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홀가분하고도 즐겁게 수련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7년에 대법을 얻은 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법제자다. 『전법륜』을 얻은 그 날부터 시작해,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명심했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전법륜』 10여 년 동안, 사부님의 인도와 보살핌 하에, 나는 시시각각 자신은 수련인이며 사부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면 나는 곧 그렇게 한다고 자신을 일깨우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오늘까지 걸어왔다. 나는, 수련은 어려우면서도 또 어렵지 않고, 엄숙하면서도 또 홀가분하고 즐겁다는 느낌이다. 아래에 나는 나의 수련 체험을 두 방면에서 사부님과 수련생들에게 간단히 알려드리겠다. 희망하건대 모두가 자비로 지적해 바로잡아 주길 바란다.
1, 아주 즐겁게 명리정을 수련해 버리다
1997년 초 여름, 나는 부부가 따로 살았던 이유로 한창 전근하는 일로 바삐 보냈다. 6월 11일, 나는 고향에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러 갔다가 운 좋게 소중한 책『전법륜』을 보았다. 저녁 9시부터 줄곧 이튿날 오전 5시까지 나는 단숨에 다 읽었다. 비록 아는 듯 모르는 듯 했지만, 영문을 알 수 없이 심신이 그로 인해 진동을 받았으며,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임을 느꼈다. 나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를 알았기에, 다시는 직장의 전근을 위해 신경을 쓰고 분주히 뛰어다니지 않으며 일체를 순리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여전히 따로 살고 있지만 나는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다. 특별히 우리 현의 동수들이 용맹정진(勇猛精進)하고 대법 일을 착실하고도 열심히 또 세밀하게 해서 환경을 아주 잘 개척한 것을 보고, 협조인으로서 비록 나는 두 곳을 뛰어 다니지만 내심은 아주 기쁘고 위안이 되며 아주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왕 수련한 이상, 무조건 眞•善•忍에 따라 해야 한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비교적 쉽게 화를 내는 성질이었는데 조금만 순조롭지 않으면 곧 남편에게 큰 소리로 꾸짖었으며 심지어 발로 차고 주먹으로 쳤다. 수련 이후, 남편 성질이 도리어 크게 나빠져 늘 나를 마구 때렸다. 처음에 나는 여전히 변명을 했으나, 가정이 바로 내가 수련하는 환경이고, 부부 모순은 바로 내가 제고하는 기회이며,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는다”를 해내라고 하셨음을 생각했다. 때문에 매번 그가 이유 없이 큰 소리로 꾸짖을 때면, 나는 바로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를 내고 원망하며, 억울해 하고,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우려하는 마음에 집착한 참음이다. 화를 내고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고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수련자의 참음이다.”『정진요지』「무엇을 참음이라고 하는가(何爲忍)」 나는 무조건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눈물을 머금은 채 참으면서부터 홀가분하게 참기까지 맨 마지막에는 태연하게 내려놓았다. 대법을 막 얻어 오래지 않았을 때의 일이 기억난다. 어느 하루는 내가 한창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데 남편은 이유 없이 옥수수 죽 한 그릇과 한 냄비의 볶은 배추를 나의 머리 위에 엎어 놓았다. 나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아주 평온하게 상의를 벗고 수돗물로 머리를 씻어냈다. 당시 아픈 감각도 없었다. 그러나 목과 어깨 위는 빨갛게 되어 작은 물집이 한층 생겨났다. 그 후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감당하셨음을 알았다. 아무리 씻어내도 머리카락은 끈적거려 깨끗이 씻기지 않았다. 나는 아예 머리를 박박 깎고 모자를 쓰고 자연스럽게 해야 할 바를 다했다.
1999년에 나는 네 차례 베이징으로 대법을 수호하러 간 적이 있다. 처음 두 차례는 남편이 가로막지 않아 나는 모두 순조롭게 벗어날 수 있었다. 세 번째 나는 겨우 기회를 엿보아 가려다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는 다가와서 한 주먹에 나를 땅 위에 때려눕혔다. 나는 눈앞이 번쩍하는 감각을 느꼈다. 좀 평온해 진 다음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아예 바닥에 앉아 품 안에 품었던 『전법륜』을 꺼내 통독(誦讀)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러는 것을 보고, 남편은 마음이 아팠던지 또 하는 수 없이 나를 침대 위로 안고 갔다.
남편도 법원에서 근무했는데 사악한 당의 독해를 깊이 받았다. 파룬따파(法輪大法)가 탄압 당한 10여 년 동안, 나는 줄곧 그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시도했지만 그는 늘 노발대발했다. 평소에 늘 일부 사소한 가정 일을 가지고 나를 마구 두들겨 팼다. 어느 한 번은 한 쪽 무릎으로 내 몸을 짓눌러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지게 했다. 나는 여전히 그에 대해 원망도 없고 증오도 없이, 그의 좋은 점을 많이 생각했으며 생활 상에서 그에 대해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다. 그가 금방 나를 때린 뒤에도 나는 역시 그에게 관심을 가지며 권하듯이 말했다. “화를 크게 내면 몸을 해쳐요. 자신의 몸을 보양하는 데 주의를 가지세요.” 최근 어느 날, 내가 주의 하지 않아 『밍후이주간』을 책상 위에 놓았는데, 그는 들어서 곧 휴지통 안에 던져버렸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하지 말라고 권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힘껏 밀치면서 또 한편으로는 소리를 지르면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은 모두 멀쩡하게 생활하고 있는데 당신은 도리어 나에게 재난을 가져다 준다. 나의 앞길을 당신이 망쳤다!” 나는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말했다. “저는 수련한 다음 얻은 명예가 수련하기 전보다 더욱 많아요. 나는 나 자신마저도 망치지 않는데 어떻게 당신을 망쳐요? 시끄럽게 굴지 마세요. 아들이 곧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요. 내가 당신에게 밥을 해 줄게요.” 그는 여전히 노발대발했으며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전등을 모두 끄면서 또한 외쳤다. “누구도 밥을 먹지 못해. 나는 당신의 남자다. 당신은 나의 말을 들어야 해!” 그가 화가 난 모습을 보고, 그가 욕설을 퍼붓는 것을 듣고 나는 어둠 속에서 ‘피식’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속으로 “집안의 안팎은 일의 대소를 논하지 않고 모두 내가 돌보는데, 당신이 나의 남자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가, 내가 당신의 말을 들으라고? 나는 나의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요!”라고 생각했다. 일이 지난 후, 나는 생각해보았다. 무엇 때문에 내가 소리 내어 웃게 되었는가? 보아하니 내가 그에 대한 자비(慈悲)가 아직 부족하구나!
그날, 아들은 나에게 그의 아버지에 대한 강렬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들은 늘 나와 법공부를 함께 했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너의 아버지는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며 또 쉽지 않다. 너의 아버지가 우리 둘에 대해 엄격하게 요구하기에, 우리 둘은 물건을 마구 놓지 않고 가정 일도 세심히 하고 있잖니? 게다가 가정은 우리의 수련 환경이며 너의 아버지는 바로 우리 둘에게 심성을 제고하게 한다. 사부님께서는 ‘업력(業力)의 전화(轉化)’의 한 구절에서 아주 똑똑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수련인이고 대법이 있다. 그러나 그는 속인이고 그에기는 단지 우리 둘 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는 그를 이해해 주고 더욱 많이 생각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우리는 또 그를 구해야 하며 그를 대법 속으로 이끌어야 한다.” 아들은 깨달았다.
한 수련생이, 수련인이 가장 넘기 어려운 것은 이익에 대한 관과 자식 정에 대한 관이라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자식 정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 차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는데 나는 막 두 돌이 된 아이를 다 던져버리고 갈 수 있었으며 가려고만 하면 갔다.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없는 그 동안에 아이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는 엄마가 없어도 아버지가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관할하며, 아버지 어머니에게 딸이 없으면 동생과 자매가 관할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대법이 없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나의 생명은 바로 대법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진리를 위해 일체를 다 바치는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여길 뿐만 아니라 역시 수련인의 본분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익 앞에서 그때 나도 좀 소홀히 했는데, 생각해보면 지금까지도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것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아이의 고모가 말하기를 초등학교의 집을 9만 위안에 우리에게 팔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후 그녀는 집 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팔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나는 좀 받아들이지 못했다. 바로 이때, 아이의 큰아버지는 2년 전에 나한테서 빌린 돈 5만 위안을 돌려주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가 그에게 공장을 건설하는데 투자한 돈마저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아이의 큰어머니는 더욱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에 나는 속으로 불공평한 것에 매우 화가 났다. 원래 나의 시어머니는 줄곧 우리와 함께 지냈다. 이때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노인이 줄곧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것을 나는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당신의 형과 당신의 누나는 고마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이렇게 우리를 업신여겨요. 기왕 노인은 세 사람의 부모인 이상, 그럼 모두가 번갈아 가며 모셔요!” 남편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어머니를 큰아버지네 그곳으로 보냈는데 큰어머니가 받아 들이지 않아서 고모네 그곳으로 보냈지만 고모부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부득이 우리 집으로 다시 모셔오는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아들이 공부를 하고 돌아왔는데 할머니가 눈물을 떨구고 있는 것을 보고 곧 “어머니, 당신은 무엇 때문에 할머니를 괴롭혀요? 어머니가 이렇게 하면 장래에 제가 어떻게 어머니를 대하라고요?”라고 말했다. 본래 나도 노인을 위해 괴로웠는데 아들이 이렇게 말하자 나는 더욱 노인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노인에게 집안의 일부 사소한 일을 말하고는 사과를 드리면서 말했다. “오직 아이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뭐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계속 우리 집에서 살아요!” 노인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너무 형편없음을 느꼈다. 한 수련인으로서 어찌 속인과 자질구레한 일을 시시콜콜 따지기 위해 노인을 돌보지 않는가! 정말 사부님께 미안하고 대법에 미안했다. 2~3일 후, 나는 이 일들에 대해서도 모두 태연하게 내려놓았다.
또 한 번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일을 나는 모두와 말하려 한다. 2000년 10월 1일, 현(縣)에서 다섯 명의 경찰이 우리 시(市)에 있는 집으로 찾아왔다. 말로는 현에 한 동수의 아들이 그곳의 대법자료는 모두 우리 시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말했으며, 내 이름을 대고 그의 어머니와 바꿔 데려가게 했다며 지금 나를 데려가려고 했다. 나는 내가 사악에게 빈틈을 주어 비집고 들어오게 했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일전에 집을 장식했는데 수련생이 나를 도와 사람을 찾아 재료를 사왔다. 그러나 재료를 사는 사람이 내가 시세를 모른다는 이유로 뜻밖에 두 배의 시장 가격으로 나한테서 장식재료 비용을 달라고 했다. 나는 당시 속으로 특별히 마음이 평형 되지 않아 곧 토라져서 말했다. “나는 연마하지 않겠어요. 眞•善•忍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건 너무 손해를 봐요.” 지금 경찰과 직면해서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수련할 만한 사람이라고 보시고 나를 포기하시기 아쉬워 이런 방식을 통해 나를 돌아오게 했던 것이다. 가는 길에서 나는 경찰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오늘 나를 붙잡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연마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에 나는 꼭 끝까지 견지할 겁니다!” 나는 린현(鄰縣) 구치소 안에서 그들에게 일체를 협조하지 않았으며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풀려났다. 그러나 결코 생각지 못한 것은, 현의 선전 부문과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기계 등 설비를 가지고 나의 아버지 집으로 찾아가 나를 취재하고 촬영을 하려고 했다. 당시 나는 호된 꾸짖음을 당했다. 이번에 우리 집 전 가족을 격노시켰는데 아버지, 오빠와 남동생, 여동생들이 함께 다가와서 마구 때렸는데 그건 정말 때리는 것이다! 어머니는 바로 나의 머리를 잡고 돌로 된 층계의 땅 위에 죽도록 부딪히게 했으며 아버지는 “우리 온 가족은 모두 혁명가족인데, 어떻게 너 같은 이런 반혁명이 나타날 수 있느냐! 너의 다리를 부러뜨려놓을지언정, 다시는 네가 가서 체면을 망치게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남동생은 팔을 번갈아 가며 나를 가리켜 말했다. “이 집은 당신이 망치고 만다. 집……” 나는 그들의 집중 공격에서 애써 벗어나면서 남동생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너희 집이 어쨌단 말이냐. 누가 파룬궁을 박해했다면 바로 그 집은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죽으며 지옥으로 내려간다!” 고 말했다. 이때 나는 남동생이 김 빠진 고무공처럼 신속하게 풀이 죽은 걸 보았다. 다른 사람도 내가 이렇게 나오자 또 방금 전의 기세가 없어졌으며, 다른 사람들도 모두 풀이 죽어 가버렸다. 이번에 때린 후부터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은 나에 대해 모두 일종 강렬한 원망을 품었다.
정법의 진전에 따라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책임으로 되었다. 그러나 나의 가족은 모두 사악한 당 간부이다. 하지만 그들도 나의 중생이다. 게다가 그들도 사악한 당의 거짓말 선전과 기만을 당하고 있으며 사악의 통제를 당하고 있다. 그들 본성의 일면은 꼭 이렇게 나를 대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구해야 한다. 이 일념이 있자 나는 과거의 맺힌 원한을 버리고 원망을 던져 버리고 지난 날과 다름없이 그들을 잘 대했으며, 조카딸에게 관심을 가지고 조카와 조카딸의 생활과 학습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좋은 물건이 있으면 곧 그들에게 보내주었다. 극력으로 크게 노력을 들여 큰 일과 작은 일 모두 眞•善•忍으로 자신을 요구했다. 우리 현지의 풍속에 따르면, 마땅히 아들이 노부모를 돌보아야 한다. 부모의 집을 바꿀 때가 되었지만 오빠와 동생 두 사람은 보고도 못 본척했다. 나는 곧 돈 10만 위안을 꺼내 노인에게 집을 사드렸다. 나는 나의 진심과 행동으로 그들을 감화시켰으며, 그들로 하여금 나의 몸에서 수련인의 품격과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도록 했다. 이와 동시에 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전 가족은 사악한 조직에서 탈퇴했으며, 아버지 어머니는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그렇다. 나에게 그렇게 많은 걸 주신 사부님께 감사 드리고 대법에 감사했다. 만약 대법이 없었다면 나는 개인의 은혜와 원망, 사랑과 정 속에 빠져 일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갔을 것이다. 만약 대법이 없었다면 나는 가정의 옳고 그름에 뒤얽혀 이해득실 중에서 일생을 번뇌했을 것이다. 만약 대법이 없었다면, 나도 관리 사회에 빠져 물결치는 대로 표류해 평생토록 업을 짓고 자기 생명의 영원함을 망쳐버렸을 것이다! 바로 대법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깊은 산 속 쓸쓸하고 가난한 생활 중에서 부처 수련을 하는 고생을 하지 않고 시끄러운 속세와 일상생활 속에서 수련할 수 있었다. 오직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심성을 지키기만 한다면, 수련은 뜻밖에도 이렇듯 간단하고 홀가분하며 즐겁다!
2,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시작해, 나는 모두 아이의 반주임과 강의를 맡은 선생님에게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했다. 어떤 때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 자신이 돈을 내서 밥을 사주었다. 그 중 초등학교에서 한 강의를 맡은 선생님의 남편은 감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말하는 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는 여자노동교양소의 책임자와 관계가 비교적 좋았다. 나는 그를 통해 여자노동교양소의 책임자에게 접근하려고 생각했다. 모든 노동교양소에서 근무하는 인원에게 더욱 깊게 진상을 알려주어 그들을 구도하는 동시에,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는 동수들을 위해 더욱 느슨한 환경을 개척해주어 동수들의 압력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내가 그의 집으로 가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온 걸 보더니 곧 농담을 하며 말했다. “대법원 관직에 있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네바퀴 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왔습니까?” 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네바퀴 차는 소비가 너무 많아서 타지 못하겠네요.” 그는 “아닙니다. ‘창이 큰 모자는 두 끝이 쳐 들려서 원고(原告)를 먹은 다음 피고(被告)를 먹지요.’ 당신들 이 업종을 하는 사람들이 개인차를 탈 상황이 못 된다고?”하고 말했다. 나는 얼굴의 웃음을 거두고 바른 태도로 말했다. “그건 공산당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국민에게서 뇌물을 받고 갈취하며, 공금을 탐오하고 재물을 착취하는 것을 관료가 되는 목적으로 하지요. 나는 眞•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체 남을 위해 고려해주고, 선타후아(先他後我)하며, 무사무아(無私無我)한 좋은 사람으로 되라고 가르치셨어요. 저는 정정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전법륜』을 받은 그 시각부터 저는 줄곧 사사로운 일이거나 혹은 공적인 일 때문에 뇌물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으며, 한번의 뇌물도 보낸 적이 없습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공적인 명의를 빌어서 자기 잇속을 채우려고 꾀한 적은 더욱 없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신이 그에게 일을 해주면 그가 당신에게 돈을 주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며 또 매우 공평합니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은 만약 닭에게 알을 낳게 하려면 곧 쌀을 주고, 개에게 문을 지키게 하려면 곧 뼈를 주지요. 나더러 그의 일을 해달라고 뇌물을 보내오면 나는 나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합니다! 공산당의 무신론(無神論)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는 ‘선악(善惡)에는 보응이 있다’는 천리를 믿지 못하게 하지요. 사회도덕이 급속히 미끄러져 내려가고, 정풍(政風)이 청렴하지 않고 민풍(民風)이 소박하지 않아요. 그리고 관료가 된 사람은 횡령하고 수뢰하고 국민들은 훔치고 강도 짓을 하여 전체 사회를 뒤죽박죽이 되게 만들었어요. 오직 파룬궁만이 진정한 정토(净土)입니다. 오직 파룬따파만이 일체 바르지 못한 요소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멀지 않았어요. 사회가 아름다움을 회복할 때가 멀지 않았어요!” 나의 일장 연설은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마저도 탄복하는 눈빛을 드러내게 했다. 그 후 그는 사악한 조직에서 탈퇴했을 뿐만 아니라 또 일이 있으면 그가 나에게 도움을 제공해 줄 수 있으니 그를 찾으라고 했다.
사악한 매체가 사부님과 대법을 모독한 그 시각부터 시작해서 나는 지금까지 입을 다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는 무엇이 ‘진상알리기’ 인지도 몰랐다. 다만 사부님께서 모욕을 당하시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眞•善•忍으로 좋은 사람이 됨은 잘못이 없다는 것만 알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매체에서 말한 일체는 모두 거짓이고 모두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모함임을 알게끔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2000년 10월의 어느 하루 나는 불법으로 체포 당했다. 당시 나는 위풍당당하게 구치소로 걸어 들어갔으며 일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거부하며 그들에게 경고했다. “眞•善•忍을 수련함은 죄가 없습니다.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당신들이야말로 진정하게 죄를 짓습니다.” 소장은 총을 꺼내 들고 나를 향해 말했다. “다시 말해, 다시 말하면 내가 당신을 쏴 죽이겠다.” 내가 한 걸음 다가서서 나의 목을 가리키면서 “좋아요. 당신이 쏘세요. 당신이 이곳에 총을 쏘세요!”하고 말했다. 소장은 놀라서 바로 총을 내려놓더니 얼굴색이 다 변했다.
감방에 갇힌 이후 나는 일반 죄수들이 늘 일부 작은 일로 다투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곧 그녀들에게 대법의 법리를 이야기해 주고, 내가 외울 수 있는 대법을 그녀들에게 외워주어 듣게 했으며 또 그녀들에게 5장 공법을 가르쳐 주었다. 오래지 않아 보통 죄수들도 모두 서로 너그럽게 양보하고 참으며, 서로 관심을 갖고 이해해 줄 수 있었는데 마치 한 가족처럼 사이가 좋았다. 당시 싸움으로 인해 구류를 당한 한 사람이 있었는데 15일만에 만료돼 풀려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도리어 구치소에, 그녀가 모두와 함께 마지막으로 밥 한끼를 먹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떠날 때 그녀는 울었다. 구치소의 한 근무자는 “정말 괴상하다. 역사가 생긴 뒤로, 구치소에서 이런 정경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후 이 근무자는 나를 그들의 사무실로 불러가서 말했다. “죄수들만 가르쳐주지 말고 우리에게도 말해주고 우리에게도 연공을 가르쳐 주세요.” 나는 또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연공을 가르쳐 주었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나를 특별히 옆에 있는 유치장의 조건이 비교적 좋은 단칸 방에 배치하고 나에게 『전법륜』을 찾아다 주어 나에게 전심전력으로 법공부하고 연공을 시켰다.
어느 한번, 구치소에서 유효기한이 지난 우유를 사왔다. 나는 지도원을 찾아 말했다. “당신이 이 우유를 맛 보세요. 만일 변질되지 않았다면 제가 낼게요. 우유를 당신이 모두 마셔요. 만약 변질되었다면 모두에게 물려주세요.” 그 결과 죄수들에게도 신선한 우유가 공급되었다. 이때 남자 감방에서 ‘파룬궁(法輪功) 만세’라는 외침소리가 전해왔다. 여자 감방에서도 따라서 외쳤다.
구치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먼저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직장 책임자를 찾아가서 공개적으로 탈당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당비를 바치지 않고 사악한 일체 조직 생활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불법으로 갈취 당한 돈 5천 위안을 돌려받는 것이다. 나는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그들이 강제로 나를 붙잡아 들여간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돈을 바쳐야 하는가. 나는 꼭 돌려받아서 그들이 대법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을 면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 공안국, 정치법률위원회, 현 인민대표대회, 현 정치협상회로 줄곧 찾아갔다. 어느 부문이든 도착하면 나는 담당 책임자를 찾아 그들에게,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眞•善•忍으로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며, 매체에서는 유언비어를 날조해 파룬궁을 모함하고 박해하는데 그것이 바로 진정하게 죄를 짓는 것임을 알려주었다. 나는 최후 통첩을 내리면서 말했다. “이 5천 위안을 위해 나는 한번만 오겠어요. 반 달 기일을 정해주겠으니 나에게 돌려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계속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와 眞善忍好(眞善忍은 좋습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가지고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갈 뿐만 아니라 또 당신들을 고소할 겁니다!” 그 결과 10일도 채 되기 전에 돈을 내에게 보내왔다. 돈을 요구하는 일로 한 바퀴를 도는 과정에, 현에 있는 많은 부문의 책임자들로 하여금 진상을 알게 했으며, 우리 현의 동수들이 후에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도하는 데 대해 비교적 느슨한 환경이 있게 하는 데 일정한 작용을 일으켰다.
‘7.20’이후, 큰 길에서, 술자리에서, 법정에서, 이웃집 간에 아니면 ‘610’, 정치법률위원회, 인민대표대회, 정치협상위원회, 공안국, 파출소, 시골에서든지 무릇 내가 가는 곳이면 나는 모두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넘겨주었다. 어느 한 번은 나는 ‘610’주임을 찾아 진상을 알렸다. 그 주임은 “당신은 줄곧 파룬따파는 좋고 ××당은 나쁘다고 말하는 당신의 책임자로 하여금 돈을 가지고 당신과 함께 성(省) 세뇌반으로 가서 세뇌를 시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반문했다. “당신은 나의 머리 속에 무엇을 넣었는지 알고나 있나요?” 그는 침묵을 지켰다. 나는 “내 머리에 眞•善•忍을 가득 채웠어요. 당신이 나를 무엇으로 씻어 내려고 그래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나는 그에게 체계적으로 파룬궁 진상과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천리를 이야기했다. 그 후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고 그도 ‘610’을 떠났으며 지금은 나의 주관 책임자이다. 며칠 전, 그는 차를 몰고 나와 함께 촌으로 일처리 하러 갔다가 촌지부 서기를 찾아 도움을 받았다. 일을 다 처리하고, 나는 진상자료와 CD를 촌지부 서기에게 선사했는데 이 주관책임자는 좀 기분 나빠 했다. 그는 내가 그의 앞에서 준 것을 나무라면서 그의 앞날에 영향 줄까 봐 두려워했다. 나는 “당신은 매일 우리 사부님께서 당신의 평안을 보호해 주시도록 하면서 내가 사람을 구원하면 당신은 도리어 기분 나빠합니다. 그러면 이후에는 당신을 보호해 주시지 않을 겁니다!”고 말했다. 그는 웃으면서 “좋아요.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말했다. 그는 이미 사악한 당을 탈퇴했다.
직장에서 심지어 사회상에서 나의 파룬궁 신분은 공개적이다. 당연히 진상 알리기도 공개적인 것이다. 직장 동료들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이미 ‘3퇴’를 다 했다. 탈퇴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모두의 농담 속에서 그도 탈퇴했다. 어느 한 번, 한 부재판장이 나의 사무실로 왔다. 동료들은 그에게 농담을 하면서 말했다. “×재판장, 우리는 모두 ×재판장 이곳에 등록했어요. 당신은 등록하셨나요?”고 말했다. 이 재판장은 어안이 벙벙해서 물었다. “뭘 등록하십니까?” 나는 “당신이 먼저 업무를 보세요. 내려가서 내가 다시 당신과 말하겠어요.”하고 말했다. 그 후 나는 이 부재판장에게 진상을 이야기해 ‘3퇴’를 시켰다.
10여 년 동안 수련해 오면서 나는 매사에 모두 眞•善•忍 표준으로 엄격히 자신을 요구해, 동료들과 사건 당사자의 호평을 받았다. 법원에서 아주 오랫동안 쌓여있던 사건, 어려운 사건, 중요한 사건을 무릇 내가 처리한 사건은 한 건도 청원이 없었으며 심지어 많은 사건은 그 자리에서 화해시켰다. 매 번 한 사건을 접수할 때면 나는 재판을 하기 전에 먼저 당사자들에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眞•善•忍을 사람 되는 표준으로 하고, 사실을 근거로 삼고 법률을 표준으로 삼을 수 있기에 당신은 안심하십시오. 사법상에서 불공정한 문제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때문에 당신들은 모두 친분 관계를 찾느라고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나 이곳에서 재판을 하면 왕자나 거지의 위치는 평등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모두 진실한 말을 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이어서 나는 다시 그들에게 파룬궁은 무엇이며 ‘공산당’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 ‘손해를 보는 것은 복이다’,‘한 걸음 물러서면 바다와 하늘이 가없이 넓으며, 일시를 참으면 풍랑이 없이 잔잔하다’는 도리를 이야기 해주었다. 다시 사무실 책상에 준비해놓았던 각종 진상 자료를 그들에게 추천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고르게 했다. 내가 사람으로 되는 도리를 똑똑히 이야기 한 뒤, 당사자 사이의 분쟁도 곧 해결되었으며 사건은 화해를 거쳐 사건을 종결했다.
어느 교통 사고 사건이었다. 원고의 다리가 부러져 부상 정도가 매우 심각했는데 피고는 주동적으로 협조해 치료해 주지 않았다. 이 날, 나는 법정 그쪽 편에서 한 부녀자가 엉엉 우는 울음소리를 듣고 곧 그녀를 나의 사무실로 불러들여 이유를 물었다. 그제서야 그녀가 손님을 초대하고 선물을 증정하지 않으면 소송에서 이기지 못할까 봐 걱정해서, 어쩔 수 없이 법정 큰 뜰에서 하늘을 향해 하소연하는 수 밖에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사건을 처리하는 원칙을 알려주고, 파룬궁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주었으며 그녀에게 일부 진상자료를 선사했다. 맨 마지막에 그녀는 소송을 중지하고 돌아가서 아들과 함께 파룬궁을 수련했다.
또 한 노동쟁의로 인한 분쟁 사건이 있었는데 원고는 30여 세인 총각이고 피고는 현 양식국의 사람이었다. 이유는 양식국에서 원고에게 26만 위안의 도급 비용을 빚졌던 것이다. 나는 원고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주고 게다가 그에게 진상자료와 호신부를 선사했다. 일주일이 지나서 원고는 나를 찾아와서 소송을 중지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매우 놀랐다. 곧 무엇 때문인지 이유를 물었다. 그는 “내가 당신이 나에게 주신 호신부를 걸고 매일 마음속은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와 眞善忍好(眞善忍은 좋습니다)를 읽었는데 이 일주일 동안 매우 순조로웠으며 많은 돈을 벌었어요. 소송을 했더라면 내가 26만 위안을 벌써 벌었을까요. 때문에 나는 소송을 중지하렵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일은 아주 많은데 이곳에서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다. 물론 예외일 수도 있다. 하루 저녁 6시 경, 나의 한 고향 사람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는데 말로는 일이 있어 나를 찾겠다고 하면서 이미 시내로 왔다고 했다. 나는 집에서 나와 그를 만나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인근에 있는 음식점으로 가서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원래 그는 맥주병이 폭발하면서 왼쪽 눈을 실명한 원인으로, 맥주공장과 재판을 걸려고 준비하고 나에게 그를 보살펴달라고 요구했다. 나도 그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고 게다가 그를 수련하라고 권했다. 밥을 먹은 후 나는 결산하겠다고 고집했지만 그는 결산하지 못하게 했다. 맥주공장과 화해시켜 그에게 만 위안을 보상해 주라고 했지만 그는 만족해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사법 감정을 하겠다고 요구했다. 감정 결과는 그가 사용한 것이 적당하지 않은 원인으로 조성된 것이기에 나는 할 수 없이 그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어느 하루, 그는 갑자기 시민 법정에 뛰어들어 16~17명의 사람들 앞에서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게 파룬궁을 이야기하고 수련하라고 했으며 내가 그가 청하는 밥을 먹었다는 등을 말했다. 당시 나는 매우 냉정하게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욕할 수 있어요. 그러나 파룬궁을 반대하지 마세요. 당신의 왼쪽 눈은 이미 실명했어요. 당신의 오른 쪽 눈을 잘 보호하세요.” 원고를 보내고 나는 시민 법정으로 돌아온 후, 그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당시 나를 청해 밥을 먹은 상황과 그의 이 사건의 심리 과정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모두 엄지손가락을 꼽으면서 말했다. “원래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이렇게 기풍이 바르군요!”
또 이미 전에,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이지 나를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했던 일이 있었다. 10여 년의 민원 사건이 있었다. 원고는 촌 위원회의 사람이고 피고는 17개 호(戶)의 촌민들이다. 이유는 촌민위원회에서 17개 호의 촌민에게 토지 도급 비용을 인상할 것을 요구했는데 촌민들이 불복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초급 법원, 중급인민법원, 검찰원을 거쳐 항소되었지만 당사자들이 모두 만족해 하지 않아 민원으로 갔던 것이다. 이때, 책임자가 나에게 이 사건을 맡으라고 했다. 사건을 접수한 뒤 나는 매우 기뻤다. 이 사건에 관련된 인원이 아주 많고 또 촌민위원회의 인원이 있었는데, 그럼 진상을 똑똑히 알려 구도를 받을 사람이 많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상CD, 소책자, 『9평공산당』등 자료를 한 보따리 꽉 채워 준비하고 경찰차를 몰고 이 촌으로 갔다. 촌에 들어선 후, 나는 주요 길목에서 대부분의 대법 자료를 다 나눠주고 촌위원회로 왔다. 4개 촌의 간부들도 있었는데 마침 농촌 부녀 주임의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가려던 참에 우리들에게도 함께 가자고 했다. 밥을 먹는 과정에서 모두는 떠들썩하게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악한 중국 공산당을 욕했다. 나는 이 기회를 틈타 ‘공산당’은 무엇인지, 파룬궁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는데 그들은 모두 매우 열심히 들었다. 이때 방 밖에서 밥을 하던 부녀 주임이 들어와서 모두를 불렀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필경 법원 사람이 아닌데, 당신들은 또 그곳에서 그녀의 말을 듣고 있어요.” 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계속 밥을 먹었다. 향 간부도 오랜 시간 후에 방안으로 들어왔다. 내 생각에는 아마 나의 신분을 확인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나는 농담으로 말했다. “당신들은 필경 촌민들이 신임하는 좋은 간부가 아닙니다. ‘眞善忍’마저도 감히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좋은 책임자 일 수 있습니까?” 그들은 황급히 “아니요. 아니요.”라고 말했다. 법원에 돌아온 후, 법원 책임자가 나에게 알려 주었는데, 그들이 전화를 걸어 나의 신분을 확실히 확인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17개 호의 촌민들을 법원으로 불렀으며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또 촌민위원회의 간부를 법원으로 불러 그들에게 말했다. “촌민은 소외 계층입니다. 촌위원회에서 어디로 가면 이만한 돈을 벌지 못합니까? 촌민들과 정말로 맞서지 마세요. 또 원래의 도급에 따라 징수하고 그만하세요.” 이어서 그들에게 무엇 때문에 하늘이 사악한 당을 소멸하며, 무엇 때문에 사악한 당을 탈퇴하면 명(命)을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5명의 사람들은 모두 사악한 당 조직에서 탈퇴했으며 촌민위원회에서도 소송을 취하했다.
우리 현의 동수들은 모두 아주 정진한다. 통일적인 협조 하에 모두 팀을 나누어 일정 범위를 책임지고 촌으로 들어가 집집마다 일대일로 진상을 알렸으며, 그 자리에서 진상 자료를 나눠주었다. 작년 10월 말 어느 날 오전, 나는 4명의 동수와 함께 우리 현에 있는 산의 관광구역으로 가서 진상을 알렸다. 산 구역 촌민들은 분산되어 거주하고 있었는데 진상을 알리는 데 일정한 어려움을 가져왔다. 우리 다섯 사람은 세 팀으로 나뉘었으며 나 혼자 산비탈에서 가장 높은 곳의 민가를 맡았다. 바로 내가 이야기하면서 나눠주고 있을 때 산 아래 수련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한 수련생이 붙잡혔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당신 세 사람은 먼저 차를 몰고 가세요. 뒷일은 제가 처리해요.” 나는 즉시 가장 빠른 속도로 자료를 다 나눠주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이때 한 경찰차가 나를 쫓아왔다. 그러나 내가 산길을 걸었기에 그는 따르기 어렵게 되었다. 그 사람은 아예 나를 향해 달려오면서 입으로 외쳤다. “당신 어디로 달아나는가, 당신의 책은? 당신의 책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머리를 돌려 그를 맞받아 가면서 말했다. “책은 다 나눠줬어요. 당신은 나에게 다시 찾아달라고 그러는 건지요?” 그는 영문을 알 수 없이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는 “저는 현 법원의 사람입니다. 갑시다. 당신들 파출소로 갑시다. 문을 열고 몸을 좀 덥힙시다.”고 말했다. 파출소에서 나는 붙잡힌 수련생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감히 그녀와 아는 체 하지 못하고, 줄곧 그 자리에 있는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으며, 수련생을 풀어주게 하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마침 한 대의 버스가 다가와서 나는 버스에 올랐다. 도중에 나는 버스의 고객들에게 진상을 알려 7~8명을 탈퇴시켰다. 현으로 돌아와 나는 다그쳐 즉시 한 수련생을 불러 차를 몰고 공안국 국장집으로 가서 사람을 풀어 주도록 했다. 도중에 교란이 매우 컸다. 한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줄곧 우리들을 뒤따랐는데 정말 모래가 날리고 돌이 나뒹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국장의 집에 도착했는데 국장 부인은 욕설을 퍼부었다. 우리는 그것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줄곧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국장은 우리에게 이미 린현구치소로 보냈다고 알려주었다. 이튿날, 우리는 또 차를 몰고 린현구치소로 갔다. 나는 이미 전에 이곳에 있은 적이 있으며 이곳의 지도원은 이미 진상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를 찾아갔는데 이미 다른 곳으로 전근 갔다고 말했다. 나는 줄곧 구치소와 교섭했다. 그러나 오후에야 우리에게 사람을 이미 시 여자노동수용소로 보냈으며 1년 3개월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고 알려주었다. 정말 우리가 급하게 찾으니 사악도 급하게 판결을 내렸다. 저녁에 나는 또 공안국 부국장의 집으로 갔다. 이 일을 통해 그에게 중국에는 법률이 없다는 것과 파룬궁 진상을 이야기했다. 그도 사악한 당조직을 탈퇴했다. 일이 지난 후 나는 매우 자책했다. 당시 마땅히 동수와 함께 직면해야 한다고 느꼈다.
박해당한 11년 동안,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함은 나의 업무와 생활의 각 방면에 용해돼 들어갔다. 총총히 한번 지나가는 중에서 미처 말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대법의 아름다움을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알려주려고 했다. 어느 한번은 금방 비가 내렸을 때 나는 차를 몰고 현에서 시로 급히 가는데 갑자기 한 미니버스가 나의 차를 따라잡고 나를 가로막았다. 나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도 몰랐다. 차에서 내려와 보니 한 총각이 흠뻑 젖은 옷을 흔들어 털면서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 눈이 멀었어요. 차를 몰면서 보지도 않아요? 내가 길 한 쪽에서 차를 씻는데 당신이 나에게 온 몸에 물이 튕기게 했어요.” 나는 급히 사과하면서 성실하게 말했다. “동생, 급해하지 말아요. 나도 고의적이 아니었어요. 당신이 말해 보세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내가 돈으로 배상해 드릴까요 아니면 당신에게 옷을 사드릴까요?” 이때 그는 도리어 미안해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이만할 일로 나를 특별히 뒤쫓아온 걸 보니 우리 둘이 인연이 있다는 것이네요. 나는 먼저 당신한테 한가지 일을 알려주어야 하겠어요.”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사악한 당 조직에서 탈퇴했으며 나에게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내가 시내에 거의 들어갔을 때, 이 총각은 전화를 걸어왔다. 나의 목소리를 듣자 그는 “정말 당신이 맞네요! 전 당신이 저에게 형식적으로 가짜 전화번호를 주었는가 하고 여겼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나는 眞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어찌 사람을 속일 수 있겠어요!”하고 말했다. 그는 격동되어 말했다. “당신이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 지를 막론하고 나는 당신을 꼭 친구로 사귈 겁니다. 이후에 제가 당신을 찾겠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대법은 나에게 정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주었다. 사악한 당 우두머리는 이미 전에 파룬궁에 대해 ‘경제면에서 망가뜨리고, 명예를 더럽히고, 육체를 소멸’하려 했다. 그러나 사실 두 번의 강제적 감금으로 더욱 나의 바른 믿음을 확고하게 했다. 나는 시시각각 마음속에 대법을 담고 중생을 담고 법을 스승으로 모시며 공명정대하고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알렸다. 경제면에서 어떠한 손실도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명예증서도 한 무더기 또 한 무더기씩 된다. 이곳에서 나는 또 한가지 일이 생각난다. 어느 한 번 농촌으로 내려가 큰 산에 있는 마을로 갔다. 차를 수리하느라 손이 더러워져 나는 고향 사람 집으로 가서 손을 씻었다. 고향 사람은 나에게 맑은 물을 한 대야 가져다 주고, 새 수건에 새 세수 비누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고향 사람에게 매우 감격해 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낯선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대해주는가요?” 고향 사람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 현의 ‘포청천(包青天)’ 아니세요?” 사람들은 나를 ‘포청천’이라고 불렀으며 동료들은 나에게 ‘모철안(某鐵案-확고부동한 판결)’이라는 명예를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대법이 없다면 이 십악독세(十惡毒世)에서 내가 정말 공정하고 청렴하며, 사심이 없고 두려움을 모를 수 있었겠는가? 나는 정말로 ‘포청천’이고 ‘철안(鐵案)’이 맞는가?
이 몇 해 동안 마음속으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 사부님의 시 「無存(무존)」이다. “태어나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망령된 생각을 탕진하거니 부처로 수련되기 어렵지 않노라”
사부님은 우주의 중생을 위해 거의 일체를 다 쏟아 부으셨다. 우리는 사부님의 제자로서, 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또 무엇을 버리지 못할 것이 있단 말인가?
사부님 감사합니다!
(밍후이왕 제7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0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 대륙7회 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18/2326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