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5월 5일】4월 27일 밍후이왕 문장 「영원한 21살」을 읽은 후 심정이 무겁고도 복잡하다. 일찍이 젊고도 활발했으며 뛰어났던 류즈메이(柳志梅)란 이 생명이 이렇듯 비참한 지경에 처한 것으로 인해 마음이 아팠고, 또한 감옥에서 신념을 견지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겪었으나 나중에는 사당의 ‘전화하면 학교에 다시 복학할 수 있다’는 속임수를 막아내지 못한 그녀로 인하여 유감스러웠으며, 더욱이 류즈메이를 살뜰히 보살펴 주었으나 그녀의 법에서의 강대한 정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오늘 도리어 불법 수감된 동수로 인하여 가슴이 아프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동수와 교류하려는데 있다. 불법은 자비와 위엄이 함께 있다! 수련인으로서 일사일념은 시시각각 법의 기점에 서 있어야 하고, 대법 수련생의 책임과 사명의 기점에 서서 정념정행 하여 사악이 기회를 타지 못하게 해야만 박해를 줄일 수 있고, 불필요한 손해를 줄일 수 있다.
류즈메이는 일찍이 우수한 성적으로 칭화(清華)대학(에 들어왔으나 대법에 대한 신념을 견지한 이유로 사당에게 중형 판결을 받았다. 겨우 21살 된 여자가 사악한 검은 소굴에서 혹독한 시달림을 받을 대로 받았으나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견지하고 마음 속 깊은 곳의 그 선량함을 굳게 지켰다는 것은 실로 사람을 감탄케 한다. 하지만 사악은 수련인이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에 손을 쓴다. 사악이 그녀가 ‘전화’하겠다고만 하면 학교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속였고, 그녀는 타협을 선택하였다, 어쩌면 대학은 그녀가 꿈에서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련은 사람 중의 일체를 내려놓아야 하고, 생사를 내려놓아야만 최종적으로 원만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류즈메이가 방향을 잃은 후, 사당은 ‘복학’을 미끼로 그녀에게 죄악적인 ‘방교(幫教, 사당을 도와 허위주장과 그릇된 사설로 노동교양소 등에서 세뇌활동을 하는 사람)’가 되게 하여 그녀를 죄업이 심중하게 만들었다. 사당요원들이 가장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길을 잃은 대법 수련생이 일단 검은 소굴을 벗어난 후이면 재빨리 또 다시 대법수련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의 죄악을 덮어 감추기 위하여 그녀에게 독극물 주사를 놓아 그녀를 정신이상에 걸리게 함으로서 앞으로 검은 소굴에서의 죄악을 폭로할 수 없게 하였다.
법으로부터 우리는 인식하였는바, 거대한 마난에 직면하여 참으로 태연하게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생사는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이 마음, 이 집착이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고비와 난을 넘기가 아주 어렵게 된다. 한 대법제로서 일단 난관 중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였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세력도 이 때문에 필연코 죄를 범한 대법수련생을 놓치려 하지 않는다. 만약 그 죄악을 씻어버리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갚아야 할 것은 갚아야 하는 것이다.
류즈메이가 사당의 박해로 정신이상에 걸렸을 때 우리의 동수들이 개인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관심을 갖고 보살펴 준 것은 크게 비난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그녀에게 주의식이 정신을 차리게 하고 법 중에서 정념을 수립하는 것을 통하여 그녀의 주왠선(主元神)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만약 그녀 본인이 생명 깊은 곳으로부터 청성하고 이지적이 되지 못한다면 외적인 환경조건은 중요한 작용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절반은 청성하고 절반은 흐리멍덩한 상황에서 계속하여 부정적인 작용을 논한다면 그럼 마땅히 이 일을 정념으로 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 때문에 박해 받은 수련생이 현재까지도 불법 수감 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 손실은 얼마나 큰가? 나는 류즈메이의 구체적 상황을 잘 모르고 있으며, 단지 「영원한 21살」을 보고 느낀 점을 발표할 뿐이다. 그녀를 보살펴 주고 있는 동수들께서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정념정행하기를 바란다. 한 생명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따를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이다. 일단 무엇을 선택했다면 그 후과는 모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대법에는 표준이 있으며, 자비와 위엄은 동시에 존재한다.
이 일로부터 나는 몇 년 전 내 주변에서 발생했던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신문사의 기자였는데 수련 후 그녀를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일찍이 괴상한 병이 있었는데 온 몸이 가렵고 아팠으며 바람을 맞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고칠 수 없어 오랜 동안을 아픔에 시달렸다. 1999년 초반에 대법 수련에 들어왔고 신체가 재빨리 회복되었다. 그녀가 수련한지 겨우 석 달이 되었을 때 사악한 장씨 집단이 미친듯한 탄압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대법이 그녀에게 건강한 신체를 준 은혜에 감사하여 두려움 없이 구장(區長)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대법은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한다고 말했으며,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과에 대해 말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사당의 공갈 위협을 이겨내지 못하여 한 차례 악독한 세뇌를 거친 후 반면으로 나아갔고, 사악이 대법 탄압을 가장 창궐하게 할 때 그녀는 사악의 ‘방교’로 되었으며, 전 시(市)의 크고 작은 세뇌반에 모두 갔었고, 심지어 성, 시 노동교양소 등 검은 소굴에 가서 죄악적인 세뇌활동을 하면서 그릇된 주장과 사설(邪说)로 선동하여 현지 ‘610’과 스파이조직의 유력한 하수인으로 되었다. 그녀 본인은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하는데다가 표면 이미지도 괜찮았으므로 한 때 적지 않은 법리가 분명하지 못한 사람들을 미혹시켰고, 많은 수련생들이 그녀를 따라 사오의 길로 가게 되었다.
이러한 죄악적인 일을 그녀는 약 3년간 하였다. 장기간 대법제자와 접촉하는 중, 그녀는 대법수련생은 뭇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감수하고, 한쪽으로는 죄악적인 일을 하면서도 한쪽으로는 속으로 야릇한 고려와 우려를 지니게 되었다. 바로 죄악적인 ‘방교’활동을 하고 있을 때, 네 가지 질병이 그녀를 습격하였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암이었다. 그녀는 선양 종양병원에 입원하였다. 병원에서 그녀가 통증과 화학치료 작용의 이중 시달림을 참아내기 어려울 때 한 가지 염두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나의 병은 누구도 치료할 수 없다. 오직 대법만이 나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병실에서 환자들에게 대법진상을 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병원과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앞당겨 퇴원하여 집에 돌아와서 법 공부, 수련을 하였다.
기적은 또 다시 나타나 암증이 사라졌다. 그녀는 더더욱 입은 은덕에 감사를 드렸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려 주었다. 한 번은 직장에서 그녀와 한 동료가 어느 고장에 가서 불치병을 앓는 사람을 취재하게 되었는데 목적은 환자에게 어떻게 사당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았는가를 말하게 하려는데 있었다. 간 후 환자의 가난하고 병이 골수에 뻗친 처참한 상황을 보고 취재는 감감 잊어버리고 동료의 앞에서 환자에게 대법진상을 말해 주었다. 환자는 대법의 복음을 듣고 몹시 감동되었다. 그 후 그녀는 도리어 동료의 고발로 지도부에서 그녀에게 압력을 가하고 위협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녀에게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하였다. 한 동안의 파란곡절을 거쳐 그녀의 심리 압력은 더욱 켜졌다. 대법이 좋다는 것을 번연히 알고 있지만 또 악당의 잔혹함이 두려워 진실한 말을 감히 하지 못하였다. 여러 가지 압력과 복잡한 모순으로 하여 그녀는 조용히 수련할 수 없었고 나중에는 병마에게 끌려 갔는데 그때는 겨우 마흔 몇 살 밖에 안 되었다.
이 기자의 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의 진실한 상황은 모르고 있으면서 이렇게 일심으로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을 어찌 대법 사부님께서 관할하시지 않는가 하고 여겼다. 누가 모르랴, 그녀가 사악을 도와 수련인을 박해하였기에 중한 업을 빚었다는 것을. 사부님께서 그녀를 탓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지만 중요한 순간에 그녀는 도리어 한 발은 문 안에, 한 발은 문 밖에 놓았는데 이를 진정한 수련으로 칠 수 있는가? 평소에 어떻게 말을 잘 한다 하더라도 일찍이 어떠한 거동이 있었는가, 매 하나의 중요한 시각마다 모두 그 경지에서의 가장 진실한 체현인 것이다.
이 일도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며, 위엄과 자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수련 도중에 끼어드는 어떠한 교란이든 모두 수련의 진행에 영향을 준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면 필히 정과를 얻는다. ”란 법을 말씀하셨다. (『2009년 대뉴욕 국제법회설법』)우리는 대체 그 중의 얼마만큼 내포를 깨달았는가?
미혹된 세인에 대해 우리는 무사(無私)적인 지불을 할 수 있고, 무조건 자비로 구도할 수 있다면 우리의 동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수련생이 일시 굽은 길을 걸었다 하더러도 오직 그가 대법 중으로 돌아 올 수 만 있다면 우리는 홍대한 자비로 이해하고 관용해 주어야 할 것이다. 방향을 철저히 잃고 반면으로 간 사람, 대법을 완전히 떠나서 여전히 교란 작용을 일으키는 사람에게도 공정한 결과와 위치가 그녀(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비바람의 세파 속에서 십여 년을 걸어왔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우리는 경솔하지 말고 더 많이 이지적이 되고, 어떠한 일이든 정념으로 대하며, 인정과 사람마음을 뒤섞지 말기를 바란다.
이상은 개인 인식으로서 부당한 곳은 자비로 지적하길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5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5/5/2228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