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수련형식을 정확히 인식하고, 수련환경을 소중히 여기다

ㅡㅡㅡㅡ《계속하여 대도무형의 길을 잘 걷자 》를 읽고서

글/ 대륙 칭저우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5월 1일】밍후이 편집부에서 최근에《계속하여 대도무형의 길을 잘 걷자》를 발표하였는데 나는 매우 적시적이고, 우리들이 정확하게 수련형식을 인식하고, 눈앞의 수련환경을 소중히 여기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한 갈래 대도무형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은 오직 이 형식만이 비로소 우주 대법에 어울리며, 비로소 대법제자의 거대한 과의를 성취할 수 있게 하며, 비로소 더욱 유력하게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들에게 알려주셨다: “어떤 일이든 모두 극단으로 나가지 말라. 이지(理智)적이고, 청성(清醒)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대법제자의 위덕이다. 누가 속인사회 이런 형식 중에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하게 이 수련형식 중에 가장 잘한 것이다. 만약 누가 이 형식 중에서 이 형식을 초월하고, 이런 형식에 부합하지 않는 일종의 표현이 있다면, 그럼 그리 잘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왕에 대법제자의 수련이 바로 이러한 한 가지 형식이라면, 이 형식은 능히 대법제자를 육성할 수 있으며 이 수련 형식은 능히 장래의 거대한 과위를 성취시킬 수 있다. 이 형식을 벗어나거나 혹은 이 형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수련에 모두 장애를 조성할 것이다. 사실 그것은 모두 집착이 조성한 것이다.”。(《미국수도설법》)

한 대법제자로서, 우리 매 개인이 모두 더욱 잘 수련하려고 생각한다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 중에서 더욱 큰 작용을 발휘하여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수련을 잘한 것이고, 어떻게 해야 비로소 우리들의 작용을 최대한도로 발휘했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참답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 본인을 놓고 말하더라도 매우 오랫동안 항상 나가서 전단지를 배포하고, 광범위하게 나가서 무슨 일을 해야만 비로소 수련을 멋지게 한 것이고, 비로소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비록 마음을 다해서 자신을 표현하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잠재의식 중에 아직도 오직 이런 형식상의 것들만이 비로소 대법제자의 존재와 수련의 의의를 체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심지어 오직 이러한 형식적인 것들을 수련의 대부분의 내용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당시의 나의 수련상태는 허둥지둥 했다고 형용하여도 조금도 과분하지 않다. 법 공부와 발정념을 대충하였으므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 공부를 하지 못했고, 발정념의 시간, 차수, 효과 모두가 크게 감소했다. “자신을 잘 수련하여 더욱 겨냥성이 있게 세밀하고, 이지적으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계속 대도무형의 길을 잘 걷자》)는 더욱 담론할 수 없었는데 그 결과는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나의 수련환경은 비교적 좋았으며 직위도 높고, 수입도 많았는데 속인 중에서의 영향은 매우 컸고, 일을 여러 차례 변동하는 것으로 하여 사악은 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매일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대량으로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일을 하는 부분에 있어 조급해하여 진상을 알리는 장소,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능력도 보지 않는 등등 속인의 마음이 있었기에 사악이 틈을 타고 기어 들어왔다. 또한 정념으로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지 못했기에 매우 좋은 수련환경을 잃어 버렸고, 매우 오랜 후에야 비로소 이 환경을 되찾을 수 있었다. 손실은 매우 막심했고, 교훈 역시 심각하였다. 한 방면으로는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했고, 다른 방면으로는 수련의 형식을 이해하지 못하여,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환경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므로 인해 조성된 것이다. 나는 수련 형식에 대한 이해상의 잘못된 영역, 수련환경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일부분 사람들의 몸에서 일부 지역에도 모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부님께서는 일찍 말씀하셨다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자체가 바로 사악에 대한 가장 큰 타격이다.”(《밍후이왕(明慧网)10주년 법회에서의 설법》)감옥 혹은 노동 교양소에서 직접 박해를 받고 있는 동수들에 비하면 대부분 대법제자들의 수련 환경은 갈수록 여유가 있는데, 이는 사부님과 대법이 우리를 위해 안배하고, 창설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필히 더욱 자신의 수련 환경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특히 최후일수록 우리들에 대한 요구도 더욱 높을 수 있으므로 자신이 이지적이지 못함으로 인해 이 환경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자신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며, 중생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밍후이왕에서 한편의 문장을 보았던 것이 기억난다. 대의는: 나는 지금 마치 아무것도 두렵지 않는 것 같다. 명성(名聲)과 지위이익과 관록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생명을 잃는 것마저 두렵지 않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아직도 두려워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것이 바로 수련 환경을 잃을 가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많은 동수들은 모두 이런 상황이 존재한다. 당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인식이 명확하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는 우리들이 수련환경을 잃을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당연히 정상적인 수련환경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수련의 형식을 똑똑히 인식하고 이런 형식 중에서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수련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절대 수련 환경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환경을 이용하여 최대한도로 법을 실증하고,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완성하는 것이다.

물론 만약 우리들이 원래 좋았던 수련 환경을 잃게 되어도, 비관할 필요 없이 다시 일어나면 된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잘한다면 마찬가지로 사부님의 제자이다.

위에서 말한 목적은 주요하게 동수들을 일깨워 주려는 것이고, 역시 자신이 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약간의 보상이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동수들의 자비로 시정해 주기를 희망한다.

문장 완성: 2010년 5월 1일

문장 분류: 수련 마당문장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1/222630.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