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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6월 4일] 법학습을 해도 졸리고, 연공을 해도 졸리고, 발정념을 해도 졸리는 등 한동안 ‘졸음(困)’이 늘 나를 교란했다. 나는 또 이런 현상이 일부 동수들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때문에 나는 오늘 내가 겪은 약간의 경험을 적어 동수들과 공동으로 교류하고자 하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바로 잡아주기 바란다.
오늘 책을 들고 법학습을 하는데 3페이지도 못 읽었는데 졸리기 시작했다. 눈이 자꾸만 감겼고 정신도 흐릿해졌다. 억지로 정신을 차려 몇 글자만 읽어도 다시 졸려왔다. 생각해보니 이는 사악이 나의 법학습을 교란하는 것이니 반드시 그것을 타파하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나는 계속 법학습을 했다. 그러나 몇 단락 읽지 않아 또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또 내가 앉은 자세가 단정하지 못하고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지 않아 법학습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사악이 틈을 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빨리 자세를 바로 잡고 다시 법을 학습했다. 하지만 무릎을 꿇기도 하고 바르게 앉아도 보고 결가부좌도 해보고 여러 차례 자세를 바꿨지만, 그래도 몇 초만 지나면 또 졸음이 쏟아졌다.
그렇게 반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겨우 몇 페이지 밖에 보지 못했다. 이에 나는 책을 내려놓고 발정념을 했고 청리한 후 다시 학습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발정념을 할 때도 흐리멍덩해졌고 정념이 제대로 작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자 나는 마음이 또 조급해졌고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일분일초 흘러갔지만 도무지 법공부가 진전되지 않아 나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니 내가 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억지로 참는 수밖엔 없었다. 배우고 또 배워도 머릿속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법학습을 포기하고 사악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진 않았다.
바로 이때 갑자기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수련인이 문제에 부딪쳤을 때 관념을 바꿔야 하며 문제에 부딪히기만 하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수련 중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든 그것을 모두 좋은 일로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대법을 배우기에 이런 일에 부딪친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수련 과정 중의 것으로 교란이라도 좋고 곤란이라도 좋은데 모두 넘길 수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마음이 좀 편해졌다. ‘아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관념을 바꾸자.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고 정신도 더 맑아졌다. 이어 계속 법을 학습했는데 몇 페이지도 못 가서 또 졸리기 시작했다. 막 잠이 들려는 상태로 한 시간을 버텼다. 도대체 무슨 문제를 찾아내지 못했을까? 사악이 아직 틈을 타고 있을까? 자세히 생각해보니 ‘아, 그래. 어제 나는 분명 피곤하지도 않았고 법공부할 시간이 있었지만 안일을 구하는 마음에 잠에 빠져 법학습을 하지 않았구나.’ 그러니 사악이 “당신이 자고 싶으면 잠을 자게 하면 그만이다.”라고 틈을 탄 것이다. 마치 원인을 찾은 것 같았는데 마음속으로 반드시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하며 사악이 계속 교란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정신이 좀 들었다.
이어서 계속 법학습을 했지만 몇 페이지 못 가서 또 졸렸다. 주의식이 약간의 정념을 가지고 있는 외에 나는 거의 잠에 빠질 뻔 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머리를 흔들며 생각했다. ‘내가 인간 세상에 온 것은 대법에 동화하여 대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지 이곳에 와서 교란 받고 박해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이런 사악한 요소들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좀 청성해지면서 졸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계속 법공부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졸렸다. 나는 이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 돌파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마땅히 사부님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맞아,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자.’ 잠시 후 머리는 과연 아주 청성해졌다. 나는 비할 바 없이 격동되었다. 시간이 이미 많이 지나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다그쳐 법공부를 했다.
얼마 정도 지나자 또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정말로 졸려 죽을 지경이었는데 어찌 된 일일까? 나는 정말 흐릿해졌다. 사실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찾아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과거의 나였다면 진작에 어쩔 수 없으니 좀 자고 나서 다시 법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때 이미 1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고달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허비할 수는 없다. 나는 대법제자이다. 이렇게 피동적일 수는 없고 무언가 해야 한다.’
이때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때 냉(冷)에 대해 나는 별도의 방법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당신이 춥게 하려는가, 당신이 나를 춥게 하려고 하고 당신이 나를 얼게 하려고 하잖은가? 나는 당신보다 더 추우며, 내가 당신을 얼려 버리겠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나는 사부님을 따라 사악에게 다음과 같은 일념을 내보냈다. ‘당신이 나를 졸리게 하는가. 내가 반대로 당신을 졸리게 하겠다. 나는 당신을 졸려서 어쩔 수 없게 하는데 내가 당신을 나보다 더 졸리게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자 정신이 좀 들었다. 이에 이 일념을 더 강화하자 많이 좋아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그쳐 법공부를 했지만 얼마 후 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려왔다. 나는 한 손으로 책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다리를 꼬집으며 생각했다. ‘아프게 하면 그래도 졸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억지로 2페이지를 보았다. 그런데 좀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대법제자로서 어찌 교란과 박해 때문에 자신을 상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대법제자의 일체는 대법이 부여한 것이고 사부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에는 사람의 육신도 포함한다. 내가 어찌 내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고통’으로 ‘피곤’을 감당하게 할 수 있는가? 이는 악으로 악을 다스리는 것이 아닌가? 이는 이지적이지 못한 표현이 아닌가?‘ 나는 당장 중단했다. 고개를 들고 등을 기댔지만 졸음에 두 눈이 감겨왔다. 마치 ‘법공부를 해야 해, 법공부를 해야 해….’하는 한 가닥의 염두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손에 들린 대법서적을 보았다. 갑자기 책 속의 ‘강대(强大)’라는 두 글자가 내 온몸을 진동시켰는데 마치 단번에 무언가 명백해진 것 같았다. 나는 즉각 생각해보았다. ‘나는 신우주의 대법표준에 따라 수련하는 대법제자이다. 비록 내가 아직 수련에 부족한 곳이 있긴 하지만 신우주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기에 미래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아무런 희망도 없는 구우주의 과거에 따라 사라질 뿐 미래가 없다. 그럼 곧 도태된 구우주 속의 생명이 신우주의 일체를 가로막을 수 있단 말인가? 신우주의 대법은 강대한 것이 아닌가?’
나는 이때 온몸이 순간적으로 편안해짐을 느꼈고 자신이 비할 바 없이 강대하게 여겨졌다. 무수한 음성(陰性)물질이 밖으로 달아났는데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몸을 청리해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완전히 청성해졌고 뒤이어 책을 한 강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 ‘졸음’을 돌파한 과정을 돌이켜보니 2시간 넘는 시간이 들었다. 그러나 내 느낌에 아주 오랜 동안의 시달림 끝에 사부님의 점화로 넘어갈 수 있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일체를 해주시만 우리가 표준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보시며 또 이를 통해 우리에게 자신의 수련 중에서 깨달은 후 제고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둘째 사부님께서는 또 제자에게 일체 능력을 구비해 주셨지만 단지 많은 경우 우리의 씬씽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해 대법의 강대한 위력을 완전히 펼쳐낼 수 없을 뿐이다.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법학습을 잘해야 하며 계속 제고해야 하고 수련 제고할 기회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 중에서 얼마나 괴롭든지 막론하고 지나간 후에 돌이켜보면 정말로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17. 관념을 바꾸고 잠자는 시간을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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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0월 1일】 나는 예전에 늘 매일 8시간은 잠을 자야한다는 오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사이트에 접속해 매일 명혜망에 올라오는 많은 문장들도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늘 부족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매일 8시간은 반드시 자야만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정진에 영향을 주는 사람마음이 아닌가? 그날 이후 나는 매일 12시에 발정념을 끝내고 잠에 들어 새벽 5시쯤 일어났다. 낮에 도저히 참기 힘들면 낮잠을 조금 자는데 그렇게 한 달을 지내니 아주 좋아져 법학습과 연공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18. 삼언양어: 곤마(困魔)를 돌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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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대륙대법제자 정심(净心)
[명혜망 2003년 10월 21일] 최근 몇 명의 수련생을 만나 보았는데, 모두 부동한 정도로 곤마의 교란을 받고 있었다. 매번 이런 상황을 직면할 때 발정념으로만 청리했을 뿐, 스스로 안으로 찾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본인의 어떤 마음들로 인해 그것이 존재하지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왜 줄곧 발정념을 해도 그것들을 제거하지 못했는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P 251페이지(역주 : 중국어 간체 페이지)에서 말씀하셨다.
“왜 사람은 병이 있는가? 그에게 병이 있음과 모든 불행을 조성하는 근본원인은 업력으로서, 그 흑색물질의 업력장(業力場)이다. 그것은 음성(陰性)인 것에 속하고, 좋지 않은 것에 속한다. 그런 좋지 않은 영체 역시 음성인 것으로서, 모두 검은 것에 속하므로 그것은 올라올 수 있는데, 이 환경이 그것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 2003년 미국 중부 법회에서의 설법 』 중에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우리 이곳에 뚫고 들어올 수 있는가? 물론 상당히 개별적이다. 무엇 때문에 그 한 단락 시간에 또한 사악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있었는가? 우리의 마당이 불순하고 바르지 못하여 중생을 구도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악을 질겁시킬 수 없었는바 그것이 우리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 게다가 말하고 말하면서, 또 무슨 누가 스파이라고 말하며, 이것저것을 말하는데 우리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
만약 곤마의 교란을 철저히 없애버리려면, 반드시 자신에게 어떤 마음이 있어서 그것으로 하여금 틈을 타게 했으며 그것이 존재하는데 적합했는가를 찾아야 한다. 교류를 통해, 일반적으로 인식하기를, 하나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마음이며(求安逸之心) 또 하나는 정(情)인데, 이 두 가지가 곤마가 자라는 비옥한 땅을 자양하는 것이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마음의 표현은, 속인 중에서 양성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기, 비가 오는 칙칙한 날에는 잠깐 잠자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무슨 8시간을 못 자면 잠이 모자란다는 등이다.
그리고 정의 방면에서는 순조롭지 못하거나, 기쁘지 않은 일이 있을 때 한 잠 자고, 친구가 그리울 때 꿈속에서 만나겠다는 등이다.
이렇게 되면 잠을 자면 잘수록 더욱 자고 싶고, 자면 잘수록 더욱 흐리멍덩해지며, 자면 잘수록 법공부, 연공, 발정념, 진상을 알리는 효과에 영향을 준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사악을 자양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우리가 방임한 틈을 타게 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근본적으로 부터 심성을 제고하지 않고, 주의식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마로 인한 교란에서 헤어 나오는 것은 탁상공론(纸上谈兵)일 뿐이다. 우리 모두 다 같이 피곤하게 하는 곤마의 교란을 돌파하여,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3가지 일의 효과를 제고하여, 법정인간의 날이 하루빨리 오게 하자.
부당한 곳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19. 법리상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곤마(困魔)의 교란을 제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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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망 2002년 8월 5일】 노교소에서 돌아온 후 나는 다그쳐 법공부를 하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노교소 안에서는 법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법을 볼 수 없는 고통이 지극히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들기만 하면 얼마되지 않아 곧 졸음이 쏟아졌고 어떤 때는 그대로 잠이 들기도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근 2달 동안 이렇게 지냈다. 이 어찌해야 되겠는가? 앉아서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왜 그럴까?’
99년 법을 얻었을 때를 회상해보면, 나는 마음으로 이것은 내 생명을 찾아오는 것으로 여기고 단번에 파고 들어갔다. 그때 단체 법학습을 할 때 누가 조는 것을 보면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음으로 ‘이 우주 대법은 이렇게 얻기가 쉽지 않고, 다른 공간의 신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법을 듣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여기에 앉아 법을 들으면서 잠을 잔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법을 얻은 지 2년 동안 나는 법공부에 매우 정진했고 밤늦게까지 법을 학습했다. 한밤중에 일어나서도 책을 읽었고 식사시간이나 출근하는 길 등 모든 시간을 짜내 법공부를 하고 법을 암송했다. 그렇게 하여 나는 15일 만에 모든 대법서적을 한번 다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법리는 당신의 일체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스위스법회 설법』) 졸리면 졸릴수록 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관련된 법을 찾아 베끼고 한편씩 외우기 시작했다.
“졸린다고 하지 않는가? 당신이 책을 보면 당신은 자고 싶고 법공부하면 당신은 흐리멍덩해지지 않는가? 나는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는 바로 이 인류공간의 한 층의 신이다. 당신이 그것을 돌파하지 못하면 당신은 바로 사람이다. 그도 의도적으로 당신에게 어떻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이렇게 하므로 사람은 피로할 것이고 졸릴 것이다. 당신이 인간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돌파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된다. 당신이 그에 부합되면 그렇다면 그는 당신을 바로 사람이라고 여긴다.”(『장춘보도원법회 설법』)
“여러분들은 고생해야 함을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혼침(昏寢) 그것은 역시 당신을 괴롭히고, 당신더러 수련하지 못하게 함을 생각하지 못했는가! 이것 역시 당신의 의지가 마땅히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당신이 눈을 뜨고서도 자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안되면 눈을 뜨고 연공하라. 이 관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장춘보도원법회 설법』)
“법을 배울 때 자고, 책을 읽을 때 자고, 연공할 때에도 당신은 자는데 어쨌든 이런 가장 초기의 것조차도 모두 돌파하지 못했다. 그것은 의지에 달렸다! 여러분 알다시피 당신이 수련 중에서 인간으로 구성된 어떠한 요소도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구성된 어떠한 환경의 것도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떠나지 못하게 하지만, 당신은 무엇이든지 모두 돌파해야 하고 어떠한 마난도 모두 넘겨야 한다. 가장 크게 표현되는 것은 그들이 당신에게 고통을 조성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통은 부동한 형식이 있는바 잠자는 것도 그 일종이다. 수련할 수 없고 정진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이것이 고생이라는 것을 모른다. 당신이 법을 얻지 못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는데 당신은 아직도 그것이 마난이라고 느끼지 못하는가? 당신의 마음이 법에 있지 않고 수련하고 싶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지 않는가? 당신의 의지를 강화시켜라. 사람이 만약 자신의 잠을 억제해서 성불할 수 있다면 나는 너무나 쉽다고 말한다. 이 작은 하나의 관도 당신은 넘어가지 못하는데 그럼 어떻게 수련하겠는가?”(『장춘보도원법회 설법』)
법학습을 통해 한동안 좋아졌는데 공우(功友)들과 교류할 때 이 부분에 대해 써내고 싶었다. 그러나 쓰지 못했다. 이후에도 법공부만 하면 또 졸렸는데 아주 심각했다. 하루 종일 한권의 책도 다 보지 못한 적도 있다. 어떤 때는 법을 외울 때 곧 정념(正念) 정각(正覺)을 잃고 책을 손에서 떨어뜨린 적도 있다. 책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아주 괴로웠고 사부님을 뵐 면목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 마침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을 보게 되었다. 그중에 다음과 같은 한 단락이 있었다.
“수련생: 제가 『전법륜』을 통독할 때 몇 번이나 한 가지 똑같은 상태가 나타났는데, 바로 통독하고 있을 때 갑자기 머리가 무겁고 아주 졸리는 감을 받았지만 자지는 않았으며 눈은 늘 책 속의 모 한 단락에서 맴도는 듯한 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책 속에서 다른 한 단락의 말이 나타났지만 『전법륜』중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부: 이것이 바로 당신 자신의 사상업력(思想業力)이 당신을 엄중하게 저해한 것으로서 당신으로 하여금 책을 보지 못하게 하고 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졸리게 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잠을 자게하며 당신으로 하여금 정념(正念) 정각(正覺)을 잃어버리게 하고 심지어 그것이 급하면 당신에게 나타내어 교란하며 또 사상 중에서 글자를 현시해 낸다. 대법을 파괴하는 마도 이렇게 하며 심지어 급하면 또 사상 중에서 당신에게 떠들어대고 당신과 말을 하며 당신으로 하여금 배우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런 사상업력 혹은 외래의 교란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으며 그것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승화되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승화는 바야흐로 그것을 제거하게 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에게 소업해 준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이 정말로 제거되면 또한 정말로 해체되는데 그것이 가만있겠는가? 그러므로 그것은 목숨을 걸고 저항을 한다. 당신이 만약 이런 것들을 자신으로 여긴다면 당신은 곧 법을 얻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법은 당신에게 주는 것이지 절대로 그런 업력에게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극복해야 하고 더없이 졸려도 그것을 극복하고 억제하며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당신이 이 한 고비를 돌파하여 지나갈 때면 바로 그것을 소거해 버릴 때이다.”
아, 나는 왜 교란이 이렇게 심한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원인은 바로 피곤(困)의 요소였는데, 나는 그것을 자신으로 여겼고 그것이 내가 아니며 그것은 사상업력 혹은 외래교란임을 청성하게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내가 글을 써내려고 했을 때 그것이 왜 나를 더욱 교란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로 하여금 신심을 잃게 하여 돌파하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법리가 명백해졌으니 견정하게 법리에 따라 하고 끊임없이 법에 동화하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게 되었다.
동수들에게 참고로 제공하고자 한다. 옳지 않은 곳이 있다면 삼가 지적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