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2000년 7월 18일에 밍후이 편집부에서 발표한 글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을 다시 읽고 나서 깊은 감촉을 받았다!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이란 글에서는 이렇게 썼다. “2000년, 전 세계 사람들은 모두 첩첩한 위기 속에서 걸어 들어가게 된 또 하나의 세기를 경축했다. 사람이 왜 이렇게도 행운스러우며, 얼마나 되는 예언가들이 이 시기가 광채를 잃게 되었는지를 세인들은 그 누가 또 알 수 있으랴. 그러나 인류에게 이 생존의 희망이 있게 하기 위해 우리 사부님께서는 오히려 인류 역사 과정에서의 패괴로 빚어진 업력을 감당하셨다.”, “이렇듯 사악한 위험한 환경에 직면해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에게 짓눌린 이 같은 업력과 사악이 조성한 거대한 물질적 요소를 한데 모아 사부님 자신의 몸으로 감당하신 동시에, 사악의 이렇듯 거대한 요소를 없애 버리셨다.”, “인류가 2000년을 지나가는 것은 인류에게 무슨 번영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인류에게 사리를 위해 계속 업을 지으라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이 글이 발표된 지 10주년이 되는 오늘, 다시 이 글을 읽고서 오늘날 우리에 대해서 이 글이 모두 지속적인 경종이 되고 있음을 느꼈다!
1) 해외의 일하는 환경
해외에서 일하는 환경은 어떤 지역은 좋아서 일하는데 아주 순조롭다. 어떤 지역은 좋지 않아서 하는 일이 순조롭지 못하고 심지어 반복적으로 문제가 생기며, 오랫동안 모순이 그치지 않는다. 어떤 지역은 어떤 때는 좋고 어떤 때는 나쁘다. 동일한 지역이라 해도 아주 잘하는 곳과 잘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그 원인을 캐보면 실은 여전히 현지, 당사자 수련생의 법리에 대한 이해 문제, 그리고 각자 心性 수련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다.
많은 해외 동수들은 정체협력, 상호협조는 사업을 잘하는 관건이란 것을 진작부터 인식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일에 마주치면 효과 중에 나타나는 것이란 단지 각자의 진실한 心性의 경지 및 한 정체로서의 수련 수준 점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때문에 필자는 心性제고를 중시하고, 진정으로 자신에게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에 도달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여긴다, 사실 매 해외 대법제자마다 수련의 급선무는 역시 사람을 많이 구도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관건이다.
각도를 바꾸어 놓고 말한다면, 일하는 중에 나타난 난제와 마난을 속인의 방법과 기능으로는 표면만 고칠 수 있고, 일정한 정도에만 도달할 수 있을 뿐 흔히는 피동에 빠지게 되어 모순이 폭발된 후에야 해결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끊임없는 모순 속에서 바삐 모순을 해결하거나 피동적으로 소모하게 되어 정체적으로 일하는 효과에 대해, 큰 국면에 대해 책임질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주동성을 쟁취하려면 반드시 수련 제고에 의거해야 한다. 心性 수련을 중시한 지역 및 항목에서만이 안정되고 일이 생기기지 않음을 보장할 수 있고 일하는 효과도 갈수록 좋아질 수 있어 사부님의 정법 구인(救人)의 요구에 빨리 도달할 수 있다.
2) 해외의 수련 환경
단체 법공부와 단체 연공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놓으신 수련 형식이다. 몇 년간, 일하는 데만 마음을 쓰는 것이 비교적 보편적이어서 단체 연공이 아주 적었고 정기적인 대규모 단체 연공은 더욱 적었다. 단체 법공부는 작은 팀이든 큰 팀이든 주로 총망히 책을 읽고는 항목에 대해 말하고 일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한다. 일단 心性 교류를 한다고 하면 여러 사람은 모두 침묵을 지키거나 다만 몇 사람이 말 몇 마디를 할 뿐인데 진정한 心性수련 교류, 교류 중에서 공동수련하고 공동제고하는 효과에 도달하지 못한다.
지역과 항목 중의 이런 상태는 사실 역시 매 개인의 心性과 수련 상태의 체현이기도 하다. 돌파하려면 여러분이 모두 와서 수련하는데 의거해야 하고, 매 개인이 각자 수련 중에서 부딪힌 매 하나의 ‘병목’을 돌파하는데 의거해야 할 것이다. 해외 수련 환경이 잘 되면 법을 실증하는 면에서 상호 협력하고 상호 지지하며, 더 훌륭한 대법제자 군체 형상을 만드는 방면에서, 일하는데서, 사람을 구하는 효과에서 모두 적은 노력으로 갑절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사실 수련환경을 잘 꾸리자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부동한 층차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인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하며 여러 사람들이 상호 간의 체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즉, 나는 깨달았는데 현재 내가 깨달은 것은 이런 뜻이다. 내 생각으로는 어떤 일을 내가 잘못했기에 나는 어떻게 개진하려고 한다거나 혹은 이 말은 나를 말하고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나는 정말로 좋다고 느낀다는 등이다. 그가 다시 제고되어 다시 볼 적에 같은 한 마디 말이 또 새로운 인식을 갖고 있음을 그는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제고인바 모두 이렇게 깨달으며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전법륜(2권)』「불교중의 교훈」) 개인적으로 인식하건대, 우리가 솔직하게 사부님의 법공부, 교류에 대한 기본적인 요구를 해낸다면 단체 법공부, 연공장 환경은 자연히 좋아질 것이다. 단체 법공부에 대한 사부님의 기본적 요구를 잘해냄을 견지하는 것 역시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주신 해외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물론, 일하는 환경과 수련 환경은 실은 한 가지이다.
조그마한 개인인식이어서 아주 제한이 있다, 삼가 해외 동수들과 교류하는 것이니, 조그마한 추진 작용이라도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여러분 동심협력(同心協力)하여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일체를 더욱 훌륭하고 소중히 여기자.
문장발표 : 2010년 6월 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6/9/225093p.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