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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여 편면적으로 사부님의 법을 이해하지 말라

글/대륙대법제자 퉁화(同化)

[밍후이왕] 며칠 전 나는 밍후이왕에서 한 수련생의 심득교류 문장을 보았다. 문장에서 어떤 수련생은 정법 결속 시간에 집착하여 사부님께서 전에 말씀하신 이 방면의 어느 한 구절이나 어느 한 단락의 법리를 근거로 삼아 사부님과 대법을 믿지 않는 심리가 산생되어 현재 완전히 수련을 포기하였다고 했다. 이 문장을 보고 나는 정말 애석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 일을 잠시 잊었다.

오늘 아침, 나는 갑자기 자신의 이런 심태가 좋지 않음을 느꼈다. 얻으려고만 하고 지불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점차 마음속에는 수련생을 매우 돕고 싶은 생각이 생겼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아마 나의 본성의 일면이 작용을 한 것 같았다. 아래에서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현재 어떤 수련생은 중도에서 수련을 포기했다. 전면적이고 계통적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 여겨진다. 그들은 주관적이고 편면적인 억지 논리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이해하는 것 같다. 심지어 아주 집착스럽게 사부님께서 언젠가 어떤 곳에서 말씀하신 한마디나 한 단락 법리를 단장취의하여 자신의 어떤 사상 감정이나 관념에 부합시키고 있다. 이것은 수련이 아니잖은가. 수련은 속인이 지식을 배우듯이 하는 것이 아니며 소식을 보는 것이 아니다. 수련은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수시로 공부한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고 지도하여 속인의 마음, 집착, 관념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법력이 끝없는 우주 대법으로 우리를 제도하고 계시며, 대법은 사부님께서 만드시고 말씀하신 것이며 내포가 아주 깊은 것이다. 우리 수련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 속의 일부분일 뿐이다. 어찌 자신이 인식한 그런 한 부분으로 우주 대법을 가늠할 수 있겠는가? 수련인은 무슨 자격과 이유가 있어서 자신이 평가한 표준으로 사부님이 어떠하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자신과 대법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하면 신불과 사부님의 법신은 법리를 우리에게 나타낼 수 없으며 당신은 사람 이쪽의 표현으로 법의 진정한 내포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 특히 사부님과 대법에 자신을 비교하여 어떠어떠하다고 할 때 이미 자심생마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수련인이 중도에 수련을 포기하면 그것은 서약을 위반한 것이 아니겠는가? 수련인이 서약을 위배하면 그 후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설법하고 해법할 때 모두 특정한 환경, 특정한 조건과 구체적인 대상에 한해서 진행한 것이었기 때문이다.’(『법륜대법의 해』「머리말」) 그리고 사부님께서는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일깨워주셨다. ‘시간이 길다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기독교는 박해를 받고 3백 년 후에야 비로소 일어섰다. 중대한 사명을 지닌 대법제자가 한 보통 수련자보다도 못한가? 관건은 우리가 어떻게 문제를 인식하느냐이다.’(『북미 순회 설법』)

사부님께서 1992년부터 정식으로 법을 전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법을 말씀하셨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단장 취의하여 한 부분만 보고 기타의 것은 우리가 보아내지 못하거나 보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사부님의 경서나 경문을 볼 때 구함이 없이 스스로 얻음을 해냈는가? 혹시 집착하는 마음을 품고 법공부한 것은 아닐까? 사부님이 어떠어떠하다고 하는 그러한 사람은 ‘법을 스승으로 모시다’를 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했다. 게다가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이치로 대법을 인식하고 있으며 감정적으로 사부님과 대법을 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가 정법이 언제 결속된다는 것에 집착한다면 정말 어느 날 정법이 결속됐을 때 우리는 원만하지 못한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 강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중도에 수련을 포기한 수련생들이 이지적으로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우리 대법제자가 그렇게 어려운 길을 걸어왔고, 현재는 이미 결속에 이르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경솔하고 충동적으로 대법을 떠난단 말인가? 우리가 생생세세로 겪은 고난은 헛되게 감당하게 된 것이 아닌가? 우리가 억만년동안 기다려온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함이 지당한가? 손실이 가장 큰 것은 자신이 아니겠는가? 왜 우리는 늘 자신이 어떠어떠한 것만 고려하고,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을 걸고 있는 무량한 중생의 장래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 것일까? 법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정진요지』「불성무루」)

마지막으로 나는 이미 수련을 포기한 수련생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동수여! 당신은 더는 편면적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이해하지 말고 어서 대법 속으로 들어오길 바란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당신들 세계의 무량무계한 중생도 당신들에 의하여 구도되기를 바라고 있다. 당신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책임져야 하며 천지간의 양심에 미안하지 않게 해야 한다.

개인의 인식이며 층차의 제한이 있으니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하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1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9/交流–同修啊-请不要片面理解师父讲的法-2350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