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5월 25일〕우리 법공부 팀이 만들어진 지 4년째다. 처음에는 2사람이 법공부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10여 명에 이른다.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89세이고, 가장 어린 사람은 57세다. 우리 법공부 팀의 특징은 나이가 많고 학력이 낮으며, 심지어 글을 모르는 동수도 있어서 다른 수련생이 읽는 것을 듣거나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연로해 청각이 좋지 못한 수련생을 위해서는, 큰소리로 천천히 법을 읽어야 했기 때문에 법공부하는 진도가 아주 느렸다. 그러다보니『전법륜』 그래도 괜찮지만 외국에서 사부님께서 하신 설법은 더 천천히 읽어야 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부 수련생은 조급한 심리가 생기기도 했다.(나를 포함) 하지만 우리는 일에 봉착하면 안으로 찾아보았고, 반드시 사부님의 말씀을 명심하였다, 대법제자마다 모두 사부님의 친인이고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라며 우리는 서로 격려했다. 특히 『명혜주간』에 오른 《어떻게 노인 수련생을 잘 이끌 것인가》 하는 문장을 보고 우리는 아주 크게 고무되었다. 그것은 마침 우리의 조급한 마음을 닦아버릴 훌륭한 기회였다.
사부님의 가호 아래 동수의 도움으로 병업관을 넘다
우리 법공부 팀이 만들어진 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 날 오후, 나는 갑자기 졸도해 쓰러진 뒤 의식이 또렷하지 못했다. 집 사람이 돌아와 나를 병원에 데려갔는데 뇌출혈이며 아주 위급한 상황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집 사람은 아주 놀라서 경황이 없는 중에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보니 나의 주원신이 이미 육신을 떠나가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 주시고 대법제자들이 나를 위해 발정념을 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서서히 깨어날 수 있었다. 그 일을 겪은 뒤 청성해진지 10여일이 넘도록 날마다 대법제자들이 윤번으로 나에게 법을 읽어 주었고 발정념을 해 주었다.
여기에서 나는 자비로 나를 구해주신 사부님, 그리고 나를 도와주었던 동수들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자료를 만드는 한 수련생은 낮에는 자료를 만들고, 밤에는 80여세 되는 노모도 돌보지 못한 채 병원에서 와서 참을성 있게 나를 고무 격려해 주었다. 그들의 이처럼 무사무아 한 정신이 나를 정진하도록 고무해 준 것이다.
퇴원 후, 나는 왼쪽 몸이 마비되어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나는 또 다시 깊은 후회 속에 빠져 이번엔 끝장이구나, 떨어지게 되었어, 사부님께서 더는 나를 요구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에, 사부님을 대할 면목이 없는 것 같았고, 법 공부도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연공도 연마할 수 없었고, 진상 알리기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스스로 나의 형상이 대법을 파괴했다고 느껴지면서 고통스럽기 그지없어 날마다 눈물만 흘렸다. 정서가 좋지 못하니 혈압이 내리지 않아 혈압이 2백에 달했다. 후에 한 수련생이 사부님의 법리로 나를 이끌어 주면서 자책 속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전면적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다그쳐 분발해야 하며, 정법이 아직 결속되지 않은 한 기회는 있을 것이니 넘어졌으면 일어나야지 사부님께서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다. 그의 일련의 말은 나의 마음 속 매듭을 풀어주었다. 나는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처음부터 시작하여 다그쳐 따라잡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연공을 하기 위해 설수 없어도 벽에 기대어 연마했고, 제 4장 공법은 쪼그리고 앉을 수 없으니 걸상에 앉아서 했다. 그리고 2장 공법은 팔을 들 수 없어서 남편에게 빨래 줄에 매달아 팔을 들게 했다. 또 5장 공법을 할 때에는 온 가부좌를 틀 수 없어서 끈으로 동여매고서 처음에는 반시간부터 조금 조금씩 시간을 늘려 한 시간까지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미 5장 공법을 아주 순조롭게 다 할 수 있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법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책을 들면 졸음이 왔고 교란이 무척 컸다. 그때 한 아줌마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와서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집으로 와서 법 공부를 하라고 하였다. 그곳에서 나는 대법의 따사로움을 느끼면서 하루가 다르게 몸이 회복 되었다. 하지만 후에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더는 그녀의 집에 가서 법 공부 할 수 없게 되었다.
바로 그 일 때문에 내가 초조해 하고 있을 때, 무심결에 갑 수련생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갑 수련생은 학교에 다니지 못해 글을 몰라 함께 법 공부할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우리 법 공부 팀은 바로 그런 계기로 만들어 졌다. 동수 갑의 그처럼 순박한 언어, 존사경법 (尊师敬法)하는 일거일동, 대법에 대한 무사적인 공헌 정신은 시시각각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자아 속에 빠져 뛰쳐나오지 못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집착을 보시고는 나에게 이러한 환경을 마련해 주신 것이었다. 그리하여 4년 동안 나의 심신은 모두 크게 제고 했는데, 이웃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모두 회복이 정말 빠르다고 했다. 이는 또 내가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연결되었다.
동수 갑: 득법하여 정념정행 하니 온 집안이 혜택을 입다
동수 갑은 97년경에 법을 얻었다. 집이 가난해 일 년밖에 공부하지 못했고 그나마 배운 글은 진작 다 잊어버렸다. 그녀는 일찍 남편을 사별하고 두 오누이를 어렵게 키웠다. 그녀가 갓 법을 얻었을 때엔 그저 듣기만 하였으나 그녀 집에는 대법 책이 없는 게 없었다. 그녀는 장래 반드시 법을 읽을 수 있을 것임을 확고히 믿고 있었다. 그녀는 틈만 나면 책을 들고 읽었고, 모르는 글자는 자식에게 물어 스스로 종이에다 동그라미며 점 같은 것으로 기호를 만들어 적어 넣었다. 그리고 시간만 있으면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저녁 12시 전에 잠을 자 본적이 없었고 심지어 며느리 해산하느라 입원했을 때에도 침대 맡에서 대법을 읽었다. 그녀는 자신의 법 공부를 느슨히 한 적이 없어서 아이들이 그녀에게 웃으면서 “대학생 같네요!” 라고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그녀의 정념을 보시고 가지해 주시어 지금 그녀는 이미 모든 대법 책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간과 진상 자료도 읽고 있다.
아울러 그녀는 오성 또한 좋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할 때도 마음이 바르고 염두가 발랐으며, 두려운 마음 없이 남이 감히 가지 못하는 곳에도 가서 자료를 배포하면서도 원망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많은 친척들 중 그녀의 권고로 진상을 알고 3퇴한 사람이 무척 많다. 그 중에는 시정부 공무원, 촌 간부가 있고, 어떤 사람은 또 법을 얻기까지 하였다.
그녀 가정환경도 매우 좋아 우리가 그녀의 집에 법 공부하러 가면 자녀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어린 손자마저 할머니들이 법 공부하러 온 것을 알고는 조금도 떠들지 않았으며 초등학교 1학년생인 손녀는 『전법륜』을 읽고 『홍음』을 외웠다.
그녀의 사위는 몇 번이나 교통사고를 당해도 무사했다. 한 번은 브레이크가 갑자기 고장 나서 길가의 웅덩이로 떨어질 찰나 아주 가느다란 나무에 걸려 차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진상 소책자를 즐겨 보며, 지금은 대법 책도 보고 있다.
09년 7월 17일 우리 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강우량이 넘쳤다. 중공 기구는 더 많은 돈을 사취하려고 국민의 질고는 아랑곳 하지 않았고, 건축업자들은 사리를 도모해 아무데나 집을 지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집은 배수구 위에다 집을 지어 물이 빠져 나가지 못하여 주변 마을들에 물이 집으로 스며들었다. 어떤 집은 물이 허리를 쳤고, 솜이불, 쌀들이 모두 물에 잠겼으며, 쌀가게의 양식도 물에 잠겼다.
갑 동수의 집은 낡았고 지세도 낮았을 뿐만 아니라, 거리의 오수는 모두 그녀의 집 앞 뒤를 지나 하수도로 흘러 들어간다. 비가 멎은 후 그녀의 집에 가보았더니 온돌방에 앉아서 법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가 온 뜻을 이야기 했더니 그녀는 웃으면서 조용하게 말하였다. “ 아무 일도 없어요, 사부님께서 우리를 지켜봐 주시니까요.”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녀의 이웃사람들 집은 모두 물이 들어갔으나 그녀의 집만 마당에 물이 고였을 뿐 집안에는 전혀 물이 스며들지 못했다. 비가 내릴 때 마당의 물이 불어나는 게 보였지만 문턱까지 와서는 더는 불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녀는 비가 억수로 쏟아질 때 집안에서 높이 외쳤다. ‘파룬따파 하오, 전싼런 하오’ 사부님께서 그녀를 보호하셨던 것이다.
또 한 번은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야근을 마치고 온 그녀의 아들이 갈증이 나서 물을 끓이느라 가스를 켰다. 그런데 너무 지친 그는 가스를 켜 놓은 채 잠들어 버렸다. 며느리가 집에 돌아 왔을 때 주방은 너무 뜨거워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찬장, 전장, 문틀 모든 게 타서 엉망이 되었고 유리, 그릇들이 깨어져 바닥에 널려 있었다. 만약 폭발했더라면 그 후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아들은 여전히 잠이 든 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웃들은 그 모습을 보고 신기한 일이라고 혀를 찼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은 사부님께서 또 한 번 그들을 보호해 주셨음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을 동수 : 법공부 팀에 참가하여 더욱 정진
동수 을은 금년 65세인데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7.20’이 시작되었지만 그녀는 법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남편을 보살피면서도 한 편으로는 시간을 내어 법 공부, 연공을 하였고, 남편이 잠들었을 때엔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그녀의 살뜰한 보살핌 하에 남편이 평안하게 사망한 후에야 그녀는 우리 법 공부 팀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이가 많아도 비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먼저 도착했는데, 몇 년간 지체했던 법공부 시간을 따라 잡겠다는 것이었다. 그 몇 달 동안 법 공부를 통해 깨달으면서 무척 크게 변해 동수인 딸마저 엄마는 크게 변했다고 하였다. 자식들은 그녀가 단체 법 공부에 가는 것을 아주 지지한다. 그녀는 진상자료 배포 외에도 장날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는데, 매 번 장날마다 3퇴 명단을 갖고 온다. 09년 7월 17일 대 폭우가 쏟아졌을 때 그녀의 집에는 물이 들어가지 않았다.
병 동수 : 사부님께서 법 공부 팀에 참여하라고 점화
동수 병은 우리 팀에서 가장 젊다. 남편이 병으로 죽은 뒤 생활비가 없어서 자식에게 얹혀서 생활하고 있다. 그녀의 사촌올케가 병업관을 넘지 못해 죽었고, 조카와 조카댁이 중공 당국에 불법 판결을 받고 구류됐기 때문에 그녀를 교란하는 게 엄청 컸다. 그녀는 자녀들의 반대로 법 공부 팀에 나올 수 없었다. 법 공부 환경이 없어서 心性도 제고되지 못했고, 두려운 마음으로 인해 진상도 하지 못하고, 연공도 해이해져 법을 얻어서 나았던 병들이 다시 도졌다.
어느 날 저녁 꿈에 엄청 높고 가파른 곳으로 올라가려는 데 어찌해도 올라갈 수 없었다. 후에 위에서 누군가 밧줄을 내려 보내자 그녀는 그 밧줄을 잡았는데 밑에서 또 두 사람이 그녀를 위로 떠밀어 주어 그녀는 힘겹게 위로 올라갔다. 깨어난 후 그녀는 즉시 이는 사부님께서 법 공부 팀에 참여하라고 점화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정 동수 : 법 공부 팀에서 동수들 도움으로 글자를 알고 법 공부 하다
81살인 동수 정은 윤번으로 두 아들 집에서 살고 있다. 둘째 며느리가 간이식당을 운영해 정 수련생은 채소를 캐고 씻고 밥을 짓고 뒷 날에 쓸 재료를 준비해야 했다. 초등학교 2학년만 다닌 그녀는『전법륜』중의 많은 글자를 알 수 없었고 그 뜻도 알 수 없었다. 법을 읽을 때 많은 구절을 반대로 읽었지만 모두들 참을성 있게 고쳐 주고 뜻을 해석해 주었다. 할머니는 아주 참답게 듣고 여러 번 반복해 읽어서 기억을 강화하였다. 참으로 기억할 수 없을 때는 우리에게 동음 글자로 대체해 써 달라고 하였다.
그녀는 법 읽기를 무척 즐겼는데 한 단락 한 단락씩 읽고 또 읽었다. 청각이 좋지 않은 그녀는 틀리게 읽은 것을 고쳐 주어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우리는 참을성 있게 손으로 짚어가면서 알려 주어 그 부분을 다시 읽게 하였다. 할머니의 연세가 많다고만 여겨서는 안 된다. 진상을 알리는 일에도 뒤지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두 아들한테 돌아가면서 살기 때문에 그 시간을 이용하여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데 매번 3퇴 명단을 갖고 온다.
이것이 바로 우리 법 공부 팀의 성장과정이다. 우리 법공부 팀은 법공부를 통해 사부님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였는데, 우리가 하는 많은 일이 사부님 요구에 비하고, 국내의 다른 팀에 비하면 아직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는 “수련을 시작처럼 한다면 필히 정과를 얻으리라”(《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는 사부님 말씀을 영원히 아로 새기고 정진 또 정진할 것이다.
문장발표 : 2010년 5월2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5/25/2242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