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 대법제자로서 예전에는 모순에 닥치면 나도 안에서 찾아봤다. 하지만 단지 표면층과 개인수련 기초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고, 단지 무슨 집착이 있어서 반드시 버려야 한다고 여겼을 뿐이지 더 깊은 체득은 없었다. 법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나는 점차 안에서 찾는 것은 단순히 개인 제고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모든 천체 중생의 변화와 제고에 관계된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속인 중에 표현되는 것으로는 주위 속인의 心性은 우리 心性 변화에 따라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한 점을 나는 어머니 몸에서 아주 뚜렷하게 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몇 동수와만 연계했을 뿐 더 많은 동수들과는 감히 연계하지 못했다. 나는 자신에게 무척 훌륭한 구실을 찾아 주었는데 자료 송달을 책임졌기 때문에 반드시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인데 이는 모두 구(舊)우주의 사고방식이고, 구세력의 배치를 철저히 부정하지 못한 것이다. 진상도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에게는 감히 하지 못했고, 말한다 해도 제 3인칭을 썼다. 많은 사람을 대면하면 감히 정정당당하게 자신은 대법제자란 말을 못하고 언사도 이리저리 피한다. 그 때면 어머니가 나에게 말한다. “파룬궁이 좋은 걸 나도 알고 있으니 너는 집에서 연마하고 절대 밖에 나가서 남하고 말하지 말아라.” 그러면서 누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와 파룬궁 이야기를 꺼내면 어머니는 얼른 회피하면서 더 이상 감히 얘기를 계속하지 못한다.
금년 5월 달에 들어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어서야 나는 이 개인수련 상태를 돌파하고 대법제자 속으로 녹아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갑자기 느끼게 됐다. 이 염원이 나오자 사부님께서는 한 걸음 한 걸음씩 나를 대법제자 속으로 이끌어 주셔서 나는 많은 새로운 동수들을 알게 됐다. 이 과정에 나는 수많은 두려운 마음을 버리게 됐고, 내가 관념 중에서 여러 가지 두려운 가상을 연화해 낼 때면 나는 더는 그것을 따라 생각하지 않고 발정념으로 제거해 버렸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파룬궁은 정말 대단하더구나. 진상 표어를 어디나 다 붙여 놓았더구나.”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시면서 물으셨다 “너도 나가서 붙이지 않았니?”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너도 틀림없이 붙였을 거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엄마는 더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 때 나는 무척 놀랐다. 어머니께서 이번엔 놀랍게도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걸 보니 마치 붙이고 싶으면 붙여라 하고 묵인 하시는 것 같았다. 또 이후에 나는 과감히 낯선 사람에게 대면 진상을 얘기했고, 다른 사람 앞에서 태연하게 자신은 대법제자라고 말했다. 이 때 어머니께서 나에게 얘기하셨다. “오늘 파룬궁 할머니를 만났는데 나에게 삼퇴를 하라고 하기에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딸이 있어 진작 탈퇴했다고 말했지.” 어머니의 말투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녀의 딸이 파룬궁을 수련하기에 아주 영광스럽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이런 변화는 나로 하여금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어머니의 心性 변화 과정은 나의 心性 변화 과정과 동시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이로부터 나는 생각하게 됐다. 만약 어머니가 내가 있는 우주 중의 어느 한 층의 천체에서 파견한 대표라면 나의 뜻이면 바로 그 층 천체의 천상일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면 엄마도 두려워할 것이고, 어머니가 대표하고 있는 그 층 천체 중의 중생도 따라서 두려워할 것이며, 내가 개변되지 않으면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가 대표한 천체 중의 중생도 개변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예전에 늘 어머니의 오성이 나쁘고 선량하지 못하며 정의감이 부족하고 용감하지 못하며 무엇이나 다 두려워한다고 원망했을 뿐, 나는 도리어 안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이런 표현이 바로 내 心性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각지설법-2002년 미국필리델피아법회설법)를 진정으로 체득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알게 됐다.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참으로 세상 중생의 구원에 영향 줄 것이다,
내 신변에는 아직도 오늘까지 개인수련 중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 수련생이 있는데 속인의 각종 정과 이익에 얽매어 날마다 그 속에 뒤엉켜 있으면서 안에서 자신을 찾아보지 않고 도리어 신변의 혈육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공정치 못하고 어떻게 나쁘다고 원망한다. 어떤 일은 속인의 경지에서 들으면 그야말로 불공정하고 참으로 불쌍하다. 하지만 동수들이여, 그들이 금생에 이렇듯 우리를 불공정하게 대하는 것은 우리가 전생에 그들에게 빚을 진 까닭이다. 가령 이 대법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사부님께서 우리의 수많은 업력을 갚아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가 빚진 이 은원은 이 한 생에 전혀 갚을 길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조금을 갚았는데 그 무슨 불공평함을 느낄 것이 있는가? 더구나 이 특수한 역사시기에 우리에게 모순과 고통을 빚어준 혈육들도 모두 이 법을 위해 온 것이며, 우리가 집착심을 버리지 않아 그들은 그곳에서 한 번 또 한 번 부정적인 배역을 우리를 위해 연기하고 있는데 그들이라고 괴롭지 않겠는가? 그들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 그들은 아직 진상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일찍 빚졌던 것이 아니며,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대법이고, 그것이야 말로 생명의 근본적인 보장이다. 원한을 없애고 선해(善解)를 얻는 것만이 그들이 금생에 우리와 혈연을 맺은 의의일 것이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며, 수련해 원만이 된 후에는 그곳의 주, 왕이며, 그 혈육들은 우리 우주의 중생으로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의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그들의 구원에 영향이 미칠 것이며, 그들 또한 되돌아와 우리의 수련에 영향 줄 것이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수련환경은 여전히 자신의 心性과 관계있는 것으로서 오직 안으로 자신을 닦아야만 비로소 일체 법과 화목하지 못한 요소를 개변시킬 수 있다.
안에서 찾는다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마땅히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모든 행위를 참조해 본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상유심생(相由心生)’을 말씀하셨는데 수련인의 주위 환경은 자신이 개창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속인 사회에서의 우리 心性의 직접적인 표현이다. 남을 보지 말고 자신을 봐야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봐야 한다. 우리의 心性이 참으로 승화돼 올라 왔을 때, 전력을 다해 무엇을 하느라 할 필요없이도 주위 일체 사람과 물질은 모두 따라서 승화될 것이다.
층차가 제한돼 있으므로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0년 9월 28일
문장분류 : 정법추천문장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28/2302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