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독일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5월 24일] 연속 4년간 나는 션윈 공연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금년에 처음 션윈 공연을 보게 된 곳은 씬탕런방송이었다 그때 볼 때는 깜짝 놀랐다. 지난 3년간 션윈 공연과 비할 때 한 곳이 달랐다. 바로 색채의 사용이다. 무용수들의 의상 색채와 배경의 색채가 아주 생생했다. 예를 들면 무용수의 의상은 산뜻한 귤홍색일 때 배경은 일망무제한 가을 초원에 귤홍색을 썼다. 그러나 조금은 어두웠다. 배경이 분홍색 꽃바다에 녹색의 나무였을 때 무용수의 의상에 많은 분홍색과 녹색을 사용한 등등이다.
내가 대학에서 건축학을 배울 때 회화에 대해서도 배웠다. 색채의 조율과 대비 등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내가 금방 무용과 배경의 색채를 보았을 때 이전의 관념이 즉시 나왔다. “이 배경이 너무나 눈에 띈다. 앞 배경과 배경 대비가 너무나 작으며 배경이 무용수로부터 눈길을 끌어간다. 마땅히 앞면 색상과 뒷 배경 색상이 하나의 대비를 이루어야 앞을 돌출시킬 수 있을 텐데.” 이 염두가 생기자 나는 또 생각했다. 션윈은 가장 바른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관념은 속인의 지식에서 유래한다. 현재 속인사회의 많은 것이 모두 순정하지 못한 것이다. 나의 관념이 션윈과 저촉됨은 긍정코 나의 관념이 바르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직접 공연장에서 션윈을 보게 됐다. 그때 이러한 색채의 조율이 얼마나 상쾌한 것인지 체험했다. 조명이 무용수 몸에 비춰질 때 배경의 조명은 비교적 어둡게 했고 이렇게 하여 배경 색채가 조금도 관중의 주의력을 빼앗아 가지 않게 됐다. 오히려 배경과 의상이 흡사하고 같은 색채여서 무용수는 마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듯 했다. 매체 보도에서도 많은 관중은 의상과 배경이 아주 잘 어울려 마치 하나의 정체와 같았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과 대자연 지간의 조화로움을 보아냈다고 했다.
4년 전 처음 션윈을 볼 때 나는 무용수들의 화려한 색채에 매우 감동했다. 왜냐하면 일상생활에서 특히 독일에서 사람들의 의상 색채는 아주 단조롭기 때문이다. 겨울에 지하철에 사람들을 보면 거의 검은색과 회색이다. 봄이나 여름이어도 의상의 색채는 소박한 것을 위주로 한다. 많은 사람은 이런 색채야말로 품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련을 통해 마음속에 어두운 것이 점차 적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의상에 대한 선택에서도 달라졌다. 옷을 살 때 나의 눈길은 색채가 아름다운 곳에 멈춰 섰고 옷걸이의 의상은 검은 색, 회색이 점점 적어졌다.
그러나 이 몇 년간 관념은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었다. 션윈 공연을 만났을 때 나는 비로소 진정으로 색채에 대한 관념을 명확히 의식하게 됐다. 또 이러한 관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았다.
나는 당나라를 생각해봤다. 당나라 의상색채는 아주 풍부하다. 한 문화가 최고봉에 이르렀고 아주 생명력이 있을 때 일체는 모두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다. 색채도 순정하고 풍부하다. 그러나 문화가 퇴폐해질 때면 아주 비감하며 색채도 사람에게 쇠한 감을 준다. 예를 들면 중국대륙의 문화, 사실 유럽의 문화도 이러하다. 역시 끝에 도달했으며 많은 예술작품 색상도 모두 아주 암담하다.
션윈 공연은 바로 문화를 가장 순정하고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되돌리고 있다. 중국문화뿐 아니며 세계문화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션윈 공연의 화려한 색채는 바로 가장 순정한 문화의 외적 표현이다. 조금의 암담함이 없으며 전부 광명이다 내가 션윈을 한번 또 한번 볼 때마다 자신도 한차례 또 한 차례 대법에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사람의 관념을 많이 내려놓을수록 션윈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더욱 보아낼 수 있다.
문장발표: 2010년 5월 24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 기타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5/24/2242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