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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중에서 질투심을 수련해 버리다

글/ 대륙 대법제자 샤오리(小莉-가명)

[밍후이왕] 나는 1996년 가을에 대법을 얻은 제자로, 2002년 가을에야 무엇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인지를 똑똑히 알았다. 최근에 질투심을 수련해 버리는 면에서 수확이 있어 동수들과 교류하기를 희망한다.

예전에 신변의 어떤 수련생이 질투심을 언급하면, 당시 자세하게 안으로 찾지 않고 얕게 자신을 비추어본 다음 나 자신은 이 수련생이 언급한 질투심이 없다고 느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집의 소파도 그런대로 사용하면서 깨끗하게 거두지 않았다. 어느 하루는 동료의 집에 갔었는데 그녀가 막 낡은 침대보로 소파 씌우개를 해놓고는 묻기를 “당신 집의 것보다는 예쁘죠?”라고 했다. 나는 당시 대답하기를 “예. 참 예뻐요.”라고 했다. 이 일은 지나갔지만 집에 돌아온 후 마음속에 여러 차례 그녀의 말이 맴돌았다. 속으로 “소파 씌우개 하나를 가지고도 나와 비교하는가”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나 자신에 대해 깊이 건드렸는데 한 가지 작은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그녀를 질투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럼 자신의 질투심을 잘 찾아보도록 하자.

이번에 나는 2008년 밍후이 문장 총집 《질투심을 수련해 버리자》를 프린트해서 열심히 읽었다. 예전에도 이 문장 총집을 읽은 적은 있지만 감동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자신이 예전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는데, 지금 보아하니 자신이 일부 방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일부분 우월하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무의식중에 대비했던 것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은 내가 비교하는 대상이 되었으며 자신이 비교해 본 후에야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않았던 것이다. 표현돼 나온 것은 바로 자고자대인데 자고자대하면 쉽게 다른 사람을 깔보게 되며 자고자대 역시 질투심의 표현인 것이다. 이번에 자신은 비교당해도 비교가 되지 않았는데 바로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우수한 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낫은 것을 보고서야 질투심이 체현되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이 총집을 읽어보니 이 문장 중에서 제출한 각종 질투심의 표현이 자신에게 모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컨대 남편이 집안일을 적게 한다고 원망했는데 지금은 질투심의 표현임을 알았다. 이로부터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하나씩 조사해서 자신이 그들을 질투하지 않는지를 찾아보았으며 근원을 찾아내서 질투심을 수련해 버렸다. 먼저 시어머니를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사리가 밝고 늘 다른 사람을 고려해 주어 시어머니를 본 사람들은 시어머니에 대한 인상이 모두 매우 좋았다. 나는 종래로 뒤에서 그녀에 대한 나쁜 말을 하지 않았는데 사실상 그를 나쁘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나쁘다고 인정할까봐 두려워서였다. 지금 시어머니의 사람됨을 생각해보면 그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 나는 효성(孝順)과 효경(孝敬)의 차이점을 인식했다. 효경에는 존경의 성분이 안에 있는데 어떤 노인은 일을 함에 자녀들의 존경을 얻지 못하고 얻은 것은 다만 효성이지 효경이 아니었다. 시어머니에 대해 효경의 심리가 있게 되자 시어머니를 질투하지 않았다.

동서에 대해서 나는 뚜렷하게 질투심이 있었다. 동서는 시댁에 나보다 대가를 많이 치르지 않았고 자신이 좀 더 많이 치렀다고 생각되어 속으로 불평이 있었다. 지금 동서를 이해하고 보면, 그녀는 외동딸로 그녀의 친정집의 일울 모두 그녀가 걱정해야 했다. 자신은 큰형수로서 그녀를 관심해야 마땅한 것이다. 동서에 대한 질투심을 없앤 다음 뚜렷하게 가슴을 막고 있던 좋지 않은 물질들이 없어져 마음이 유쾌함을 느꼈다. 게다가 다시 한 번 시댁에서 모일 때, 그녀는 또 그릇을 씻지 않은 것 때문에 미안함을 표시했는데 서로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그녀는 나에 대한 존중을 체현했다.

사부님께서는 경문「경지(境界)」중에서 말씀하셨다. “악한 자(惡者)는 질투심 탓으로 사(私)적인 것을 위하고, 화풀이를 위하며, 스스로 공평치 않다고 하노라.

착한 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거니, 원망도 없고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 깨달은 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노라.”

지금은 마음속으로 원망하고 평형되지 않아 하고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하고 또 공평치 않다고 화를 내는 것이 바로 악한 자임을 체험했다. 10여 년 동안 수련했는데 아직도 악한 자의 표현이 있다니,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무서웠다. 다행히도 우리가 이들 좋지 않은 것들을 발견했기에 그것들을 수련해 버렸다.

교류 중에서 어떤 수련생은 말했다.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는 해낼 수 있다” 이 말은 나를 깨우쳐주었다. 사부님께서「苦其心志(고기심지)」중에서 우리들에게 “고생을 낙으로 삼으세”를 알려주신 적이 있다. 나는 이 시를 기억은 했지만 비추어 행하지 못하고 심령의 깊은 곳에 새기지 못했다. 앞으로 또 “고생을 낙으로 삼으세”를 해내야 한다. 해낼 수 있기만 하면 원망도 없고 증오도 없으며 화풀이도 안하고 불공평하다고도 하지 않을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착한 자의 표현으로 착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심으로부터 동료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녀의 말이 나를 점오해 주었기에 매우 깊은 곳에 감춰졌던 질투심을 찾아내 수련해 버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신도 사부님의 보호가 있고 사부님께서 법리를 지도해 주심이 있고 또 동수의 깨우침과 도움이 있기에 자신도 수련함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감수했다. 이로부터 사부님께서 “세인들이 환각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노라.”를 말씀하신 함의를 약간 체험했다. “집착심이 없으며(執著心無存)”란 각자의 상태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거리가 매우 멀다.

집착심은 질투심을 포함한 한 층 또 한 층의 표현으로 아직도 매우 깊이 감춰져 있는데 현재의 층차에서 사부님의 법리에 비춰 그것들을 수련해 버렸다. 우리들의 경지(境界)가 제고 되면 또 다른 표현이 있으며 또 우리가 수련해야 함이 있을 지도 모른다.

현재의 인식이므로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01월 0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9/交流–在攀比和被攀比中修掉妒嫉心-2346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