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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뉴욕법회 설법》을 공부하고 관념을 돌리다

글/대륙 대법제자 朴心(푸신)

[밍후이왕] 사존께서는 《2010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희망하건대 여러분은 곤두박질한 후에 바른 면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늘 반면 교훈을 받아들이지 말라. 반면 교훈을 받아들이면 바로 사람의 마음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자신을 교활하고 원용하게 변화시키는 것인데, 그것은 나쁘게 변한 것이다. 무엇이 나쁜 사람인지, 내가 당신들과 말했을 것이다. 그 교활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심지(心地)가 선량하고, 그리 복잡한 사상이 없는, 그것이 좋은 사람이다.”

나 자신이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종류에 속한다. ‘바른 면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늘 ‘반면 교훈’을 받아들였고 자신을 ‘교활’하고 ‘원용’하며 ‘복잡’하게 변화시켰다. 이후에는 ‘바른 면에서 지혜를 늘려’야 함을 느꼈고 두뇌를 바른 곳에 사용해야겠다. 두뇌와 지혜를 진상을 알리는데 사용해야겠다.

나는 전에 사상이 간단한 대법제자였다. 몇 년 전 그때 나의 사상은 아주 순수했고 사회의 그런 교활한 사상이 없었다. 그때 나는 동수와 협력함에 손발이 잘 맞았다. 그때 수련생은 나에게 현지에서 동수지간에 모순이 있다고 했으며 나는 그것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하여 동수한테 이렇게 말했다. “동수사이에 뭘 숨길 것이 있는가, 터놓고 교류해야 하지 않는가, 왜 소통하고 교류하지 않는가?”

그때 내가 늘 했던 말은 “동수의 빛나는 장점을 봐야한다”였다. 오직 동수의 빛나는 면을 보면 나는 화를 내지 않게 되었고 동수와 모순이 없었으며 매일같이 즐거웠다.

후에 환경에 갑자기 변화가 발생했고 무엇이나 다 변한 것 같았다. 아마 사악은 ‘대법제자 내부가 너무 순결하다, 이렇게 해서야 어찌 대법이 가장 복잡한 환경에서 걸어 나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난잡스러운 일을 만들어 고험해야겠다’는 구실로 파괴를 했을 지도 모른다. 전에는 좋은 동수였는데 갑자기 복잡한 모순이 폭발돼 나왔다. 수완을 쓰고 사람을 이용하며 남녀관계가 복잡하고 … 등 각종 난잡한 일들이 모두 튀어나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남녀 정에서 대법에 먹칠을 한 것에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가 그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말하지 않거나 그녀를 가려주지 않으면 보복을 하기도 했다. 동수의 결점을 잡아냈고 오직 동수의 결점이 발견되기만 하면 사처로 돌아다니며 말했다. 자신의 아이를 관리하지 않는다든지,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지 않는다든지, 그녀와 단체 법공부하기 싫어한다든지 … 전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었으나 모순을 이렇게 만들어냈다.

반박해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수련생이 내부에서 마구 생트집을 잡는 것과 배후에서 헐뜯는 것을 방비해야 했다. 내 앞에 펼쳐진 환경은 이상하게 복잡하고 험난한 국면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반면교훈’을 받아들였고 점차 ‘교활함’과 ‘총명’을 익혀냈다. 수련생이 수완을 쓰려할 때면 나는 방어하는 방법을 익혔고 수련생이 사람의 수단으로 나를 억압할 때 나는 대충 얼버무려 버리는 것을 익혔다. 수련생이 박해를 당하면서 추위에 떨 때 자신의 겨울옷이나 장갑을 동수한테 주려했으나 수련생이 싫다고 꺼리거나 동수한테 마음의 상처를 줄까 근심했다. 멋진 말들을 해주기보다 못한다고 느꼈고, 이러면 누구도 결점을 가려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나는 득의양양했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수련생이 나한테 수완을 쓰지 않았고 내가 손실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러한 (반면) ‘교훈’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어떻게 사람을 방비하고 사람을 대할 것인가 하는 경험을 귀한 인생경험으로 삼았다.

나는 교활한 사람, 자신을 위하여 변호를 잘하는 사람, 자신을 위하여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점을 많이 얻을 수 있다고 고집스레 여겼다. 반대로 어리석고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은 늘 손해 보게 된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나는 노력하여 ‘교활’함과 ‘총명’함을 익혔고 처사에서 경험을 쌓는 동시에 사상도 점점 복잡하게 변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당신 이 사람이 어떻게 총명하고 어떻게 교활하든 결국은 마찬가지이다. 이 사람이 아주 우둔하다고 말하며, 당신은 그가 아주 우둔하고 그가 아주 단순하며 저 사람은 아주 교활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 인생의 길에서 어떻게 가든지 막론하고 결말은 마찬가지인 것으로, 결코 사람이 교활하기 때문에 무슨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그가 단순하기 때문에 무슨 변화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교활함은 다만 자신을 나쁘게 변화시킬 뿐이며 업(業)을 짓는 중에서 또 사람을 아래로 미끄러지게 하는데, 주위 환경이 자신과 긴장하게 변한 후 사람 마음으로 하여금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복잡한 생각은 단지 자신을 더욱 좋지 않게 변화시킬 뿐이다.”(《미국수도설법》) 사존께서는 마치 나의 생각을 완전히 알고 계신 듯 했으며 나의 착오적인 생각을 지적하셨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진상 CD에서 화인 사회자가 션윈의 서양인 사회자 린리산(林理善)을 취재하는 것을 보았다. “당신은 왜 션윈에 가입하였어요?” 린리산이 대답했다. “중국요리를 먹을 수 있는 외에 중국어를 배울 수 있어서 ….” 화인 사회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도 속으로 웃었다.(물론 웃음거리로 여긴 것이 아니며 감동의 웃음이었다) 중국인은 왜 웃는지 이해할 것이다. 서양인은 정말로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이다. 오직 서양인이여야 션윈에 가입함은 중국요리를 먹을 수 있어서이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인은 절대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인은 아마 멋진 말을 구사하여 이유를 댈 것이다. 당문화의 독해가 심한 중국인은 서양의 정상적인 사회인의 사유습관과 이미 아주 달라졌다. 이미 아주 심하게 변이됐고 사람마다 사상이 아주 복잡하게 변했다. 과분하게 총명하고 말을 함에 빙빙 돌려하고 사람마다 손실을 보지 않으려 한다. 수완이 좋고 손실을 보지 않아야 좋은 일로 여기며 이런 좋지 못한 관념을 자신의 것으로 여겼다.

《2010년 뉴욕법회 설법》을 공부한 후 나는 처사에서 인간교제에서 형성된 사람의 관념을 마땅히 개변해야 함을 인식했다. 많이 선으로 문제를 봐야 하고 원한으로 문제를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말할 줄만 알고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착실하고 성실하게’ 사람을 구해야 한다.

법공부에서 깨달은 것이며 부당한 것은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9월 2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9/20/2298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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