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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의 자원’에 대한 이해를 가볍게 논함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얼마 전 법 공부를 할 때, 나는 갑자기 ‘대법의 자원’에 대해 더 많은 이해와 인식이 있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수련생들이 진상 자료를 만들어 라고 주동적으로 내 놓은 돈만이 비로소 ‘대법의 자원’이므로 소중히 여기고 합리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협소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오, 대법제자 자신의 돈도 역시 대법의 자원이구나. 우리의 자금은 장사를 해서 번 돈이던, 출근하여 받은 봉급이던, 또 다른 정당한 방식으로 얻은 수입이던 이런 돈은 대법제자의 손에서는 마찬가지로 마땅히 소중히 여기고 합리적으로 사용해야 할 대법의 자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정법 수련을 이렇게 여러 해 동안을 걸어왔고,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면서 많은 수련생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재물을 마땅히 어떻게 정확히 대해야 하는가를 이미 알고 있다. 파룬따파 수련 제자가 돈을 구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예전에 산에 들어가 도를 닦으면서 한 푼 돈도 요구하지 않는, 극단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대법제자가 갖고 있는 정상적인 재물은 우리로 말하면 첫째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여러 방면의 사회관계를 잘 평형 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법을 실증하는데 쓸 각종 비용을 낼 수 있고, 각종 진상자료를 만들어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진수하는 대법제자로 말하면 이런 재물은 사욕을 채우기 위해 물 쓰듯 써버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타인을 위해서이다. 동시에 대법제자가 세간에서 비교적 풍부한 물질자원을 갖고 있는 것 역시 법을 실증하는 한 방면이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는 것이며, 대법이 중생에게 가져다 준 복임을 실증하는 것이고,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며, 사당 사회의 선악이 전도되고, 나쁠수록 더 있다는 틀린 이론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대법의 자원’의 내포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이해하고, 대법제자에 대한 구세력의 자금방면에서의 박해를 타파하고, 합리적으로 대법의 자원을 이용하여 우리가 돈을 쓰고 물건을 쓰는 방면에서 정법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것인가, 실천 중에서 나는 일부 천박한 인식이 있게 되었는데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한다.

1 . 대법의 자원은 우리에 대해 말하면 그것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자아를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진일보 생각하게 되었다. 대법제자의 돈은 ‘대법의 자원’이다. 그렇다면 대법제자 자체가 가진 시간, 기능, 능력, 각종 유효한 사회관계, 각종 물력은 ‘대법의 자원’이 아닌가? 마땅히 옳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법제자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가?

내심으로부터 그것은 나의 아무것도 아니고, 자아를 실증하고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며, 단지 이 부분을 나에게 안배하여 내가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 하였다면 이익에 집착할 그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 무슨 개인 재산과 복을 사람들에게 자랑할 것이 있겠는가? 경제조건이 훌륭한 수련생은 내심으로부터 자신에게 있는 복을 인식하고 마땅히 합리적으로 더 많이 법을 실증하는데 사용해야 할 것이다. 많은 수련생들이 이 방면에서 잘 하고 있다. 자신의 양호한 경제 조건을 이용하여 주동적으로 돈을 내 놓아 법을 실증하고, 진상 자료를 만들며, 자신의 서약을 실현하고 있는데, 실제 정황을 보면 이런 수련생일수록 장사가 점점 더 잘 되고 조건도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이다.

또 있다. 내심으로부터 대법의 자원을 보다 넓은 내포를 인식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대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기능과 능력을 대법 앞에 놓고, 수련생 앞에 놓고 조건을 운운하거나, 무엇과 교환하려 하거나, 속인 사회에서 명리를 추구하거나 정감상의 만족을 얻으려 하지 않을 수 있다.

2 . 자신의 일체를 모두 ‘대법의 자원’으로 보아야만 자신을 수호하지 않고 대법을 수호할 수 있다.

오직 표면적으로 자신에게 속하는 물질을 진정으로 모두 ‘대법의 자원’으로 인식했을 때라야 우리는 법에 용해 될 수 있고, 법의 무궁한 역량과 위력이 있을 수 있다. 모 개인에게 속하는 물질 이익을 사악은 감히 당신더러 잃게 할 수 있지만 ‘대법의 자원’을 우주 중에서 누가 감히 파괴할 수 있겠는가?

한 수련생이 있는데, 사악에게 경제적 박해를 당하여 여러 해 동안 610의 지시로 직장에서 불법으로 수만 위안에 달하는 그의 봉급을 주지 않았다. 발정념으로 박해를 부정하는 외에도 수련생은 가족과 함께 여러 번 직장 책임자를 찾아 갔으나 효과가 미미하다고 느껴 후에 인터넷에 이 일을 폭로 하였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 원래 몇 백 위안씩 주던 생활비마저 지금은 한 푼도 주지 않게 되었다.

어떤 수련생은 직장에서 경제적인 박해를 당한 사실을 인터넷에 폭로하고,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을 하면, 직장에서 봉급을 추가로 지급하고 정상적으로 주는데, 왜 이 수련생은 이런 상황이 되었는가? 표면적으로 보면 수련생 역시 법을 실증하고 정체에 지불하고자 하며, 그 자신도 이 돈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기타 수련생이 이 수련생에게 건의하였는데, 그에게 심성과 행위에서 무슨 의식하지 못한 집착과 누락이 있어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온 것이 아닌지 찾아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는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가 아니며, 사악의 모든 박해는 모두 대법제자의 마음을 향하여 온 것이기 때문이다. 수련생은 안에서 찾으니 수많은 사람마음을 찾아내게 되었다. 쉽게 발견되지 않는 이익을 구하는 마음, 시간에 집착하여 돈을 저금하지 않으려는 마음, 사람과 쟁투하고 원망하는 마음, 돈으로 지불하여 박해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교환하였다. 그 중에는 또 이런 마음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돈에 대해 나는 내려놓을 수 있다. 너희들이 봉급을 주지 않아도 나는 굶어 죽지 않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봉급을 간단하게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만 보고, 아직 대법의 자원으로 승화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더 많이 수호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지 법이 아니므로, 사악은 바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개인 수련 상태 중의 집착하는 틈을 타고 들어와 경제적 박해를 빚어내는 것이다.

이 일에서 우리가 만약 내심으로부터 어떠한 사람이던 대법제자의 봉급을 주지 않는데 참여하는 것은 엄중한 죄업으로서, 그건 대법의 자원을 파괴하는 것임을 인식할 수 있다면, 박해 참여자에 대한 자비와 대법의 자원의 소중함. 그리고 대법을 수호한다는 정념에서 나온다면 순정함과 비할 바 없는 위력이 있을 것이다. 이 한 점을 마음속으로부터 인식한다면 대법제자의 진념은 효과적으로 사악의 배치를 타파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3 . 자신의 수입을 낭비하는 것은 대법의 자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과 똑 같다

우리는 사부님의 설법을 배우면서 알게 되었는데, 대법제자가 아껴 모아 진상자료를 만드는 돈을 낭비하는 것은 후과가 엄중한 것으로서, 많은 동수들이 모두 인식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지금 나는 자신의 수입을 낭비하는 것 역시 대법의 자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과 똑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법제자가 자신의 수입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위덕이며, 속인이 주동적으로 돈을 가져와 대법제자가 진상을 하게 하는 것은 무량한 복이 있는 것이다. 그럼 반대로 대법제자가 본디 사람을 구해야 할 돈을 속인 그곳에 쓰면서 그에게 향락을 누리게 한다면 그들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면 해치는 것인가? 물론 구체적으로 얼마를 쓰는 게 물 쓰듯 낭비하는 것이고 얼마를 쓰는 게 적당하고 좋은 점이 있는지 천편일률적일 수는 없지만 원칙이 있어야 하고 심태가 단정해야 할 것이며, 몸에 맞춰 옷을 마르는 것과 같이 실제적으로 고려해야만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밖에 나는 많은 때에 자신의 수입을 소비할 때 “마음 편하게 통 크게 써버리는데 이는 어려서부터 양성된 버릇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 자신과 친구에게 써 버리는 돈은 어떤 것은 완전히 불필요한 것임에도 수의성(随意性), 충동성이 무척 커서, 스스로 아주 감개하다고 여긴다. ‘법을 실증’ 한다는 구실로 나 자신이 절약하지 않고 낭비하는 것을 덮어 감추곤 한다. 물론 우리는 극단으로 갈 수 없으며, 털 한대 뽑지 않는 ‘인색한’ 사람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합리적으로 배치하고 계획이 있어야지 억지로 체면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자신의 수입도 역시 대법의 자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으므로 나는 원래대로 마구 돈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 밖에 우리는 다른 일종의 경제상의 박해에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 바로 친구가 갑자기 무슨 반드시 해야 할 것도 아니지만 크게 해야 한다며 엄청 많은 돈을 빌리려고 할 때가 있다. 거의 우리의 저금을 다 써야 할 정도이고. 아울러 근 1, 2년 사이에 전혀 갚을 수 없는 돈이다. 우리가 빌려주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고, 빌려주지 않으면 사람의 감각으로는 사리에 어긋나는 것 같아 무척 난감하다. 이럴 때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개인수입’을 너무 마음대로 사용하고 소중이 여기지 못한 것이 아닌지, 그래서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와 친우를 이용하여 경제상으로 우리를 박해하는 것이 아닌지 찾아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에 두, 세 번 봉착하였고, 심지어 우리의 저금을 견주어 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찌할 줄 몰랐으나, 후에 이는 다른 공간에서 사악이 박해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먼저 체면과 허영심을 내려놓은 동시에 어떠한 원망도 가지지 말고, 친우에게 자비하는 마음에 따라 발정념으로 이 일의 배후를 조종하고 있는 사악한 요소를 해체하였다. 재빨리 사람 중의 일은 변화가 발생하여 그 일은 흐지부지하고 말았고 자연적으로 그들에게 우리가 돈을 빌려 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때 우리는 정념으로 박해를 해체하긴 했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찾아보지 않았다. 오늘 내가 이 심득 문장을 쓰면서 그 때의 정황을 회고 해 보고 나서야 우리가 그때 대법의 자원 ㅡ ’개인 수입’을 너무도 낭비했다는 것을 내심으로부터 인식하게 되었다.

4 . 대법의 자원을 소중이 여기고 사악의 경제적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자.

당초에 사악이 감히 대법의 서적을 불 사를 수 있었던 것은 대법제자와 세인이 소중이 여기지 않아 대법 서적을 존중한다는 것을 구실로 삼았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 대, 우리가 경제적으로 사악에게 박해 당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는지를 찾아보는 외, 우리가 대법자원(개인 수입을 포함하여)에 대해 사용할 때 소중히 하지 않고, 엄숙하지 못하며,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지 못했으며, 의식하지 못한 구멍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우리 몸에서 발생한 일을 말해 주려 하는데 이 방면은 확실히 무척 엄숙하다는 것을 와서 보기 바란다. 나와 집 사람(수련생)은 스스로 법을 실증하는 공금에 대해서는 줄곧 비교적 엄격히 요구하였다고 여겼다. 예전에는 한 푼의 공금도 개인 일에 감히 쓰지 못하였다. 하지만 금년 상반년에 외지 수련생이 8백 위안의 설비 살 돈을 우리에게 넘겨주면서 우리에게 현지에서 원래 회사를 꾸렸던 수련생에게 주라고 하였다. 우리는 돈을 받았지만 그 수련생을 찾아가지 않았고, 후에 집 사람은 8백 위안의 돈을 옷장에 넣고는 이 다음에 사람을 찾으면 주려고 하였다. 어느 날 우리는 임시로 다른 곳에 가서 일을 처리하게 되었는데 차를 급히 타야 했으므로 돈을 꺼내올 수 없어 집 사람은 그 8백 위안을 가지고 떠나면서 이틀 후 돌아오면 즉시 돌려주려 하였다. 그 때 나는 이 일을 몰랐고, 기차역에서 차표를 끊을 때 나는 머리가 흐리멍덩하여 절반 노정이 더 넘는 차표를 끊어서 몇 백원을 더 쓰게 되었고 아울러 물릴 수 없었고 바꿀 수도 없어 할 수 없이 차에 올랐다. 돌아온 후 또 잇따라 일이 생겨 또 몇 백원의 억울한 돈을 쓰게 되었다. 나는 원인을 찾을 수 없어 집 사람과 이 일을 교류하고 나서야 집 사람은 그녀가 그 8백 위안을 옮겨 쓴 일을 알려 주었다. 그 때 나는 무척 후회되었다. 계산을 해보니 손해 본 돈이 바로 이 수목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돈을 쓰는 방면에서 바르게 걷지 않는 것은 아주 엄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일을 통하여 우리는 경제적으로 박해 받는 수련생에게 반드시 자신이 이 방면에서 바르게 걸었는지 찾아 볼 것을 일깨워 주고자 한다.

협조원이거나 자료 점의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나는 아주 큰 문제 하나를 발견하였다. 바로 어떤 수련생은 (특히 떠돌이 생활을 하는 수련생) 수련생들이 주는 생활비와 소모자료, 설비를 사는 돈을 한데 뒤섞는데 수련생 스스로 자기는 자신을 엄격히 요구한다고 여긴다. 그 밖에도 시끄러움이 두려워 두 가지 돈을 따로 보관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엄숙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한데 뒤섞으면 무의식 중 공금을 쓰고도 분명히 말할 수 없지만 사악은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는 만큼 때가 되어 닥치는 박해는 예기치 못한 것일 수 있다. 나는 우리가 반드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몇 해 동안 나는 또 일부 지방의 수련생들이 대법제자의 재물을 쓸 때 아주 엄격하지 못한 것을 보았는데 확실히 감히 마구 쓰고 있으며, 남의 돈을 쓸 때에도 ‘마음이 편안하다’ 내가 보니 이런 수련생들은 자신이던 가족이던 무슨 일을 해도 모두 순조롭지 못하고 경제가 아주 곤란하다. 사부님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던 모두 안으로 찾아보라고 하셨는데 그럼 우리는 정말로 마땅히 법에 비추어 이 방면에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중하게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우리에 대한 자비이고, 우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우리는 매를 맞고 청성 해 져야 할 것이다. 절대로 다른 일종의 부적인 생각을 일지 말아야 한다. 우리 누구에게나 모두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 의식하지 못하는 집착이 있을 것인데. 이 방면에서 예전에 잘 하지 못했던 수련생들은 인식했다면 진정으로 고치자.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잘 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며, 사부님께서는 오직 우리를 좋게 하려 하신다.

내가 생각 하건대, 정법 중 지연된 시간은 모두 대법제자의 중생구도에 쓰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 모두는 각 세계의 왕으로서 세간에서는 본디 복이 있는 것이다. 오직 우리가 대법의 자원을 소중히 여기고, 시시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며, 돈을 쓰고 물건을 쓰는 방면에서 바르게 걷기만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사악의 경제적 박해를 철저히 부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10년 11월 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2/2318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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