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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를 마음으로 못하고 형식적으로 하게 된 원인을 찾다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11월16일] 어제 “법공부를 마음으로 못하고 형식적으로 한다.”는 문제를 교류했을 때 수련생들 모두 이야기를 참 잘하여 나는 계발과 촉동이 특별이 컸다. 한 시기 나의 상태는 줄곧 좋지 않았다. 법공부를 마음으로 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하는 문제를 제외하고라도, 또 늘 속인 중의 일 때문에 단체 법공부에 참가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했다. 법공부를 마음으로 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하게 된 원인을 찾을 때, 나도 아래 몇 가지 인식을 수련생들과 교류 하려고 한다.

1, 법리상으로부터 대법의 비할 수 없는 절경, 장엄 신성함과 위대함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우주의 근본 대법을 전하셨다. 대법의 비할 수 없는 절경, 장엄, 신성과 위대함을 인류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를 이것은 다만 이 무변한 우주대법의 일부분이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깨닫고 인식한 것 역시 조금도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럼 왜 법공부를 마음으로 하지 못하고 형식으로 하는 문제가 나타나는가? 곧 자신이 법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감성적인 것에 머물러 있고 사람의 층면에서 대법을 인식하는데 머물러 대법이 좋다고 여기고 연마하여 신체가 좋아졌다. 나의 사상이 개변되었다. 나의 가정을 개선했다. 자신의 과거와 비기고 속인과 비기면 특별히 행운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이성적으로부터 생각하면 대법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을 왜 이시기에 전하시는가? 자신은 왜 대법에 들어서고 대법을 수련하는가? 들어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아가서 왜 사부님께서 우리를 “정법시기 대법제자”라고 부르며 그와 “정법시기 대법제자”와 기타 수련형식은 무슨 관계인가? 등등 이런 것에 대해 나 자신은이인식 상 아주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나는 감성적인 인식은 사실 사물의 표면인식에 머물러 있고 그것은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인식해야만 비로소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고 비로소 진정으로 제고하는 것이며 승화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대법에 대한 인식을 이성적 인식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감성적 인식에 머물러 있으면 곧 영원히 깨닫지 못하거나 대법의 무한한 절경, 장엄, 신성과 위대함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그를 각별히 아끼지 않을 것이고 일종 보통 수련형식으로 대법을 대할 것이다. 그러면 법공부할 때 마음으로 못하고 형식적으로 하는 상태가 아무 때든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라는 인식을 했다.

2, 진정으로 사부님과 법을 존경하지 않았다. 금방 대법의 무한한 절경, 장엄, 신성과 위대함을 이야기하고 대법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우리들에게 매개 글마다 모두 사부님의 형상이고 배후에 모두 층층 첩첩 불, 도, 신들이고 우리의 입으로 읽어 나가는 것은 모두 법륜이고 연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법공부할 때 이런 것을 생각했는가? 만약 우리들이 이런 것을 생각했다면,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곧 우리들의 신변에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들이 법공부할 때 차를 마시고, 가위다리를 하고, 잡담을 하며, 앉은 것이 앉는 자세가 아니고 선 것이 선 자세가 아닌 등등 이런 사부님과 법을 존경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겠는가? 그래 또 법공부를 마음으로 못하고 형식적으로 하는 문제가 나타나겠는가? 긍정적으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과 대법은 우리들을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지옥에서 건져 올렸으며 우리들에게 법을 얻을 수 있는 기연을 주시고 우리들에게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위대한 역사적인 사명을 부여하셨다. 만약 사부님과 대법의 자비하고 고심한 제도가 없으면 어찌 오늘의 우리가 있겠는가!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도 사부님과 대법의 망극한 불은에 보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도리어 사부님과 대법을 존중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이런 심태와 행위로 어찌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겠는가? 형식적으로 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우리에게 대법의 진실한 내함을 보도록 할 수 있겠는가?

3, 진정으로 대법의 수련은 엄숙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기억하건대 갓 수련을 시작했을 그때 아무런 저항력과 압력도 없었고 멸시와 박해도 없었다. 듣고 본 것과 자신이 감수한 것은 모두 대법의 신성과 아름다움이었다. 마음속에 수련하여 원만하자는 아름다운 향왕으로 충만 되었다. 사부님께서 “수련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며 속인 중의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엄숙한 것으로, 으례 그렇게 되려니 생각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일단 기회를 놓치면 육도(六道) 중에서 윤회하게 되는데 어느 때에 다시 사람 몸을 얻겠는가!”라고 법에서 이미 수차 우리를 깨우쳐 주셨다.(『정진요지』「퇴직하여 다시여마」) 그러나 우리는 도리어 그것의 엄숙성을 보지 못했고 아주 경솔하게 여겼다.

박해가 시작된 후 생사고험의 앞에서야 비로소 그것이 단지 하나의 엄숙성 문제만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다. 바로 옛날에 본 『서유기』처럼 늘 그것을 후세 사람들이 써낸 신화로만 보았다. 지금에야 비로소 그것은 한 부의 진실 불허한 수련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한번 또 한 번 경험한 침통한 피의 교훈에 따라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모두 자신이 튼튼하게 법공부를 하지 않았고 대법을 수련의 기초와 보장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비로소 이런 심각한 교훈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오스트레일리아법회에게』에서 “법은 기초이고 대법제자의 근본이며 일체의 보장이고 사람으로부터 신으로 걸어가는 탄탄대로(通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도 오스트레일리아법회의 기회를 빌려, 전 세계 모든 대법제자들에게 알려준다. 신노(新老)수련생을 막론하고 반드시 바쁘다고 하여 법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법공부는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염두(念頭)를 집중해서 배워야 하며, 진정하게 자신이 배워야 한다.”라고 이야기 하셨고『사람의 마음을 제거하자(去人心)』에서 또 이야기 하시기를 “가장 뚜렷한 것은 허다한 수련생들이 박해를 엄중하게 받는 것 역시 자신의 사람마음이 너무 중하며, 정념이 부족하여 조성된 것이다. 해결하는 방법은 반드시 법공부를 중시하고, 착실하게 법공부를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밍후이 소책자『마음으로 법공부하다』를 보고 나 자신이 수련한 길을 되돌아보았더니, 나 자신은 법공부를 마음으로 못하고 형식적이었고 늘 단체 법공부를 견지 못하는 이런 문제가 여전히 비교적 뚜렷함을 보았다. 이를 인식하고도 만약 다시 중시하지 않고 결심을 내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길을 바르게 잘 걷기 아주 힘들 것이다.

주변의 일부 수련생들에게도 많거나 적거나 이런 방면의 문제가 존재함을 보았기에 써내어 여러분과 함께 교류하여 바로 잡으려 한다. 부당한 점이 있으면 수련생들이 자비로 시정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16/2325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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