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주동적으로 동화되는 것과 피동적으로 감당하는 것은 천양지차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늘 아침 연공을 마친 후 머리 속에 한 마디 말이 나타났다. “주동적으로 동화 되는 것과 피동적으로 담당하는 것”

자신의 이전 수련을 생각해 보면 흔히는 피동적으로 담당할 때가 많았고, 주동적으로 동화 될 때가 적었다. 한 가지 일이 나타날 때, 일념이 법으로 가늠해 어떻게 하는가가 아니라 정과 관념으로 대했고, 사람의 도리로 옳고 그름을 논했는데, 그 결과가 어떠했겠는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늘 자신의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를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해 일체를 안배했고 계획했다. 정에 감싸여 있었고 감겨져 있었으며 피로해졌는데 많아지는 것은 또 하나의 실망, 상처와 불평,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개변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나이만 먹고 번뇌만 증가됐다. 안으로 찾아 어느 마음을 닦아야 할지를 몰랐고, 정에 의해 파생된 각종 마음 중에서 끌려 다니고 뒤엉켜 있으니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고 분개하고 원망하는 와중에 천천히 마음이 안정되긴 했지만 피동적으로만 담당하면서 자신을 수련할 줄 몰랐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공부를 하는 와중에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게 자신을 수련하기 시작해 더는 정의 속박을 받지 않게 됐다. 사부님의 법을 지도로 삼고 문제에 부딪히면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수련했으며 이따금 좋지 않는 마음과 정서가 나타나게 되면 제때에 정념으로 그것들을 제지하면서 그것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제거해 버리면서 그것들에 의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각도로 바꾸기도 하고, 다른 하나의 사유 방식으로 바꾸면서 문제에 부딪히면 우선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주동적으로 법에 동화됐다. 더는 정과 관념으로 일체를 대하지 않고, 선과 자비로 대했다. 법 중에서 수련하니 마음이 안정될 수 있어 과거의 대희대비(大喜大悲), 대애대한(大愛大恨) 없게 됐다. 침착하게 되어 사람도 청정하고 평온하게 변했다. 대법 수련은 이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원래 법 중에서의 수련은 그처럼 미묘한 것 이였는데 일찍부터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사부님의 점오에 감사드립니다.

문장 완성: 2010년 12월 20일
문장 분류: 톱기사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2/20/主动同化和被动承受-天壤之别-2338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