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나는 1998년 봄에 법을 얻었다. 그 당시 장기간의 미열과 흉부 통증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는데 말할 힘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러 차례 병원에 가서 검진해도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었다. 여동생이 이 소식을 듣고 광둥(廣東)에서 편지를 보냈는데 나에게 파룬궁 수련을 하라고 했다. 나는 한번 시험이나 해보려는 마음을 품고 수련을 시작했다. 이처럼 불순한 마음이었지만 사부님께서 내게 선념이 있는 것을 보시고 신체와 마음을 정화시켜 주셨다. 나는 그 때로부터 몸에는 병이 없어졌고 원래 모든 것을 자신만 고려했었는데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됐다. 원래 시어머니와 대립밖에 하지 않았던 내가 효도하는 며느리로 됐다. 내 개변으로 주변 사람들이 모두 파룬궁을 인정했고 모두 파룬궁이 좋다고 말했다. 내 남편은 더욱 나를 지지했는데 매일 자전거로 법공부 장소까지 나를 데려다 줬다.
내가 법을 얻은 지 1년도 되지 않아 악당이 갑자기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베이징에 가서 불법 구류당했다. 남편은 공안 계통에서 일했는데 내가 보증서를 쓰지 않았다고 벨트로 나를 때렸고 내 모든 대법서적을 불태웠다. 남편의 압력 하에 나도 안일을 구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마음속으로 남편이 나를 수련하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생각했다. 이 바르지 않은 일념으로 하여 나는 8년 간 법공부를 하지 않았고, 연공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남몰래 ‘논어’, ‘홍음’ 및 일부 경문을 암송했고 연공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心性을 지켰다.
2008년, 나는 생각했다. ‘언제까지 늘 이렇게 살그머니 마음속으로 경문을 암송할 것인가? 안 된다. 나는 사부님과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일념으로 사부님께선 나를 광둥성에 있는 여동생(동수) 집으로 가도록 배치하셨다. 여동생이 결혼한 지 10년이 돼도 나는 가보지 못했다. 내가 여동생 집에 가보니 그들의 법공부와 연공 환경은 이러했다. 사부님의 큰 법 상을 걸어놓았고 모든 대법책, 신경문, 각지 설법과 각종 CD가 모두 있었으며, 밍후이왕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여동생 집에서 밍후이왕에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동생의 회사에 가보니 여동생의 컴퓨터나 동료 컴퓨터에서 역시 수시로 밍후이왕을 볼 수 있었으며, 여러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파룬궁의 眞ㆍ善ㆍ忍을 담론했다.
이것은 나에 대한 촉동이 매우 컷다. 나는 자신이 대오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이 모든 대법 책을 읽었다. 때로는 여동생을 도와 가사 일을 했다다. 여동생은 말했다. “언니가 여기에온 것이 내 일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니 시간을 아껴 법공부를 많이 하고 정법 노정을 따라가야 해요.” 여동생 집에서 한 달 있었는데 나는 매일 공부하면서 사존께서 우리들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라는 것을 알았고, 또 진상 지폐를 이용해 진상하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집에 돌아간 후 꼭 환경을 바로 잡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집에 돌아와 새롭게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을 때 가정의 마난은 또 시작됐다. 내가 ‘ 전법륜’을 읽으면 남편은 책을 빼앗아 찢었다. 나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붙여서 계속 보았다. 때로는 ‘전법륜’에 있는 사부님 사진에 붙인 흔적을 볼 때면 자신이 책을 잘 보호하지 못해 너무 괴로워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내가 연공할 때면 남편은 방석으로 나를 내리쳤다. 때로는 밤에 자고 있는 나를 발로 냅다 걷어차서 깨웠고 때로는 자면서 몸을 뒤치락거려도 나를 욕하곤 했다. 낮이건 밤이 막론하고 나를 보기만 하면 늘 욕을 했고 때로는 나를 때리기까지 했다.
한 번은 그가 내 머리를 때리면서 펜치를 갖고 내 배를 내리치려 했다. 나는 자신이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도달했다고 생각돼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는 몰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나는 당해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여동생의 반응은 나로 하여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생은 전화에서 하하 웃는 것이엇다. 그리고는 매우 엄숙하게 말했다. “언니는 요만한 고통도 참지 못한단 말인가요. 그렇다면 언니는 우리 사부님을 생각해봐요, 사부님께선 중생을 위해 감당한 고통은 우리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지요. 그리고 우리 동수들은 우리처럼 정진하지 않는 동수들 때문에 매우 많은 것을 감당하고 있어요!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일이 발생하든지 모두 우연한 것이 없고 오직 우리들 수련 때문에 나타난다고 말씀하셨지요. 형부가 무엇 때문에 언니를 때리는지 생각해 보았어요?“ 나는 ”내가 잘 못한 것이 없는데, 다만 그와 몇 마디 쟁론했을 뿐이야“라고 말했다. 여동생은 말했다. ”이것만이 아니지요, 언니가 그에게 의지하면서 형부에 대한 정이 너무나 중한 것이지요.“ 여 동생의 몇 마디 말이 나를 깨어나게 했다. 남편이 그렇게 나의 머리를 때렸는데도 나는 깨우치지 못했다.
나는 어떠했던 지간에 이전처럼 남몰래 하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나는 반드시 법공부 하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내가 바로 ‘전법륜’을 보고 있는데 남편이 보고 책을 찢어서 이층 창문에서 아래층으로 던져 버렸다. 나는 내리는 눈 속에서 종이 조각을 하나하나 주었다. 조용히 내리는 눈은 나를 동반해 훼손된 대법 페이지를 찾았다. 여동생이 이 일을 알고 나에게 모든 대법 서적이 모두 담겨진 전자책을 보냈다. 택배 아저씨에게 전자책을 우리집에 가져 왔을 때 남편은 파룬궁에 관한 것임을 보고 즉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마구 욕을 퍼부었다. 여동생의 동료가 전화를 받았는데 남편에게 한 바탕 욕을 먹었다. 남편은 여동생을 찾지 못하자 전자책을 보았다. 보고 나서 “네 동생이 정말 너에게 좋은 것을 보내 왔구나. 인제는 잘 됐구나. 이 안에 무엇이나 다 있으니”라고 말했다. 여 동생의 전화가 오자 남편은 지금은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의 정념이 작용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후로부터 남편은 다시는 책을 찢지 않았다.
남편은 내 수련이 자기의 사업에 연루될까봐 두려워 나와 이혼하자고 했다. 나는 동의 하지 않았다. 그는 법원에 나를 기소했는데 나는 가지 않았다. 나는 결과가 어떠하든지 관계하지 않고 다만 사부님이 배치한 길만 걸으면서 사악이 억지로 가한 박해를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나도 정말 그와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이후에 우리들이 한 사람을 잘 못 되게 하기는 쉬우나 한 사람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고하신 사부님의 법리를 깨닫게 됐다. 나는 그를 포기할 수 없으며 만약 포기한다면 너무나 이기적이다. 어떻든지 간에 그와 내가 부부가 된 것은 역시 큰 연분이고, 그가 나를 매우 많은 고비를 넘게 했고, 좋지 않은 사람 마음을 많이 찾고 폭로하게 했다.
여동생(동수)의 도움 하에 나는 마침내 걸어 나왔다. 나는 지금 온정하게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이런 것을 써 내는 것은 다만 나처럼 이렇게 정진하지 않고 있는 동수들이 빨리 걸어나와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따르며, 합격된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됐으면 하는 생각이어서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동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허스
문장 완성: 2010년 6월 6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문장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6/6/2249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