강요했다는 어머니의 말을 안으로 찾아보니 정말 그랬어요. 사실 강요는 일종 방법이에요. 강요한 것이 틀렸다고 해서 강요가 되는 것만은 아니고, 방법이 잘못되어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에요.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문제를 지적해도 실질적인 의미가 없어요. 자신의 화풀이만 되는 것이죠.” 어머니도 동의했다. 우리는 계속 안으로 찾았다. 무엇 때문에 A동수에게 이렇듯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그가 우리에게 상처를 줘서가 아니라 다른 동수에게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나와 어머니는 수련생을 친지처럼 대했기 때문에, 친지가 상처를 받았다고 여겨 화가 난 것이었다.

여기까지 찾으니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C수련생은 얼마 전에 사악의 굴에서 돌아왔다. 그는 사악의 굴에 있을 때 수련생이 박해당하면 반드시 나섰는데 심지어 속인의 방법까지 동원했다고 말했다. 속인이 이해하지 못하면 그녀는 “우리는 동수다. 그녀가 잘못했어도 나는 절대로 당신들 편에 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도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C수련생이 동수간의 정에 집착한다고 생각했지만, 당시에 안으로는 찾아보지 않았다. 나도 이 집착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발견했다. 사부는 “나는 항상 말하는데 두 사람이 모순에 부딪혔을 때 당신들은 서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신 두 사람 쌍방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살펴보아야 하며 설사 방관자로서 이 문제를 보더라도 당신은 모두 다 마땅히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나는 그것이야말로 제고 속에서 나는 듯 맹진하는(突飛猛進) 것이라고 말한다.” (『싱가포르 법회 설법』) 아쉽게도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만일 일찍 이 집착을 찾아냈더라면 A동수와의 사이도 이렇게 불편하게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전에 A동수에게 화가 나면 우리는 모두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했지만 말뿐이었어요. A수련생이 고집스럽고 억지를 쓴다며 그의 부족한 점만 생각했어요. 왜 그 사람이 우리의 권고를 듣지 않았는지 우리는 반문해야 했어요. 이런 마음이 장애를 형성해 A수련생을 극단으로 나가게 했다면 우리는 정말 큰 업을 지은 것이에요.”

나는 매일 안으로 찾는다고 말했으나 모두 형식적이었고 여태껏 자신의 결점을 깊이 분석해 보지 않고 다른 사람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저녁 우리는 계속해서 안으로 찾았다. 어머니의 회사에서 누가 성실한 사람을 괴롭힌다고 해서 나는 매우 화가 났다. 이런 불공평한 일을 보고 나서려는 마음은 동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사부님은 일찍이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사물의 인연관계, 바로 이 일이 도대체 좋은 일인지 아니면 나쁜 일인지, 어떠한 인연관계가 존재하는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 수련자는 그렇게 높은 층차에 있지 않아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하기만 하면 나쁜 일일지도 몰라 염려한다.” (『전법륜』) 나는 뼛속 깊은 곳에 나쁜 사람을 원수로 대하는 마음이 있어서 표면의 현상에 빠져 기쁘고 우울했다. 어머니의 성격을 닮았나보다. 어머니도 이전에 이런 잘못을 인식했던 적이 있다. 이 문제는 비교적 깊이 숨어있었다. 만약 내가 모욕을 당했더라면 주의식이 경각하여 자동적으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문제에 부딪히면 ‘위사위아(为私为我)’를 벗어났다고 하여 또 얼떨떨해진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보고 분개하는 것은 잘못이 아닌 줄 알았다. 오래되니 이런 의식하기 어려운 ‘의협심’이 생겼다. 문제에 부딪히면 비자각적으로 속인의 방법으로 해결하여 정서 변화를 일으켰고, 수련생을 선(善)이 아니라 쟁투와 화로 대해 동수간의 간극을 조성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최근의 수련상태를 이야기했다.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이 모두 따라가지 못해 머릿속이 어지럽고 모두 속인의 생각이었다. 특히 발정념하거나 연공할 때 온갖 잡생각이 다 나는데 저지하려해도 되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이 조용하지 않은 마음을 겨냥해 발정념을 반시간 동안 했다. 결과 반시간동안 허튼 생각만 했다. 수련이 이 일보에 왔을 때, 위로 한 단계 제고하자고 해도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되었고,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를 몰랐는데, 안으로 찾는 것을 잊었다. 이번 반성을 통해 나는 원래 자신이 천성적으로 담담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정이 중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말씀했다. “여러 사람이 나에게 내가 너무 선량하다고 말했다. 선량한 것이 무엇이 나쁜가? 나는 아주 속상했다. 지금 보니 사람의 선을 부처의 자비와 혼동했다.”

나는 사부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사람이 이 정을 벗어나면 아무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이끌지 못하는데 대신하는 것은 자비다. 더욱 고상한 것이다.” (『전법륜』)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나는 ‘나의 자비심은 왜 이렇게 나올 줄 모르는가’라는 생각만하고 자신의 정이 중한 줄은 몰랐어요. 매일 속인의 의미 없는 일에 이끌려 정서가 동요했어요. 속인의 깨달은 일면은 속인식의 동정이 아니라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었어요.”

어머니와 자정까지 교류하여 발정념 시간이 되었다. 나의 사상은 단번에 조용해지고 순정해져 적응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사상이 활발한 사람이다. 살면서 머릿속이 이렇게 조용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마침내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아내 경지가 승화되었고, 처음으로 ‘하늘이 맑고 몸이 투명해졌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 느낌은 속인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말로는 묘사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답다.

나는 오랫동안 굽은 길을 걸었다. 내가 법공부를 안 한 것이 아닌데 왜 인식에서 줄곧 제고되지 못했을까? 일부 수련생은 법을 줄줄 외울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승화하기 어렵다.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아마 모두 자신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사부님은 매일 우리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해냈는가?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바른 믿음은 절충이 된다. 법공부는 마음에 들어가야 하고 소화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안으로 찾는 것은 수련하여 제고하는 법보(法宝)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이다. 많은 문제의 표면은 형식적인 문제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수련생이 물건을 살 때 값을 깎아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값을 깎는 자체는 옳고 그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바르게 놓았다면 집착이 없는 행위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상을 많은 구체적인 일에 놓지 말아야 한다. 제고만이 제1위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부딪치는 일마다 안으로 찾는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며, 어떠한 문제도 문제가 되지 못할 것이다.

층차의 한계로 부족한 점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7/向内找是解决一切问题的根本-235876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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