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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수련생은 자녀동수에게 관심을 가져야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20년 7월1일〕나는 아주 오래전에 이 글을 쓴 적이 있지만, 문장이 너무 길어 주제가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에 발표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교류 문장을 쓰는 것은, 문장은 나의 깨달음이 얼마나 도리가 있는지를 실증하는 게 아니라, 동수들과 함께 교류하고, 함께 제고하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깨달은 도리는 모두 법에서 왔다. 쟁투심, 과시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어찌 좋은 교류 문장을 쓸 수 있겠는가? 이른바 교류문장은 자신이 깨닫고, 표현된 의미를 적으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사상을 다른 동수에게 강요하지 말고, 문구에서도 다른 동수에게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바를 강요하는 내용을 사용해도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깨닫고 난 뒤 다시 글을 적으려니까 사로가 더욱 분명해 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내 생각으로, 정법 형세의 추진으로 지금 대륙의 환경은 표면적으로 갈수록 느슨해지고, 수련을 포기했던 지난 날 동수들이 천천히 돌아오고 있다. 아울러 명후이왕에 젊은 동수들의 수련 심득 문장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날 꼬마 동수들을 다시 수련할 수 있도록 (지금은 이미 성인이 되었다)도와주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내 주변에서도 지난 날 수많은 어린 동수들이 아직도 수련으로 돌아와야 하는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장을 통해 여러 동수들과 교류하려 한다.

예전에 동수였던 이런 젊은이들은 새롭게 걸어 나온 어른 동수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99년 7.20 이전에는 어린이라 법에 대해 썩 이성적이지 못했다. 많은 어린이들은 부모들 때문에 평소 수련에 다소나마 참여했고, 당시 이들의 부모동수도 아이들의 성적을 중시하느라 법에서 그들을 인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후에 박해가 시작 되자 부모님과 아이들까지 모두 박해를 받으면서 매우 많은 어린이들이 수련을 포기했다. 그들이 수련을 포기 한데는 법 공부 환경이 없어졌거나, 혹은 압력, 혹은 잊어버리는 등등 많은 원인이 있다. 아주 많은 아이들은 부모가 가장 필요할 때 도리어 박해를 받아 법 공부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불량한 습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사방으로 물욕이 흐르고, 하루에도 도덕은 천리를 달리듯 미끄럼질 치고 있어 지난 날 꼬마동수들도 매우 많이 염색 독에 빠져 들어 갔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사업을 중시하고, 어떤 사람은 감정을 중시하고, 어떤 이들은 금전을 중시하고, 어떤 이들은 안일을 중시하고 있다.

이는 이들 어린이의 상황이고, 다음은 부모 동수들의 상황을 살펴보자. 내 주변의 많은 부모 동수들은 지난날 동수였던 자식들을 제멋대로 방임하기도 한다. 어떤 수련생은 아이들이 커서 부모와 같이 지내지 않기 때문에 부모 동수들이 그들을 관리하는 게 불편하고, 어떤 분은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가 관리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혹은 부모님과는 세대 차이 교류하지 않으려 한다. 어떤 동수들은 아이들이 20년 간 박해를 받아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고, 당 문화의 독해를 너무 깊이 받아 부모가 파룬궁이란 세 글자를 제기할까봐 두려워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부모수련생은 아이가 이미 성인으로 성장해 분별 능력이 있고, 게다가 법이 곧 눈앞에 있으니 들어 올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본인과 관계 된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어떤 부모수련생은 자식들이 다시 걸어 들어오도록 고무격려하지 않고, 그들과 교류할 필요성조차 못 느껴 교류하지 않는다.

이상은 일부 상황을 예로 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전의 어린이 동수들이 새롭게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부모동수들은 반드시 이런 자식을 잘 도왔는지, 일찍이 대법과 인연이 있고, 대법제자와 인연을 맺은 이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잘 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이들 역시 냉정하게, 이미 현실 세계의 공허함을 체험 할대로 다 체험하지 않았는가? 심령의 공허함에서 걸어 나와야 하지 않는가? 영혼을 철저하게 씻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등등을 냉정하게 잘 고려 해 보아야 한다. 나는 부모, 자식 동수 모두에게 이런 생각이 있다고 본다. 아이들이 다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3퇴했으면 된다, 수련하는가 하지 않는 가는 강요할 수 없다. 비록 다른 사람을 강요해서 수련하게 할 수는 없지만, 부모동수들은 반드시 자녀에게 진상을 완전히 알게 한 후 선택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애들은 필경 대법제자로 수련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이들은 대법에 대한 인식이 99년 이전의 기억에 머물러 있고, 게다가 구세력의 저애 작용 하에 현재 상태에서 내린 선택은 필경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정법시기의 고귀함과, 생생세세 법을 위해 오는 게 쉽지 않았다는 것,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똑똑히 알게 한 후, 어떻게 선택하는가는 곧 아이들 자신의 일이다. 그러나 아주 많은 부모동수들은 자녀들이 대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수련을 선택하게 하는데,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은 조금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대법의 진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란 아주 어렵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동수들은 자신이 수련해 얻은 이익을 아이들은 볼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곧 구세력이 아이들을 박해하는 일면이다. 예전에 나는 대법이 박해받기 시작한 뒤 줄곧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진정으로 대법으로 돌아오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늘 일종 무형의 그 무엇이 제약하고, 저애 해, 대법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한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구세력이 제약하고 저애함을 의식했지만, 당시 정념이 썩 강하지 못하고, 집착심이 중해, 아주 오래도록 시간을 지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날 어린 동수들에게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 존재한다고 생각 한다.

나는 또 부모동수와 지난 날 어린 동수였던 그들의 자녀들이 수련하지 않는 상황을 연상하면서, 그들이 정법시기에 대법제자와 인연을 맺고, 대법제자의 아이가 되었는데 이 연분은 상당히 심후하다고 본다! 대법제자라면 그들에게도 당연히 홍법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능히 수련으로 걸어 들어오게 된다면, 그것 역시 대법제자가 건립한 위덕이다! 생각해 보라, 만약 박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당신의 자녀들이 수련하지 않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 같은가?

층차의 제한도 있고, 글을 쓰는 능력도 차하므로 부당한 곳이 있을 수 있으니, 동수들의 자비한 시정을 희망한다.

문장 완성: 2010년 7월 1일

문장 분류: 수련 마당문장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7/1/2262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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