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만고연(万古缘)
[밍후이왕 2011년 2월 10일] 이 한 편의 글을 쓰게 된 원인은, 텐진(天津) 시의 한 수련생이 2004년에 구치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공버스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사악에게 또 납치당해 두 번째로 구치소에 불법 감금 되어 또 한 번의 엄중한 박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후 나는 매우 미안했다. 전에 나는 그의 엄중한 집착심을 보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가 사악에게 한 번 더 박해 당했다. 가능하게 그가 안전에 주의하지 않은 요소도 있지만, 그의 이 집착심과 중요한 관계가 있다. (구세력에 오점을 잡혔다.)
2003년, 나와 그는 모두 텐진 위이현 위이싼(天津蓟县渔山) 구치소에서 박해 당했다. 위이싼(渔山) 구치소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수단은 매우 극단적이다. 한번은 동수들과 같이 있을 때, 수련생이 그에게 (구치소에서) 나가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는데, 그 의미는 ‘나가서 계속 자료를 배포할 것인가?’라는 말이었다. 그는 적대적이고 아주 원망하는 태도로 대답했다. 원래 말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대략 “그들(사악)은 우리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데, 나는 당연히 손을 놓을 수 없지.”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그가 속인과 같은 원한을 갚겠다는 집착심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당시 모두 엄중한 박해를 받아서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어서 나는 그가 가련해서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다. (이 “가련함”도 당연히 속인의 집착심이다.) 나는 그가 천천히 깨닫기를 바랐다. 그가 또 한 번 박해를 받자 나는 문제의 엄중함을 인식했다. 나의 게으름과 일을 하는데 바빠서 몇 년이 지나도 글을 쓰지 않았다. 오늘 글을 쓰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셈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 가지 일을 하는가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근본적이고도 엄숙한 문제이다. 우리는 중생구도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안전의 가장 큰 보장이다. 중생구도는 구세력도 반대하지 못한다. 구치소, 노동교양소, 감옥 등 사악세력의 소굴에서 많은 대법제자는 엄중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박해를 받았다. 그리하여 일부 제자는 악경과 공산악당에게 적대심을 가졌으며 이후 자기도 모르게 적대적인 태도로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을 한다. 이런 집착심은 구세력이 박해를 하는 구실로 삼을 수 있다. 구세력은 대법제자의 개인수련원만을 제 1위로 놓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는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의 집착심은 버려야 하지 않는가? 만약 순정한 심태를 갖고 조사정법(助师正法)을 하면 수련의 길을 더욱 평온하게 갈수 있고, 불필요한 간섭과 번거로움을 감소할 수 있다. 우리는 발정념을 하든, 진상전화를 하든,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하든지간에 근본 목적은 중생구도를 하는 것이지, 자기 불만을 분출하는 것이 아니고, 더더욱 악당을 뒤엎는 것이 아니다. 악당을 해체하는 것은 악당에게 납치된 중생을 구하기 위함이지, 악당을 뒤엎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면 당신은 무엇을 하면 된다.”(『각지역설법2』「2003년 캐나다 밴쿠버법회설법」) 나의 이해로는 어떤 속인의 마음, 두려움이든 적대심, 과시심 등은 모두 우주의 특성 “쩐(眞), 싼(善), 런(忍)”과 엇갈린다. 그리하여 번거로움을 가져올 수 있다. 일체는 대법제자의 마음가짐에 의해 결정된다. 구세력의 박해도 대법제자의 누락 있는 속인마음을 향해 온 것이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다.”는 말하기는 쉬워도 진짜로 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심성의 진실한 체현이기 때문에 집착심을 다 버린 후의 자연상태이다. 우리가 진짜로 순정한 정도로 수련했다면 번거로움은 그렇게 많이 없을 것인데 우주특성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번거로움과 시련에 부딪힐 때는, 반드시 우리의 어떤 곳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으로 찾고, 안으로 찾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 안으로 찾는 것도 마음을 순정하게 하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 만약 번거로움과 시련을 포기하려고 안으로 찾는다면, 그것 또한 안일심(安逸心)을 구하는 것으로 변한다.
문장발표: 2011년 2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10/交流–不能用常人心做三件事-2360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