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귀진(歸眞)
[밍후이왕] 정법 수련 가운데서 나는 대륙의 모든 대법제자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마난을 겪었는데, 예를 들면 불법노동교양, 납치, 소란 같은 것이다. 얼마나 되는 납치와 소란이든 나는 모두 사존의 자상한 가호 하에 정념으로 사악을 해체하고 새롭게 정법 홍류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더욱이 현지 협조에 참여한 후부터는 법공부를 강화하고 법공부를 잘 했으므로 법리상에서 제고가 무척 빨랐는데 물론 수련생 여러분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린다. 그들은 나로 하여금 박해를 승인하는 가운데서 박해를 반대하는 그릇된 사유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대법 법리상으로부터 철저하고도 전면적으로 이번 대법, 대법제자와 세인에 대한 박해를 부정하게 해서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의 사명감이 저절로 생겨나게 했고, 그리하여 생활과 수련을 정정당당히 할 수 있게 했다.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남겨주신 수련의 길 즉 단체 법공부, 단체 토론과 교류, 가정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나며, 대도무형의 길을 견지하여 잘 걸어가는 방면에서 일부 노력을 했으며, 아울러 그 가운데서 자신을 잘 수련해 자신으로 하여금 서서히 사람 가운데서 걸어 나오게 했다. 지금 글을 써서 사부님께 회보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만약 바르지 못한 곳이 있다면 삼가 지적을 바란다.
1. 법공부 팀을 세우고, 세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진정으로 실제 상황에 적용
수련 가운데서 내가 깊게 체험한 것이라면, 단체 법공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의 길이며 수련자가 정진하고 재빨리 승화하는 보증으로서 일반적인 학습 방식의 선택이 아니라 사부님 말씀을 듣는가 안 듣는가, 대법의 요구대로 하는가 안 하는가 하는 엄숙한 문제이다. 또 단체 법공부는 각지에서 정체를 이룰 수 있는가 없는가에 관계되고 세 가지 일을 유력하게 잘할 수 있는 관건이다. 그때 우리 지역에는 아직도 상당 부분 수련생들이 단체 법공부를 하지 않아 정체 협력에서 곤란이 무척 컸다. 그래서 나는 다른 협조 수련생과 함께 제각기 접촉할 수 있는 수련생을 찾아 교류하고 수련생을 발동해 법공부 팀을 만들어 사부님 안배하신 길을 걸었다. 시작엔 곤란이 엄청 많아서 나는 부단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각자 상황에 따라 팀을 짜 주었다. 처음엔 네 개 팀으로부터 점차 9개로, 한 팀에 적어서 2-3명, 많아야 5-6명 됐다. 날마다 공부하는데도 있고 며칠에 한 번 하는데도 있었으며 저녁에 하는 팀도 있었다. 한 동안이 지나자 모두들 법에서의 제고가 무척 빨라 어떤 팀은 점점 성숙됐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사람마다 모두 협조인이라는 법을 교류하고 매 입자의 작용을 발휘해 사람마다 모두 남을 협조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원래의 팀이 나뉘어져 각기 새로운 팀을 만들어 걸어 나오지 못한 수련생을 이끌었다.
09년 말에 이르러 우리 지역에는 자발적으로 협조인 작용을 하는 수련생이 갈수록 많아졌고 새로 걸어 나온 옛 수련생도 점차 증가됐다. 예를 들면 한 노인 수련생은 5인 법공부 팀을 조직해 4년을 견지했는데 아주 온정했고 또 두 개 팀을 조직했다. 노 수련생은 출근하는 젊은 수련생을 도와주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그녀에게 단체 법공부 조건을 만들어 주었는데 휴일이나 퇴근 후에 아이를 데리고 그녀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는 법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그녀의 예전 연공장에 왔던 수련생을 찾을 수 있다면 모두 가서 연락을 취하고 교류했는데 그녀의 협조를 통해 선후로 정진실수한 사람이 십여 명이나 된다. 또 한 팀의 수련생은 옛 수련생을 도와주기 위하여 장기적으로 고생도 마다하고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 하면서 걸어 나오지 못한 수련생에게 진상을 알려줬고, 고비를 넘고 있는 수련생을 도와 심지어 같이 숙박하기도 했다. 그녀들의 행동을 보면 그야말로 일종 손에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가는 감개와 장엄이 있었으며, 나로 하여금 더욱 더 자신의 수련의 길을 바르고 잘 걸어가며, 사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전 서약을 실현하며,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재촉했다.
우리 고장에서는 협조인 매 한 사람이 한 곳을 이끌었는데, 이렇게 하니 정체 협력에 주력이 있게 됐고 정체 협력할 일이 있으면 통지만 해도 즉시 알게 됐다. 이후에 어떤 팀은 매일의 법공부만 견지하고 공부가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 자기 일을 하면서 친척친구에 대한 구도에만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각 법공부 팀에 사부님께서 광범위하게 사람을 구원해 사전 서약을 실현하라는 법리를 학습하고 교류할 것을 건의 했고, 아울러 소형 교류회를 조직하고 토론해 법리상에서 지금 급선무는 사람을 대량 구하는 것이 대법제자의 사명임을 똑바로 인식하게 했다. 우리는 이 같이 법공부하는 데만 만족하고 자발적으로 사람을 구하지 않는 상태는 사부님 각지 설법 공부를 적게 한 까닭에 자신이 짊어진 사명에 대해 인식이 모호한데서 야기된 것임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부님 각지 설법과 경문을 학습할 것을 건의했는데, 어떤 사람은 3,4일에 『전법륜』을 한 번 학습하고, 3,4일에 사부님 각지 설법 및 경문을 학습했으며, 어떤 사람은 1, 2강 『전법륜』을 학습하고는 나머지 1, 2시간에는 각지 설법을 학습했다. 한 동안 지난 다음 수련생들의 상태 개변이 무척 컸는데, 특히 부분적 노 수련생들은 정법 수련에 대한 이해에 새로운 돌파가 있게 됐다. 그리하여 내심으로부터 스스로 세 가지 일을 잘 했고, 각 팀에서는 모두 걸어 나와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했다.
일부 법공부 팀에는 모두 가정 자료점이 있고, 인터넷에 접속해 3퇴하며, 자료와 지폐를 프린트하고 굽는 등 독립운행을 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정각 발정념이든 아니면 정기적으로 검은 소굴에 가서 하는 발정념과 수련생을 구출하는 발정념이든 모두들 매우 자발적이다. 이 몇 년 간 나는 이 방면에 무척 큰 정력을 들였는바, 문전박대를 당하든 배척을 당하든, 나는 용기를 잃지 않았고 의기소침하지 않으면서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이면 반드시 잘하고 끝까지 했다. 평소에 나는 어디서 수련생을 만나던 모두 법공부팀이 있는가를 물어보며, 나는 늘 다른 협조인들과 소통해 소형 교류회를 열고 법공부와 수련을 비기면서 공동으로 법 실증의 길을 바르고도 잘 걸어갔다.
2. 컴퓨터 기술을 배우고 전파하면서 대법이 무엇을 필요하면 나는 무엇을 했다.
나는 평생 전자기기에 흥미가 없었는데 이런 것들은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았다. 사악에게 박해당하고 컴퓨터에 접속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이미 나는 60이 넘은 사람이었다. 할 수 있을까? 나는 난감해졌다. 게다가 두려운 마음의 속박으로 때문에 질질 끌며 행동하지 않았다. 2005년 자료점에 와 보고서야 나는 컴퓨터 조작기술과 프린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우리 고장 여러 명 협조인과 빈번하게 접촉하고 여러 번 현지와 외지 법회에 참가했던 까닭에 나에 대한 촉동이 지극히 컸다. 나는 자신을 보호하려 하고 또 다시 박해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더러운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몇 차례 교류회에서 나는 수련생들의 신사신법하는 그 확고한 마음을 보고 또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 그렇듯 무사무아한 경지는 나를 진감(震撼)하게 했다. 몇 달 후 법리상 점차 분명해 지자 가정 자료점이 우리 고장에서 곳곳에 피어날 수 있는지는 마찬가지로 사부님 말씀을 듣는가 안 듣는가, 대도무형의 길을 걷는가 안 걷는가 하는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하는 것이 어떤가는 마찬가지로 현지에서 정체를 형성할 수 있는가의 여부,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모이면 형태가 이루어지고 흩어지면 입자’라는 수련 원칙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 때 우리 고장에서는 많은 수련생들이 자료점이 만들어지기를 고대하고 있었으나 기술 수련생이 적고 또한 전문직이 아닌데다 그렇게 많은 수련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 때 가서야 자기 차례가 돌아오겠는가? 따라서 컴퓨터를 설치하고 프린터, CD라이터를 갖춰 놓아도 누가 와서 가르쳐 주겠는가? 하물며 배우려는 수련생 대다수가 노인과 여자 수련생인데다 또 그 어떤 기초도 없어 참을성 있게 손을 잡고 가르쳐 주어야 했다. 누구를 바라볼 것인가? 스스로 하자, 법을 실증함에 필요하다면 해야 하고 또한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8월, 나는 자발적으로 컴퓨터 계통 설치를 배우고 가정자료점의 설립 임무를 감당했다. 나 역시 ‘0’으로부터 시작했는데 초학자와 같은 수준이었다. 바로 이렇게 3년 동안 반 날의 법공부를 보장하는 기초상에서 나머지 시간은 모두 수련생들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법 공부 팀 건립, 교류 토의와 컴퓨터 설치, 기술 가르침에 바쁘게 보냈다. 하는 과정에 나는 수많은 곤란을 극복해야 했고 적지 않은 고생을 했지만 내 마음은 내내 밝은 빛으로 넘쳐나면서 이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또한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한 자료점을 몇 번이나 왕복하든지, 가장 긴 시간은 20여 일로 기억된다.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수련생이 부르면 곧 도착했다. 그 가운데는 법에 동화된 희열이 있었고, 또 사람 마음을 끊어버리기 어려운 어려움과 고뇌도 있었지만 나는 모두 원망도 후회도 없이 걸어 지나왔다. 아울러 하는 과정에 나는 시종 법리 토론과 심성교류를 그 중에 용해시켰고 또한 오가는 길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다. 2009년 말 우리 고장에서는 핸드폰으로 진상 알리는 항목을 만들었는데 나는 적극적으로 배우고 보급해 재빨리 전반 기술 조작을 파악해 수많은 수련생들을 도와 이 기술을 이용해 대면적으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게 했다.
4년 동안 자신이 걸어 온 길을 회고해 보면서 깊이 느낀 체험이라면, 수련인이 수련의 길에서 무엇을 하는가는 자신의 염원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일에 부딪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면 무엇을 하는 것이며, 오직 하기만 하면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 왜냐하면 모두 사부님께서 관할하심으로 오직 우리가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고, 순수한 심태로 하기만 하면 모두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다.
3. 안으로 찾고 자아를 닦아 버리면서 부단히 사람에서 걸어나오다
현지 협조에 참여한 이 4년 동안, 나는 비록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긴 했지만 역시 수많은 사람의 관념과 집착을 폭로하게 됐고, 자아를 닦아버리는 길을 걸어감에 비교적 어려움이 많았다. 어찌했던 간에 사부님 가호 하에 수련생들의 격려로 나는 걸어왔다. 나는 체득했다. 안으로 찾는 것은 법보다. 하지만 뼈를 깎는듯한 단련과정을 거쳐야 하는바, 다시 말해서 환골탈태 하는 과정이다. 오직 우리가 확고한 수련의 마음을 동요하지 않기만 하면 시종 자신을 대법수련자로 보기만 한다면 나중엔 사람으로부터 신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일을 잽싸게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므로 반응이 늦고 접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깔보았다. 수련 후 큰 개변이 있어 기본상 학력으로 선을 긋지 않았으므로 수련 10여년 동안 수련생들과의 사이도 별일 없이 무사했다. 하지만 내가 컴퓨터 기술을 전수하기 시작해서부터 옛 결함이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더욱이는 장시기 동안 배우지 못하는 그런 수련생에 대해서 머리 속으로 둔하다고 싫어했으며, 어떤 때는 수련생 앞에서 불만을 퍼부어 그가 연습하는 과정에 긴장하게 만들었다. 일이 지난 후에는 내가 수련인의 정념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마음으로 수련생과 일을 대한 것을 몹시 후회하곤 했다. 나는 줄곧 그것을 배척해 버리고 반대하며 그것이 나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 내 마음이 짜증이 날 때 나는 자신의 정서를 빗질하면서 바르지 못한 염두를 멸해 버렸다. 한 동안이 지난 후 나는 사람마음의 근원은 정이란 것을 찾아내었는데, 구체적인 표현으로는 질투심, 과시심, 쟁투심으로서 총체적으로는 바로 위사위아이고, 확대한다면 바로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의 길은 같지 않으나 모두 대법 가운데 있거늘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발아래 길은 스스로 열리노라” (『홍음2』「 가로막지 못하리」) 매듭을 찾아낸 후 자아 집착을 제거하는 주동성이 있게 됐고 늘 일에 부딪히면 반드시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자신을 일깨워 주곤 했다.
이후에 우리 고장 협조인 사이에 분쟁과 모순이 나타났는데, 나의 그 자아를 수호하는 마음에 대한 하나의 극히 큰 충격과 도전이 됐다. 어느 두 차례의 협조인 법공부 교류회에서 한 수련생(간칭 A)은 나를 장시간 비평 책망 했는데, 언어가 예리하고 날카롭기를 내 일생에서도 모두 있어본 적이 없는 것이어서 나는 좀 멍해졌다. 그 때 나는 속으로 그저 한 마디였다. 안으로 찾자, 안으로 찾자. 그 때 나는 심리 상태가 온정해 추호의 격동도 없었다. 나는 자신의 결함을 검토했고 그것을 버리겠다고 표시했다. 풍파가 잠잠해지자 나도 자신의 정이 무척 심하며 문제 처리에서 사당의 징벌 수단의 여독이 있으며, 사업 중에서 수련생에 대한 포용과 보완이 부족한 등등을 찾았다. 하지만 나의 내심 깊은 곳에는 아직도 어쩐지 편안치 않은 곳이 있었다. 입으로는 자신을 찾는다고 했지만 늘 자신도 모르게한 가닥 분노가 흘러 나왔는데 눌러 놓으면 또 일어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를 내고 원망하며, 억울해 하고,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우려하는 마음에 집착한 참음이다. 화를 내고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수련자의 참음이다.” (『정진요지 』「무엇이 참음인가」) 나는 무조건 안에서 찾고 자아를 내려놓는 것을 아예 하지 못했던 것이다.
2009년 말, 한 차례의 협조인 회의에서 경문 『유럽 법회에 보냄』을 학습하고 모두들 안에서 찾은 체험을 말하게 됐다. A와 다른 한 수련생 B는 공동 합작한 항목에서 의견 분쟁이 있는 까닭에 A는 불만스러운 김에 항목 전부를 B에게 떠밀어 주었다. 우리는 그 때 모두 안에서 찾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표시하면서 진심으로 A가 해나갈 것을 권고했다. 왜냐하면 B는 사업이 바쁘고 또 늘 출장을 가기 때문이다. 이 이전에 그들이 협력이 잘 되지 않은 것을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A는 내가 B에게 쏠린다고 하면서 원망을 죄다 나에게 돌렸다. 이렇게 되자 나는 그만 참을 수 없었다. A를 미워하는 마음, 쟁투심이 모두 올라와 마음을 조용하게 할 수 없었고,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오게 해서 나의 사람마음 집착을 커지게 했으며, 밖으로 상대방의 집착을 찾게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 집착한다고 말할 때 자신의 집착이 충격을 받아 거꾸로 다른 사람이 집착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집착을 덮어 감추는 것이 아닌가?”(『미국동부법회설법』) 결과적으로 사악에게 틈 탈 기회를 주어 심한 감기 증상이 나타났다. 나는 대법과 자신이 뒤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다른 사람이 모두 나를 좋게 대해주기를 바랐고 편안하고 잘 지내기를 바랐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지적하면 나는 속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법공부 팀의 수련생들은 내가 고비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조바심을 느꼈고, 나보다 연세가 더 많으신 한 분은 나에게 구세력이 수련생을 이간시키는 꾀임에 들지 말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 말은 나를 단숨에 깨어나게 했다. 그렇다. 늘 하는 말인데 왜 나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관건은 자신이 본말을 전도했던 것이다, 대법과 중생구도를 첫 자리에 놓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첫 자리에 놓았던 것이다. 이틀 후 수련생이 나와 교류할 때 내 목이 쉰 것을 발견하고 웬 영문인가고 물어 보기에 나는 수련생과의 심성관을 넘지 못했다고 알려줬다. 그녀는 즉시에 말하기를 “나는 누군지 알만해요(A를 가리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반년 전 우리 고장의 한 차례의 심득 교류회 후, 회의에 참석한 수련생들이 막 흩어지자 A가 그녀에게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면서 우리 이 고장의 협조 사업은 그녀가 개창한 것인데 내가 그녀의 권리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이 더 없이 평온했고 아울러 그녀에게 어디까지 말했으면 그만 말하고 더는 이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안에서 찾기 시작했다. 무슨 권리인가? 어떻게 권리를 빼앗았는가? 나는 될수록 자세히 매 하나의 일과 그 때의 나의 심태를 회상해 보았다. 자신에게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 다른 사람을 말 못하게 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집착을 집착하는 마음, 증오심 등등이 없었는가를 찾았는데 모두 있었다. 비록 이런 마음을 많이 버리긴 했지만 아직도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으므로 여전히 계속해서 철저하게 내려놓아야 했다. 법공부하고 안에서 찾는 것을 통해 뒤틀렸던 것들이 점차 순리롭게 되어갔고, 나는 더는 화가 나고 억울해하지 않았으며 심태도 평온해 지고 잔잔한 물결이 조금 일긴 해도 나에게 영향 주지는 못했다. 나는 안에서 찾는 것은 자신을 귀정하는 과정으로서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므로 이 과정의 시간은 반드시 짧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내려놓지 못하는 몽환(夢幻)이 지나가버리면 비로소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정진요지』「 퇴직하여 다시 수련」)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자신을 잘 수련해 될수록 유감을 남기지 않으려고 결심했다.
어느 한 동안 우리 고장의 협조인 수량이 감소되어 겨우 세 사람이 남았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출근하다 보니 구체적인 일은 거의 다 두 사람이 도맡아 하다시피 됐다. 게다가 또 나를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하고 나는 개인 수련을 하고 있으며, 권리를 다투고 창업정신으로 일하는 것을 수련이라 여기며, 나무 한 그루에만 꽃이 피게 한다는 등등이었다. 나의 심리 압력은 엄청 컸고, 또한 자신이 잘하지 못하면 정체에 영향이 미치고 대법에 죄를 지울까 두려웠다. 나는 늘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일이 할 사람, 협조할 사람을 필요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안 할 수도 없었다. 나도 반복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의 기점이 바른가, 위사위아 하는 마음이 없는가를 찾아보았다. 법공부와 교류를 통해 나는 다른 사람이 하든 말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결과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단지 한 가지 일씩 해 나가면서 얼마나 큰 작용을 일면 곧 얼마나 큰 작용을 일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능력을 다해 했을 뿐이다. 그것은 나의 사명과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나는 수련생 여러분의 일깨움에 몹시 감사드리면서 시시각각 법공부를 첫 자리에 놓는데 주의를 돌렸다. 특수 상황을 내 놓고는 모두 반나절을 법공부 팀에서 법공부 하는 것을 견지했다. 아울러 진상 알리기를 내 생활과 일하는 가운데 녹아들게 했다. 협조 임무가 없을 때면 나는 곧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시디를 배포했으며, 대면 진상을 알리고 선을 권하는 편지를 쓰며, 핸드폰으로 음성전화를 걸며, 또 어떤 때는 수련생과 짝을 지어 진상을 알리고 검은 소굴 근거리 발정념도 했다. 무릇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는 모두 진지하게 했다. 나에게는 어느 것은 협조인이 해야 하고 어느 것은 수련생들이 해야 한다는 구분이 없이 무엇을 해야 하면 무엇을 했다. 수시로 내 몸에서 일하는 마음이 나타남에 주의했다. 나는 일하는 마음은 법공부에 주의하지 않고 대법을 자신의 행위의 지도로 삼지 않으며, 대법 일을 할 때 일하는 과정에 심태를 바로 놓는데 주의하지 않고 신념(神念)으로 자신의 언행을 주도하지 않으며, 일하는 자체에 만족하는 그것 역시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준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됐다. 이 방면의 교훈은 너무나 침통하다. 정법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사람을 빼앗아 오며, 속인사회의 각종 형식을 우리에게 이용해 더 많은 사람을 구하라고 요구하셨다. 이리하여 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시종 견지했다. 나는 다른 한 협조인과도 늘 함께 법공부 하면서 안에서 찾고 서로 격려하면서 손에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체 일을 사부님 법신은 모두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편파적이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점화해 주셨다.
2009년 말에 두 수련생이 현지 협조에 가입했다. 우리는 합작을 분공했는데 협력이 아주 잘됐다. 법공부 팀, 가정자료점을 대면적으로 넓혔고 정체적인 형세는 호전되는 추세였다. 그러나 반 년 후 우리 고장 사악은 박해를 시작해 10명을 납치했다. 그 중에는 이후에 협조에 가입한 두 수련생이 들어 있었다. 손해가 무척 컸고 두 협조인이 책임졌던 부분은 마비 상태에 처했다. 교훈을 섭취하고 정체적으로 법에서 제고하기 위해 우리는 수련생 가운데서 ‘박해에 대한 분석’이란 제목으로 토론과 교류를 전개했다. 기뻐할만한 것은 많은 수련생들이 동수에 대한 박해를 자신에 대한 박해로 여기고 첫 번째 의념이 바로 박해를 부정하고 적극 구출하자는 것이었다. 수련생에게 누락이 있다고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생의 문제를 보고 자신에게 존재하는 그와 똑같은 문제를 찾아내고는 법에서 자신의 사상과 행위를 귀정했으며, 수련생을 구출하는 것을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으로 삼았으며, 동시에 자신을 잘 수련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리하여 수련생을 구원하는 일에 진지하게 참여했다. 이 때 우리 고장 공용 우체통에 협조인, 특히는 옛 두 보도소장을 분석한 문장이 나타나 수련생 가운데서 적지 않은 파동을 일으켰다. 특히 문장 중에는 나를 상술한 문제 외에도 무슨 협조 경험이 없다는 둥, 스스로 협조인을 봉했다는 둥, 무슨 세력이 갈수록 커진다는 둥, 이 문장을 쓰는 목적은 우리 배후의 사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등이었다. 나는 그 때 즉시 경각성을 높이고 청성함을 유지하고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말아야 하며, 절대로 사실의 옳고 그름을 밝히는데 빠져 들지 말고 동수들에게 자기 의견을 충분히 발표하게 했다. 동시에 나는 문장의 논점에 무척 찬동했다. 오직 문장의 전체적인 논술이 법에 있고, 우리 고장 수련생들이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명인을 숭배하고 협조인에 의뢰하는 불량한 심리를 제거해 버릴 수만 있으면 좋은 것이다. 이 기간 나는 사람마음이 작용을 일지 않도록 억제하기에 최선을 다 했고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관건이었던 것이다. 사부님 계시고 법이 있는 한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관할하실 것이므로 우리는 다만 순결한 심태를 유지하고 일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수련 상황을 총화해 보면 그야말로 감개무량하다. 자신은 업력이 크고 오성이 좋지 못한 까닭에 자신의 마난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으므로 끊임없이 좋지 못한 관념과 집착을 폭로할 것이 필요하며, 그것을 닦아버려 공(空)의 경지에 도달하는 이것은 역시 내가 줄곧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한 수련생이 쓴 『일공백순(一空百順)』이란 시 한 수를 무척 좋아한다. “집착심 내려놓으니 마음이 비였네, 자유자재라 홀가분하구나, 보이는 만물마다 마음에 드니 동서남북 어디라 없이 순풍이네.” 보아하니 수련생은 진작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공(空)과 무(無)의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경지와는 아직 멀고도 머니 간고한 노력을 지불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전도에 대해 신심이 가득하다. 여기에서 사존의 자비로운 가르침과 가호에 머리 조아려 감사드린다! 사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원만하여 사부님 따라 돌아갈 것이다!
(밍후이왕 제 7회 중국 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 2010년 11월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7회법회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4/明慧法会–使命感激励我做好自己该做的事情-2319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