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대법제자 옌수(嚴肅)
[밍후이왕] 최근 몇 편 문장에서 똑같은 화제를 담론하는 것을 보았는데 확실히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도 느끼게 됐는바, 바로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서 어떻게 청성하고도 이지적으로 중생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잘 처리하고 그로부터 보다 중생구도를 잘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국외를 포함해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것은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다. 박해를 말해도 좋고 인권을 말해도 좋고 모두가 중생의 선한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며, 선한 마음을 열어주는 가운데서 중생에게는 분명하고도 정확한 선택이 있게 된다.
두려운 마음이란 이 문제는 공산당 세뇌 오염을 받아보지 못하고 국외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지만 중국 대륙 민중은 몇 십 년 중공에 세뇌 당했고, 대부분 민중은 몇 십 년을 기만 당했으며, 중공의 세도 속에서 민중은 몇 십 년을 살아왔다. 변이적인 관념은 중생에게 단지 중공이 설계해 준 시각과 관념 속에서만 세계를 볼 수 있게 했다. 비교적 보편적인 것은 바로 ‘성공한 자는 왕후고 실패한 자는 도둑’이라는 관념이 대륙에는 극히 큰 시장이 있다. 몇 십 년 동안의 중공의 홍색 공포 속에서 중생에게는 중공에 대한 변이적인 공포가 형성됐고. 몇 십 년 동안 쌓인 공포는 거대한 물질로 형성됐다. 그러므로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서 우리가 이런 관념의 중생을 만났을 때 우리가 만약 사람 마음을 지니고 박해를 말한다면 흔히 효과가 그다지 좋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 중생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오히려 더구나 진상을 거부할 것이고, 공포 속에서 중생은 중공은 여전히 그렇게 ‘강대하다’고 잘못 여길 것이며, 자신이 중공의 박해 대상이 될까 두려워하고, 자신이 대오에 잘못 들어설까 심심한 공포를 느끼면서 그는 가상 중에서 중공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바로 우리가 진상을 알려주는 과정에 진정한 가상을 조장해 준 것으로 되어 비단 중생구도를 잘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되어 그를 밀어버린 것으로 된다.
수련과정에서 우리는 두려운 마음은 사람이 신으로 가는 고비라는 것을 깊이 알고 있다. 또한 집착을 버릴 때는 가슴을 도려내고 뼈를 훑어 내듯 하다는 것도 깊이 알고 있다. 무지 속에서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능력과 지혜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럼 우리는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서 정념으로 중생의 바른 일면을 가지를 해 주고, 부정적인 일면을 제거해 주거나 적어도 그것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성공하면 왕후가 되고 실패하면 도둑이 된다는 관념 속에서 어떤 중생이 나타내는 심리 상태에는 도덕 한계가 없다 ㅡ 당신이 설령 정말로 진리를 대표한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나는 약자가 되거나 실패한 사람으로는 되고 싶지 않다. 혹은 도덕 한계가 더 낮은 사람은 ㅡ 당신이 기독교 실례를 들면, 그는 말하기를, 나도 당신들이 앞으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알거나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300년이 지나서가 아닌가? 나는 적어도 이 300년 사이에 중공의 박해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 ㅡ 당신이 보라 당신들은 얼마나 비참한가? 잡히고, 매를 맞고, 산채로 장기마저 적출 당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 대법 수련자의 각도로 보면 중공에 세뇌 당하고 기만당한 이런 중생을 구도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래도 기본적인 선한 마음만은 있는 것이다. 그에게 우리가 박해 당한다는 것을 알려주면 그는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우리는 그도 동정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지 동정하는 동시에 그는 그의 관념에 따라 그의 이익을 위하여 그가 강자라고 느끼는 것을 선택할 것이며, 아마 착오적인 방향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기왕 중생을 여전히 구할 수 있는 바에는 그래도 구도해야 할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슬기롭게 진상을 알리고, 어떻게 그의 선심을 열어주며, 어떻게 그가 진정한 강자 ㅡ 대법을 선택하도록 인도하겠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 대법도 책임이 있는 곳이다.
책임이 있는 곳이라,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과 같이 잘하지 않아도 안 되는 것이다. 대법 형세가 우주를 횡관한 진상도 중생 가운데서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는 세인도 포괄됐다. 왜 국외의 중생은 대법의 강대한 형세의 일면을 보아낼 수 있는가? 그것은 진정한 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왜 대법의 이 같은 적극적이고, 중생에게 희망을 보게 할 수 있는 그 일면(진정한 진상)을 중생에게 전시해 보여주지 않는가? 기왕 대법도가 이미 우리 자신의 전도를 보아냈고,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확신이 있는 이상,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신심과 대법은 필승한다는 정보를 각계 중생에게 전해 주는 것이고 아울러 그를 강화하여 주는 것이다.
사실상 역시 이러한 것이다. 나의 많은 속인 친구들이 국외 여행을 갔다 돌아와서는 기뻐하면서 나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 “자네들 파룬궁은 국외에서 아주 강대하더군.” 나는 하하 웃으면서 그에게 알려 주었다. “자네 모르고 있군, 파룬궁은 국내에서도 아주 강대하다네!” 민심은 속일 수 없다! 대법이 세계 각지에 널리 전해지고 있는 것을 포함해, 션윈은 진정한 중화 신전문화의 부흥를 대표하고 아울러 광범히 하게 전파되고 있으며, 삼퇴 성명하는 거대한 인원수는 날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사당의 허장성세하는 실질은 겉은 강한 것 같지만 속은 약한 것으로서 고위관료들의 이른바 배신하고 도망가는 일을 야기 시켰으며, 각 민족의 예언, 그리고 구이저우(貴州)에서 바위에 나타난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란 글자 등등등등은 모두 중생이 희망을 보는데 충분하다. 아울러 이는 곧 도래할 사실이며, 이로부터 그들이 정확한 선택을 하도록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장발표 : 2010년 10월 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0/6/2306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