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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청두 학습반에 참가했던 전후를 회상하다

글/ 구이양시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93년도에 구이양(貴陽)시에서 수련을 시작한 대법제자다. 사부님의 첫 번째 보고회를 들은 후 사부님의 심오한 법리에 탄복했고, 그래서 나는 구이양에서 열린 학습반에도 참가했다. 법공부와 연공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전에 사방으로 의사를 찾아다니고 각종 기공을 다 연마해도 낫지 않던 뇌진탕, 위하수, 신장염, 불면증 등 많은 질병들이 저절로 나았다. 사부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1994년 5월, 당시 구이저우 보도소 소장은 사부님께서 곧 청두(成都)에서 학습반을 여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모두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사부님의 설법반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 그때 사부님께서는 충칭에서 법을 전하고 계셨다. 나는 보도소장과 함께 기차를 타고 먼저 충칭에 도착해 학습반 장소를 찾아갔는데 사부님께서 마침 설법을 하고 계셨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을 마치시고 우리를 보시더니 무척 기뻐하시면서 우리를 데리고 길가 식당에 가서 식사를 대접해주셨다. 이어서 사부님 숙소에서 구이저우 파룬궁수련생들의 법공부, 연공, 홍법 상황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우리가 먼저 청두로 가고 싶다는 뜻을 말씀드렸더니 사부님께서 매우 기뻐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틀 더 묵었다 가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사부님의 배려에 감사드리며 다음날 청두로 향했다.

당시 청두에는 대법을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우리는 기공협회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대법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마(魔)의 교란으로,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다녀도 기공협회 소재지를 찾지 못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한 곳을 맴돌기만 해서 몹시 지쳤다. 다음 날 겨우 기공협회 책임자 왕(汪) 씨(어떤 공법의 우두머리)를 만났다. 우리가 방문 목적을 설명했지만 그는 매우 불친절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의지해서는 대법을 널리 알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구이양에서 온 수련생들을 조직해 매일 이른 아침(오전 6시)에 문수원(文殊院) 등 여러 공원에 파룬 도형과 연공장 표지를 걸어두고, 노란색 연공복을 입고 연공 음악에 맞춰 규칙적으로 연공했다. 그러자 삽시간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더 많은 이들에게 대법을 알리기 위해 각 연공장 보도원들은 일부 수련생은 연공하게 하고, 일부는 사람들의 의문에 답변하도록 했다. 현지인들은 모두 매우 신기해하며 이런 걸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고 파룬궁 학습반이 열리는 줄은 더더욱 몰랐다고 했다. 구이양 수련생들은 그들에게 열정적으로 대법을 알리고 이번에 현지에서 여는 대법 학습반의 시간과 장소를 일러주며, 대법의 진귀함과 만나기 어려운 기회임을 강조했다. 청두에 더 많은 사람이 법을 얻도록 하기 위해 구이양 수련생들은 매일 같이 각 공원에 가서 연공과 홍법을 꾸준히 했다.

충칭 학습반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는 즉시 청두로 오셔서 인연 있는 이들에게 법을 전하셨다. 사부님께서는 휴식도 하지 않으셨고 매우 검소하셨는데, 매일 국수 한 그릇이나 만두 두 개로 끼니를 때우셨다. 사부님께서는 솔선수범하시어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셨고 매일 일찍 회의장 문 앞에 가 직원이 문을 열기를 기다리실 정도로 전혀 지각하지 않으셨다.

청두 학습반이 진행되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매일 같이 새로운 수련생들이 들어왔다. 처음에 그들은 뒤에 앉았고, 집에서 가져온 온갖 꽃과 생수를 연단 앞에 놓았다.(다른 공법에서는 이를 ‘정보 받기’라고 한다.) 하지만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며 서서히 앞자리로 옮겨 앉았다. 구이양 수련생들은 사부님 설법에 방해가 될까 봐 그들을 제지했지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구이양 수련생들을 불러 세우시고 그들을 앞으로 앉게 하셨다. 처음에는 대법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많은 이들이 사부님 설법반에 등록하지 않고 그저 한번 구경만 하러 왔다. 그러나 한 강의를 듣고 나자 애초에 등록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이 우르르 등록하고 정식으로 학습반에 참가했다. 그들은 사부님 설법을 경청한 후에야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는 것이 진정으로 사람을 제도하기 위함이지 자신들이 상상했던 무슨 ‘정보 받기’나 질병 치료 같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위덕으로 입소문이 퍼지며 청두 9일 학습반 내내 꾸준히 인연 있는 사람들이 법을 얻으러 왔다. 애초에 사부님 곁의 제자들이 가져온 대법 책은 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여분이 많이 남아서 우리 지역으로 가져가려 했다. 그러나 나중에 수련생이 늘어나자 우리가 가져가려던 책도 다 팔려나가 오히려 모자랐고, 많은 사람이 책을 구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급히 사부님께서 다음에 어디서 학습반을 여실지 묻고는 꼭 참가하겠다고 했다. 이후에 사부님께서 정저우(鄭州)에서 법을 전하신다는 소식에 그들은 정저우까지 따라갔다.

당시 청두 학습반을 통해 “과연 맺은 연분대로 깨달을 수 있는 자들인지라, 잇따라 모여와 입도(入道)하여 법(法)을 얻는구나”(정진요지-깨달음)를 절실히 느꼈다. 그 광경은 너무도 생생하고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청두 설법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는 멀리서 온 다롄, 베이징, 우한, 구이저우 등지의 보도소장들과 몇몇 수련생들과 함께 청성산(靑城山), 아미산(峨眉山), 낙산(樂山)으로 여행을 가셨다. 먼저 청성산에 도착했는데, 사부님께서 앞서 걸으시며 손에 지도를 들고 걸으시면서 흔드셨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그곳의 사악한 것들을 제거하신다고 여겼다. 사부님께서는 길 내내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우리를 보살펴주셨고, 우리는 사부님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산에서 내려오실 때 사부님께서는 또 직접 우리 각자의 사진을 찍어주셨는데 이 사진들을 나는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아미산 정상에 이르니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는데 마치 구름 속에 있는 듯했다. 사부님께서 서서 바라보시며 수련생들도 보라고 하셨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들은 부처, 신, 보살, 용 등 많은 것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낙산에 가서 우리는 사부님과 배를 타고 낙산 대불(大佛)을 한 바퀴 돌며 구경했다. 대불 정상에서 기슭까지 내려와 낙산 여행을 마쳤다. 이번 여행의 모든 식사와 숙박, 교통비 등 일체 비용은 전부 사부님께서 부담하셨고 제자들에게는 한 푼도 쓰지 못하게 하셨다.

청두로 돌아온 다음 날, 우리는 사부님과 다른 수련생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구이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떠나기 전 사부님을 뵙지 못했는데 막상 버스에 탑승하려던 순간 뜻밖에 사부님을 다시 만나게 됐다.

사부님을 모시고 함께한 이 모든 지난날의 일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선명하다.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이미 내 생명 가장 깊은 곳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으신 사부님의 은혜를 제자로서는 다 갚을 길이 없다!

 

원문발표: 2010년 6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0/6/30/2262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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