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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이 일하는데 영향 주거나, 일이 수련에 영향 준다’는 관념을 제거

글/ 창춘 대법제자

최근 동수들 사이에 ‘수련은 일하는 것에 영향을 주고, 일하는 것은 수련에 영향을 준다’는 관념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나도 장기간 이런 관념 속에서 헤매고 있었기에 이 글을 쓰게 됐다.

어떤 동수들은 3가지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다며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간이 오래되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면 다시 직장을 찾는다. 하지만 직장을 찾는 첫 번째 조건이 반드시 여유 시간이 있어야 하고, 일하고 남은 시간에 3가지 일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또 어떤 동수들은 직장일이 아주 바쁘지만 몇 년간 잘 걸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데 ‘3가지 일을 잘 할 수 있게 시간을 많이 낼 수 있는 곳’을 조건으로 삼는다.

한 명이 아닌 몇몇 동수들이 “돈이 적어도 괜찮으니 수련하기 좋게 쉬는 날만 많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결국은 어떻게 됐는가? 직장 찾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혹은 돈을 적게 받는 수월한 일을 찾았다가 정작 본인은 쉬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느슨히 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직장 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서 하는 말이 “일 몇 가지 못했는데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고 하는데 대부분 이런 상태에 있는 동수들은 또 다른 어려움, 즉 경제적인 박해에 처한다. 이 부분 동수들은 약간의 예상하지 못하는 지출이 생겨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 따라서 수련에 교란이 있게 되고 3가지 일을 하는데 영향을 주게 된다.

나는 위에 말한 동수들과 정반대 상태다. 직장에서 바삐 보내면서 돈은 많이 벌지만 법학습 시간이 적어 자꾸 조급한 마음이 들면서 3가지 일을 하는데 큰 교란을 받는다.

이 두 가지 상태는 표현되는 것이 정반대이지만 공통점 하나가 있다. 바로 법을 실증하는 것과 구도 중생하는데 영향을 주어 우리의 사명을 완수할 시간을 크게 지체하게 하는 것이다.

표면 현상은 가상이지만 수련에 어려움은 진짜다. 법속에서 법을 바르게 깨닫고 고난을 타파하는 것이야말로 수련인의 위덕을 체현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진짜 수련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상태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가장 힘들 때는 마치 구세력에게 납치당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완전이 이 고비를 타파했다고는 할 수는 없으나 법에 대한 이해는 점점 명확해졌다.

교란이든 박해든 모두 수련을 위한 것이고, 수련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심성의 제고가 관건이다. 사부님께서는 “이 마음을 수련하지 않으면 누구도 올라갈 수 없다”(전법륜)고 말씀하셨다. 심성을 제고한다는 것은 바로 안으로 찾는 것이다. 안으로 찾아야만 누락을 발견할 수 있고 따라서 제고되어 다시 앞으로 걸어나갈 수 있다. 잠재의식 속에 ‘고생은 하기 싫고 편안히 수련하고 싶다’는 관념은 없앨 때가 되지 않았는가?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되돌아가고 싶다면 반드시 2가지 요소가 구비되어야 한다. 하나는 고생을 겪는 것이고, 또 하나는 깨달음이다.”(시드니 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시간이 많아야만 3가지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마음은 우리가 3가지 일을 함에 있어 조건을 논하는 것이 아닌가? 조건이 되어야만 사부님이 요구하신 3가지 일을 한다? 물론 3가지 일을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조건을 요구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충족한 시간은 정념에서 오는 것이지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뒤로 퇴보하는 것이다.

나와 같이 바쁘게 일하는 사람이 직장에서 정말 때때로 심성을 수련하고 태연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경박한 마음, 평형 되지 않은 심리, 원망하는 마음, 조건을 논하는 마음은 일 효율만 크게 떨어지게 하고, 점점 혼란스럽고 바빠지게 만든다. 때문에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사실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진상하는 데는 몇 분 혹은 몇 마디로도 자비를 상대방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는가? 우리가 자주 차분한 마음을 유지 못하고 원망, 그리고 수련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구세력들은 그 틈을 타고 우리를 끝없이 마난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평소 비정상적으로 분주한 것은 자신의 초조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성수련이야말로 개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겉으로는 연공과 법 학습시간이 부족해 보이지만 사실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심성이 얼마나 높으면 공이 얼마나 높다.”(전법륜) 대법은 직시인심이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모두 심성을 제고해야 한다. 난(難)속에서도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심태여야 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정말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아봐야 한다. 어떤 마음으로 인해 수련의 길에서 발을 멈추게 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지. 지금까지 우리는 휘황한 길을 걸어왔지만 앞으로 향하는 길도 사람의 잘못된 관념을 제거해야만 잘 걸을 수 있다. 입으로만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 생활 속에서, 실천 속에서 자기의 일사일념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보완해 나가는 것이다. 공이 닫는 곳에는 자연히 이루어낼 수 있다.

이상은 개인 층차에 한한 깨달음이므로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과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10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0/11/2308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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