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인터넷에서 한 동수의 새 문장을 보고 매우 기뻤다. 이 수련생은 과거에 늘 사이트에 문장을 발표했는데 이후에 사악의 박해를 받아 아주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문장으로부터 수련생은 이전보다 더욱 성숙됐는데 이는 매우 기쁘고 안심되는 일이다.
그런데 성숙을 말한다면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구실이 바로 우리들이 아직 성숙되지 못했다고 여기면서 엄혹한 마난을 이용해 우리를 단련 성숙시킨다는 것이다. 이번 사악의 박해는 이렇게 오래도록 지속되는데 우리 대법제자들의 성숙되지 못한 것과 관계되지 않는가? 만약 우리 매 개인이 더욱 잘 법에 자신을 대조하면서 안을 향해 찾으면서 되도록 신속히 성숙된다면,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한다면 우리들이 잘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사부님의 정법에 가져오는 교란을 감소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성숙됐다고 할 수 있는가? 속인 중에서는 책임자가 되는 것을 성숙의 표지로 인정한다. 나 개인이 깨달은 것은 우리들이 오직 대법에 책임지고 동수에 대해 책임지며 동시에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곧 진정으로 성숙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화경(法華經)에 한 단락 우화가 있다. 재산이 한 나라에 견줄 만한 부호의 아들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곁을 떠나 외지에서 유랑 생활을 하면서 거지로 전락했다. 아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이전 출신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에 부호는 아들을 찾아 신변으로 데려 왔다. 그런데 거지는 아버지의 호화로움과 위엄을 보고 매우 무서워하면서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부호는 사람을 파견해 아들을 자기 집에 데려온 후 변소를 청소하는 인부로 시켰다. 그러나 아들은 이미 거지 생활에 습관돼 사상, 행동, 의식 등 모두가 상류층과는 천양지차였다.
아들을 교육하고 가르치기 위해 그 부호는 멋진 옷을 변소 청소하는 인부 옷으로 갈아입고 하인으로 변장하고 아들과 함께 변소를 청소했다. 함께 지내는 과정 중에 점차 아들의 사상 언행을 개변시켜 아들은 상류층으로 배양했다. 하지만 사람의 관념이 일단 형성되면 매우 완고한 것으로 아들 몸에 있는 그 비천한 거지 품성이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았기에 개변하기 매우 어려웠다. 그는 40여 년이란 시간을 이용해 아들로 하여금 가장 하층민인 변소 청소 인부에서 시작해 점차적으로 더욱 큰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부유한 가업의 관가(官家)로 만들어 매우 많은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게 했다.
마지막 부호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국왕, 대신 등 유명인사들을 불러놓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나의 아들이요. 어려서 내 신변에서 도망쳐 길거리를 헤맸는데 나는 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40여년의 시간을 이용해 끝내 이 아이로 하여금 몸에 있던 비천한 품성을 버리게 하고 상류층으로 만들어 이 큰 가업을 관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 나는 모든 재산을 모두 이 아이에게 맡겨 계승하게 하려 합니다.” 이때서야 부호의 아들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이 놀라움과 기쁨에 엇갈리면서 자비로운 아버지에 대한 감격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 우화는 속인들이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상 위대한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화에서 말한 것을 훨씬 초과한다. 당초에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내 우주의 무상대법을 우리에게 전수하시고 우리에게 비할 수 없이 보귀한 파룬과 수련 기제 등 좋은 것들을 넣어 주셨는데 이는 하늘은 무수한 불도신(佛ㆍ道ㆍ神)들이 가장 얻으려고 하지만 얻지 못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또 천지개벽 이래 만고에도 만날 수 없는 기연을 얻은 동시에 막중한 책임을 졌는데 우리는 반드시 이 중임을 담당하고 조사정법 하면서 우리들의 서약을 실현해야만 사부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것을 받을 자격이 있고 비로소 신, 우주의 불도신으로 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수련인으로 놓고 말하면, 당신의 씬씽(心性)에 대한 요구를 높이고 자신의 집착심을 내려놓는 이 점은 모호하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절대 표준을 나춰서는 안 되는바, 그것은 미래에 대해. 장래의 우주에 대해, 장래의 중생에 대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대법제자들은 장래에 매우 많은 생명들을 성취하게 되고 매우 많은 중생, 심지어 무량한 중생을 포용해야 하므로 당신이 표준을 낮춘다면 그 한 층의 우주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며 그 한 층의 궁체가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반드시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2003년 캐나다 밴쿠버법회 설법 』)
우리들이 막중한 책임을 졌기에 미래 생명의 안전과 관계되므로 우리들의 수련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다. 구세력도 이 점을 틀어쥐고 놓지 않고 그것들은 자신의 관념과 목적을 품고 엄혹하고 파괴성적인 마난을 이용해 이른바 대법제자를 ‘고험’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방식으로 대법제자들을 단련 성숙시킨다는 구실을 대고 있다.
비록 우리는 구세력의 박해를 승인하지 않지만 우리는 대법 중에서 단련 성숙해야 하는 데 이것은 필수적이다. 나는 대법에 책임지고 중생에 책임지며,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이것이 곧 성숙의 체현이며 역시 오직 대법수련 중에서만이 비로소 성숙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대법제자들이 모두 성숙됐다면 구세력은 박해할 구실이 없게 될 것이며 사악도 계속 존재할 이유가 없게 된다. 이번 박해가 이처럼 길게 연장되는데 우리는 반드시 안을 향해 잘 찾아서 되도록 빨리 성숙되어야 한다.
가장 큰 장애는 우화에서 나오는 부호의 거지 아들처럼 비천한 품성을 고치지 않고 사상과 언행이 상류층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전혀 자신을 상류층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사상 심처에 여전히 자신을 거지로 여기면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닌가?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대법 수련자가 일반 속인과 동등하한 것은 그 부호의 아들이 자신을 거지와 동등시하는 것과 무슨 구별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신과 사람의 차이는 부호와 거지와의 차이를 훨씬 초과하기 때문에 사실은 더욱 엄중하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나는 주요하게 요구를 좀 제기하겠다. 여러분은 금후 수련 중에서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여 진정하게 수련해 나가기를 희망한다.”
사부님께서는 이처럼 정중하게 이 일에 대한 요구를 제기하셨기에 우리는 더욱 중시하면서 시시각각 자신을 하나의 연공인으로 간주하고 진정으로 수련의 이 길에서 용맹정진하면서 끝까지 잘해야 한다. 시시각각 자신을 하나의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필히 히 매우 빨리 성숙될 것이며 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중대한 책임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약간한 개인 심득이다, 동수들과 서로 격려하려 한다.
문장발표: 2011년 1월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0/2347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