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기자 쉐리 인터뷰 보도) 알렉스는 오스트리아 청년으로서 비교적 진실하다. 그는 꼬치꼬치 따져 묻는 개성을 갖고 있어 간혹 타인을 귀찮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개성으로 그는 일생에서 가장 보귀한 물건을 얻게 됐다.
독일 함부르크시 중심공원에서 연공하고 있는 알렉스
1999년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해 해외 매체도 파룬궁에 대한 중상모략을 그대로 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알렉스는 오스트리아 모 신문사에 있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하는 한 중국인 친구가 그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 수정을 부탁했다. 알렉스는 파룬궁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한 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후 그는 마침내 ‘전법륜’ 책을 얻었다. 그는 단숨에 다 읽은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지하실에 저장해 주었던 술을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수련인은 술을 마시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미 이 길을 선택한 만큼 당연히 하나도 빈틈없이 사부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한다.”
중국 대사관 탐문
2001년 가을, 알렉스는 인터넷에서 중공 주재 대사관을 찾아 전화를 했다. 그들은 즉시 그와 이야기 나누자고 요청했다. 알렉스는 리훙쯔 선생님의 ‘나의 약간의 소감’과 책 몇 권을 갖고 갔다.
대사관에 도착하자 중국 대사관 직원은 일부 관련 그림과 자료(모두 중공이 조작한 것)를 그에게 보여주면서 이것은 모두 파룬궁이 한 짓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세계 모든 국가에서는 모두 연공할 수 있는데 다만 파룬궁 발원지인 중국에서만 금지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또 무엇 때문에 대만도 중화 문화의 기초사회인데 파룬궁이 잘 발전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 문제도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다만 나에게 당신은 서양인이기에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기에 중국인의 하는 일을 당신을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많은 책을 읽었고, 사고할 줄도 알며 스스로 생각하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당신은 모른다. 중국인은 다른 국가 국민들보다 아둔하다’고 말했다.”
알렉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즉각 “나는 당신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한 중국인을 알고 있는데 그는 아주 사고를 잘하는 사람이다!”하고 말했다. 이번의 탐문을 거친 후 알렉스는 파룬궁을 비방하는 자료는 모두 박해를 위해 꾸며낸 것이라고 확신했다.
2002년 2월, 중국 대사관에서는 알렉스를 청해 파룬궁에 관련 전시회를 보게 했다. “그런데 나는 다 본 후 이 일체가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수단을 만든 것이 아니냐고 명확히 질문했다. 그들은 즉시 나를 밖으로 내쫓으려 했다. 나는 당연히 이렇게 쫓겨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다른 참관자들도 말을 하게 해서 그들에게 판단하게 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대사관 인원들이 나와 다른 사람이 대화를 저지하면서 나를 내쫓으려고 했다.” 중공 대사관의 그러한 태도는 서방 민주사회에서 자라난 이 청년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가 계속해서 사고하는 것은 제지할 수 없었다.
알렉스는 대담한 결정을 했다. 그는 중국으로 리훙쯔 선생님이 법을 전한 곳, 창춘시 제5중학교로 가서 파룬궁의 박해 진상을 중국인들에게 알리려고 했다.
창춘에서 납치
준비 후 알렉스는 창춘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여관을 찾아 물건을 놓은 후 그는 계획대로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독특한 방식으로 파룬궁 전수 10주년 기념했다.
“2002년 5월 13일, 그날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온 여관은 텅 비었다. 이렇게 큰 식당에 책상 두 개뿐인데 중국인은 밥상으로도 쓰고, 한편 큰 텔레비전을 놓고 보고 있었는데 그들을 본 내 마음은 아주 괴로웠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가짜 정보에 습관이 돼 세뇌됐다. 나는 복사한 파룬궁 진상자료를 그들에게 주었는데 그들은 내용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전단지를 식당 안에서 밥 먹고 있는 사람, 홀 종업원,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마침 전기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주었다.”
알렉스의 행동은 아주 빨리 주목을 받았다. 그날 이렇게 일을 끝마치고 밖에 나가 한 바퀴 돌고 돌아왔을 때 여관 방에서 그는 벌떼처럼 몰려든 경찰에게 납치돼 수갑이 채워졌으며 경찰국으로 가게 됐다. “경찰은 처음엔 아주 겸손하게 대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발생하는 일을 통해 나는 아주 빨리 그들이 이렇게 파룬궁 수련생들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록 밍후이왕에서 많은 사례들을 봤지만 자신이 직접 그 중에 있었을 때 이번 박해는 매 구석마다 빠뜨림 없이 모두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했다.”
그 당시 정경을 회억하면서 진갈색 소파에 앉아있던 알렉스의 표정은 엄숙해졌다. 그는 실눈으로 유리창 밖 한 곳을 뚫어지게 보았다. “나는 이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박해 사실을 말했다. 처음에 그들은 모두 중국과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했지만 내 경험을 듣고 침묵을 지켰다. 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중공에게 날이 갈수록 세뇌되고, 미혹돼 독해를 입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경찰에게 협조를 모두 거부했다. 그는 오직 여권을 돌려주고, 오스트리아 대사관과 말하고 싶다고 요구했다. “나중에 방안으로 세 사람이 들어와서 나를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문제에 해답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국 문밖 거리까지 나왔을 때 알렉스는 차에 타는 것을 거절했다. “그들은 독일어 번역원을 데리고 와서 나에게 차에 오르라고 했다. 나는 당신들이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지 알려줘야 하지 않는가? 나는 잘못한 것이 없으며 범죄자가 아니다. 나에게 이렇게 할 권리가 없는데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하는가? 당신들이 나를 여관으로 보내준다면 내가 직접 차를 불러서 갈 수 있으니 당신들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말을 끝낸 후 나는 손을 들어 택시를 불러 세워 차문을 열면서 모모 여관으로 가자고 했다. 경찰 몇은 급히 나를 덮치면서 나를 밀쳐 다른 차에 태우려 했다. 나는 차문을 꽉 붙잡고 오직 한 가지 염원을 보냈다. ‘어쨌든 막론하고 이들 차에 오르지 않는다.’ 이들은 내 손가락을 비틀면서 발로 차고 때렸다. 나는 전혀 통증이 없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점점 모여 들었다. 세 사복 경찰이 한 외국인을 괴롭히는데 누구나 이러한 요란한 장면을 보기 좋아했다. 그리하여 나는 필사적으로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파룬따파 하오!’를 외쳤다.”
경찰은 곧 몇초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알렉스를 덮쳐 입을 막고 그를 땅에 엎어놓고 손을 뒤로 넘겨 비틀었다. 한 가죽 구두를 신은 발이 그의 얼굴을 밟았다.
“중국인을 대하는 수법으로 당신을 대할 것!”
알렉스는 회상하면서 말했다. “경찰은 번역원을 통해 나에게 일부 문제를 물었다. 예를 들면 무엇 때문에 중국으로 왔느냐, 파룬궁이 금지된 것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수갑을 벗겨달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알렉스의 요구를 들은 척도 안했다. 나중에 그의 확고한 요구에 수갑을 풀어줬다. “그리고 나는 오스트리아 대사관 사람들을 만날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국제적인 권리다!”하고 말했다.
“이러한 권리는 중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협조하지 않으면 우리는 중국인을 대하는 것처럼 당신을 대할 것이다!”라고 경찰은 말했다.
24시간 때리고 욕하고, 4일 연금시킨 후 그를 압송해 오스트리아행 비행기로 돌려보냈다. “정말로 유감스러웠다. 그 당시 중국 대륙에 대한 상황과 참혹한 박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만약 내가 다시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그때보다 더 잘 할 것이다”라고 알렉스는 진지하게 말했다.
중국 갔다 온 알렉스는 박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즉시 날마다 중공의 거짓말을 폭로하는데 적극 투입했으며 박해 제지를 행동으로 옮겼다.
문장완성: 2010년 7월 3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zhoubao.minghui.org/mh/haizb/173/A02/72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