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기자 정위옌(鄭語焉)종합보도) 이웨이(宜葳)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예뻤으며 붙임성 또한 좋아 어른들과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과민성과 천식으로 늘 호르몬을 복용해야 했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사람들은 행운의 신이 늘 그녀를 따라 다니면서 보호해 주는 것을 부러워했다.
그녀는 30세 되던 해에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이때부터 이웨이에게는 인생에 큰 역전이 발생했다. 이름있는 중의와 양의를 모두 찾아 다녔지만 전혀 효험이 없었다. 고통으로 시달릴 대로 시달려 그녀의 마음은 지쳤다. 그녀는 더 이상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 병원에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아픔을 참으면서 나머지 인생을 보내려고 결심을 했는데 행운스럽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나 두 번째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웨이는 파룬궁(法輪功)을 시작한지 8개월 되는 2008년 5월 11일 뉴욕 연합 광장에서 거행한 ‘세계 파룬따파의 날’ 경축 행사에 참가했다.
다이 이웨이(戴宜葳)가 타이완대학 졸업 때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그림)
다이 이웨이는 어려서부터 타이완에서 예쁜 여자 아이로 불렸고 성적이 뛰어났다. 큰 시험일수록 더욱 우수해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타이완최고의 타이베이시 리베이 여자중학교와 타이완 대학을 졸업했다. 유학을 갈 때에도 아주 순조로웠다. 미국 캉저우대학에서 생물 기술 석사 학위와 컴퓨터 메카니즘의 2개의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여태껏 직장을 찾은 적이 없었고 모두 직장에서 그녀를 찾았다. “나는 정말 운이 너무 좋았어요. 지갑을 흘리면 주워서 돌려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웨이는 늘 이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순조롭던 인생이 30세가 되면서 갑자기 큰 역전이 닥쳤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엄중한 내상을 입다
91년 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 경제는 불경기였지만 이웨이는 졸업을 하기 전에 직장에서 이미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월급이 높고 복리가 좋은 직장이라서 동기들 모두가 부러워했다. 2005년 이웨이가 출근한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차를 몰고 퇴근하는 길에 뒤에 오던 차가 세게 충돌했다. 이웨이는 중상을 입었고 차는 모두 파손되었다. 겉으로는 상처가 보이지 않았지만 신체 조직에 내상을 입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도 큰 문제가 보이지 않았고 다만 약간의 뇌진탕이 있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집에 가서 한달 가량 휴식하라고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고 아픈 곳이 더욱 많아졌다. 의사는 “더 휴식하면 큰 일 날 것 같으니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의사의 권고를 듣고 돌아가서 출근했다.
몇 개월 후 이웨이는 더욱 악화되었다. 처음에는 왼쪽에 비교적 많은 통증이 있었고, 무명골 관절, 무릎 관절, 팔목 관절 등 세게 충돌한 곳에 비교적 통증이 있었는데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모든 관절의 통증을 감당해야 했다. 나중에는 걷지도 못했다. 이웨이는 두려운 마음에 사직하고 선생님을 홀로 미국에 남겨놓고 타이완에 돌아와 한방 치료를 받으려고 했다.
몸의 관절이 이탈되다
타이완에 돌아온 후 소개를 받아 그녀는 의술이 높은 한의사를 찾았다. 처음에 이웨이를 보고 한의사는 묻지도 않고 그녀의 손부터 관절을 하나하나 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신의 관절을 문질렀다. 그 후 이웨이는 아프지 않았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의사는 “당신의 관절이 모두 이탈되어서 아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요?” 의사는 “엑스레이의 오차 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이탈된 것은 보아낼 수 없어요. 그런데 당신은 너무 늦게 찾아 왔어요. 이미 고질병이 되어 치료하기가 아주 어려울 거에요.”라고 말했다.
정말로 날이 갈수록 움직일 때마다 반복해서 뼈가 이탈되었고 인대가 이미 관절을 고정시키지 못했다. 이 한의사에게 다니는 횟수가 너무 잦아 이웨이의 부친은 그녀를 위해 의사의 집 근처에 집을 세 내었다. 몇 달 후 의사는 이웨이에게 건강회복 동작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이런 운동을 하여도 늘 관절이 이탈되었다. 이렇게 이탈되면 의사한테 가서 바로 잡아 놓고 계속 운동을 견지하였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문도 열지 못하고, 옷도 입지 못하고, 밥그릇까지 들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온 몸의 관절이 모두 시큰거리고 아파 고통을 참기 어려웠다.
‘섬유근육통’으로 모르핀 진정제를 사용
더욱 심한 것이 기다라고 있었다. 점차적으로 신경에 후유증이 나타났다. 섬유근육통이라는 병이 나타나 통감신경(痛覺神經)이 없어졌다. 기본적으로 통제할 방법이 없었고 호흡, 체온조절, 혈당조절, 전체가 모두 혼란 상태였다.
이웨이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온 몸의 통증을 참기 어려웠고, 움직이기만하면 졸도했다. 어디를 가든지 산소통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시로 혼미 상태로 들어갔다. 제일 엄중한 것은, 단오날 오전 병원에서 통증으로 깨어나 간호사에게 모르핀을 가져다 달라고 말하려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웨이는 “나는 그때서야 말을 하는데 많은 세포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매 세포가 아파 모든 의지력과 힘이 고통을 참는데 소모되어 말할 힘조차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전신의 통감 말초신경이 확대되어 아팠다. 오직 모르핀으로만 진정될 수 있었다. 이웨이는 ‘이렇게 날마다 통증으로 아주 불행한데 진정제에 중독까지 되면 더욱 비참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을 적게 쓰면서 참으려고 더는 약을 요구하지 않았다.
현대 서양의학은 섬유근육통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모르핀으로 진통시킬 수 있는 것 외에 치료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중의 신경약을 실험적으로 매일 몇 십 알씩 먹었다. 이웨이는 함께 입원한 환자들이 나중에 성격이 변하고 위장도 모두 망가진 것을 알았다. 이웨이는 이 약이 수명을 짧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을 했지만 하루도 이약을 먹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의사는 이 병은 만성으로서 파룬궁을 연공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소개
타이완에서 이렇게 고생하면서 일년 반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웨이는 더는 병치료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서 고통을 참고 견디면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결정하기 3일전 인터넷에서 진통에 쓸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귓바퀴의 혈침에 대한 그림에서 한 중의의 문장을 수집했다. 이웨이는 미국에 있을 때 늘 따지왠(大紀元) 신문을 볼 때 이 중의에 대한 기고란을 즐겨 보았는데 그녀의 문장에서 그녀의 의덕(醫德)이 아주 좋고 사람이 아주 바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 중의는 관절 질병에 대한 연구를 했었고 중의의 의학 이론에도 독자적인 견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또 한번 마지막으로 시험해 보려고 생각했다.
이 중의에게는 환자가 아주 많았다. 이웨이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 중의의 진단을 한번 받아 보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주 좋은 분이었어요.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점심시간에 45분의 시간을 내 주었어요.” 그녀는 과연 의술이 뛰어났다. 신장, 간, 위, 골격과 골수의 건강 상황을 보려고 혈 위에 침을 놓아 피를 뽑아 보았는데 모두 검은 색을 띄었다. 이것은 이 기관이 좋지 않으며 이미 환자는 만성임을 나타냈다. 의사는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마음에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나중에 의사는 “당신이 미국에 가면 당신을 구할 사람이 없어요. 당신 자신이 자신을 구해야 해요. 파룬궁을 연공하세요. 연공하면 모든 병이 나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웨이는 말했다. “그녀는 내가 별로 믿지 않는 것 같았는지 아주 깨끗한 파룬궁 진상 전단지 한 장을 주면서 집에 가면 인터넷에서 배우라고 했어요.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 두장의 종이가 앞으로 나의 생명을 개변할 수 있다는 말에 미국으로 가지고 갔어요.”
미국으로 돌아간 후 금방 배우지 못했다. 이웨이는 “나는 파룬궁을 연공하면 능히 백가지 병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믿었어요. 그렇지만 이것도 태극권처럼 십 몇 년이나 20년 동안 연마해야만 되는 것으로 알았고 그때가 되면 이미 50세이므로 인생은 이미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직도 빨리 침구 의사를 찾아 통증을 제거하여 즉시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낮에는 선생님이 출근하였으므로 생활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 후 그녀는 관절이 또 이탈되었는데 침대에 두 주일 동안 누워 있은 후에야 좋아졌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살아야 한다
자신에게 생활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타이완으로 돌아가 계속 의사를 찾아야겠다고 어머니에게 요청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돌아오지 말아라. 치료하면서 돈이 모두 거덜 났으니 이제부터는 치료하려면 돈을 빌려야 한다”고 하였다. 이웨이는 3일 동안 울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30년을 공부하여 석사학위 2개를 땄는데, 결국 밥 한 그릇 살 돈도 벌지 못하고 있구나. 사는 것이 고통을 참는 것 외에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구나. 무엇 때문에 아직도 살려고 하는가?’ 내심의 고통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가족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도대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포기해야 하는지?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찾지 않으면 후회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속으로는 아주 몸부림쳤다.
이때 그녀는 ‘파룬궁이나 연공해 보자. 달리 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연공하면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고 돈도 쓸 필요가 없이 죽은 말을 산 말처럼 치료해 보자.’ 처음에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배우려고 일반 기공처럼 직접 동영상을 다운받아 따라 하였는데 단번에 잘못 되었다. 관절이 느슨해지고, 두 무릎 뼈가 갈라져 아래로 구부러지면서 관절이 이탈되어 통증으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두려웠다. 마음속으로 ‘이젠 끝장이다. 양의가 안되고, 중의도 안 되고, 기공도 안 되니 나는 정말로 후반생에 불구가 될 것 같다.’ 이웨이는 속으로 ‘내가 어느 생애 혹은 많은 생애에 아주 나쁜 일을 하였기에 이번 생애에 이렇게 끊임없는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구나. 이 신체는 바로 나의 감옥이고 나를 시달리게 하는 형틀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하루 밤을 어렵게 지냈다. 갑자기 ‘그 중의의 인품이 그렇게 좋은데 그녀가 정중히 추천한 파룬궁을 나는 마땅히 다시 연구해야 하고 이렇게 빨리 포기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다.
하루만에 전법륜(轉法輪)을 다 보고 마음속으로 ‘나는 수련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튿날 이웨이는 타이완에 와서 수련생들이 소개한 ‘파룬따파가 타이완에 있다’라는 사이트에서 신수련생은 반드시 전법륜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제3강을 보고 바로 휴식하였지만 그녀는 이미 아주 진감되는 느낌에서 창문 하나를 열었다. 하루 지나 또 대법 사이트를 보면서 단숨에 『전법륜』을 한번 다 볼 것을 신수련생에게 건의한 것이 눈에 띄었다. 이웨이는 따라 하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고층차로 공을 전함은 무슨 문제인가?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을 제도함이라 당신은 진정으로 수련하는 것이지, 단지 병을 제거하고 몸이나 건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전법륜』) 이웨이는 제도한다는 말씀에 깊은 감촉을 받았다. ‘내가 말세에 다음 세계의 각자를 만난 것이 아닌가? 나는 수련의 법문을 만나지 않았는가? 나에게 또 이런 행운이 있을까?’ 이어서 또 보았다. ‘사람이 반본귀진하려는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불성이 나왔다고 본다.’(『전법륜』)
이웨이는 흥분되어 크게 외쳤다. “나는 끝내 찾았다!” 그녀는 온종일 『전법륜』을 다 본 후 감격해 마지않았다. 가슴속에서 또 하나의 작은 내가 소리 지르면서 뛰는 느낌이었다. ‘나는 수련하겠다. 나는 수련하겠다. 행운이 있어 각자가 세간에 내려옴을 알려 줬지만 아주 유감스럽게 입문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심에서 『전법륜』에서 말한 것이 모두 진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을 관할하는 사람이 없으니 입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보살피는 사람이 없고, 나에게 신체를 정화시켜 주는 사람도 없어 병은 영원히 호전되지 않았다. 나도 여생을 절실히 자신의 업을 감당하고, 갚으려고 하며, 『전법륜』의 요구에 따라 일생을 살려고 한다.’
2년간의 고통이 하루 밤 사이에 모두 사라지다
이튿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후 조심스럽게 시큼시큼한 사지를 움직여 보았는데 움직이기 힘들었던 손을 이외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고 아프지 않았다. 온 몸이 가뿐했다. 일어서서 걸어도 보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도 2년 동안 시달리던 온 몸의 고통으로 전부 사라졌다. 마치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았다.
깊이 감화된 이웨이의 머리에서는 둥둥 소리가 났고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이럴 수 있는가, 나를 관할하여 주시다니…. 신은 정말로 존재하고 있다. 그 힘은 이렇게 크다. 또 나와 확실히 접촉했다. 다만 보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병으로 누운 지 2년이란 시간이다. 그 고통이 그렇게 진실하게 그 뼈마디가 이탈하면서 서로 마찰되는 역겨운 감각은 그렇게 진실했는데 갑자기 하루 밤 사이에 모두 사라졌고 그 과정도 없었다. 과연 세간의 일체는 모두 환상이 아닌가. 물질 재부가 환상일 뿐만 아니라 병도 모두 환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이미 새로운 생명으로 전환된 것을 믿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역시 아프지 않았다. 이웨이는 ‘이번에는 진실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 감히 확신하지 못했고 집에서 혼자 가부좌하지 못했다. 조심하지 않아 대퇴골이 완전히 이탈된다면 혼자서는 정말로 기려고 해도 기어 다닐 수도 없다. 그래서 연공장에 가서 가부좌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일 관절이 이탈되면 또 누구의 도움으로 구급차를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웨이는 연공장으로 갔다. 처음에는 단가부좌를 3, 40분 했는데 이탈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편안했다. 이웨이는 정말로 기뻐서 어쩔 쭐 몰랐다. ‘이제야 정말로 확신이 든다. 사부님께서 나를 제자로 받아 들이셨다.’
수련 8개월 후 전신이 가벼워 대법의 날을 경축하면서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를 표시
이미 장애인으로 신청한 한 사람이 행운으로 파룬따파를 만나 수련의 길에 들어선 후 온 몸의 병이 하루 밤 사이에 사라졌다.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사고 전보다 더욱 건강해졌다. 건강, 사업, 혼인, 가정이 모두 없어질 뻔했고, 인생이 거의 끝나려고 할 때에 대법은 나에게 두 번째의 기회를 부여했다. 2008년 5월 12일, 파룬궁을 수련한지 8개월이 된 이웨이는 처음으로 ‘세계 파룬따파의 날’ 경축행사에 참가했다. 이웨이는 말했다. “이 날은 우리들이 사부님의 생일을 경축하면서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날이다. 사부님의 은혜가 깊어 영원히 보답할 수 없다. 나는 오직 대법을 아끼고 수련에 정진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
문장완성 : 2010년 12월 1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2/17/留美女硕士二度人生福祸大逆转(图)-2337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