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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신사신법하자

글/ 대륙대법제자 징롄(靜蓮)

[밍후이왕] 나는 1년간 신사신법한 방면의 제고를 이야기하려 한다. 자신은 늘 신사신법 하여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수련을 시작해서부터 자신이 생생세세로 기다린 것이 바로 대법임이 분명했다. 1999년 1월 20일, 법을 얻은 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비록 사악의 탄압은 기세가 사납고 하늘땅을 덮을 뜻 했지만 나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고 ‘眞ㆍ善ㆍ忍’이 좋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었고 우리의 사부님은 위대하고 사부님께서는 억울함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이야기하신 고험이겠구나’라는 생각만 했다. 그러므로 많은 노 수련생들이 연마하지 않은 것을 보고 그들을 대신해 안타까웠고 마음속에 일종 질투심으로 인해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이 일어났는데 수련인이 마땅히 닦아 버려야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나는 오래도록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때의 신사신법은 가장 근본적인 것에서의 확고한 바른 믿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늘 사부님께서 이야기하신 ‘수련의 최후 일보까지도 법에 대해 근본상 믿는가 믿지 않는가’하는 법리를 그다지 이해하지 못했다.

금년 봄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곳에 말에 의하면 50년에도 만나지 못하는 폭설이 내려 거민가옥 지붕에 눈이 쌓이고 녹으면서 물이 샜다. 우리 집도 어느 하루 갑자기 물이 샜는데 아주 심각했다(지금껏 있어 본적이 없다). 무슨 일인가? 수련인은 안으로 찾아야 한다! 꼭 내가 누락이 있는 것이다. 나는 앉아서 발정념을 했는데 사부님께서 계발해 어제 법공부팀에서 발생한 일이 생각났다. 한 수련생이 거리에서 『9평 공산당』을 배포하다가 악경에게 납치당해 법공부팀 수련생은 그를 위해 발정념을 하자고 건의했다. 나는 속으로 그다지 내키지 않아 “어찌 그렇게 지혜가 없지요? 꼭 누락이 있는 것이며 손실이 너무 큽니다”고 말했다. 건의를 제기한 수련생은 “어떠하든지 그는 매우 대단하다. 우리는 그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또 “그는 꼭 무슨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한마디 보충했다.

나는 아주 빨리 자신의 잘못을 인식했다. 수련생이 누락이 있어도 사악의 박해는 허락 못한다. 우리는 사부님이 지켜보고 계시는데 어찌 수련생을 나무랄 수 있을까. 이것은 이기적이고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한 선량한 속인도 다른 사람이 난이 있으면 모두 아주 괴로워하는데 나는 그렇게도 무관심하게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이야기하시기를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며, 당신의 일이 바로 그의 일”(『각지 설법2』「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이라고 하셨지 않았는가? 어찌 사부님의 말씀마저 잊었는가? 나는 너무 쓸모가 없다! 수련하고 있다는 것이 속인마저도 못하다. 위사위아는 낡은 우주의 이치지 내가 아니다. 우리는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 정각을 수련하고 있지 않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회한의 눈물이 흘렸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감사를 드리고 제자는 잘못했으며 큰 누락을 찾았으니 꼭 그것을 수련해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가서 지붕을 보니 새지 않았다.

잇달아 말할 일이 비로소 내가 말하려는 중점이다. 나는 물을 받던 그릇을 가져다 안에 물을 버렸다. 아울러 또 일기예보에서 내일 비가 있다고 했는데 만일 다시 비가 새면 받자고 생각하고 그릇을 원 자리에 놓았다. 사부님께서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전법륜』)라고 이야기 하셨다. 나의 이 일념은 사람의 생각이고 나쁜 생각이다. 과연 다음날 지붕이 또 샜다. 이번에 비가 샌 것은 스스로 구해온 것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됐다. 무엇 때문에 구한 것인가? 진정으로 신사신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부체(附體)가 된 사람에게서 그것을 처리해 버렸으나 그는 늘 그것이 있는 것으로 느꼈다. 의심했으므로 또 불러오게 된다. 이것이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문제가 아닌가? 비가 새는 일에서 이왕 자신의 사심을 찾고 아울러 스스로의 신사신법이 확고하지 않다는 것을 보았으므로 나는 조금도 우려하지 않고 그릇을 가져갔다. 그때부터 다시 물이 새지 않았다. 신사신법에 에누리가 있으면 제고와 정진을 담론하지 못한다.

한번 나와 수련생이 늦은 밤에 차를 기다렸는데 그는 이렇게 늦었는데 공공 버스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대법제자가 승차할 수 없다니? 몇 분 지나지 않아 차가 왔는데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그 노선의 차였다.

수련생이여 기억하라. 우리는 대법제자이고 사부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누가 우리보다 행운 하겠는가! 우리는 수시로 사부님께서 보호하시고 당신이 정진하든지를 물론하고 시종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오직 우리들이 마비되고 정진하지 않을 때 사부님의 가호를 감각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것은 스스로 법공부를 잘하지 않고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법공부를 잘하고 일체는 모두 법에 있을 때 늘 마음을 닦고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면 당신은 법과 아주 가깝고 사부님과 아주 가깝게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법과 갈수록 멀어지고 사부님과 갈수록 멀어진다.

내가 이 일체를 깨달았을 때 나는 속으로 ‘나는 사부님이 계신다.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고 외쳤다.

그렇다. 나는 우주에서 가장 행운한 생명으로 또 무엇 상심할 것인가? 주위 속인들을 돌아보면 그들은 얼마나 가련하고 언제야 비로소 부처를 향하는 마음이 생겨 사부님의 구도를 받을 수 있을까? 오직 자신을 수련 잘해야만 많은 사람을 구하고 비로소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와 불은호탕에 부끄럽지 않다. 다시 한 번 사부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문장발표: 2010년 12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2/13/要做到真正的信師信法-2335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