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遼寧)대법제자, 위셴(宇賢) 정리
[밍후이왕] 나는 1993년에 법을 얻은 노수련생이다. 글 쓰는 능력이 없어 개인의 수련체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겠지만,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동수들과도 교류하고 싶다.
사부님과 인연으로 법을 얻다
어린 시절, 나는 늘 노인들로부터 신불(神佛)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인들은 고행하는 승려들은 인간의 음식을 먹지 않고 수련한다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
나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석탄과 땔나무를 주우면서 늘 말다툼과 몸싸움을 벌였다. 그 때마다 나는 분하고 억울했고, 몸이 허약한데다 아버지까지 폭력적이어서 항상 고생스럽고 힘들었다. 때문에 늘 출가해 승려가 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저녁 꿈속에서 나의 심장이 하늘에 걸린 채 뛰고 있었으며 반짝반짝 빛났다. 그 때부터 나는 꿈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한 사람을 따라 반공중에서 큰 길을 따라 달렸다. 나는 도인이나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많은 명산(名山)과 사찰, 도관(道觀)을 지났으며 수많은 수련인들을 봤다.
매 한 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대문 앞에 꿇어앉아 절을 하며 이 불쌍한 사람을 받아주라며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대문 밖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나를 구해줄 사람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대법을 얻은 후에야 나는 사찰 문들이 모두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60년대, 나는 병 때문에 모 도시에 있는, 나이든 비구니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녀는 백탑사 인근에 살고 있었다. 나는 비구니에게 “사찰이 정말 아름다운데 왜 사는 사람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웃더니 무겁고 강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당신이 바로 저기 살 사람이에요”라고 대답했다.
1992년, 큰 매부가 장간막 유착증에 걸려 1주일 넘게 음식을 먹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치료하지 못한다고 했다. 둘째 누나는 또 선천성 심근막 탈락증에 걸려 생명이 위급했는데 병원에서는 이미 사형선고를 내렸다. 나는 조급해 그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수소문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알려주기를, 어떤 신선이 있는데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 병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큰 누나는 알아온 주소에 따라 그 사람을 찾아가 상황을 말했다. 그 사람은 알겠다고 하면서 돌아가라고 했다. 누나는 환자의 얼굴도 보지도 않고 병을 치료했다는 말에 조금은 황당했지만 집으로 돌아가 보니 남편은 신기하게도 정말 병상에서 일어났다.
하루는 큰 누나네 집에 갔는데 그날 저녁 마침 그 ‘살아 있는 신선’이 찾아왔다. 그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와 그의 눈빛이 마주쳤는데 나는 온몸이 진동함을 느꼈다. 그 사람은 너무나 친숙하고 따뜻하게 느껴졌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오래전에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난 듯 했는데, 그는 또 그렇게 높고 크고 빛날 수 없었다. 나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텅 비었고 주변의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 했다.
그가 바로 우리들의 사부님이었고 내가 생생세세 찾던 분이었다. 우리는 사부님의 소개를 듣고 연속 두 차례나 학습반에 참가했다. 나중에 ‘전법륜’이 출간됐지만 수량이 매우 적었다. 그런데 사부님께서는 직접 나에게 책을 갖다 주셨다. 나는 문화수준이 낮았지만 책을 보배처럼 여기며 밤낮 없이 읽고 또 읽었다. 은사(恩師)와의 그때의 연분은 나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으며 수련의 길에서 용맹정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신체 정화, 대법의 신기함
수련하기 전, 나의 신체는 극도로 허약해 위장병, 신장병, 기관지염, 두통 등 온갖 질병에 시달렸고 몸은 말랐지만 배는 매우 컸다. 하루는 큰 형이 나에게 회충약을 사다 줬는데 회충이 한 무더기 한 무더기씩 나왔다. 배 안에 회충이 가득 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병이 깨끗이 낫기를 바랐지만 또 다른 병 때문에 큰 고통에 시달렸다. 당시 나는 27살 청년이었지만 길을 걷는 것조차 힘들어 일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여러가지 치료를 해봤고 비방약도 먹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수련의 길에 들어서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 준 후부터는 모든 고질병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사부님과 대법은 허약한 환자를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때부터 나는 집안의 힘든 일을 도맡아 했는데 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느 하루는 밤 진상을 하고 아침에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가 밭에 있는 감자를 거둬들이라고 시켰다. 당시 나는 3,4일 잠을 자지 않은 상태여서 좀 휴식하려 하던 참이었지만 밥을 조금 먹고는 밭에 나가 일했다. 그런데 오전 10시쯤에 석탄 10톤이 집으로 배달됐다. 그리하여 또 저녁 10시까지 석탄을 창고로 날랐다. 일을 끝내고 의자에 앉아 휴식하면서 절대 잠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에 또 대법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대충 샤워한 후 나는 눈을 잠깐 붙였다가 12시가 되기 전에 또 출발했다. 그날 새벽까지 대법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는데 자전거가 화살처럼 빨리 달리고 가벼웠으며 내 몸도 매우 편안했다.
과거와 비교하면 나는 마치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주변 사람들도 나의 놀라운 변화를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내들고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인과윤보’를 점화해 주시다
나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을 상대할 때면 성격이 온화하고 성심껏 도와줘 사교성이 좋기로 소문났다. 그러나 가족들을 대할 때면 전혀 달랐다. 자녀들에게는 때리거나 욕하는 것이 전부였고 고집불통이었다. 우리들이 아무리 효도하고 용돈을 드리고 선물을 사드려도 만족할 때가 없었으며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힘들게 했다. 설이나 명절 때 온 가족 2,30명이 모이면 더 크게 말썽을 부리면서 늘 식탁을 뒤집어엎어 모두들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가족들은 모두 그런 아버지를 두려워했는데 특히 나에게 가장 심하게 대했다. 내가 대신 일을 해드리고 음식을 갖다 드려도 돌아서면 또 때리거나 욕이었다. 50대가 된 아들도 그는 어린애들처럼 막 대했다. 나는 이 때문에 늘 하늘을 원망하면서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수련한 후 업력윤보, 전생과 금생의 인연관계를 알게 되었지만 그러한 상태는 개변되지 않았다. 내가 억울해 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사부님께서는 꿈속에서 점화를 주셨다. 꿈속에서 나는 황금색의 용포(龍袍)를 입고 그 위에 갑옷을 걸쳤으며 발에는 무릎까지 오는 신발을 신고 머리에는 홍영(紅纓)모를 쓰고 있었다. 손에 홍영 채찍을 든 나는 등나무 의자에 앉아 바로 앞에 서 있는 말에 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 옆에는 6,70세의 하인이 바닥에 꿇어 앉아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등을 내민 채 내가 말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거만하게 걸어가 하인의 등을 밟고 말에 오르자 하인은 몸을 휘청거리며 일어서서 말고삐를 공손하게 건네 줬다. 나는 채찍을 휘둘러 앞으로 내달리다가 무의식간에 뒤돌아 봤는데 그 늙은 하인은 찬바람 속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향해 손을 젓고 있었다. 다시 유심히 봤더니 놀랍게도 그 하인은 바로 현재 내 부친이었다. 나는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놀라서 잠에서 깬 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전생에 진 빚을 갚고 있었던 것이다. ‘전생을 알려면 금생에 당하고 있는 고통을 보면 되고, 내세를 알려면 금생에 한 일을 보면 된다’는 말이 있는데 매우 이치가 있다. 나는 전생에 그 노인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줬을까, 그는 아마 평생 나의 밑에서 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이번 생에 자녀들을 잘 대해주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것이 바로 업력윤보였다.
그 후부터 나는 아버지가 아무리 때리고 욕해도 어떠한 원망도 없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이치를 철저히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수련인의 심태로 그를 대했고 부처의 은혜가 가없는 가운데 우리 사이의 악연이 선해 되기를 바랐다.
안으로 찾아 가정문제 해결
수련자들은 가정의 관을 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수련 전, 나와 아내는 늘 다툼을 벌였고 나는 멋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수련한 후에는 오히려 반대로 됐다. 아내는 늘 내가 수련하지 못하게 교란하고 장애물을 만들어 놓았다. 법공부를 하려면 책을 빼앗거나 숨겨놨고 자질구레한 일들에 나를 얽매어 놓는가 하면 자전거를 잠가 놓고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또 홍법 자료를 숨겨놓거나 버렸으며 늘 욕설을 퍼부으며 내 앞을 가로 막았다.
나는 내가 어느 한 생에 아내에게 빚을 갚거나 心性을 제고하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매우 분했고 대책이 없어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지났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나중에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 아내가 구세력에게 통제돼 교란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 없다,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아내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청리하기로 했다.
나는 이러한 상태를 개변시켜 아내가 더 이상 대법에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강대한 발정념으로 다른 공간에서 아내를 통제하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해체했다. 동시에 나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안으로 찾아보니, 나는 자신이 가장 중요한 일을 하므로 모든 것은 길을 비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내를 배려한 적이 없었다. 나는 아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고 태도도 매우 냉담했으며, 수련을 제외하고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때문에 아내는 외롭고 내가 정이 없다고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자비(慈悲)이다.”(전법륜)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아내에 대한 태도를 바꿨고 이기심과 화를 내는 속인의 마음을 점차 닦아 없앴다. 그렇게 한동안 지나자 아내는 정말 개변됐다.
내가 발정념 하면 아내는 시간을 봐줬고 내가 가끔씩 잊으면 일깨워줬으며, 감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방법을 찾아 그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했다. 또 내가 외출할 때면 늘 안전에 조심하고 일찍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가정의 분위기가 개선됐다. 나는 정념이 있어야만 정행이 있고, 안으로 찾는 것이 법보(法寶)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됐다.
서약을 지켜 세인 구도
매 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는 조사정법, 구도중생과 진상이 우리들의 사전 대서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것인가?
처음에는 아무런 자료도 없었다. 하루는 담벼락에 씌어 있는 대법 표어를 보고 계발을 받아 큰 고무도장을 새기기로 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나는 즉시 침대에서 내려와 행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 하오(眞善忍好-쩐싼런은 좋습니다)’라는 문구를 고무나 스티로폼에 새겨 넣은 다음 건물에 찍어봤는데 효과가 매우 좋았다.
나중에 소책자, 전단지와 ‘9평’ 등이 생기자 배포에 나섰다. 나의 두려워하는 마음은 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 닦아 없어졌다. 맨 처음 자료를 배포하러 나갔을 때, 자료를 어느 한 주택에 넣자마자 경찰을 만났다. 그들은 앞에 2명, 뒤에 2명 있었는데 나와 매우 가깝게 서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속으로 사악을 해체하는 발정념을 하면서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살펴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나를 교란하는 것이었는데 그러한 상태는 4일간 지속된 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의 두려움은 그렇게 없어졌다.
나는 주로 벽지 농촌을 찾아갔는데 처음엔 걸어 다니면서 자료를 배포했다. 하루는 자료를 한 짐 지고 11시간 반 동안 걸었는데 밤을 꼬박 샜다. 그 동안 발꿈치에는 피멍이 들었다. 집까지 5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는 버스를 타려 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버스가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포기하고 끝까지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갑자기 누군가 귓가에서 “고생스럽고 힘든데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고생스럽지도 힘들지도 않습니다, 조사정법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즉시 잠들었다. 잠든 지 5분 정도 지났을 때, 흐리멍덩한 가운데 위대한 사부님께서 가부좌하고 연공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얼굴이 상화하시고 몸에서는 금빛이 났다. 나는 그 즉시 잠에서 깼는데 온 몸이 가뿐하고 온몸의 피로가 사라짐을 느꼈다. 그리하여 연공을 했는데 정말 ‘고생을 낙으로 여긴다’(홍음-苦其心志)는 말에 담긴 뜻이 실감났다.
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 나는 일부 건물 외벽이 매우 매끄러운 것을 보고는 대법 표어를 써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리기로 했다. 그리하여 붓과 염료를 사다가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 등 표어를 썼는데 효과가 매우 좋았다.
나는 글씨를 더 크게 쓰고 싶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루는 미용실에 갔는데 거기서 또 계발을 받고 분무하는 방식으로 표어를 쓰기로 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테스트를 한 후 나는 효과가 가장 좋은 염료 스프레이를 선택했다. 나는 우선 내가 사는 지역의 매 한 건물에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라는 표어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글자를 썼는데 경찰의 시선을 모두 피해갔다. 글자를 다 쓰면 그 때서야 경찰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곳에는 또 감시 카메라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사부님과 호법신에게 가지해줄 것을 요청했고 발정념 해서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지 못하게 했다. 가끔은 경찰차가 바로 옆에서 지나갔지만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정념정행할 때 사부님과 호법신이 시시각각 보호해 주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나는 길가에 차량이 매우 많고 사면팔방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도로변의 담벽, 건물 외벽, 큰 바위 등에 표어를 써서 운전자들이 볼 수 있다면 그러한 생명들에 있어서는 매우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러한 곳에 글자를 높이 1m 정도로 크게 썼고 한 사람 키 높이로 높게 써서 멀리서도 볼 수 있게 했다. 그리하여 반경 100리 범위내의 거의 모든 건물에 표어를 써 놨다. 나는 표어를 본 사람들이 모두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라는 문구를 머릿속에 간직하고 왠선(元神)에 새겨넣기를 바랐다.
나는 자료를 배포하고 표어를 쓰는 외, 친지 모임 등 기회만 되면 1대1로 진상을 알렸다. 친척이 행사를 치를 때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절호의 기회인데 어떻게 입을 열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자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셨다. 한 친척이 문밖에 서있는 나를 보더니 “큰 고모부, 어서 들어오세요,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들었는데 얘기 좀 해주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나는 기회가 온 것을 깨닫고 즉시 진상을 알렸는데 모두들 조용히 경청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면 병을 제거하고 신체가 건강해 진다는 것과 대법이 전 세계에서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렸으며, 파룬궁이 박해를 받고 있고 수련자들의 장기가 적출당하고 있는 사실 및 국제사회가 파룬궁 박해를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마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도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친척이 다가 오더니 “저리로 갑시다, 마당에 있는 정자에서 얘기 좀 나눠요”라며 내 손을 끌었다. 그리하여 거기서도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그 이튿날 한 사람이 나에게 “당신은 담도 크네요, 어제 저녁에 모인 사람들 중에 XX감옥 대대장이 있었어요. 몇 사람이 당신한테 덤비려 했는데 대대장이 말렸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도 구도받아야 할 생명이에요. 사람들은 진상을 알게 된 후에는 악한 일을 하지 않지요”라고 대답했다.
정념정행하여 위험을 넘기다
하루는 어떤 마을에서 자료를 돌리고 있는데 6,7명이 길가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마을 주민은 아닌 것 같았다. 시간이 늦었기에 농민들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무시했지만 경각심을 가지지는 못했다. 돌아올 때 부엉이 한 마리가 내 머리 위를 맴돌았다. 깜짝 놀라 서있는데 누군가 나의 짐 가방을 틀어잡고는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그들은 나를 경찰서에 데려가 몸수색을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 물었다. 나는 친척집에 가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이 마을에 보증을 서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풀어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면서 발정념을 했다. 나는 그들의 박해 방식을 해체하고 그들에게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풀어줄테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도 함정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500미터 쯤 걷다가 그들이 따라 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신속히 옆에 있는 옥수수 밭으로 몸을 숨겼다. 그 때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30여분 동안 꼼짝 않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욕설을 퍼부으며 돌아오고 있었다. “아니, 눈앞에서 놈을 놓치다니!” 그들이 돌아간 후 나는 정정당당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당초 발정념을 하여 사악을 부정하지 않아 빈틈을 준 것을 큰 교훈으로 삼았다.
또 하루는 어떤 마을에서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 미행하고 있었고 몇 사람은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숨을 곳이 신통치 않았지만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낮은 담장 옆에 웅크려 앉았다. 그러나 달이 너무 밝아 주변이 훤히 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사부님과 호법신에게 그들의 눈을 가려달라고 빌었다. 그들은 나의 옆을 지나면서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돌아올 때에도 내 옷깃을 스쳐 지나면서도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도로에 올라섰는데 경찰 두 명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다른 길로 돌아가며 스티커를 붙였고 발정념도 잊지 않았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앞에 또 경찰차가 보였고 경찰 두 명이 경찰차 옆에 몸을 숨기고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틀림없이 우두머리라면서 날이 밝는 한이 있어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또 다른 길로 돌아가면서, “계속 기다려 보라지, 난 집에 가서 잠이나 잘거야”라고 쾌재를 불렀다. 나와 사악은 꼬박 하룻밤을 숨바꼭질 했는데 사부님과 호법신이 보호해준 덕분에 나는 무사했다.
어느 하루, 나는 어떤 마을에 가려고 막 집을 나서는데 귓가에서 “위험합니다”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오성이 낮아 “어떤 일이 있어도 돌파해야지”라고 생각했고, 일하려는 마음과 과시심 때문에 사악에게 틈을 줬다. 그날 내가 자료를 배포하고 있는데 앞에 한 사람이 나무 아래에 누워 있었다. 그에게 가까이 갔을 때 뒤 따라 오던 사람이 함께 나를 제압해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나는 즉시 발정념 해서 그들 배후에 있는 사악한 요소를 해체, 그들이 박해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누락이 있었지만 사부님과 대법이 바로 잡아줬다.
그들은 나를 벽쪽에 몰아세우고 자료의 출처를 물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가죽 벨트로 때렸다. 한 경찰이 ‘9평’을 보고 있자 나는 그가 진상을 알도록 발정념을 했다. 그는 한참을 읽어 보더니 “공산당은 정말 몹쓸 놈들이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 한 여경이 들어오더니,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니 이 사람을 풀어주라고 설득했다. 나는 그 여경이 파룬궁 자료를 보고 대법 진상을 알았기에 개변됐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미래가 얼마나 아름다울까 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정말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며 매우 신성한 일이다. 이번 일을 통해 나의 자신감은 더 충족해 졌고 돌아가면 반드시 조사정법에 박차를 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나는 안으로 찾았는데 일을 하려는 마음, 과시심 외, 매우 강한 쟁투심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과 대화할 때 선하지 못했고 그들을 압도하려 했다. 나는 즉시 나 자신을 바로 잡고 그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려주고 인과응보의 이치를 알려줬다. 그 외 그들의 행동에는 모두 협력하지 않았다.
하루는 경찰 한명이 왔는데 나를 한참 관찰하더니 다른 경찰들에게 알아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 사람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을 것인데 때려 죽여도 말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구류 15일만에 나는 풀려났다.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 수련하는 사람의 그 어떤 마음도 사악에게 틈을 줄 수 있기에 일사일념에서 자신을 바르게 잡아야 하며, 온전히 법에 있어야만 대법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보호로 고생 중에 낙이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 보면, 나는 대부분 낮에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밤에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한 후 날이 밝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가끔은 연속 며칠 잠을 자지 않았다. 처음에는 피곤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구할 것을 생각하고, 자신의 서약을 실천할 것을 생각하면 잠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큰비나 큰눈이 내리는 날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잠을 잔 적이 없었고, 자전거를 타고 100여리 되는 길을 매일 부지런히 오갔다. 엄동설한과 무더운 여름, 배고프고 목마른 상황, 사악의 추적을 피해야 하는 등 복잡한 상황이 한데 겹쳐 확실히 매우 고달팠다. 그러나 고생 중에서도 나는 무한한 기쁨을 체험했다.
하루는 매우 편벽한 농촌에 가서 자료를 배포했는데 너무 어두워서 길을 잃고 말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할까? 사부님께 빌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부님, 길을 잃었습니다,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눈앞에 사부님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급히 사부님을 향해 뛰어갔고, 사부님을 바짝 따라갔다. 그렇게 40여분 지났을 때, 사부님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에 서있었다. 사부님께서 데려다 준 것이었다. 나는 격동되어 합장했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또 어느날 밤, 나는 20여 가구밖에 없는 작은 마을에 갔는데 집집마다 개를 키우고 있었다. 나는 발정념을 해서 이동하는 곳마다 사악을 제거하고 사부님의 가지와 호법신의 도움을 빌었다. “나는 대법제자다,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왔다. 모두들 조용히 잠자고 개들도 물지 말라.”
그렇게 염을 내보낸 후 한 농민의 집 마당에 들어갔는데 큰 개 한 마리가 꼬리를 저으며 다가왔다. 다행히 짖지 않았다. ‘9평’과 소책자를 창가에 놓고 대문을 나설 때 나는 그 개가 자료를 입에 물고 주인이 있는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의 마음은 격동됐고 눈물이 흘렀다. 개들도 우주 중의 중생이 아닌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번 생에 개로 전생했지만 그들도 우주에서 무엇이 발생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고, 그들도 그 자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들도 생생세세 이 시각을 기다렸을 것이고 그러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세인들뿐만 아니라 우주 중의 동물, 식물, 물질들도 구도받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구도중생의 보다 깊은 내포를 깨달았다.
또 한가지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우리의 한 이웃은 평생 나쁜 일을 많이 했는데 유방암에 걸려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나는 그녀에게도 진상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거절당했다. 그리하여 나는 우편으로 자료를 보내줬는데 그녀가 집 마당에서 편지 봉투를 뜯어서 읽고 있었다.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마다 읽었는데 잠이 들었다가 깨서는 또 읽었다. 그녀는 그렇게 소책자 3개를 모두 읽고 사망했다.
나중에 그 이웃은 내 꿈속에 나타났는데 큰 짐 하나를 지고 다가왔다. 그 짐 안에 또 보따리 4개가 있었는데 그녀는 “이 중 3개는 당신이 준 것인데 돌려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내가 싫다고 말하자 그녀는 기뻐하며 그 하얀색 큰 보따리를 지고 돌아갔다. 나는 작은 보따리 3개는 소책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로부터 세인들이 진상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든 사망한 사람이든 진상을 알게 되면 모두 복을 받는 것이다.
중생이 구도되는 것은 대법제자가 가장 기뻐할 일이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반드시 해야 할 가정의 일들 외 모두 3가지 일에 전념했고 수련에 집중했으며 대법 중에서 자신을 연마했다. 때문에 대법일을 할 때면 잡념이 없고 심태가 깨끗했다. 나는 또 잠을 매우 적게 잤지만 피곤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이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에너지를 넣어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진상 과정에는 또 사부님과 호법신의 보호를 받았다.
가끔은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졸기도 하는데 사부님께서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셨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관심하고 기특해 하시면서 깨우길 망설였는데 그 모습 때문에 나는 오히려 벌떡 일어나 즉시 3가지 일을 하러 갔다.
수련 과정에 나는 많은 것을 겪었다. 위험한 일도 많았고 고생도 많았으며 신기한 일도 많았고 즐거움 또한 많았다. 그러한 과정을 나는 오래전부터 써내고 싶었지만 글 쓰는 능력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같은 심득은 주로 동수들과 교류하고 공동으로 정진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다 함께 사부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사전의 서약을 실현, 자비로 세인들을 구도하여 원만하여 사부님과 함께 돌아가도록 하자.
부동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6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6/7/2249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